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동구러문헌 48

서로박: (2)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

(앞에서 계속됩니다.) 6. 죽음과 죽임, 극단적 자기 파괴성 어느 날 표도르 베르초벤스키는 샤토프라는 이름의 대학생을 교묘한 방법으로 암살합니다. 나중에 그는 암살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토로합니다. 즉 샤토프가 자신을 당국에 밀고하겠다고 위협하며 엄포를 놓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발언은 다만 핑계에 불과했습니다. 사실인즉 그는 동지들에게 반정부주의의 운동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 무지렁이 한 사람을 살해한 것이었습니다. 한 인간의 바보스러운 행동의 배후에는 이런 식의 교활한 간계가 숨어 있었습니다.  표도르 베르초벤스키는 자신의 이념을 열광적으로 추구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타인의 목숨을 빼앗는 파괴적 이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당시에는 시갈레프라는 독재자가 무지막지한 폭정을 휘두르고 있..

31 동구러문헌 2025.01.02

서로박: (1)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의 줄거리와 주제를 소개합니다. 이 글을 읽으면, 방대한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수고를 덜 수 있을 것입니다. .............   1. 사형 직전에 다시 살아간 생명: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1821 – 1881)의 삶은 참으로 파란만장한 것이었습니다. 1847년에 그는 27세의 문학청년이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페트라예프스키의 금요일 모임에 참석하였습니다. 페트라예프스키는 도스토옙스키의 동년배였는데, 진보적 사고, 특히 아나키즘에 지대한 관심을 지닌 지식인이었습니다. 이 모임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벨린스키 등에 관한 글을 낭독하기도 합니다. 1년 후에 러시이 전역에도 1848년 유럽 혁명의 여파가 퍼지기 시작합니다. 러시아 왕국은..

31 동구러문헌 2025.01.02

서로박: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사랑을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첫사랑의 경험은 사람에 따라서 의외로 썰렁한 기억으로 남아있기도 하지요. 어쩌면 우리 같은 현대인들은 첫사랑을 찬란한 것으로 미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삶에서 맨 처음으로 경험하는 사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치고 아름답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으며, 사랑의 대상이 수없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사랑하는 자의 설렘은 사랑의 강도를 차치하고라도 언제나 하나의 설렘으로 남습니다.  첫사랑이 아름답다면, 두 번째 사랑, 세 번째 사랑은 아름답지 않단 말인가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를테면 마지막 사랑을 생각해 보세요. 사랑하는 두 사람이 죽음으로 인하여 영원히 이별..

31 동구러문헌 2024.11.28

서로박: (2) 안드레예프의 '7인의 사형수'

(앞에서 이어집니다.) 6. 심리적 파멸을 체험하는 시가노크 그리고 바샤: 바샤는 자신이 체포되기 전의 과정을 하나씩 기억해냅니다. 그는 테러리스트 가운데에서 폭탄 투척의 임무를 자발적으로 맡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거사는 실패로 돌아가고, 냉혹하게 전개되는 사건의 메커니즘을 떠올리니,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자신의 목이 교수대의 올가미에 씌여 끊어질 것을 떠올리니, 순식간에 기절할 것 같습니다. 처형되기 직전에 바샤는 가족과 대면할 기회를 얻습니다.  이때 바샤는 어머니와 마지막으로 만나게 되는데,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손만 붙잡고 있습니다. 이들의 언어는 속내를 드러낼 수 없는 가식적인 수단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혁명 투사 그리고 어머니 사이에는 차가운 거리감만이 뎅그렁 남아 있을 ..

31 동구러문헌 2024.11.18

서로박: (1) 안드레예프의 '7인의 사형수'

1. 고통은 순간적이다. 그러나 심리적 상흔은 끔찍한 고통으로 다가온다.: 군 복무 시절이었습니다. 어느 하사는 나의 어설픈 태도를 질타하면서, 일갈했습니다. “이 자식, 오늘 저녁 점호 시간에 줄초상 날 줄 알아.” 일순간 어제의 끔찍한 사건이 생각났습니다. 나의 동료가 하사가 휘두른 야구방망이에 맞아서 피 흘린 사건이었습니다. 나도 이렇게 당하면 어떻게 하지? 점호를 기다리는 시간 내내 끔찍한 두려움에 어쩔 줄 몰랐습니다. 인간의 심리가 이런 식으로 두려움으로 고통당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점호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하사가 나에게 가하는 구타의 순간은 기이하게도 순간적으로 지나쳤습니다. 아 육체적 통증은 이런 식으로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구나. 폭력의 고통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

31 동구러문헌 2024.11.17

서로박: (2)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계속 이어집니다.) 8. 망각 그리고 삶의 무거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가벼운 존재로서의 갈망의 삶은 쿤데라에 의하면 주어진 현실에서는 무거움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우리가 감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러한 삶을 누릴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추구하려고 끝없이 애를 씁니다. 인간이 갈구하는 가벼움은 차라리 망각과 같습니다. 작가는 작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야기는 개별적 인간의 삶처럼 참을 수 없이 경박합니다. 그것은 바람에 치솟는 먼지 혹은 깃털처럼 가볍습니다. 내일이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그러한 사물처럼 말이지요.” (Kundera 1987: 102). 가벼운 존재의 유희는 마치 나비의 꿈처럼 망각 속에 머물고 있는 반면, 무거운 존재의 고통은 마치 무의식 저..

31 동구러문헌 2024.11.15

서로박: (1)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 실제 삶은 무거움이요, 갈망의 삶은 가벼움이다: 오늘은 밀란 쿤데라 (Milan Kundera, 1929 - )의 베스트셀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Nesnesitelná Lehkost Bytí』(1984)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처음에는 체코어로 집필되었지만, 1984년에 프랑스어로 간행되었습니다. 쿤데라는 피아니스트이자 음악이론가인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체코 출신의 작가입니다. 쿤데라의 문학성이 상당 부분 음악과 결부되어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예컨대 그의 작품들은 줄거리 그리고 문체에 있어서 마치 악보처럼 정교한 구도에 의해서 직조되어 있습니다. 작품의 전체적 분위기는 항상 어떤 음악의 멜로디와 결부되어 있지요. 2. 아스팔트 카우보이: 작품 『참을 수 없..

31 동구러문헌 2024.11.15

서로박: (3) 도스토옙스키의 '백치'

(앞에서 계속됩니다.) 10. 비극이 발생하다: 므이쉬킨 공작은 나스타시아에게 결혼을 신청합니다. 주인공에게 결혼이란 무소유의 행위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스위스에서 병든 마리를 도와주었듯이, 이번에는 (사랑하는 임의 행복을 위하여 임을 떠나려고 결심하는) 나스타시아를 아무런 조건 없이 돕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소설은 끔찍한 비극으로 끝을 맺습니다. 나스타시아는 주인공과 결혼하기 직전에 로고친에게 향합니다. 경제적 문제 등 이전의 모든 관계를 깨끗하게 매듭지어야만, 공작과 결혼할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므이쉬킨 공작 역시 그미를 찾으려고 로고친의 집으로 달려갑니다. 로고친은 거칠고 단순한 사내였습니다. 그는 주인공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배신했다는 이유로 나스타시아에게 향해 칼을 뽑아 듭니..

31 동구러문헌 2024.10.25

서로박: (2) 도스토옙스키의 '백치'

(앞에서 계속됩니다.) 6. 소설 속의 압권, 하나의 에피소드 (1) : 뒤이어 주인공은 우연히 나스타시아와 살롱에서 조우합니다. 살롱에는 상류층에 해당하는 많은 사람이 운집해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서 므이쉬킨 공작은 사람들에게 놀라운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줍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므이쉬킨 공작이 스위스에서 체험했던 이야기입니다. 나스타시아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마리라는 처녀가 살았는데, 어느 남자에게 농락당한 뒤에 버림받게 됩니다. 이웃 사람들은 사실을 잘 알지도 모르면서, 마리를 간통한 여자로 매도합니다. 마리의 머리카락을 마구잡이로 절단하고 끔찍한 고통을 가합니다. 마리는 사회적으로 버림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간통한 여자는 유럽 시민 사회에서 ..

31 동구러문헌 2024.10.25

서로박: (1) 도스토옙스키의 '백치'

친애하는 D, 당신을 위해서 도스토옙스키의 장편 소설 백치를 요약하여 올려놓습니다.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려면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필자의 요약문을 읽으면, 단번에 줄거리와 주제를 파악하게 될 것입니다. ㅎㅎ.................. 1. 그리스도 백작: 오늘은 표도르 M. 도스토예프스키 (1821 - 1881)의 소설 󰡔백치 (白痴)󰡕를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1868/ 69년에 발표되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작가는 어떤 아름다운 인간을 묘사하려 했습니다. 아름다움이란 도스토예프스키에게는 미적 가상이라기보다는, 가장 고귀한 도덕적 능력을 지닌 존재에서 발견된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인간이란 다른 사람을 자신처럼 여기는 인간 유형일 것입니다. (Jens C..

31 동구러문헌 2024.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