블로흐 117

블로흐와 아도르노의 유토피아 논쟁 (4)

(계속 이어집니다.) 블로흐: 바로 이러한 까닭에 유토피아의 사고는 두 가지 의향으로 발전되었습니다. 그 하나는 유토피아 사회상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법사상입니다. 전자는 더 이상 힘들게, 무거운 짐을 진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적 상태를 재구성하고 있다면, 후자는 자연법을 주창하는 자들의 의연한 기개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러한 사항을 『자연법과 인간의 존엄성』에서 자세히 천착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세 번째 사항이 문제로 제기되는군요.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죽음을 가리킵니다. 죽음은 흔히 신앙인들이 즐겨 다루는 “사랑스러운 아이”로 이해되곤 합니다. 그렇지만 죽음을 떨치기 위하여 필요로 하는 것은 어쩌면 하나의 기적이겠지요. 흔히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강조..

30 bloch 대화 2021.09.08

블로흐와 아도르노의 유토피아 논쟁 (3)

아도르노: 헤겔은 가능성의 개념을 나쁘게 언급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블로흐: 가능성의 개념은 헤겔에 의해서도 나쁘게 다루어졌지요. 헤겔은 가능성에 대한 종래의 견해를 어쩔 수 없이 수용하면서 가능성을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 개념으로 취급하고 말았지요. 실재하지 않는 것은 어떠한 가능한 무엇도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가능한 것은 헤겔의 견해에 의하면 현실적인 것으로 직결되었으니까요, 말하자면 그것이 현실적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다고 헤겔은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가능성의 카테고리는 헤겔의 경우 하나의 주관적 성찰의 카테고리였습니다. 아도르노: 가능성이란 개념이 그냥 지붕 꼭대기 위로 올라간 셈이로군요. 블로흐: 그런 셈이지요 가능성의 개념은 처마위로 올라갔지만, 지붕 밖으로 돌출해 나오지는 못했..

30 bloch 대화 2021.09.07

블로흐와 아도르노의 유토피아 논쟁 (2)

아도르노: 나 역시 당신의 주장에 부분적으로만 수긍합니다. 당신이 암시한 바 있는 사항을 동원하여 몇 가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일단 여기서 분명히 규정할 게 있어요. 앞에서 과학 기술에 관한 말씀은 유토피아에 관한 나의 본래의 입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과학 기술과 관련된 냉정함 때문에 오늘날 유토피아의 의식이 축소되고 폄하된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여기서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다음과 같은 물음입니다. 즉 과학 기술이 이룩해낸 놀라운 발명이라든가 개별적인 혁신이 전체성, 사회 전체의 문제점을 고려할 때 어떠한 방식으로 하나의 대립각을 형성시키고 있는가? 하는 물음을 생각해 보세요. 유토피아라는 무엇 내지 유토피아라고 생각될 수 있는..

30 bloch 대화 2021.08.31

호르스터: 블로흐의 사상 (3)

에른스트 블로흐는 아직 완결되지 않은 존재로서의 존재를 “아직 아닌 존재 (das Noch-Nicht- Sein)”로 규정하였다. “아직 아닌 존재”는 “아직 아닌 의식” 내지 “의식되지 않은 무엇”과 연합 전전을 구축하고 있는데, 블로흐 이전의 형이상학에서는 학문적으로 명명된 바 없다. 이전의 형이상학에서는 존재는 처음부터 완결되어 있는 무엇으로 다루어졌다. 그러나 블로흐의 경우는 이를 배격한다. 때문에 블로흐의 철학은 새로운 형이상학이라고 명명될 수 있다. 그렇지만 블로흐가 과거의 형이상학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블로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의 다음과 같은 핵심적 사고를 차용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본질은 개별적으로 실존하고 있는 무엇과의 일치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고 한다. “아..

29 Bloch 번역 2021.08.24

호르스터: 블로흐의 사상 (2)

1961년 블로흐는 자신의 튀빙겐 첫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물었다. “희망은 환멸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가?” - “분명히 그렇다. 굉장하지 않는가?” 그러니까 환멸은 희망이라는 남자 곁에 동행하는 여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과 대답은 블로흐의 실제 삶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블로흐는 제 1차, 제 2차 세계대전을 체험했다. 1933년 3월 6일 그는 1917년의 망명 국가였던 스위스로 재차 망명해야 했다. 1934년 그는 빈으로 가서 자신의 세 번째 부인 카롤라와 결혼했다. 1935년부터 두 사람은 파리에서 살았고, 1936년부터 1938년까지 프라하에서 생활했다. 1938년 그들은 배를 타고 미국으로 망명했다. 1948년 블로흐는 라이프치히 대학교의 교수 초빙에 응했다. 자신의 명확한 자의식은 라이프치..

29 Bloch 번역 2021.08.24

호르스터: 블로흐의 사상 (1)

블로흐의 주저 『희망의 원리』는 1938년부터 1947년 사이에 미국 망명 시에 집필되었으며, 제 1권은 구동독에서 1953년에 간행된 바 있다. 이 책은 여러 가지 대상을 다루면서 어떤 더 나은 삶에 대한 갈망이 인간을 추동하는 결정적인 모티브라는 사실을 피력하고 있다. 블로흐는 회화, 건축, 음악 그리고 문학 등의 제반 예술 장르를 하나씩 분석하고, 동화, 영화, 여행, 유행, 진열장, 춤, 무언극, 낮꿈과 밤꿈, 종교 그리고 신화 등을 차례로 거론하면서, 이들 속에 담긴 유토피아의 요소들을 해명해 나간다. 나아가 그는 통속 문학, 영화관, 일 년 시장, 축제 등의 영역을 긍정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어떤 소외되지 않은 사회적 정치적 현실 상태에 대한 희망의 가장 다양한 표현 형태들을 ..

29 Bloch 번역 2021.08.24

블로흐: 나의 청년 시절의 친구, 루카치

여기서 "나"는 장 미셀 팔미어를 가리키고. "너"는 에른스트 블로흐를 가리킨다. 이하의 인터뷰는 1976년에 행해졌는데, 다음의 문헌에 실려 있다. Arno Münster (hrsg.): Tagträume vom aufrechten Gang, Suhrkamp: Frankfurt a. M. 1977. S. 102 - 106. ........................... 나: 교수님은 어떤 외적 조건에서 루카치를 알게 되었으며, 어떠한 계기로 우정을 쌓게 되었는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너: 언젠가 짐멜은 다음과 같이 말했지요, 누군가가 세미나에 참석하고 싶은 헝가리 출신의 철학자를 소개해주었다고 했습니다. 그가 바로 죄르지 루카치라고 했어요, 당시에 나는 그를 알지 못했습니다. 짐멜도 그를 잘 몰랐지요..

30 bloch 대화 2021.08.04

블로흐: 기독교 속에는 반란이 담겨 있다. (3)

(계속 이어집니다.) 상황은 그렇게 비관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소련이 그렇게 고립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중국이 약간의 영향을 끼칠지 모릅니다. 또한 길은 옛날처럼 하나가 아닙니다. 마오쩌둥이 있고, 사회주의의 다른 방향도 있을 수 있지요. 어쩌면 중국의 사회주의는 오로지 중국적으로 머물고, 다른 나라에 적용될 수 없을지도 몰라요. (이는 블로흐의 착각이다. 중국의 사회주의는 더 이상 마르크스주의의 영역을 벗어났다. 블로흐의 이러한 오류는 그가 1977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인지 모른다. - 역주) 그렇지만 다른 길은 반드시 있습니다. 서구에서 학생들만 활약했듯이, 소련에서처럼 지식인들만이 활약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언젠가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지요. 현실이 사고를 추동하지 못..

30 bloch 대화 2021.07.25

십자가는 고통인가, 인내의 대상인가? 블로흐와 몰트만 (2)

MA: 우리는 두 사람의 견해를 단순하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 독일의 사회학자 아돌프 로베Adolph Lowe는 당신의 기념문집에서 자신의 편지를 게재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그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급진적 부정성, 다시 말해서 극단적인 사악함이 어떤 기대 효과 속에서 스스로 여전히, 아직도 여전히 해체되지 않은 채, 이른바 세계 역사의 거짓된 그물 속으로 빠져들면, 그것은 대체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블로흐씨, 당신은 아마도 이를 하나의 속임수라고 말씀하시겠지요? 그런데 신학자들은 바로 이 점을 염두에 두면서 단순히 다음의 사항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즉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반드시 부활하리라고 갈망합니다. 바로 이러한 희망이 우리로 하여금 부활한 그리스도를..

30 bloch 대화 2021.07.23

십자가는 고통인가, 인내의 대상인가? 블로흐와 몰트만 (1)

1965년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의 근교에 위치한 아르놀트하인에서 복음 아카데미의 회의가 개최되었는데, 인터뷰는 이를 계기로 성사되었다. 대화의 참석자는 볼프 에드거 마르쉬 (MA), 에른스트 블로흐 (B) 그리고 위르겐 몰트만 (MO)이었다. ...................................... MA: 만약 우리가 제각기 상대방에 대한 호의라든가 동일한 견해만 제기한다면, 대화는 바람직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두 사람 사이에 나타나는 견해 차이를 도출해낸다면, 토론은 그야말로 의미심장할 테니까요. 우리가 주어진 시간에 견해 차이를 분명히 드러내면, 좋으리라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는 “새로운 무엇Novum”의 특성을 고찰하는 데 있어서의 차이점을 밝히는 게 좋을 듯합니다. 블로흐씨..

30 bloch 대화 2021.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