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근대독문헌 61

서로박: 클라이스트의 'O 후작부인' (2)

9. 어째서 마르키스 O는 신문에 기이한 기사를 게재했는가?: 혹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지 모릅니다. 어떻게 성폭력을 사랑으로 포장할 수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물론 성폭력은 당연히 사랑으로 포장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클라이스트는 오로지 도덕적 잣대을 강조하기 위해서 소설을 집필했을까요? 작품을 근본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다음의 사항을 다시 한 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마르키스 O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신문에 게재합니다. “나는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임신하게 되었는데, 아기의 아버지는 즉시 자신에게 연락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가족들의 처지를 고려하여 그와 결혼하려고 합니다.” 독자는 여기서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두 가지 사항을 발견할 것입니다. 과연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아무..

40 근대독문헌 2023.11.23

서로박: 클라이스트의 'O 후작부인' (1)

1. 기이한 신문광고, “나를 임신시킨 사내를 찾습니다.”: 당대에 인정받지 못한 천재 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중편소설 「O 후작부인Die Marquis von O.」은 1808년 2월에 잡지 『푀부스Phöbus』에 처음으로 발표되었습니다. 2년 후인 1810년에 클라이스트는 약간 수정을 가하여, 자신의 『소설집 Erzählungen』에 수정판을 공개했습니다. 클라이스트는 미셀 드 몽테뉴의 「알코올 중독에 관한 에세이」(1588)를 참고한 것 같습니다. 몽테뉴의 글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어느 여자 농부가 꿈속에서 술 취한 노예에게 성폭력을 당하는데, 나중에 노예가 자신의 죄를 고해하자, 여자 농부는 그와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클라이스트의 소설의 놀라운 내용은 작품의 첫 문장에..

40 근대독문헌 2023.11.23

서로박: 클라이스트의 '인형극에 관하여'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H. v. Kleist, 1777 - 1811)의 「인형극에 관하여 (Über das Ma- rionettentheater)」는 1810년 네 번에 걸쳐 베를린 석간에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이 논문은 예술 이론에 관한 극작가, 클라이스트의 아주 상세한 작업이다. 클라이스트는 고아함 (Grazie)의 이론을 개진한다. 여기서 고아함이란 당대의 개념과는 아주 벗어난 뜻을 지니고 있다. [당시 사람들은 우아함을 자연과 자유 그리고 감각성과 이성 사이의 화해로 이해하고 있었다] 클라이스트는 전통적 역사철학적 구상 내지는 어떤 구원사적인 약속 등의 의미에서 고아함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인형극에 관하여」는 세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첫 번째 부분은 고아함의 상태 [비구분 (非区分)이라는 역..

40 근대독문헌 2023.11.02

서로박: (3) 레싱의 '현인 나탄'

기사단원은 예루살렘의 기독교 종주를 찾아가서, 조언을 구합니다. 당시 기독교 종주는 부패한 관리였습니다. 그러나 기사단원은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기독교 종주는 나탄과 그다지 좋은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나탄을 위험에 빠뜨리기 위해서 수사 한사람을 그에게 보냅니다. 수사는 18년 전에 나탄에게 레하를 떠맡긴 바로 그 장본인이었습니다. 18년 전에 나탄은 끔찍한 불행을 겪었습니다. 당시 기독교도들은 그의 일곱 아들과 아내를 살해했던 것입니다. 나탄은 순식간에 사랑하는 가족 모두를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기독교 출신의 젖먹이 아이 한 명을 자신의 양녀로 받아들여,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놀라울 정도로 고매한 주인공의 인간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수사의 언급을 통해서..

40 근대독문헌 2023.10.24

서로박: (2) 레싱의 '현인 나탄'

이제 줄거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유대인 나탄은 부유한 장사꾼입니다. 사업차 오랫동안 외유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 사이에 그의 딸, 레하는 불타 죽을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습니다. 집에 화재가 발생하였는데, 레하는 어느 젊은 기사에 의해서 구출됩니다. 그미와 보모, 다야는 화재에도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젊은 기사는 어느 기독교 교단에 속하는 십자단원이었습니다. 레하와 십자단원은 서로 호감을 품습니다. 나탄은 화재 사건을 전해 듣고, 언젠가는 반드시 십자단원에게 딸을 구해준 데 대해 보답하기로 작심합니다. 그 사이에 십자단원 기사는 살라딘에게 체포됩니다. 당시 예루살렘에서는 여러 종파 사람들이 서로 피비린내 나게 싸우고 있었습니다. 이슬람을 신봉하는 살라딘으로서는 기독교를 믿는 기사..

40 근대독문헌 2023.10.24

서로박: (1) 레싱의 '현인 나탄'

친애하는 J, 당신의 임이 어느 순간 당신과 남매지간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면, 당신의 마음속에 어떠한 느낌이 들까요? 적어도 당신이 젊은이라면, 당신의 열정이 마치 김빠진 맥주처럼 일순간에 허망하게 사라지는 것을 감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혈연지정은 어느 종교에서든 간에 애정보다 우선적인 관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부는 헤어지면 남이 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남이 될 수 없는 관계가 부모와 자식 간의 그리고 남매 사이의 관계가 아닌가요? 어쩌면 애정관계와 혈연관계는 동질적인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하나이니까요. 레싱은 『현인 나탄 Nathan der Weise』에서 이 점을 강조하려고 했는지 모릅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망각해서는 안 될 사항이 있습니다. 그것은 계..

40 근대독문헌 2023.10.24

서로박: 소피 폰 라 로쉬의 '슈테른하임 양의 이야기'

친애하는 N, 오늘은 당신에게 소피 폰 라 로슈 (Sophie von La Roche, 1731 - 1807)의 “슈테른하임 양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소설가가 되려는 꿈을 지닌 당신에게 소피의 소설은 많은 것을 시사하리라고 생각됩니다. 왜 하필이면 내가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1771년에 간행된 이 작품이 독일 최초로 여성 작가에 의해 쓰인 서간체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작품이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 역시 당신에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당신도 소설가로서 성공하기를 꿈꾸고 있으니까요. 소피 폰 라로슈 Sophie von La Roche, 1731 - 1807 소피 폰 라 로슈는 가까운 벗이자 사촌인 크리스토프 M. 빌란트 (Chr. M. Wieland)와 약혼했으나..

40 근대독문헌 2023.10.05

서로박: 괴테의 '스텔라'

친애하는 J, 오늘은 괴테 (1749 - 1832)의 극작품 「스텔라」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5막 극으로 이루어진 괴테의 작품은 1775년에 완성되어 이듬해인 1776년에 함부르크의 국립극장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괴테는 나중에, 1805년에 제 2원고를 집필하였으며, 1816년에 이르러 바이마르 궁정 국장에서 처음으로 공연하게 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대부분의 괴테 작품과는 달리 동시대 사람들 그리고 문학 사가들에 의해서 혹독하게 비판당했습니다. 특히 제 1원고는 18세기 독일의 도덕적 가치를 훼손한다는 이유로 공연금지 조처를 받았습니다. 작품에 대한 비판은 후세에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가령 1952년 독일의 독문학자 에밀 슈타이거 Emil Staiger는 괴테의 전기에서 극작품 「스텔라」를 다음과..

40 근대독문헌 2023.08.30

서로박: 실러의 서정시 연구 경향

어떤 문학적 장르도 서정시만큼 역사적 진보에 대해 저항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왜냐면 서정시는 다른 장르에 비해 시대의 현실적 조건에 직접적으로 결착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서정시의 연구에 있어서 방법론적 유행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시대에는 개별적 시, 개별 연, 구절, 상 등을 집요하게 연구했는가 하면, 어떤 시대에는 연구가들이 작품 내재적이자 미세 분석을 거부하기도 했다. 가령 실러의 시는 (H. Cysarz에 의하면) “결코 소진되지 않는 분수”이며, 독일 시의 언어상의 깊이를 포괄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벤노 폰 비제 (B. v. Wiese)는 실러의 시를 이해하려면 단어 하나하나 음절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는 정밀한 미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실러의 시는 ..

40 근대독문헌 2023.07.25

서로박: (2) 하인제의 아르딩겔로

(앞에서 계속됩니다.) 6. 축복 받은 섬에서 이상 국가를 건립하다: 아르딩겔로는 다시 사랑하는 여인을 둘러싼 결투에 휘말려 사고를 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하여 급작스럽게 로마를 떠나야 합니다. 인간과 인간은 소유물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사랑하는 임의 소유를 따지면서 서로 싸우곤 합니다. 아르딩겔로는 이러한 갈등과 질투 그리고 투쟁에 진절머리를 느낍니다. 이러한 사건으로 인하여 두 사람 사이의 편지 교환은 끝이 나고 맙니다. 그렇지만 주인공의 모험적 삶은 계속되어, 아르딩겔로가 축복 가득한 섬을 발견하는 것으로 정점을 이룹니다. 아르딩겔로는 그곳의 축복의 섬에서 이상 국가를 건설합니다. 이상 국가는 여성 공동체로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이곳 사람들은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사랑과 연애에 몰두할 수 있습니..

40 근대독문헌 2023.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