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현대불문헌 53

서로박: (3) 미셸 투르니에의 '쌍둥이 행성'

(앞에서 계속됩니다.) 11. 소설의 구조적 특징: 소설의 관점의 측면에서 우리는 다음의 사항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즉 작품의 첫 부분에서는 주로 일기 형식의 서술로 등장인물의 다양한 관점이 복합적으로 드러납니다. 이러한 서술은 정태적 사진처럼 평이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관점은 소설의 중간 부분부터 서서히 폴. 한 사람의 관점으로 좁혀집니다. 사건의 흐름 역시 역동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소설의 진행이 정태적 상황의 서술로부터 역동적 사건의 서술로 변한다는 점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그밖에 소설의 두 가지 사건, 다시 말해서 알렉상드르의 이야기 그리고 장과 폴의 이야기는 상호 보완적인 의미를 지니는데, 주제를 고려할 때 서로 상반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앞에서 언급했..

33 현대불문헌 2024.03.27

서로박: (2) 미셸 투르니에의 '쌍둥이 행성'

(앞에서 계속됩니다.) 6. 장과 폴 사이에 나타난 갈등: 뒤이어 장과 폴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런데 장과 폴은 서로 갈등을 빚게 되는데, 이는 장의 태도에 기인합니다. 어느 날 장은 아버지의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과 하룻밤 정사를 치른 다음에, 그것도 모자라 파리에서 소피라는 젊은 처녀를 사귀게 됩니다. 이때 장은 그미와 이탈리아에서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대놓고 선언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은 폴의 마음을 매우 아프게 만듭니다. 장이 자신의 정체성을 추구하면서 폴과의 관계를 근절하려는 데 비해, 폴은 장과의 애틋한 사랑의 관계를 시종일관 고수하려고 합니다. 어느 날 장은 혼자서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폴은 이 사실을 나중에 알아차리고 그의 뒤를 추적합니다. 사실인즉 폴은 장에 대한 사랑의 감정 외..

33 현대불문헌 2024.03.27

서로박: (1) 미셸 투르니에의 '쌍둥이 행성'

1. 대립하는 문학적 공간: 미셸 투르니에의 장편 소설 『쌍둥이 행성Les Météores』(1975)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비교적 방대한 이 작품은 한국어 문헌으로 아직 번역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작가는 이전에 발표된 소설의 배경으로 설정된 두 개의 대립적 현실을 다시 소환해내고 있습니다. 첫째로『방드르디 혹은 태평양의 끝Vendredi ou les Limbes du Pacifique』 (1967)에는 로빈슨 크루소 그리고 방드르디 (금요일이라는 가상적인 인물)가 등장합니다. 이로써 작가는 문명과 야생의 차이점, 한계 그리고 어떤 대안으로서의 태양 축제 등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둘째로『마왕Le roi des Aulnes』 (1970)은 작품 배경으로서 프랑스와 독일이라는 두 개의 대립하는 가..

33 현대불문헌 2024.03.27

서로박: 바타이유의 에로티즘

친애하는 X, 오늘은 조르주 바타이유 (Georges Bataille, 1897 - 1962)의 철학 논문 『에로티즘 (L’Érotisme)』에 관해서 말씀드릴까 합니다. 이 작품은 1957년에 간행되었습니다. 바타이유는 40년대에서 50년대에 걸쳐 『태양의 항문 L’anus solaire』(1926),『C. 수도원장』 (1950),『하늘의 푸름 (Le Bleu du ciel)』 (1957) 등과 같은 일련의 에로틱 소설을 집필하여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상기한 작품이 포르노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나름대로의 입장을 개진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예술론을 정립시키기 위해서 바타이유는 본서를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제 1장 “금기와 금기의 일탈”에서 바타이유는 에로틱에 관한 자신의 고유한 이론을 발전시키..

33 현대불문헌 2023.10.21

서로박: (2) 미셸 투르니에의 '마왕'

(앞에서 이어집니다.) 작품에는 괴테의 이야기시 「마왕Der Erlkönig」 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이야기 시, 즉 “담시Ballade”에는 아이를 안고 있는 아버지가 등장합니다. 아버지는 미몽에서 깨어나니, 품 안에 있던 아이가 마왕에 의해서 목숨을 잃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사실 괴테의 마왕은 여러 관점으로 해석됩니다. 첫째로 마왕은 인간이 인지하지 못하는 자연의 힘을 상징합니다. 둘째로 마왕은 하늘로 상징되는 신적 존재와는 반대되는 "지구 내부의 영혼 âme chtonienne” 내지는 자연의 마력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가령 괴테는 『파우스트』제 1권에서 “지령 Erdgeist”에 관해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셋째로 마왕은 성폭력을 당한 사람의 꿈에서 나타나는 가해자로 이해될 수 있습니..

33 현대불문헌 2023.09.13

서로박: (1) 미셸 투르니에의 '마왕'

친애하는 T. 러시아의 독재자 푸틴은 젊은이들을 징집하여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그가 포장하는 허울 좋은 말은 국익 내지는 애국심입니다. “방랑자여 스파르타로 가겠는가? 우리가 법이 명한 대로/ 이곳에서 싸우다가, 전사했음을 분명히 보았노라고 전해다오.Wanderer, kommst du nach Sparta, verkündige dorten, du habest/ Uns hier liegen gesehn, wie das Gesetz es befahl.” = 이것은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 「산책Der Spaziergang」에 기술되어 있는 시구입니다. 실러는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가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싸운 뒤에 남긴 절규를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발언에 의하면 죽음보다 강..

33 현대불문헌 2023.09.13

서로박: (3) 치카야 우 탐시의 삼부작 '바퀴벌레'

(앞에서 계속됩니다.) 15 세 친구의 죽음에 대한 추적: 부두의 노동자 가운데에는 앙드레 솔라라는 이름의 남자가 있었습니다. 앙드레는 세 친구의 죽음에 어떠한 저의가 도사리고 있는지 탐색해나갑니다. 목격자의 증언, 망자들이 동료들끼리 나눈 대화, 예언 그리고 소문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빼곡히 기록합니다. 이 와중에서 앙드레는 수많은 모순 그리고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무엇이 그들을 만나게 했는가? 혹시 이들도 서로 만나서 일종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뤼틀리의 서약” 같은 맹약을 맺은 게 아닐까? 세 사람은 해안에서 어떤 정신 나간 성자를 만납니다. 성자는 해파리를 잡아서 육지로 끌어올리는 어부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있었습니다. 그때 망자들이 그 노인과 나눈 대화는 무엇이었을까? 하고 앙드레는 ..

33 현대불문헌 2023.09.07

서로박: (2) 치카야 우 탐시의 삼부작 '바퀴벌레'

(앞에서 계속됩니다.) 7. 톰 는투투와 그의 아내는 일찍 사망하다: 톰은 일찍 결혼했는데, 그의 아내, “로야”는 상아해안에 머물 때 병으로 사망하고 맙니다. 톰 역시도 고국으로 돌아온 다음 백주 대로에서 안타깝게도 트럭에 치여 유명을 달리합니다. 원래 아프리카의 토속 신앙에 의하면 모든 죽음의 이유는 반드시 자연의 신 앞에서 밝혀져야 합니다. 그렇기에 톰의 남동생인 칠루엠브와 여동생, 리암부는 종교 제식을 거행하는 법정을 찾아갑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톰과 그의 아내가 무고하게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돌아옵니다. 톰에게는 아들, 프로스퍼 그리고 딸 소피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기독교 학교의 기숙사 그리고 수녀원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칠루엠브는 의탁할 곳 없는 두 조카를 집으로 데리고 와..

33 현대불문헌 2023.09.07

서로박: (1) 치카야 우 탐시의 삼부작 '바퀴벌레'

"아프리카의 내전은 본질적으로 세계대전이다." (이종찬: 열대의 서구, 朝鮮의 열대, 서강대학교 출판부 2016, 476쪽) ........................... 1. 까만 눈동자에 맺힌 눈물: 콩고는 오랫동안 서구의 식민지로 억압당했습니다. 18세기부터 서구인들은 콩고 왕국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이곳 사람들은 백인들에게 극진한 대접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서구인들은 콩고인들에게 성서와 서양 의학 그리고 과학 기술을 전파했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것들이 서로 주고받았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식민주의자들의 착취가 시작됩니다. 젊은이들 가운데 수십만이 차출되어 노예 선을 타고 신대륙으로 떠났습니다. 19세기 초부터 아프리카 땅 전체가 서구인들의 식민지로 변했습니다. 콩고 사람들은 1877년..

33 현대불문헌 2023.09.07

서로박: (3)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앞에서 계속됩니다.) 13. 서구의 계몽주의는 열강의 식민지 정책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디포의 작품에서 로빈슨 크루소의 배가 난파한 연도는 1659년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투르니에는 디포의 작품과는 달리 소설의 시점을 정확히 100년 뒤인 1759년으로 설정했습니다. 이는 오늘날의 지배 구조, 다시 말해서 유럽과 제삼세계 사이의 종속 구조를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야생에 대한 서구 문명의 착취는 바로 계몽주의의 시대인 18세기 중엽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작가 투르니에는 문명과 야생의 가치가 처음부터 전도되어 있다는 것을 지적하려고 했을까요? 작품 속에서 주인공 로뱅송은 처음에는 자신의 방식대로 자연을 이용하고 분할시키는 존재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나중에서는 열대의 자연에..

33 현대불문헌 2023.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