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중세 문헌 32

서로박: (2) 단테 알리기리의 '신생'

(앞에서 이어집니다.) 7. 순수하고 진정한 사랑은 제 20장에서 다음과 같은 소네트, 「사랑과 온유한 마음은 하나입니다Amore e ‘l cor gentil sono una cosa」에서 명징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사랑과 온유한 마음은 하나입니다./ 현명한 사내가 암송할 때 표현한 바대로./ 그래서 이유없는 합리적 영혼으로서/ 타자 없이 감히 하나가 되려고 하지요. Amore e ‘l cor gentil sono una cosa,/ sì come il saggio in suo dittare pone,/ e così esser l’un senza l’altro osa/ com’alma razional sanza ragione.// 만약 그게 사랑스러울 때, 본성을 찾으세요,/ 주에 대한 사랑과 그분의..

38 중세 문헌 2024.11.20

서로박: (1) 단테 알리기리의 '신생'

1. 이탈리아의 문호이자 철학자인 단테 알리기리 (Dante Alighiri, 1265 – 1321)의 『신생Vita nova』은 청년 시기에 완성된 작품입니다. 단테는 피렌체의 귀족 출신으로서 어떠한 교육을 받았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습니다. 다만 그가 여러 명의 총기 있는 부유층의 자제들과 함께 수학했다는 사실만 대충 알려져 있을 뿐입니다. 작품의 집필 연도는 1283년에서 1293년이라고 하니 18세에서 28세 사이에 약 10년에 걸쳐서 다듬어진 정갈한 작품인 것은 분명합니다. 『신생』은 특이하게도 시와 산문이 혼합된 작품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작품의 운문은 12편의 소네트, 칸소네 그리고 한 편의 담시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문은 작품 내에서 이야기의 방식으로 삽입되어 있습니다.  사실 기원..

38 중세 문헌 2024.11.20

서로박: 천일야화 431 번째 이야기 (2)

(앞에서 계속됩니다.) 7. 공주, 산정에 올라 말하는 새를 만나다.: 20일이 되는 날에 공주는 무슬림 수사를 마주치게 됩니다. 그미는 말에서 내려서 큰절을 했습니다. 수사는 조용히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러자 공주는 명상에 침잠한 성자에게 아무 질문을 던지지 않은 채 말에 올랐습니다. 그미는 온갖 굉음이 가득한 산으로 향해 서서히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공주는 사랑하는 임을 생각하고 반드시 그를 구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솜으로 귀를 단단히 틀어막았습니다. 공주는 반드시 말하는 새를 만나서, 자신이 갈구하는 바를 직접 경청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주는 주위의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드디어 정상에 도달했습니다. 높은 암벽의 꼭대기에는 새장 안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있었습니다. 공주는 마구 퍼덕..

38 중세 문헌 2023.04.11

서로박: 천일야화, 431 번째 이야기 (1)

1. 『천일야화』의 431 번째의 이야기: 천일야화 가운데 한 편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페리사다 공주는 고결한 정원에 혼자 머물면서 여러 가지의 휘황찬란한 꽃을 가꾸고 있었습니다. 바만 왕자는 말을 타고 어디론가 사냥을 떠났습니다. 저녁 무렵 어느 나이든 여인이 아름다운 여인을 찾아와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어딘가에서 칩거하면서 살아가는 경건한 여인이었습니다. 공주는 여인을 방으로 들어오게 하고, 함께 기도를 드리자고 청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녁 무렵 기도를 올리는 게 관습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이든 여인은 아름답게 빛나는 찬란한 정원을 바라보고는 찬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공주님. 유감스럽게도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에는 세 가지 보물이 빠져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세 가..

38 중세 문헌 2023.04.11

서로박: (5) 조아키노의 제 3제국에 대한 갈망

(앞에서 계속됩니다.) 23. (부설) 체제 비판과 종교: 신앙의 깊이는 기존 권력의 박해를 통해서 정확하게 측정됩니다. 그 이유는 새로운 신앙이 주어진 현실의 상태를 용인하지 않는 체제 비판적인 자세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주어진 현실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하여 영성적 믿음이라는 공동의 의지를 표방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영성 공동체는 당국의 권력에 의해서 무참하게 짓밟히고 맙니다. 이 경우 진리는 권력의 탄압에 의해서 은폐되고 맙니다. 논의에서 벗어나는 이야기입니다만, 진리에 대한 권력자의 탄압은 이조시대에서도 발생하였습니다. 함석헌의 말을 인용하자면, “중축이 부러진” 이조시대에 그나마 고결한 지조의 처절한 불꽃을 보여준 것이 바로 사육신의 처형과 그들의 비장한 죽음이라고 합니다. ..

38 중세 문헌 2023.03.18

서로박: (4) 조아키노의 제 3제국에 대한 갈망

(앞에서 계속됩니다.) 18. 조아키노가 파악한 성령의 본질 (2): “위로하는 자”라는 표현은 성령이 수행하는 고유한 임무를 포괄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령은 나중에 다시 언급되겠지만 “피의 보복자γοηλ”를 지칭합니다. 그분은 위로하는 자가 아니라, 복수하는 소송인입니다. 다시 말해 부정한 세상에서 정의로움을 위하여 부정과 죄악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바로 “원고”로서의 성령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성령은 판관으로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성령은 오로지 최후의 심판, 다시 말해 마지막의 재판을 통하여 모든 사항에 대해서 정의롭게 판결을 내리는 임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분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사람들의 무죄를 입증하고 그들의 넋을 기릴 뿐 아니라, 죄악에 대한 진범을 가려내어, 그에게 정당한 죗값..

38 중세 문헌 2023.03.17

서로박: (3) 조아키노의 제 3제국에 대한 갈망

(앞에서 계속됩니다.) 13. 천년왕국과 최후의 심판: 세 번째 나라는 아이러니하게도 독일의 파시스트에 의해서 어처구니없는 제 3 제국이라는 용어로 사용된 바 있습니다. 조아키노는 단 한 번도 “제 3의 제국”을 명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1190년 강림절을 기점으로 세 번째 성령의 시대가 출현하리라고 암시하였습니다. 언젠가는 선한 기독교인들이 다스리는 평등한 시대가 반드시 출현하리라는 것입니다. 그 시점은 아마 1260이 되리라고 조아키노는 예견하였습니다. 이는 바로 천년 후의 그리스도의 재탄생, 다시 말해서 재림을 뜻하는 것으로서, 그 자체 경천동지할 개벽이며, 놀라운 휴거의 사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혹은 그리스도의 대리인인 성신 내지는 성령이 재림하는 마지막 심판의 날이 도래하게..

38 중세 문헌 2023.03.16

서로박: (2) 조아키노의 제 3제국에 대한 갈망

(앞에서 계속됩니다.) 7. 세 단계로서의 역사 (1): 조아키노는 오리게네스의 성서 독해의 세 가지 관점을 역사철학에 적용하였습니다. 바로 이 점이야 말로 조아키노의 공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리게네스의 성서 독해의 방법으로부터 도출해 나오는 것은 "역사의 세 가지의 단계”의 발전 과정입니다. 조아키노의 가르침에 의하면 역사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고 합니다. 이 세 단계는 모두 신의 나라를 이룩하려고 하며, 이에 접근하려는 노력과 관련됩니다. 첫 번째 단계는 성부의 역사, 즉 야훼신의 역사를 지칭합니다. 이것은 메시아가 출현하기 이전의 시대에 해당하는, 구약성서에 자세히 서술되고 있는 공포의 시기 내지는 의식된 법칙의 시기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 다시 말해서 성자의 역사를 지칭..

38 중세 문헌 2023.03.15

서로박: (1) 조아키노의 제 3제국에 대한 갈망

1. 조아키노의 천년왕국설: 중세의 이단적 사상가, 조아키노 디 피오레 (Joachim di Fiore, 1130 - 1202)는 오리기네스의 성서 독해의 세 가지 방법을 다른 각도에서 이해하여, 이를 역사철학에 대입하였습니다. 종말론에 입각한 천년왕국설의 이념은 조아키노에 의해서 처음으로 확립되었습니다. 그의 천년왕국설은 중세의 수많은 작은 기독교 종파에게 빛과 희망을 불어넣어주었으며, 중세 말기에 평신도 운동 그리고 기독교 신비주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천년왕국의 사상에 입각하여 또 다른 세상을 갈망했다는 이유로 이단자로 몰려 처형당한 기독교인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이들의 순교는 오늘날에도 기독교 정신의 꽃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아키노의 사상을 파악하려면 우리는 12세기부터 서..

38 중세 문헌 2023.03.15

서로박: (3) 천일야화, 스토리텔링

9. 이야기의 배열과 내용: 줄거리는 처음부터 주제와 결부되어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세헤라자드는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사랑과 성, 정조와 배신 그리고 이로 인한 처절한 아픔 등을 삽입시켰습니다. 이는 현혹된 기억으로서의 “이미 본 무엇Déjà-vu”, 가령 샤리야르 왕의 트라우마를 조금씩 건드리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중요한 것은 주제의 강도를 서서히 끌어올리는 일입니다. 이 점은 천 하룻밤 동안의 이야기를 모두 끝낸 다음에 고백한 그미의 말에서 확인됩니다. “저는 칼리프와 제왕 및 다른 분들이 여인들로 인해 겪었던 일들을 폐하께 오랫동안 이야기해왔습니다.” 추측컨대 왕은 오랫동안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다음과 같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 혼자 세상의 모든 고통을 짊어지고 사는 게 아니구나...

38 중세 문헌 2021.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