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내 단상 196

(단상. 542) 자크 라캉 읽기

자크 라캉의 주저 에크리 Écrits는 오늘날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불문학 동료들의 이야기를 참조하자면, 참으로 난해하여서, 상당한 심리학적 소양을 지니지 않으면 근접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러한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내가 독일에서 읽었던 독일어판 라캉 책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물론 시간이 없어서 끝까지 독파하지는 못했지만, 이해하는 데 그렇게 큰 어려움이 없었다. 내 능력이 탁월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독일어의 구조가 분석적이고, 어떠한 생략도 용납하지 않는 데에서 기인한다.현재 한국에서 라캉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은 외국어 전공자들의 업적물만 나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라캉을 파고들려면 불어보다도 독일어를 공부하는 게 더 나을 성 싶다...

3 내 단상 2025.01.22

(단상. 541) 자아 정체성과 결혼 이데올로기

호모 아만스 가운데에는 자신의 뿌리가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알렉스 헤일리의 장편소설『뿌리』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해외에 입양된 한국인들을 떠올릴 수 있다. 물론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분도 얼마든지 사랑하고 임을 만나 멋지게 살아갈 수 있다. 그렇지만 사랑과 성을 추구하는 인간 동물이 살아가는 데 출발점이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다. 자신을 알아야, 주위 사람들을 더욱 잘 알고 세계를 이해할 게 아닌가? 그런데 주어진 현실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알지 못하도록 잔인한 장애물을 설치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사랑하는 분과의 결혼이 불가능할 정도로 정치적 경제적으로 힘든 개인적 정황과 사회적 여건 등을 생각해 보라. 가난과 폭정은 인류 역사에서 지속적으..

3 내 단상 2025.01.21

(단상. 540) 성(Sex), 결혼, 계층

수컷의 사랑이 순간적 격정으로 타오르는 불꽃 (火性)이라면, 암컷의 사랑은 “잉여 주이상스”로서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는 물 (水性)과 유사하다. 그런데 사랑에 결혼이라는 딱지가 붙게 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재독인사 어수갑씨는 언젠가 “유럽이 재미없는 천국이라면, 한반도는 재미있는 지옥”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비유를 부부의 삶과 싱글의 삶에 적용하면 어떨까? 호모 아만스는 결혼으로 인하여 때로는 어느 정도의 부자유를 감수해야 한다. 왜냐하면 혼인이라는 열쇠는 드물지만, 때로는 자신을 신방에 갇히게 하기 때문이다. 싱글의 삶이 불편한 자유를 느끼게 한다면, 부부의 삶은 편안한 부자유를 느끼게 할까? 자연에서 날아다니는 암컷과 수컷은 콩 한 알도 나누어먹으며 정조를 지키지만, 거대한 새장 속의 새들..

3 내 단상 2025.01.19

(단상. 539) 가상과 본질로서의 사랑

대부분의 연정은 무엇보다도 특정 이성에 관한 기이한 신비로움의 정서에서 싹트곤 한다. 물론 임과 살을 섞은 다음에 뒤늦게 마음속에서 사랑의 감정이 은근히 솟아오르는 경우도 드물게 존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연정은 상대방을 속속들이 알기 전에 싹튼다. 마치 꽃봉오리 속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하고 호기심을 품는 꼬마아이처럼 호모 아만스는 비밀스러운 이성을 몹시 궁금해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은 상대방의 외모, 표정, 동작과 옷맵시를 접하거나 말투만으로도 가슴속에서 순간적으로 용솟음쳐 올라오지 않는가? 자고로 에로스의 화살은 사랑하는 대상을 차지하기 전에 더욱 힘차게 과녁을 향해 나아가는 법이니까. 이처럼 사랑의 밀물은 사랑의 썰물보다 더 힘찬 설렘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분명히 말하건대 연정에 이끌..

3 내 단상 2025.01.11

(단상. 538) 콤플렉스, 혹은 타부

세상에는 하고 싶어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고,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있다. 호모 아만스의 사랑의 실천이 전자에 해당한다면, 사회적 필연성으로 주어진 의무감 등은 후자에 속할 것이다.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상황 – 이는 대체로 도파민 분비의 여러 가지 효과를 저하시켜서, 때로는 우리를 깊은 우울증에 침잠하게 만들기도 한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기 때문에, 주위 사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음 같아서는 임을 와락 끌어안고 싶은데, 힐끗 쳐다보는 주위의 사람들이 신경 쓰인다.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망설이다가, 사랑 고백의 기회를 놓치는 사람들은 부지기수이다. 떠나간 임에 대한 그리움으로 현재의 삶을 망치는 호모 아만스들도 더러 있다. 그만큼 금지된 사랑, 불가능한 사랑은 우리의 가슴을 ..

3 내 단상 2025.01.10

(단상. 537) 이순신 그리고 석 변호사

1970년대 말 젊은 나이에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당시 고등학생들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입시의 노예가 되어 있었다. 주야장천 국어, 영어, 수학만 공부해야 했다. 독일어 선생이었던 나는 고3 학생들을 가르칠 수 없었다. 그래서 자습 시간 감독을 자청하곤 했다. 공부에 싫증을 느끼는 학생들을 위해서 틈틈이 『난중일기』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순신의 이야기는 어쩌면 박정희 독재에 대한 저항 의식을 부추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흔히 이순신 장군의 승리 비결은 거북선의 계발, 지형지물을 이용한 탁월한 용병술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풍전등화의 강토를 반드시 수호하리라는 당신의 마음가짐이었지요. 이러한 마음가짐이 있었으므로 장군은 당시의 크고 작은 전투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았습니다...

3 내 단상 2025.01.06

(단상. 536) 멧돼지 포획을 방해하는 노인들

"갈등 (葛藤)은 이로움과 의로움 사이의 연리목( 連理木 )이다." (匹子)"장자는 우연히 밤나무 숲에서 까치가 사마귀 한 마리를 노려보는 것을 관찰하였다. 이 순간 사마귀는 매미 한 마리를 노리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 곤충은 자신의 일에 혈안이 되어 스스로 어떠한 위험에 처해 있는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장자는 생각에 잠겼다. 자신의 일방적 관심사에 침잠한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이때 외침 소리가 들렸다. “저 도둑놈 잡아라.” 장자는 밤을 훔치려는 도둑으로 몰려 곤욕을 치러야 했다. 그 후 이 일로 삼개월간 두문불출하였다." (莊子)"군자는 의로움을 추구하고, 소인은 이로움을 추구한다." (孔子) ....................  1. 팩트를 무시하고 견해만 내세운다. 우리는 크고 ..

3 내 단상 2025.01.06

(단상. 535) 사랑, 죽음 그리고 죽임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지만, 비행기 사고는 대부분의 경우 이륙 시보다는 착륙 시에 발생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치정살인극은 두 연인의 만남의 시기에 발생하는 것도 아니며, 함께 하는 시기에도 발생하지 않는다. 끔찍한 비극은 거의 89 퍼센트 이상의 경우 이별의 순간에 돌발적으로 출현하곤 한다.  어느 날 호모 아만스는 사랑하는 임의 태도가 냉담하게 변해 있다는 것을 감지한다. 그렇다고 함부로 남의 품안에 안겨 있는 임을 상상할 수는 없다. 그것은 극도의 고통을 안겨줄 테니까. 차라리 이러한 상상을 떨쳐버리는 게 오히려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 그런데 어느 날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다. 임이 “나”에게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고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나”를 더 이상 만나지 않으려 한다면, “..

3 내 단상 2025.01.04

(단상. 532) 내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게 나라인가?

계엄군과 맞서 대항한 국민들 그리고 담을 넘어 국회의사당으로 들어간 국회의원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드리고,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그들이 아니었더라면 한국의 정치적 지형도는 현재 계엄 치하에 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데 한덕수 권한 대행이 지금 이 순간에도 마구잡이로 국정을 농단하고 있다. 국민이 그를 직접 국무총리로 뽑지 않고, 굥석열이 뽑았으므로, 내란 수괴를 지지하는가? 자과부지(自過不知)란 아시다시피 "자신의 잘못을 자기가 찾지 못한다."라는 말이다. 자기 성찰과 반성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전형적인 행동 패턴이다. 한덕수 권한 대행 그리고 국민의 힘 국회의원들이 갈팡질팡 갈 "지(之)"자로 행동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어떻게 행동하는 게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가? 를 먼저 따..

3 내 단상 2024.12.26

(단상. 533) 사랑, 얽힘과 섞임

깊은 사랑은 당사자의 말문을 꽁꽁 얼어붙게 만든다. 내면의 격노하는 감정이 언어적 표현을 방해하는 것이다. 수많은 호모 아만스들의 삶 속에는 얼마나 구슬픈 사연과 애환이 숨어 있을까? 말이나 글로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몹시 어렵고 부담스러울 것이다. 이 경우는 마치 자신의 알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겸연쩍음을 느끼든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든가, 둘 중 하나이리라. 왜냐하면 말과 글이란 타인을 전제로 한 것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갓 태어난 아이에게 우리와 동일한 본능이 주어지듯이, 일자무식의 하녀에게도 어느 순간 연정이 찾아들어, 그미의 가슴속에 오래 머물곤 한다. 세상에는 말로 표현되지 않은 사랑 그리고 이와 결부된 비극은 무수히 출현한다. 이를테면..

3 내 단상 2024.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