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최신독문헌 40

서로박: (3) 잉고 슐체의 '심플 스토리즈'

일부 동독 사람들 가운데에는 과거 구동독 사회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를 우리는 "오스탈기Ostalgie"라고 명명한다. (이 조어는 "동쪽 + 향수Ost + Nostalgie"를 합성한 단어다.) 괴거를 동경하는 사람들은 극우의 세계관을 드러내는데, 구동독 지역에서 외국인 혐오가 극성을 부린 까닭은 이러한 심성과 관련된다. 과거의 순수한 독일인들의 행복이 오늘날 급변하는 정세에 의해서 침탈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의 극우파들은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를 품고 있다. 태극기 부대의 맹목적 과거에 대한 동경은 사회적 진보주의자들을 악마로 매도하고, 역사적 진보를 역행하게 만든다. (앞에서 계속됩니다.) 11. 『심플 스토리즈』는 결코 간단한 이야기들이 아니다.: 친애하는 S, 슐체의 작품의 겉..

48 최신독문헌 2024.12.08

서로박: (2) 잉고 슐체의 '심플 스토리즈'

(앞에서 계속됩니다.) 6. 의사소통의 차단 내지는 부재 현상: 이러한 이야기들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이해되는 게 아니라, 사회적 변환기 속에서 겪어야 하는 변화된 사회 내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의 인간적 실수로 빚어진 사건일 수 있습니다. 소설적 화자는 각 장마다 바뀌고 있습니다. 이는 바로 알텐부르크 사람들의 의사소통의 차단 내지 부재 현상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음색은 평온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독자를 몹시 쓸쓸하게 만듭니다. 왜냐면 독일 통일은 동쪽 독일 지역의 알텐부르크에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회 계층의 사람들로 하여금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풍요로움을 누리게 해주었지만, 그들을 근본적으로 불행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더 ..

48 최신독문헌 2024.12.07

서로박: (1) 잉고 슐체의 '심플 스토리즈'

1. 단편적 장편: 친애하는 S, 잉고 슐체는 전환기 이후의 시기에 활동한 독일 신진 작가들 가운데에서 가장 촉망 받는 작가로 손꼽힙니다. 적어도 단편에 있어서는 최고의 작가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지요. 그의 작품집 『간단한 이야기들』은 전환기 시기의 동쪽 독일지역의 사회적 변환을 주제화하고 있습니다. 출판의 편집자는 “스토리즈Stories”라는 영어식 표기를 고려하지 않고, “스토리즈storys”로 표기하였습니다. 이로써 『심플 스토리즈』는 하나의 장편 소설로 명명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엄밀히 따지면 서로 연관된 단편 모음집 내지는 “단편적 장편”이라고 표현하는 게 타당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짧은 이야기 모음은 -영화 기법으로 설명하자면- 로버트 알트만 Robert Altman ..

48 최신독문헌 2024.12.06

서로박: 그뢰쉬너의 '모스크바의 얼음'

친애하는 G, 오늘은 당신에게 전환기의 소설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맨 처음의 작품으로서 마그데부르크 출신의 작가 아네테 그뢰쉬너 Annette Gröschner (1964 - )가 2000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모스크바의 얼음 Moskauer Eis』를 선택해 보았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아냐 코베라는 여성입니다. 그미는 베를린에서 나이든 할머니의 임종 소식을 접하고, 고향인 마그데부르크로 향합니다. 할머니의 집에는 아버지가 사용하던 방이 있었습니다. 수년 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버지의 방은 먼지 그리고 거미줄로 뒤엉켜 있었습니다. 아냐는 아버지의 방에서 커다란 냉동박스를 발견합니다. 아냐는 일순간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냉동박스 안에는 오랫동안 실종되었다고 알려진 아버지의 시체가 있..

48 최신독문헌 2024.12.05

서로박: (3) 잉고 슐체의 '새로운 삶들'

(앞에서 이여집니다.) 과거 작가 지망생으로 살아가던 당시에는 최소한 입신 (立身)에 대한 기대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또한 서방세계는 그에게 흐릿한 천국으로 인지되곤 하였습니다. 주위에서 그는 선배 작가들이 서독에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는 경우를 접하고, 이를 기대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통일이 되자 모든 것은 달라졌습니다. 성공은 창작 대신 경제적 이득 추구로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엔리코 튀르머는 성공의 가도를 달립니다. 그렇지만 그는 깊은 심리적 좌절감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 그에게는 더 이상 어떤 순수한 꿈이 자리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어쩌면 그는 클레멘스 폰 바리스타에게 자신의 꿈을 팔아넘기고, 대신에 자신을 부유하게 만드는 상술을 얻었던 것입니다.  서방세계는 주인공에게는 비록 접근이 ..

48 최신독문헌 2024.11.23

서로박: (2) 잉고 슐체의 '새로운 삶들'

(앞에서 계속됩니다.) 주인공은 편지의 수취인들과 제각기 기이한 애정 관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수취인은 누나인 베로츠카, 즉 베라입니다. 엔리코 튀르머는 어린 시절부터 베라를 누나로 생각한 게 아니라, 연인으로 간주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베라에 대한 주인공의 사랑은 실현될 수 없는 것이었으므로, 튀르머는 고통스럽게 청년 시절을 보낸 게 분명합니다. 편지의 행간에는 두 사람 사이의 근친상간을 암시하는 대목이 나타납니다. 튀르머는 베라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이 어떻게 알텐부르크 신문의 창간을 위해 노력해 왔는가? 하는 점을 서술합니다. 편지의 두 번째 수취인은 어린 시절의 친구, 요한 칠케라는 남자입니다. 요한은 매우 영리한 젊은이로서 주인공과 함께 드레스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주인공과 마..

48 최신독문헌 2024.11.22

서로박: (1) 잉고 슐체의 '새로운 삶들'

친애하는 S, 오늘은 1962년에 태어난 작가, 잉고 슐체의 장편 소설 『새로운 삶들 Neue Leben』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잉고 슐체는 사회주의의 동독 사회에서 그냥 자라났습니다. 여기서 “그냥”이라는 표현을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시인 우베 콜베 Uwe Kolbe가 “안에서 태어난 hineingeboren” 젊은이라고 자신을 지칭한 것도 이와 관계됩니다. 이들 문학 속에는 비더마이어 풍의 체념이 짙게 배여 있습니다. 동독의 젊은 세대는 대체로 사회주의 이념에 열광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조건 서방세계를 동조하지도 않았습니다. 한 가지 작은 목표를 설정하여, 이를 막연히 추구한다고 할까요?  어쨌든 이들 세대는 대체로 정치적 저항에 익숙하지 못하며, 주어진 현실에 갑갑함을 느끼면서 살았습..

48 최신독문헌 2024.11.22

서로박: 오이겐 루게의 '꺼져가는 빛의 시대에'

친애하는 J,매년 10월에 독일에서는 독일 출판상이 발표됩니다. 2011년 오이겐 루게 (Eugen Ruge, 1954 - )의 소설 『꺼져가는 빛의 시대 에 In Zeit des abnehmenden Lichts』가 수상작으로 선택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그야말로 명작으로 손꼽힙니다. 동독 출신의 57세의 소설가는 처음으로 장편 소설을 발표하였는데, 이 작품으로 독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수학자이며, 마라톤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소설은 동독의 어느 가정의 내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이겐 루게는 1954년 우랄 산맥 근처의 소스바에서 태어났습니다. 어쩌면 그는 이 소설 한 편을 쓰기 위하여 평생을 관찰했는지 모릅니다. 자신이 선택한 가족사를 마침내 분명하게 이..

48 최신독문헌 2024.06.11

서로박: (2) 크리스토프 하인의 '점령'

앞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11) 마리온 데무츠: 소설의 두 번째 화자는 마리온 데무츠라는 여성입니다. 마리온은 주인공의]이 맨 처음에 사귀던 여자 친구입니다. 그미는 주인공의 정치적 배경이 어떠하며, 어떠한 정치 단체에 가담했는지를 알려줍니다. 독자들은 가령 다음의 사실을 마리온을 통해서 접하게 됩니다. 즉 주인공의 사회 참여는 결국 굴덴베르크 공동체에 대한 주인공의 묘한 심리적 보복의 감정에서 비롯했다는 사실 말입니다. 마리온은 정치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확고한 입장을 지니지 못한 채 언제나 누구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타인의 영향을 받습니다. 이를테면 그미는 “베른하르트가 왕년에 동부전선에 투입되어 강제수용소에 갇혀 있었다.”라는 소문을 액면 그대로 믿고, 주인공과 헤어질 정도입니다. 한마디로..

48 최신독문헌 2023.12.02

서로박: (1) 크리스토프 하인의 '점령'

(1) 보복과 과거 극복의 문제: 친애하는 H, 오늘은 크리스토프 하인 Christoph Hein이 환갑 나이에 발표한 전환기 이후의 소설, 『점령 Landnahme』(2004)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90년대 이후로 독일 사회에 뿌리내린 두 가지 치명적인 증상을 예리하게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편으로는 독일인들의 “타자에 대한 증오 Xenophobie”의 신드롬을 가리키며, 다른 한편으로는 통일 후 동독 출신 사람들의 정체성을 부정하려는 성향 내지는 과거사에 대한 망각의 신드롬을 가리킵니다. (2) 이전의 작품, 「낯선 연인」:「낯선 연인」은 주어진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이른바 성격갑옷을 덮어쓴 인간형을 추적합니다. 가령 작품의 주인공인 여의사, 클라우디아는 애인의 예기치 못..

48 최신독문헌 2023.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