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143

(명시 소개) 전홍준의 시, '메타세쿼이아'

메타세콰이어전홍준 바다 건너 이민 와반백 년 넘는 세월 동안한시도 조용할 날 없는왈짜들 들끓는 나루터이 땅에 뿌리박고서 볼 것 못 볼 것 다 보면서도형형한 눈빛으로한치 흐트러짐 없이차려자세로 도열한수도자들 단군이래 배곯지 않고비교적 환란 없는 시절이지만동서로남북으로증오가 강처럼 흐르는 대치 속에평화를 화두로 잡고계절마다 몸 바꿔가며간절히 기도하는 그 기도가 하늘에 닿아이 땅이고르게 펴질 날이 언제랴! *시작노트지정학적으로 우리나라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부딪히는 나루터다. 나루터란 물산이 풍부한 반면,분쟁이 잦은 곳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주변의 힘 있는 왈패들이, 이 땅을 얼마나 짓밟았는가.요즘 주변에 메타세콰이어가 조경용으로 식재되어 있는것을 흔하게 보게 된다. 본래 이 나무는 고생대부터 살았던 ..

19 한국 문학 2025.06.16

(명시 소개) 전홍준의 시, '일흔'

잠 안 오는 새벽고병희가 부르는 아씨에게빨려든다 남편이란 나침반을 잃은늙은 여인이고독에게 치명상을 입고바라보는 노을 눈시울 적시는 덧없는 날들먹물처럼 번져오는죽음의 그림자 압축파일에 보관된뒤죽박죽, 생서산으로 넘어가는 노을에갈무리하기 좋은 나이 전홍준의 시 '일흔' A: 말년의 고독에 관해서 기술한 소설은 거의 없습니다. 기쁨과 오르가슴이 사라진 시간을 공유하고 싶지 않아서겠지요.B: 하지만 이 역시 인생의 일부이기 때문에 발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모이라 여신은 모든 생명체를 저세상으로 데리고 갑니다. 시간의 무심한 화살촉은 그미의 손처럼 여겨집니다.A: 새벽에 일어나 거울을 쳐다보니, 그렇게 멋지게 보였던 청춘의 얼굴은 어느새 누런 메줏덩어리로 뒤엉켜 있습니다. 머리통은 백발, ..

19 한국 문학 2025.05.18

(명시 소개) 정진규의 시. '곱빼기 짜장면을 먹으며'

곱빼기 짜장면을 먹으며정진규 불란서 사람들이 자연을 큰 책이라 깨닫고 글로 쓴 사람의 책을 작은 책이라 했다는 말을 들은 뒤부터 나는 자꾸 작아졌다 그 말을 들은 지가 십 년은 족히 넘었으니 나는 쥐눈이콩만큼 줄어들어 반짝거리고 있을까 아주 지워졌을까 쓸수록 작아지는 책 너를 드나든 지는 훨씬 그 이전, 사십 년이 넘었으니 그게 확실할 게야 뿐이랴 나의 사랑아, 너는 아무래도 큰 책 너를 드나드는 나는 작은 책, 그러니까 곱빼기로 나는 지워져 가고 있다 너를 보내고 나서 배가 고파 곱빼기 짜장면을 먹으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곱빼기 짜장면을 먹었으니 곱빼기에 곱빼기로 나는 지워져 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정진규 시선집, 책만드는 집 2007, 488쪽. .................... (해설..

19 한국 문학 2025.05.10

박설호: 김수영의 시문학, 비판의 비판

1.오세영의 논문 “우상의 가면. 김수영 론”을 흥미 있게 읽었다. 논자는 김수영의 시문학이 지금까지 참여 문학의 영역에서 과도하게 우상화되었음을 지적하면서, 몇몇 시작품에 나타난 결함들을 몇 가지 사항으로 해명하고 있다. 나는 이 논문이 지적하는 바를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도, 부분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을 비판적으로 지적하려고 한다. 나는 국문학도가 아니라 외국문학도로서 김수영의 작품들을 대하고 싶다. 다시 말해서 한국 문학이라는 토대 하에서 그의 시작품을 대하려는 게 아니라, 세계문학이라는, 보다 원시안적 시각으로 접근하려고 한다. 미리 말하지만 나는 김수영 시문학의 공과를 전적으로 용인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수영 문학에 나타난 비판정신 그리고 문학에 대한 전체적 입장을 부정하려고 하지..

19 한국 문학 2025.04.09

(명시 소개) 선안영의 시, '얼룩 무늬 하루'

얼룩 무늬 하루 선안영 1.맨살의 두 다리를 스타킹에 넣는 순간 그물 병에 갇힌 듯 파닥이며 저항한다 포획된 먹잇감처럼 불행이 감전되는 2.매일매일 출발할 뿐 도착한 적 없으니 혀를 깨문 시간은 정글의 피맛이 나 날쌔게 잭나이프 칼날처럼 나를 구겨넣는 날 3.찔레 넝쿨 가시 속 비상같은 흰 꽃 피어 우거진 질문들을 받아쓰는 물 웅덩이 패어진 길의 등짝에 또 얼룩이 꽃핀다. .............. 선안영 시집, 저리 어여쁜 아홉 꼬리나 주시지, 문학들 2021. 74쪽 이하. 선안영 시인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는지 나는 잘 모른다. 그렇지만 작품 얼룩 무늬하루는 (직장?) 여성이 겪는 불안과 피해 의식을 작품 속에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직장을 구해 처음 출근하는 대부분 여성은 "포획된 먹잇감"으로 간..

19 한국 문학 2025.04.04

(명시 소개) 고현철의 시, '고전 읽기'

고전 읽기고현철  다음 빈칸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낱말을 쓰시오. 사람들은 어리석기 때문에 (       )를 용서한다. 그러나 나는 어째서 그렇게 용서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사람들이 이 (       )의 혹독함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스스로 만족하고 있는 것보다 마음속으로부터 어떤 의식이 깨어 있었더라면 .... 많은 고대의 (       )들은 그들 곁에서 커온 총애자에 의해 제거되었다. 이러한 일을 행한 자들은 (       )의 본질을 알았고, 권력을 믿지 않았으며, (       )가 의지적인 활동을 하는 것을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       )는 누구를 사랑하지도, 누구에게 사랑을 받을 수도 없다. 실린 곳: 고현철 시집, 평사리 송사리, 전망 2015. ...............

19 한국 문학 2025.04.01

서로박: (3) 문창길의 시, '너는 네 우주를 안고 돌아올 것이다.'

(앞에서 계속됩니다.) 5.B; 네, 그만큼 문창길 시인의 마지막 시구는 감동 그 이상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선생님이 서두에 지적하셨던 교육의 본질적 의미 그리고 젊은이가 체험하는 입신(立身)의 방향성에 관해서 살펴볼까요?A: 교육이란 사실을 접하고, 무언가를 깨닫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가는 우리는 불안한 미래를 염두에 두면서 직업 교육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학교와 가정 그리고 학원을 오고 가지요.B: 어릴 때부터 부모들은 사유재에 대한 인식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문 잘 잠그고 다녀라.”고 가르치지요. A: 어쩌면 가정을 떠나 다른 곳에 체류하며 배우는 게 진정한 교육일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친구를 생각하고, 사회 그리..

19 한국 문학 2025.03.03

서로박: (2) 문창길의 시, '너는 네 우주를 안고 돌아올 것이다.'

(앞에서 계속됩니다.) 3.B: 아, 미얀마에서는 단기출가가 하나의 성년식으로 인정되는군요.A: 그렇습니다. 젊은이들은 이러한 수련을 통해서 “높은 산 저 안개밭보다 무궁한/ 고행”을 체험하게 됩니다. 코코 아웅은 절에서 스님으로서의 수련에만 몰두하는 게 아닙니다. 이전에 아이들과 “대나무 공”을 차고 “풀밭”을 돌아다녔듯이, 같은 절에서 만난 도반과의 우정을 갈고 닦습니다. 모든 것은 넒은 의미에서의 교육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합니다. 코코 아웅내일이면 스님으로 불러야 한다그러다 열흘 후면 다시속세의 어린 친구로 돌아올 것이다오늘 그의 엄마는 파르라니 빛나는아들의 머리를 매만진다그래 이제 엄마를 떠나거라너의 고향은너의 모태는궁극적 평안에 이르는 니르바나에 있느니라 B. 두 번째 연은 코코 아웅이 ..

19 한국 문학 2025.03.03

서로박: (1) 문창길의 시, '너는 네 세계를 안고 돌아올 것이다.'

1.B: 시간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다룰 작품은 문창길 시인의 시 「산족마을 동승 신쀼의식을 보며」입니다. 작품은 일견 미얀마의 종교적 관습을 서술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선생님은 어떠한 이유에서 이 작품을 선택했는지요?A: 문 시인의 시편은 한마디로 그냥 넘길 수 없는 훌륭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명시의 기준을 무엇보다도 주제의 다양성에서 발견하려고 합니다. 미리 말씀드리기 무엇하지만, 작품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복합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첫째로 「산족마을 동승 신쀼의식을 보며」는 미얀마의 소승불교의 전통적 문화를 개관하고 있고, 둘째로 불교의 구도 정신 내지는 종교적 인간이 삶에서 추구하는 갈망과 방향성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B: 재미있는 말씀이로군요. 두 가지 다른 주제는 ..

19 한국 문학 2025.03.03

전홍준의 시, '성수'

성수 성수가 죽었다가족들 들에 나가고소죽을 끓이다 발작을 해옷에 불이 붙어열다섯 해 짧은 생을소신공양하였다 불치병이라는 간질에 걸려일 년 만에 학교를 작파하고온 동네 골목을 쏘다니며누구 집 살구가 언제 익는지어느 둠벙에서 고기가 잘 낚이는지모르는 것이 없던동네의 박물박사 우리가 자치기를 하고 있으면삶은 고구마로 유혹하며끼워달라고 애걸하던 외톨이 멀쩡하다가도 거품을 물고 쓰러져몸이 뻣뻣해지며 발작을 하면누구나 질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온 몸에 죄를 바르고폐차 직전의 차처럼 털털거리는일흔의 고개에서하늘나라 선배인 동무가간절히 생각나느니 나 그곳으로 돌아가면따돌렸다고 원망하겠지세상의 구린내 심하다고본체만체하겠지  *시작노트사람의 일생은, 조물주가 내어준 숙제를 잡고,전전긍긍하는 것이다. 해는 넘어가고 배는 고..

19 한국 문학 2025.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