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이탈스파냐 57

서로박: (2) 체자레 파베세의 '아름다운 여름'

(앞에서 계속됩니다.) 5. 젊은 날의 사랑, 질투 그리고 죽음: 두 번째 장편소설, 『언덕 위의 악마Il diabolo sulle colline』는 1948년에 완성된 작품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대학생 세 명입니다. 생기 넘치고 세상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최하는 도시 청년, “피에레토”, 시골 출신의 수줍은 청년, “오레스트” 그리고 “나”입니다. 작품은 화자인 “나”에 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세 청년은 야밤을 이용하여 토리노 근교의 작은 산을 거닙니다. 그들은 오레스트의 친구, “폴리”를 찾아갑니다. 폴리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족한 게 없는 청년입니다. 그는 방탕하게 살면서 술과 코카인에 빠져들지만, 완전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우울한 영혼입니다. 다음날 네 명의 사내는..

서로박: (1) 체자리 파베세의 '아름다운 여름'

1. 어찌 우리가 타자의 마음을 감히 들여다볼 수 있는가? 삶은 수많은 고통과 슬픔, 아쉬움과 상실의 감정을 간직하게 합니다. 이러한 감정은 자기 자신의 직간접적인 체험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는 타자의 애환을 막연히 유추할 수밖에 없습니다. 체자레 파베세 역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가 소설 집필 시에 체험화법을 활용하고 모든 것을 일기 형식으로 서술하려 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입니다. 무심하게 지나치는 행인의 마음속에 넘실거리는 감정의 파도는 얼마나 격정적일까요? 그렇지만 행인은 내 곁을 소리 없이 스쳐 지나갈 뿐입니다.  오늘은 체자레 파베세의 장편소설 삼부작, 『아름다운 여름 La bella estate』을 다루려고 합니다. 이 작품집은 1949년에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간행되었습니다. 책에..

34 이탈스파냐 2024.12.20

서로박: (2) 체자레 파베세의 두 편의 소설

(앞에서 계속됩니다.) 7. 언덕 위의 집: 고독을 추구하는 스테파노의 낯선 존재는 두 번째 작품 『언덕 위의 집La casa in collina』에서도 다시금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1947년에 완성되어 이듬해에 발표되었습니다. 소설의 시점은 1943년 초여름으로서 북부 이탈리아에서도 독일군이 세력을 키워나가고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나이 마흔의 중년 남자, 코라도입니다. 그는 이탈리아 투린에 있는 중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거주하는 곳은 도시 외곽에 있는 어느 언덕의 집입니다. 이 집에는 두 명의 여인이 살고 있습니다. 코라도가 도시를 떠나 생활하는 까닭은 전투기 폭격을 당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전쟁의 와중에서 코라도는 오후에 틈만 나면 산책을 합니다. 산책길에서 코라..

34 이탈스파냐 2024.12.16

서로박: (1) 체자레 파베세의 두 편의 소설

1. “사랑은 미친 짓이다”: 이탈리아의 작가, 체자레 파베세 (Cesare Pavese, 1908 – 1950)는 “사랑은 혐오를 남기는 위기다.L'amore è una crisi che lascia antipatie”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현대인 가운데 이 말에 동의하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왜냐면 대부분 사람은 무엇보다도 사랑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행복을 갈구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파베세에 의하면 당사자에게 어떤 위기를 안겨준다고 합니다. 왜냐면 사랑하는 순간 인간은 크고 작은 괴로움에 휩싸이고, 자신의 임에 의해 종속되거나 지배당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견해를 무조건 옳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성 (여성, 혹은 남성)에 대한 부담감을 어느..

34 이탈스파냐 2024.12.16

서로박: (3) 알피에리의 '미라Mirra' (1787)

(앞에서 계속됩니다.) 11. 비극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즉 알피에리는 이탈리아의 낭만주의 그리고 신고전주의를 아우르는 대표적인 작가이지만, 특히 「미라」는 고전적인 연극 구조를 전혀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이 작품은 -에우리피데스Euripides 그리고 라신느Racine가 집필한 파이드라 드라마에서 묘사된 바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즉 신의 뜻을 거부하는 인간은 처참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주제 말입니다.  사실 파이드라는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로서 영웅 테세우스의 두 번째 부인이 되는 여성입니다. 그미는 테세우스의 아들 히폴리토스를 사랑하게 됩니다. 이는 아프로디테 여신의 농간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히폴리토스가 자신의 사랑에 응하지 않자, 격노하면서 스스로 ..

34 이탈스파냐 2024.11.05

서로박: (2) 알피에리의 '미라Mirra' (1787)

(앞에서 계속됩니다.) 6. 제3막에서 미라는 부모님과 대화를 나눕니다. 그미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면서, 가문과 나라의 앞날을 위해 결혼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대신에 결혼식을 올린 다음에 사이프러스 섬을 떠나 살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왕과 왕비는 이를 허락하면서 성대한 결혼식을 기대하면서 즐거워합니다. 제4막에서 미라는 유리클레아와 독대합니다. 그미는 지금까지 자신을 보살펴준 보모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결혼식이 거행된 다음에 섬에 남으라고 권고합니다. 말하자면 미라는 유리클레아에게 이별을 선언한 셈이었습니다.  뒤이어 페리오가 찾아와서, 결혼식을 마친 다음에 자신의 왕궁에 가서 행복하게 살자고 제안합니다. 미라가 이에 동의하지만, 그미의 얼굴에는 슬픈 기색이 가시지 않습니다. 며칠 후에 드디어..

34 이탈스파냐 2024.11.05

서로박: (1) 알피에리의 '미라Mirra' (1787)

1. “확신하건대 여러분은 내 연극 작품을 대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반드시 자유로워지고, 강해지며, 관대한 마음을 지니며, 진정한 덕을 깨닫게 되겠지요. 그래, 여러분은 모든 폭력을 참지 않고, 조국을 사랑하며, 자신의 권리를 수호하고, 모든 열정을 다해 마치 불꽃처럼 타오르고, 틀림없이 강직하고 위대한 분으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Sono sicuro che imparerai molto dalle mie produzioni teatrali. Diventerai libero, forte, generoso e realizzerai la vera virtù. Sì, non tollererai alcuna violenza, amerai il tuo paese, difenderai i tu..

34 이탈스파냐 2024.11.05

서로박: 알피에리의 '비르지니아'

“전제 정치란 어떤 정부든 간에 법의 집행이라는 미명 하에 법을 만들고, 파괴하며, 부수고, 판결하며, 무고한 인간들을 방해하고 그들의 자유를 중지시키거나, 때로는 면책을 보장함으로써 그 법들을 교묘하게 빠져나가게 할 수 있는 무엇이다.” (Vittorio Alfieri: Della tirannide) 이 글은 지금으로부터 235년 전에 이탈리아의 극작가, 비토리오 알피에리가 남긴 말입니다. 현재 이 글을 읽으면 우리의 뇌리에는 두 가지 사항이 당장 연상될 것입니다. 그 하나는 현재의 윤석열 정권의 무도한 폭정이며, 다른 하나는 역사의 무심함일 것입니다. 알피에리의 생애 이후에 수백 년이 지났는데도 역사와 민주주의는 발전되지 못하고, 여전히 답보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는 게 우리의 마음을 답답하게 합니다...

34 이탈스파냐 2024.10.31

서로박: (6)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앞에서 계속됩니다.) 페냐 포브레의 커다란 언덕에서/ 세상을 등지고 버림받고/ 즐거움을 버리고 고행하는/ 내 가엾은 인생을 흉내 내고 있는 그대.// 두 눈에서 흘러넘치는/ 짜디짠 눈물로 목을 축이고/ 은, 주석, 구리 식기 하나 없이/ 땅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는 그대.// 적어도, 금발의 아폴론이 하늘 높이/ 말을 재촉하여 달려가는 동안에는/ 필경 영생을 얻으리라.// 그대의 용맹스러운 이름은 널리 퍼질 것이고/ 그대의 조국은 모든 나라 가운데 최고가 될 것이며/ 그대의 해박한 작가, 이 세상에 독보적 존재가 되리라.- 「소네트-아마디스 데 가울라가 돈키호테 데 라만차에게」 친애하는 C, 세르반테스는 처음에 제 2권을 통하여 기사의 권능 그리고 환상으로 가득 찬 세계를 모조리 파기하려고 하였습니다...

34 이탈스파냐 2024.07.01

서로박: (5)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앞에서 계속됩니다.) 뒤이어 돈키호테의 이야기에 기술되어 있는 내용이 새롭게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주인공이 몬테시노의 동굴에서 겪은 내용입니다. 돈키호테는 그곳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하여 밧줄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는데, 그만 동굴 속에서 잠이 들어버립니다. 사람들이 그를 구출했을 때, 돈키호테는 수많은 환상적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는 주인공의 모든 행적이 실제 삶에서의 체험만은 아니고, 나아가 상상력에 의해서 작위적으로 직조된 것이라는 점을 유추하게 합니다. (제 2권 22 – 23장) 이어지는 장에서 누군가 돈키호테를 인형극장으로 안내합니다. 돈키호테는 인형극에 등장하는 기사들을 실제의 적으로 간주하고, 달려듭니다. 이로 인하여 인형극 공연은 완전히 중지되고 맙니다. ..

34 이탈스파냐 2024.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