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흐 105

서로박: 마네의 '풀밭 위의 아침 식사' 해설

사람들은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을 좋아하여, 그의 삶의 행적을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때마다 마네는 “꽃밭에 가보세요. 그곳에 가면 나의 삶이 다 보일 것입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나중에 에른스트 블로흐는 이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행적에 관해 묻는 리포터들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나의 저작물을 구해서 보세요. 그 속에는 나의 삶이 용해되어 있습니다.” 각설, 마네는 자신의 사적인 삶에 관해서 언급하기를 꺼려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사랑 그리고 이와 결부된 프라이버시를 공개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마네에게는 커다란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집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던 네덜란드 출신의 수잔네 렌호프를 연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파리의 저명한 판사였던 마네의 아버지는 자신의 집에서 피..

11 조형 예술 2024.04.14

박설호: 블로흐의 "재기억" 비판

1. 재기억 이론이란 무엇입니까? 블로흐의 "주체와 객체. 헤겔에 대한 주해 Subjekt - Objekt. Erlaeuterung zu Hegel"는 헤겔 사상과 재 기억에 관해 논하고 있습니다. 기억이란그리스어 단어에 의하면 “ανάμνηση”라고 하는데 , 플라톤 이래로 인식이론의 토대가 된 것입니다. 한마디로 진리란 과거에 존재한 불변의 사실이라고 합니다. 진리를 파악하려면 인간은 다시 기억 속에 그것을 소환해내면 족하다고 합니다. 과거에 존재했던 진리를 다시 소환해내는 일이 바로 재-기억이라는 행위라고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사고 속에 탈레스에서 헤겔에 이르기까지 모든 철학이 잘못된 길을 걸어가게 한 전매특허로서의 특징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학문은 ..

30 bloch 대화 2023.11.14

서로박: 블로흐와 자게

정치학자 리하르트 자게는 유토피아의 의향으로서의 란다우어, 만하임 그리고 에른스트 블로흐의 입장을 처음부터 배격하고, 토마스 모어의 고전적 유토피아를 유토피아 개념의 핵심 사항으로 수용하고 있다. 1991년 『신시대의 정치적 유토피아 Politische Utopien der Neuzeit』이후로 4권에 이르는 『유토피아 프로필 Utopische Profile』을 발표해 왔다. 물론 자게는 방대한 서적을 통하여 자신의 확고한 견해를 부분적으로 수정하고 어느 정도 유연한 입장을 표방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게는 오랫동안 한 가지 근본적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유토피아의 의향의 개념으로서 천년왕국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배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그의 많은 논문과 연구서에..

27 Bloch 저술 2023.11.06

서로박: 블로흐와 부버

사진은 1961년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교에서 강의하는 부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유토피아에 어떤 적극적 참여 정신을 부여한 사람은 유대인 철학자, 마르틴 부버였다. 그가 마르크스주의에서 어떤 비판적 결함을 추출하여, 마르크스주의의 발전을 의도했다는 점은 블로흐, 벤야민 그리고 브레히트 등의 경우와 유사하다. 마르틴 부버가 중시하는 것은 실천이라는 주관적 영역이다. 개개인이 자유와 평등의 삶을 실천하려는 뜻은 역사적 관련성이라는 객관성에 대항하는 새로운 현실의 장을 제공한다. 실천하는 행위는 역사성의 객관주의와는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는다. 그것은 부버에 의하면 "사행 철학 Tathandlungsphilosophie"을 내세운 피히테주의와 다름이 없다. 부버의 사상은 종교에서 출발한다. 마르틴 부버는 기..

27 Bloch 저술 2023.10.12

서로박: 사상의 보석은 여전히 숨어 있다

1. 맨 처음 에른스트 블로흐를 처음으로 접한 때는 아마 74년이었습니다. 독재와 민주화의 기운이 태동하여 서로 부딪치던 시기에 어느 친구는 나에게 얇은 책자 한 권을 건네주었습니다. 그것은 박종화 교수님이 번역한 부광석 (브라이덴슈타인)의 인간화 (人間化)였습니다. 기억하건대 외국인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 사회의 분석 내지 신학적 견해 등이 씌어진 것 같습니다. 이 책의 부록에는 놀랍게도 블로흐의 삶과 철학이 간략히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블로흐 철학은 당시에도 미개척의 영역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지식은 일천하였고, 당시에는 블로흐 사상의 중요성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2. 에른스트 블로흐의 희망의 원리를 처음으로 읽기 시작한 때는 그후 십 년 뒤였습니다. 뮌헨 대 독문과 위르겐 샤르프슈베르트 교수님은..

2 나의 글 2023.08.09

서로박: (2)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앞에서 계속됩니다.) 8. 유토피아 국가의 체제와 국정 운영 방식: 유토피아는 영국과 웨일스를 합한 크기의 거대한 섬입니다. 여기에는 도합 54 개의 도시가 위치하는 데, 모두 정방형의 구조로 분할되어 있습니다. 섬의 국가는 거대한 사회 조직으로서 대가족 체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약 40 명의 남자와 여자들과 아이들이 한 가족을 이루며, 이들을 다스리는 자는 특정한 한 남자 혹은 여자입니다. 대가족은 다시 약 서른 개의 소가족으로 나누어지는데, 사람들은 소가족을 대표하는 자를 “필라르켄 Phylarchen”이라고 일컫습니다. 소가족의 대표들은 일 년에 한 번씩 모여서 200명의 장교를 선출합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장교들을 “트라니보어 Tranibor”라고 명명합니다. 장교들은 제반 도시에서 천거된 유..

35 근대영문헌 2023.05.20

블로흐: (3) "굴종의 회개인가, 성령의 수용인가". 루터 비판

(앞에서 계속됩니다.) 인간 존재는 루터에 의하면 자신의 고유한 힘으로써 믿음이라는 찬란하고 순수한 빛을 확인할 수 없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루터는 신앙인을 도우려고 하는 수사들의 노력마저 용납하지 않았다. 수사계급은 신앙인들에게 어떠한 가치 있는 믿음을 전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신의 과업이 진행되면, 피조물은 이에 대해 어떠한 대응도 할 수 없으며, 교회의 행위 역시 부질없을 뿐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든 간에 신의 과업 앞에서 수동적으로 행동하고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따라서 인간은 그냥 휴식을 취하는 일 외에는 행할 게 없다. 실제로 루터는 어떤 형태를 갖춘 인간적 자유를 헐뜯고 철저히 부정한다.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면서 그는 자신의 신앙을 성당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말하자면 루터는 보헤..

24 신학이론 2023.05.03

서로박: (2) 모리스의 "유토피아 뉴스"

(앞에서 계속됩니다.) 22세기의 영국에서 환영 받는 일감은 단순 노동 외에도 학문입니다. 사람들은 학문의 연구를 통하여 환경 친화적인 에너지를 창조해낼 수 있었습니다. 이에 비하면 사람들은 고도로 발전된 기계의 사용을 결코 애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계에는 인간의 예술적 감각이 조금도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리스는 작품 속에 기계 설계 및 이에 관한 세부적인 기술적 사항을 사변적으로 그리고 정밀하게 해명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사실 모리스는 기계와 자연과학에 관해서 잘 모른다는 것을 은연중에 시인합니다. 그렇지만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과학 기술의 구체적 사항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인간과 자연에 친화적인 과학과 기술이 환영 받는 사회적 전제조건을 마련하는 일이었습니다. 우연히 아름다운 ..

35 근대영문헌 2023.04.23

박설호: (2) 에른스트 블로흐 읽기 (III) 서문

(앞에서 계속됩니다.) 제 3부에 실린 글은 얼핏 보기에는 블로흐 연구와 무관하게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연구 대상은 다를지 몰라도, 독자들은 논의의 전개 및 방법론에 있어서 에른스트 블로흐를 유추할 수 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첫 번째 글 「이반 일리히의 젠더 이론 비판」은 미발표의 논문으로서 일리히의 저작물 『젠더』를 비판적으로 구명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서 필자는 두 가지 사항을 지적하려 하였습니다. 그 하나는 일리히의 과거 지향적 관점이 퇴행의 반동적 세계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젠더에 대한 일리치의 시각이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고찰할 때 추상적이고 전근대적이라는 점입니다. 「원시 사회는 암반위에 있고, 문명사회는 절벽을 기어오르는가?」는 김유동 교수의 『충적세 문..

27 Bloch 저술 2023.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