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20전독문헌 61

한스 그림의 '공간 없는 민족'

한스 그림 (Hans Grimm, 1875 - 1959)의 소설, "공간 없는 민족 (Volk ohne Raum)"은 1926년 간행되었다. 아마도 이 작품만큼 파시즘이 표방하는 “피와 토양”의 이데올로기를 열렬히 찬양하는 소설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 그림의 작품은 독일 파시즘의 공격적인 성향을 정당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비록 작가는 오로지 국가를 위해서 이 작품을 썼을 뿐, 나치를 위해서 쓴 게 아니라고 말했지만 말이다. 한스 그림은 제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상인이 되기 위한 연수를 받기 위하여 영국으로 건너갔고, 거기서 다시금 남아프리카로 여행하였다. 이에 관한 경험은 그의 소설 "남아프리카의 중편" (1913) 그리고 "모래를 지나는 걸음" (1916) 등에서 잘 형상화되어 있다. 그림은 소설 ..

43 20전독문헌 2025.03.16

서로박: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

친애하는 K, 오늘은 토마스 만 (1875 - 1955)의 중편 소설 「토니오 크뢰거」를 다루기로 합니다. 사실 토마스만의 문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문장은 복합적으로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힘든 독서의 과정을 요하지만, 작품의 주제는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예술성과 시민성의 대비만 내세웁니다. 작품의 형식은 까다롭고 접근하기 어렵지만, 주제에 있어서는 처음부터 확정되어 있는 게 토마스만의 문학세계이지요. 그래도 토마스만을 애호하는 분들은 의외로 많으며, 그의 문학세계는 나름대로의 독창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실 작가는 김나지움 시절의 나쁜 학업 성적으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대학에서 최고의 학점을 받은 교수들이 토마스만을 연구하느라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인간의 창의..

43 20전독문헌 2025.03.13

서로박: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친애하는 J, 오늘은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 1877 - 1962)의 교양소설 『데미안』에 관해서 언급할까 합니다. 부디 나의 글이 당신의 졸업논문 집필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작품은 1919년에 발표되었는데, “어느 청춘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당시에 헤세는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이 작품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당시에 비평계로부터 호평을 받게 되었고, 나중에 헤세는 이 작품으로 인하여 테오도르 폰타네 문학상을 받게 됩니다. 나중에 오토 플라케 Otto Flake라는 평론가는 문체를 분석하여, 이 작품이 헤르만 헤세에 의해서 집필되었다는 것을 밝혀내었습니다. 1920년에 작품은 헤르만 헤세의 이름으로 다시 간행되었습니다.     칼브에 있는 헤세박물..

43 20전독문헌 2025.02.20

서로박: (3) 되블린의 'Novemver 1918'

(앞에서 계속됩니다.) 11. 로자 룩셈부르크의 기이한 망상: 제4권 『카를과 로자』는 소설의 범위 그리고 내용을 고려할 때 정점을 이루는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작가는 일차적으로 로자 룩셈부르크가 수감된 장면을 세밀하게 서술해 나갑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감옥에서 로자 룩셈부르크는 정신 착란의 상태에서 연인이었던 하네스 뒤스터베르크와 만납니다. [그미의 실제 연인은 한스 디펜바흐 (Hans Diefenbach, 1884 – 1917)였습니다.] 이때 로자 룩셈부르크는 비몽사몽 간에 어떤 기이한 망상에 사로잡힙니다. 자신의 연인 하네스는 악마의 모습으로 그미의 자궁 속에 자라난다는 망상이었습니다.  작가 되블린은 로자 룩셈부르크가 보낸 마지막 혁명의 나날을 이러한 방식으로 서술할 수밖에 없었습니..

43 20전독문헌 2024.11.14

서로박: (2) 되블린의 'November 1918'

(앞에서 계속됩니다.) 6. 1918년 소련 혁명이 발발한 뒤에 나타난 세 가지 세력: 유럽 전역에는 혁명에 대한 열광과 기대감 그리고 이에 대한 전율이 순식간에 퍼져나갔습니다. 제1권에 해당하는 『1918년 시민과 군인들』은 1918년 알자스 지방의 혁명 초기의 분위기를 세밀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알자스는 역사적으로 프랑스와 독일의 권력 사이에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다가 고유한 정체성을 상실한 지역입니다. 되블린은 노동자, 군인, 장교 그리고 토착 시민의 관점에서 전후의 혼란스러운 분위기 그리고 혁명 전야를 비판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장의 장소는 베를린으로 이전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전개되는 소요 사태 등이 서술되고 있습니다. 이로써 작가는 1918년 이후의 독일 수도에서 출현한 정치적 혼란..

43 20전독문헌 2024.11.14

서로박: (1) 되블린의 'November 1918'

1. 의사 그리고 장편 소설 작가, 알프레트 되블린: 의사이며 작가로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힘든 역정입니다. 힘든 의학 연구와 환자 치료 외에도 방대한 소설을 집필하려면, 참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그래서 의사로 일하는 독일 작가들 가운데에는 유독 시인이 많았습니다. 시적인 착상을 글로 옮기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요구되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W. C. Williams,  한스 카로사Hans Carossa라든가, 되블린 등은 의사이면서도 소설, 그것도 여러 권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장편 소설에 매진하였습니다. 특히 알프레트 되블린 (Alfred Döblin, 1878 – 1957)은 정신과 의사로 일하면서, 두툼한 장편 소설을 많이 남겼습니다. 게다가 유대인 출신이라 히틀러 치..

43 20전독문헌 2024.11.13

서로박: (2) 슈테른하임의 '시민 쉽펠'

(앞에서 계속됩니다.) 십펠은 어떻게 해서 시민계급으로 상승하는가요? 이 물음은 극작품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권총 결투의 승리는 다만 하나의 계기일 뿐입니다. 결투는 우연히 이루어진 일이지요. 시민 계급으로 편입되고자 하는 십펠의 노력은 처음에는 좌절됩니다. 히케티어 등 시민들은 같이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을 “순전히 사업상의 일”로 제한합니다. 그 이상을 기대했던 십펠은 이러한 제한에 대해 크게 실망합니다. 이로 인하여 그는 자리를 박차고 나오며, 다른 시민들 역시 합창 대회의 참가를 포기합니다. 말하자면 협상이 결렬된 것입니다. 어느 날 후작이 치료 차 히케티어의 집에 들르게 됩니다. 후작이 떠난 후 시민들은 합창대회 참가를 놓고 다시 심각하게 고민합니다. 이유인즉 후작이 합창대회에 지대한 관..

43 20전독문헌 2024.11.11

서로박: (1) 슈테른하임의 '시민 쉽펠'

친애하는 K, 카를 슈테른하임 (1878 - 1942)의 5막 희극 작품, 「시민 십펠 Bürger Schippel」은 1911년에 탄생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1913년 3월 5일 베를린에서 처음 공연되었습니다. 이때 연출을 맡은 사람은 막스 라인하르트 (Max Reinhardt)입니다. 슈테른하임은 스스로 풍자 작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평자에 의하면 슈테른하임의 11편의 희극 작품 모음집 󰡔시민적 영웅의 삶으로부터󰡕는 프로이센 군국주의적 분위기를 예리하게 풍자하였습니다. 「시민 십펠」은 바로 이 작품집 속에 실려 있습니다. 60년대에 이르러 슈테른하임의 작품들은 서독에서 르네상스를 맞이하였습니다. 이때 빌헬름 엠리히 (W. Emlich) 그리고 벤들러 (Wendler) 등은 다음과 같..

43 20전독문헌 2024.11.11

서로박: (2) 호프만슈탈의 '소베이데의 결혼'

(앞에서 계속됩니다.) (7) 비극의 발단: 이제 극시의 줄거리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주인공 소베이데는 무척 아름다운 젊은 여인입니다. 그렇지만 그미의 부모는 경제적으로 곤궁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부모는 딸을 어느 상인에게 시집보냄으로써, 장차 사위가 될 사람으로부터 약간의 경제적 도움을 받으려고 의도했던 것입니다. 신랑은 매우 영리하고, 현명하며, 부유하지만, 약간 나이가 많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습니다. 소베이데는 결혼 첫날밤이 몹시 두려웠습니다. 왜냐하면 그미는 결혼 전에 한 번도 남자와 포옹한 적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는 신랑이 아니었습니다. 소베이데는 가넴 (Ganem)이라는 남자를 사랑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작은 세탁소를 운영할 정도로 가난한 것 같았습니다. 친애..

43 20전독문헌 2024.06.02

서로박: (1) 호프만슈탈의 '소베이데의 결혼'

(1) 결혼과 후회: 친애하는 K, 오늘 말씀드릴 주제는 결혼에 관한 것입니다. 속담에 의하면 “인간은 결혼해도 후회하고, 결혼하지 않아도 후회한다.”고 합니다. 자고로 결혼은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오랜 기다림의 성취, 바로 그것이지요. 물론 결혼의 의미 자체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지니고 있습니다. (경제 문제, 가족 구성원의 사회적 삶, 성도덕 등을 고려하면, 당신은 나의 말을 이해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결혼”의 보편적 기능을 추상적으로 정의 내린다는 자체가 무리일 것입니다. 나는 결혼의 사회적 심리적 의미에 관해서 여기서 일장 연설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이 자리에서 “결혼의 이상이란 사랑의 완성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어째서 결혼은 항상 “..

43 20전독문헌 2024.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