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Bloch 저술 74

박설호: (24) 희망의 원리, 제 5차 강의

(23에서 계속됩니다.) 14. 문제는 재기억이 아니라, “새로운 무엇Novum”이다.: 블로흐에 의하면 훌륭한 최고 상태는 최종점Ultimum에 이르러 완성된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블로흐는 재기억 대신에 전선 근처에 서성거리는 새로운 무엇을 강조합니다. 희망이라는 기대 정서는 플라톤의 “재기억Anamnesis)” 이론을 부정하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지금까지의 철학은 블로흐에 의하면 “근원”, 즉 과거에 있었던 진리를 마치 조상님처럼 숭배해 왔습니다. 블로흐는 플라톤으로부터 아우구스티누스, 헤겔을 거쳐서 니체에 이르기까지 근원 중심주의를 비판하였습니다. 대부분 사상가는 플라톤의 재기억 이론을 제반 철학적 인식의 토대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Bloch, PH: 234f.) 이로써 미래는 중시되지 않았습..

27 Bloch 저술 2024.04.22

박설호: (23) 희망의 원리, 제 5차 강의

(22에서 계속됩니다.) 10. 문제는 인민의 행복을 도모하는 일이다, 혹은 마르크스주의: 지금도 사람들은 저열하게 살아가고, 노예로 취급당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버림받고 조롱당하는 존재로 만드는 모든 구체적 현실 상황을 설계하고 이를 변화시키는 일이야말로 급선무일 것입니다. 인간의 의식 구조의 변화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지금도 누군가 하찮은 개처럼 푸대접당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모든 것을 참는 것 – 이는 스스로 저열한 존재, 모욕당하는 존재로서 비인간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박설호: 꿈괴 저항을 위하여. 에른스트 블로흐 읽기 1, 울력 2011, 서문). 마르틴 루터는 모든 폭력을 나쁘다고 평가했습니다. 그가 군주의 폭력을 용인하고, 저항적 폭력..

27 Bloch 저술 2024.04.18

박설호: (22) 희망의 원리. 제 5차 강의

(21에서 계속됩니다.) 5 모든 종교는 창시자를 지니고 있다: 종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특정한 한 사람에 의해서 조직됩니다. 무언가를 믿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성스러운 남자를 미리 설정합니다. 창시자는 막강한 카리스마를 지니거나, 창조적인 정신을 지니고 있습니다. 창시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에서 불분명한 면모를 드러냅니다. 고대의 종교 창시자들은 역사시대 이전에 살았습니다. 가령 카드모스, 오르페우스 그리고 누마 폼필리우스는 어떠한 글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둘째로 그들이 추구하는 바는 당시의 관습에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모세가 나타날 때까지 창시자의 의미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셋째로 고대의 종교는 무엇보다도 자연과 자연력과 결부되어 있는데, 창시자의 모습이 강조될 수 없었습니다. 신..

27 Bloch 저술 2024.04.15

박설호: (21) 희망의 원리. 제 5차 강의

(20에서 계속됩니다.) 1. 마지막 다섯 번째 강의: 이번에는 희망의 원리 제 5권을 요약하고, 마지막에는 『희망의 원리』에 반영된 블로흐의 기본적 사상을 서술하려고 합니다. 블로흐가 설정한 학문 영역 속에는 인간이 갈구하는 갈망의 모티프가 은폐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새로운 심리학, 역사학, 그리고 소시민의 삶에 반영된 은폐된 욕구, 과학 기술 영역에서 추구된 더 나은 삶을 위한 노력, 건축과 지리학적 유토피아, 문학과 회화 그리고 음악이라는 예술의 영역에 명시적으로 그리고 묵시적으로 반영된 꿈과 기대 정시 등을 차례로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영역은 내용상으로는 다양하고 이질적인 특징으로 구분될 수 있으나, 인간이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더 나은 삶을 위한 기대 지평과 의향을 고려한다면, ..

27 Bloch 저술 2024.04.13

박설호: (20) 희망의 원리. 제 4차 강의

(19에서 계속됩니다.) 18. 고대인들이 꿈꾼 죽음 이후의 세계, 오르페우스의 바퀴: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죽음 이후의 세계는 태양 아래에 번창하는 이 세상의 삶과 반대되는 곳이었습니다. 폼페이에는 다음과 같은 묘비명이 있습니다. “비명을 읽는 친구여, 좋은 삶을 살아가거라. 죽은 뒤에는 웃음도, 농담도 그리고 기쁨도 없으니까.” 기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생각한 저세상이란 지하의 황량한 공간, 때로는 어떠한 목적도 의지도 자리하지 않는 공간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죽는 자는 망각의 강, 레테의 강물을 마시고, 지옥의 강 (STYX)은 삶과 죽음을 분리합니다. 그러면 뱃사공 샤론은 죽은 자들을 지하명부로 데리고 갑니다. 지하명부라고 해서 무조건 끔찍하고 사악한 분위기가 자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곳의 아랫부분에..

27 Bloch 저술 2024.04.08

박설호: (19) 희망의 원리. 제 4차 강의

(18에서 계속됩니다.) 13. 음악 예술: 음이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가장 내면적인 항성으로부터 퍼져나오는 빛과 같습니다. 음악은 블로흐에 의하면 인간의 감정을 가장 열정적으로 분출하게 하는 예술적 장르라고 합니다. 그것은 문학의 경우처럼 언어를 매개로 하지 않으며, 회화 예술의 경우처럼 시각을 매개로 하지 않습니다. 음악은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소리, 즉 청각에 의존할 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악기는 타악기를 제외하면 목적(牧笛)이라고 합니다. 목자들은 피리를 불면서 사랑에 대한 동경을 음악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젊은 인디언은 평원으로 내려가서 목적을 불면서, 이별의 슬픔을 음악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면 인디언 처녀는 멀리서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이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27 Bloch 저술 2024.04.05

박설호: (18) 희망의 원리. 제 4차 강의

(17에서 계속됩니다.) 8 햄릿, 갇힌 의지: 고뇌하는 인간은 행동하지 않는 한 죽은 영혼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는 내심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는 의지를 품고 있지만, 모든 격정은 자신의 내면에서 반대 상으로 떠오를 뿐입니다. 남성적 욕망과 실천적 의지는 폐쇄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의 숙고 행위는 자신의 행동을 방해합니다. 햄릿은 자신의 마음속에 갇힌 수인(囚人)입니다. 전체적으로 고찰할 때 햄릿 역시 블로흐에 의하면 거대한 유형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몽상가입니다. 그러나 햄릿은 너무 과도한 목표를 선취함으로써, 그것을 점화시키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서 중요한 행동에 대한 대리 행위를 너무 많이 떠올림으로써 스스로 마비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냉정하고 무미건조한 햄릿의 사고는 밤의 분위..

27 Bloch 저술 2024.04.01

박설호: (17) 희망의 원리. 제 4차 강의

(16 강의에서 계속됩니다.) 5. 파우스트, “머물러라 그대는 아름답도다.”, “고정되어 있는 지금nunc stans”: 파우스트는 돈 조반니, 오디세우스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인간형입니다. 파우스트는 세상을 완전히 체험함으로써 자신을 완성시키고 세계를 완전한 공간으로 만들려는 계획을 품고 있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인간에게는 의지가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기에 파우스트라는 인간형은 루터에게는 교만하고 사악한 인간으로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괴테는 위대한 창의적인 인간을 다르게 묘사합니다. 즉 파우스트는 무언가를 추구함으로써, 결국에는 구원을 받습니다. 세계 속에서의 주체의 깨달음은 성취된 순간이라는 본질적 문제와 관련됩니다. 그는 마지막에 이르러 어떤 성취된 순간으로서의 “고정되..

27 Bloch 저술 2024.03.30

박설호: (16) 희망의 원리. 제 4차 강의

(앞에서 계속됩니다.) 1. 젊은 괴테, 방랑자의 폭풍 노래: 제48장에서 블로흐는 문학예술이 나타난 갈망의 상을 서술합니다. 그가 첫째로 선택한 것은 젊은 괴테의 열정과 문학 작품입니다. 젊은 시절 괴테는 혼란스러움을 느끼면서 자신의 불확정적인 갈망을 연속적으로 추적하였습니다.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풍족하게 살았지만, 불안으로 인해 어디에서도 안주하지 못했습니다. 괴테의 발효하는 동경은 그의 편지에서 그리고 그의 작품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가령 베르테르의 열광적 사랑과 이에 병행하여 출현한 괴로움은 괴테 자신의 혼란스러움뿐 아니라, 시대적인 문제점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사실 『젊은 베르테르의 고뇌』는 폭정에 저항하는 질풍과 노도의 운동과 연결되어, 당시에 청춘의 저항 운동을 분출하게 했습니다...

27 Bloch 저술 2024.03.29

박설호: (15) 희망의 원리. 제 3차 강의

(14에서 계속됩니다.) 20. 노동과 여가: 블로흐는 제4부의 마지막 장에서 노동과 여가의 문제를 논하고 있습니다. 삶에서 노동이 지니는 의미는 매우 큽니다. 일하지 않으면, 끼니를 구할 수 없습니다. 노동의 생산성은 얼마나 휴식을 취하는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일요일의 휴식 그리고 저녁 시간의 여가는 노동을 위한 부수적인 조건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노동과 빵만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심리적 갈망 역시 충족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Bloch, PH: 1085). 노동과 여가를 철저하게 구분하게 한 당사자는 블로흐에 의하면 자본주의라고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대체로 힘이 들지만, 오랜 휴식은 지루함을 안겨주니까 말입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노동은 결코 즐..

27 Bloch 저술 2024.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