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근대독문헌 67

서로박: (2) 괴테의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에'

(앞에서 계속됩니다.) 다시 극작품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이피게니에는 섬에서 남동생, 오레스테스와 극적으로 재회합니다. 이때 오레스테스는 지금까지 경험한 모든 사실을 그미에게 털어놓습니다. 동시에 그는 비밀리에 토아스 왕을 죽인 뒤 타우리스 섬을 탈출하자고 제안합니다. 오빠의 말을 들은 이피게니에는 오랫동안 고심합니다. 결국 그미의 고결한 성품은 오빠의 음모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피게니에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토아스에게 이실직고하면서, 자신이 남동생과 함께 그리스로 떠날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고 청합니다. “만약/ 당신이 올바른 왕으로서 사람들로부터 찬양을 받고 싶다면/ 진리는 그대의 도움으로 그리고 나에 의해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토아스 왕은 거사를 일으키지 않고 모든 사실을 말해준 이피게니에의 ..

서로박: (1) 괴테의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에'

친애하는 J, 오늘은 괴테의 고전극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에」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작품은 1779년에 탈고되었지만, 이후에도 1787년까지 무려 네 차례나 수정을 거듭한 것입니다. 작품은 “약강격Jambus”을 활용한 운문 고전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제 4 원고에서는 고전주의 드라마에 합당한 “자유 무운격 Blank-vers”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작품은 여러 번의 개작을 거쳐서 1779년 4월 6일에 에터스부르크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괴테는 극중 인물 오레스테스 역을 밭아서 직접 배우로서 열연하기도 했습니다. 유명한 의사로 활약한 크리스토프 빌헬름 후페란트 (Chr. W. Hufeland, 1762 – 1836)는 등장인물 오레스테스를 떠올리면서, 물리적인 힘과 정신적인 ..

서로박: (3) 장 파울의 '거인'

(앞에서 계속됩니다.) 13. 로크바이롤, 죽음을 연습하다.: 로크바이롤은 어둠 속에서 린다를 만납니다. 그렇지만 그는 린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습니다. 대신에 알바노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자신이 먼저 권총으로 자살할 테니, 뒤이어 자살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순간 로크바이롤은 실제 현실에서 자신의 극작품을 연기한 셈입니다. 린다는 야맹증 환자였지만, 귀마지 어두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미는 어둠 속의 남자가 알바노가 아니라는 사실을 예리하게 간파합니다.  로크바이롤은 권총으로 자살하는 흉내를 내려고 방아쇠를 당깁니다. 이때 그는 즉사하고 맙니다. 안타깝게도 육혈포에 총알이 하나 박혀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린다는 이 순간 경악에 사로잡힙니다. 친애하는 P..

40 근대독문헌 2024.10.20

서로박: (2) 장 파울의 '거인'

7. 알바노와 로크바이롤: 알바노와 린다는 제각기 다른 곳에서 양육됩니다. 물론 두 사람은 3년 동안 이졸라 벨라에서 유년 시절을 함께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알바노는 17세까지 블루멘뷜에 있는 농장주 베어프리츠의 집에서 성장하게 됩니다. 그는 그곳에서 교양을 쌓으며, 훌륭한 젊은이의 면모를 드러냅니다. 알바노의 여러 명의 은사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나갑니다. 농장 기술자이자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디안, 도서관 사서이자, 때로는 복수의 광기에 사로잡히는 희극적인 인물 쇼페 그리고 출판인 아우구스티 등이 알바노의 은사들이었습니다.  주인공 알바노는 시간이 흐를수록 늘름한 풍모를 자랑하게 됩니다. 게다가 깊고 현명한 사고를 견지하며, 따뜻한 품성을 스스로 갈고 닦습니다. 어느 날 알바노는 체자라 백작의 명에 ..

40 근대독문헌 2024.10.19

서로박: (1) 장 파울의 '거인'

1. 위대한 반고전주의 작가, 장 파울: 친애하는 P, 장 파울 (Jean Paul, 1763 – 1825)은 독일의 천재적인 반고전주의 작가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밖에 프리드리히 횔덜린 그리고 클라이스트가 나머지 반고전주의 작가입니다. 장 작 루소에게서 영향을 받은 그는 독일 산문을 세계적 수준으로 올려놓았습니다. 그의 언어유희, 풍자와 예리한 암시적 표현 등은 후세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나 그의 탁월한 문체 그리고 언어구사는 번역작업을 어렵게 하여, 영미권은 물론이며, 남한에서도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2. 감정의 온탕, 풍자의 냉탕: 오늘은 장 파울의 소설 『거인』을 언급하려고 합니다. 이 작품은 장 파울의 대표작으로서 동시대인들로부터 “감정의 온탕 그리고 풍자의 냉탕”..

40 근대독문헌 2024.10.19

서로박: (3) 괴테의 '친화력'

(앞에서 계속됩니다.) 11. 죄의식이 오틸리에를 죽음으로 몰아가다.: 모든 것은 에두아르트의 의지대로 진행될 것 같습니다. 친애하는 C, 사랑의 행복을 위해서는 이타주의 내지는 죄의식을 저버려야 한다고 누가 말했던가요? 오틸리에는 그와의 결혼을 끝내 포기합니다. 아이의 죽음에 대한 죄의식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가 죽은 것은 누구보다도 자신 탓이니, 스스로 끔찍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미는 에두아르트와 결혼을 포기하고,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러나 에두아르트는 그미의 이러한 결심을 도저히 용납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간에 오틸리에의 의사를 되돌려야 했습니다. 불같은 성격의 에두아르트는 그미를 어느 여관에 감금..

40 근대독문헌 2024.10.14

서로박: (2) 괴테의 '친화력'

(앞에서 계속됩니다.) 6. 에두아르트, 아내를 오틸리에로 착각하며 정을 통하다.: 부부는 순식간에 결혼 생활이 파탄에 이르게 될까봐 전전긍긍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심정적으로 각자의 애인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예컨대 에두아르트는 오틸리에가 집에서 허드렛일만 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그미가 약간 동떨어진 다른 집에서 거주하는 게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샤를로테 역시 자신의 애인인 오토를 그냥 무위도식하는 남자로 마냥 방치할 수 없어서, 그에게 반듯한 직장 하나를 알선해주려고 합니다.  어느 날 밤에 에두아르트는 성을 돌아다니다가 오틸리에의 방으로 잠입합니다. 그러나 그곳은 아내 샤를로테가 머물고 있었습니다. 에두아르트는 격정적인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임을 끌어안습니다. 이때 그는 어둠 ..

40 근대독문헌 2024.10.14

서로박: (1) 괴테의 '친화력'

1. 사랑이 금속처럼 결합되고 분할되는가?: 친애하는 C., 오늘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749 - 1832)의 소설 한편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 1809년에 발표된『친화력 (Die Wahlverwandtschaften)』이라는 중편입니다. 괴테는 처음부터 이 작품에 집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약 2년 전 『빌헬름 마이스터의 방랑시대』를 집필하던 과정에서 한 가지 착상이 떠올랐는데, 이 착상으로 인하여 결국 한 편의 중편 소설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괴테는 언젠가 스웨덴 출신의 화학자 토르베른 베르히만 Torbern Bergman이 1775년에 발표한 논문 「금속의 인력 引力에 관하여 (De attractionibus electivis)」를 읽은 적이 있는데, 이 논문에서는 ..

40 근대독문헌 2024.10.14

제바스티안 브란트의 '바보 배 Das Narrenschiff'

친애하는 J, 풍자는 두 가지 특징으로 나누어집니다. 그 하나는 날카로운 기지와 촌철살인을 담은 착상의 방식이라면, 다른 하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미소 짓게 하면서, 은근히 무언가를 비난하는 방식입니다. 가령 프랑수아 드 라로슈푸코의 경구가 전자에 해당한다면, 기원 후 2세기에 간행된 루키아노스Lukian의 『참된 이야기Verae Historiae』라든가, 제바스티안 브란트의 『바보 배』에 실린 이야기들은 후자에 해당합니다. 전자가 “쓰라린 냉소Galgenhumor”를 불러일으킨다면, 후자는 영국인의 간접적이고 은은한 비아냥을 담고 있습니다. 언젠가 독일의 소설가 장 파울은 자신의 편지에서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감정의 온탕과 이성의 냉탕"이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바보 배』의 이야기..

40 근대독문헌 2024.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