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외국시 53

하피스의 시, 다섯 편

하피스 (1320? - 1388): 페르시아의 신비주의 시인. 하피스는 생전에 꾸란을 처음부터 끝까지 암송했다고 한다. 그의 본명은 다음과 같다. “시라즈 출신의 무하마드 심스 아드 딘 하페즈 (Hafis, Muhammad Schams ad-Din)”. 아래의 시편들은 모음집 (دیوان)에 실려 있다. 심장 속의 재산 상처입히려고 그대를 노리는 자에게 마치 광산이 많은 보물 채굴하듯, 그대 심장을 드러내 봐. 적의 손이 그대에게 돌을 던지지만, 그건 과실수가 풍요로운 결실을 남기기 위함이야. 죽어가는 조개는 고결한 의미를 전하지, 목숨 쓰다듬으며 그저 진주라는 노획물을 남기니까 Herzensgüte Wer ins Herz dir zielt, dich zu verletzen, Find' es, wie e..

22 외국시 2023.12.25

라파아트 알라리어의 「만약 내가 죽어야 한다면」

지금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공격으로 끔찍한 지옥의 폐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인이자 영문학자인 리파아트 알라리어(Rafaat Alarreer, 1979~2023)는 12월7일 동생, 누이, 누이의 네 아이와 함께 집에서 이스라엘군 폭격으로 순식간에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죽기 전에 그는 시 한편을 남겼는데, 처절한 유언으로 울려 퍼집니다. 문학이 할수 있는 것은 오로지 기록하는 일밖에 없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안타깝지만, 이러한 기록이 없다면, 살아남은 자들의 후손은 끔찍한 비극을 서서히 망각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한다면 그대는 반드시 살아서 내 이야기를 전해주어야 해. 내 물건들을 팔아 천 한 조각과 끈을 한 웅큼 사서 연을 만들게 (흰 색으로, 꼬리는 길게). 가자 지구 어딘가..

22 외국시 2023.12.18

샨도르 페퇴피의 시 '당신을 사랑해요'

25세의 나이로 안타깝게 요절한 헝가리 출신의 혁명 시인, 샨도르 페퇴피 (1823 - 1848)는 탁월한 시편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의 시편은 우리 나라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25년의 시간을 응축해낸 결정체인 것 같이 여겨집니다. 1845년에서 1846년 사이에 그는 세 권의 시집을 간행하였습니다. "진주 같은 사랑", "구름", "9월 말"이 그것들입니다. 그는 자신의 조국의 독립과 인간 평등을 위해서 1848년 전쟁에 참전하여 장렬히 전사하였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영국의 바이런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필자는 당신을 위해 그의 연애시 한 편을 번역하여 소개할까 합니다. 아래의 시는 1846년 샨도르 페퇴피가 지벤뷔르겐 (루마니아의 지역)에서 율리아 첸드리라는 이름의 여성을 알게 되어 그미와 혼인한 ..

22 외국시 2023.10.23

츠베타예바의 시 '당신이 나에게 미치지 않아 다행이지요'

당신이 내게 미치지 않아 다행이지요 마리나 츠베타예바 당신이 내게 미치지 않아 다행이지요 내가 당신에게 넋 나가지 않아 좋아요 육중한 지구가 우리의 발아래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 또한 겉 다르고 속 다르게 처신하지 않아 좋아요 언어유희로 구속받지 않아 다행이지요 가벼운 포옹에도 내 마음이 숨 막히는 떨림으로 불그레 하게 변하지 않는 것 또한 당신이 몰래 내 주위의 다른 여자들을 조용히 안아주는 것도 오히려 다행이지요 당신의 키스가 지옥의 유황불로 나를 활활 태우지 않기를 바라고 있어요 그렇게 된다면 애정 어린 나의 이름을 낮마다 밤마다 떠올리지 않을 테니까요 어느 적요한 성당에서의 맹세 또한 그렇겠지요 아마 우린 천사의 노래 들으며 헤어지겠지요 그래도 당신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사랑이 무언지 전혀 알지도..

22 외국시 2023.09.16

서로박: 마리나 츠베타예바의 연애시 (3)

사랑 마리나 츠베타예바 떠나셨군요. 나는 더 이상 빵을 썰지 않아요. 내가 건드리는 것들은 모조리 흰 가루이지요. 뜨거운 향기였어요, 당신은 나의 빵, 나의 눈. 그러나 눈은 희지 않아요. 빵이 고통을 가하는군요. Bist fort: ich schneide Das Brot mir nicht mehr Alles ist Kreide Was ich berühr Warst, duftend heiß, Mein Brot. Warst mein Schnee. Und der Schnee ist nicht weiß, Und das Brot tut weh. .............................. 모든 시인은 본질적으로 망명객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스스로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기 때문이지요. ..

22 외국시 2023.09.09

서로박: 마리나 츠베타예바의 연애시 (2)

다음의 시는 마리나 츠베타예바의 시를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나는 부끄럽게도 러시아어를 구사할 줄 모른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독일어와 프랑스어로 번역된 시를 한국어로 번역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츠베타예바처럼 아름답고 애절한 연애시를 집필한 시인도 드물 것이다. 그미는 모든 오감을 동원하여 사랑의 극한을 체험하려 하였고, 사랑, 더욱 정확하게 말하면 고통 속에 도사린 사랑의 본질을 언어로 표현하려 하였다., 사랑의 징후 마치 앞섶에 산 (山) 하나 보듬은 것처럼 온 몸이 고통으로 시달리고 있어요! 괴로움으로써 사랑을 알아차리지요, 나는. 온 몸이 땅 아래로 축 쳐지고 있어요. 마치 마음속에 들판이 퀭하게 뚫린 것처럼 드러난 내 가슴을 내리 꽂는 천둥과 뇌우. 모든 가까움이 가장 먼 곳으로 향하여 퍼져..

22 외국시 2023.09.09

서로박: 마리나 츠베타예바의 연애시 (1)

다시 주섬주섬 옷 입기 싫어요, 당신은 소파에서 일어나지 않으려 했지요. 그렇지만 당신의 다가올 나날은 내 기쁨으로 마지막까지 즐거울 거예요. 당신은 특히 춥디추운 밤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망설였어요. 그렇지만 당신의 도래할 시간은 내 기쁨으로 신선하고 환해질 거예요. 당신은 거짓 없이 나와 그걸 했지요. 더 잘 하려고 하지도 않았어요, 순수하게 나의 삶은 당신의 청춘과 같아요, 그냥 지나칠 수도, 떠날 수도 없어요. 친애하는 J, 오늘은 동성애의 사랑을 다룬 작품을 읽어봅니다. 인용한 시는 러시아의 시인 마리나 츠베타예바 (1892 - 1941)가 20세기 초에 남긴 연작시 '여자친구 4'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츠베타예바의 동성애의 사랑을 가장 진솔하게, 가장 격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22 외국시 2023.09.09

막심 은데베카의 시 '나는 꿈꾸었네'

나는 꿈꾸었네(J'ai rêvé) 막심 은데베카 (Maxime N'Debeka) 희망의 바다 위에 떠있는 섬 마치 노아의 방주에서 길고도 힘든 시련을 이겨낸 생존자들처럼 내 꿈들이 마침내 도착한 곳 Une ile dans l'océn de l'espoir Où l'arche de Noé Où les survivants d'une longue et pénible lutte Où mes rêves viennent échouer 순수하고 정결한 섬 이곳은 사람들이, 그리고 흑인까지도 ‘인간성’을 간직한 땅 흑인, 유색인, 백인들이 석양의 빛깔로 서로 어울리는 곳 그 곳에는 적자도, 서자도 없네. Une ile nette et pure Où les hommes sont des humains Et les Noir..

22 외국시 2023.08.25

니콜라스 기옌의 시 '할 수 있니?'

할 수 있니? 너는 나에게 공기를 팔 수 있겠니? 손가락 사이로, 너의 얼굴로 부는, 너의 머리칼을 헝클리게 하는 공기를? 어쩌면 너는 내게 5페소의 바람을 팔 수 있을 거야, 아니 더 많은 어떤 거대한 폭풍을? 너는 내게 온화한 공기를 팔 수 있겠니? 공기를 (모두를 위한 게 아니라도) 너의 정원, 너의 정원에서 새와 꽃을 당기는 공기를, 10페소의 온화한 공기를. 공기는 빙글 돌아 나비와 유희하고 아무도 그걸 가질 수 없어, 아무도. 너는 나에게 하늘을 팔 수 있겠니? 파란 하늘 혹은 잿빛, 너의 정원과 함께 어느새 네가 팔아치운 하늘 한 자락, 너는 믿고 있니? 누군가 집 딸린 처마를 사듯이 그렇게. 너는 나에게 일 달라 어치의 하늘을 팔 수 있겠니?, 2 킬로미터 하늘을, 네가 내놓을 수 있는 네..

22 외국시 2023.08.25

박설호: (4) 캄파넬라의 옥중 시편

(앞에서 계속됩니다.) 너: 마지막으로 한 편의 시를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의 시는 캄파넬라의 대표작인가요? 나: 네, 「나라를 지닌 자가 왕이 아니라, 다스릴 줄 아는 자가 왕이다. Non è re chi ha regno, ma chi sa reggere」를 대표작으로 꼽고 싶습니다. 이 작품은 권력의 본질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붓과 물감을 가진 자가 괴발개발 그림 그려 벽과 먹지 더럽힌다면, 그는 화가가 아니리. 설령 먹, 펜, 필통이 없더라도, 그림 그릴 능력을 지니면 그가 참다운 화가이리라. 삭발한 머리, 성의가 성직자를 만들지 않듯이 거대한 왕국과 땅을 지닌 자는 왕이라 할 수 없지 예수와 같이 천한 노예 출신이라도 마치 혹성, 팔라스와 화성처럼 그는 차제에 반드시 왕이 되겠지. ..

22 외국시 2022.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