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a 나의 산문 18

박설호: 땅 위에 그려진 일 (一)

손바닥에 쓰여 있는 王이라는 글자 - 이 역시 하나의 퍼포먼스인지 모른다. 나라를 다스리고 싶은 야심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 대장부라면 누구나 한번쯤 품을 수 있는 욕망일 것이다. 그렇지만 누구를 위한 욕망인가? 일순간 하나의 일화가 필자의 뇌리에 스쳤다. 그것은 한자로 점을 치는 기인에 관한 이야기다. 때는 바야흐로 기원 후 910년 무렵이었다. 여름이 끝날 무렵 개성으로 향하는 양주 근처의 길목 장터에서는 한자로 점을 치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64개의 골판지에다 제각기 다른 한자를 써넣은 다음에, 이것들을 땅 위에 가로 여덟 개, 세로 여덟 개로 배열해 놓았다. 이곳의 토박이와 장돌뱅이들은 그 앞에 모여서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사내는 동전 몇 닢을 받은 다음에 글자를 가리키는 사람의 운세를 ..

2a 나의 산문 2024.10.20

서로박: (3) 배를 짊어지고 높은 산을 넘으면서

(앞에서 계속됩니다.) 참으로 기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름 아니라 암행 감사였습니다. 대통령의 밀명으로 비밀리에 전국을 순회하면서 비리를 척결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비역 대령이었는데, 항상 두 명의 경호원과 함께 은밀히 돌아다니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암행 감사를 우연히 만나서, 나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고 합니다. 이때 암행 감사는 다음과 같이 대꾸했습니다. 그래요? 물론 재학생이 검정고시에 응시하는 것은 위법이오. 그렇지만 이미 자퇴 처리가 되어 있고, 당신 아들은 이미 예비고사까지 합격하지 않았나요? 검정고시의 규정은 엄정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은 옳지만, 이 제도는 어려운 학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니, 당신의 아들은 이번 기회에 구제되어야 하오. 아버지는 이때 가만히 그의 말을 경..

2a 나의 산문 2024.07.13

서로박: (2) 배를 짊어지고 높은 산을 넘으면서

(앞에서 계속됩니다.) 그해 12월은 얼마나 추웠던지요? 지금에야 편안하게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당시의 시간은 나에게는 마치 지옥에서의 삶인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한복을 만드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내 아래에는 두 명의 동생이 중학교 그리고 초등학교에 재학 중이었는데, 생활비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출소하여 다시 무슨 일이든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영어와 일본어에 능통한 그는 다시 상경하였습니다. 일본에서 전자 기기를 수입하여 대학에 납품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아버지는 우연히 C 대학교 의과대학의 교무처장을 알게 되었는데, 담소를 나누다가 내가 겪었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러자 교무과장은 사실 확인을 위하여 그해의 예비고사 합격자를 기술한 두툼한 책자를 뒤졌습니다..

2a 나의 산문 2024.07.13

서로박: (1) 배를 짊어지고 높은 산을 넘으면서

“희망의 특징은 불가능성의 가능성으로 요약된다.” (에른스트 블로흐) 친애하는 M, “배를 짊어지고 높은 산을 넘으면서 고향을 찾는다. 繋舟山頂覓郷人”. 이 구절은 노촌 이구영 선생의 한시 한 구절입니다. (심지연: 역사는 남북을 묻지 않는다, 소나무 2001). 이구영 선생님은 남북의 평화 통일의 과업을 “무거운 선박을 끌고 산을 오르는 힘든 여정”으로 표현하면서, 이를 자신의 고향 찾는 일로 비유했습니다. 이구영 선생님에 비하면 나의 청년 시절은 그저 작은 고난의 엄살로 여겨집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감히 글로 남기는 까닭은 절망에 사로잡힌 당신이 “삶의 의미는 버티는 데 있다.”라는 사실에 공감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미리 말씀드리건대 다음 이야기의 배경에 해당하는 시간과 장소는 임의로 바뀌었음..

2a 나의 산문 2024.07.13

서로박: 가벼운 내가 떠나리라, 혹은 메타세쿼이아

"언제인가, 그가/ 번데기 그 어둠을 벗고/ 은빛 날개 파르르 떨 때는" - 고현철의 시 '길'의 마지막 부분 승염이사 (僧厭離寺), 사염승거 (寺厭僧去) 중이 싫어 절을 떠날까, 아니면 절이 싫어 중을 떠날까? 이는 참으로 어려운 질문입니다. 1980년대 말에 김수행, 정운영 두분 교수님은 학교를 떠났습니다. 학교의 재정을 문제 삼은 게 화근이었습니다. 학교 당국은 "사표를 제출하면, 아무 일도 없었던 일로 처리하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두 분 교수님은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고 사표를 제출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학교 당국은 사표를 수리한 다음에, 두 분 교수님을 강제로 퇴직시켰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그것은 실제로 존재했던 가장 치졸하고 가장 저열한 사기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

2a 나의 산문 2024.05.26

박설호: D 학점과 신춘 문예

1. 방학 동안에 D 학점을 취득한 몇몇 학생들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누구도 “경애하는 선생님을 뵙고 싶어 전화했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 젊은이들은 그토록 학점에 민감하게 반응할까요? 장학금이라는 돈이 개입되기 때문일까요? 한편으로는 이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약간 서운했습니다. 하기야 유럽의 대학생들은 교수를 찾아 대학을 옮기는 데 비해, 한국의 학생들은 대학의 위치만을 고려합니다.  한국의 대학은 모조리 서열로 정해져 있습니다. 한국의 학생들은 대체로 학문을 추구보다는 학점과 졸업장 따는 일에 몰두합니다. 입학 문화만 존재하고 졸업 정원제는 실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등록금을 내면 졸업장을 자연스럽게 수령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아주 서운할 필요 없다고 나 자신을 다독거렸..

2a 나의 산문 2024.03.26

서로박: 참새, 참다운 새

그리운 분에게,오늘은 12월 24일입니다.블로흐의 책을 읽으려고 도서관으로 향하다가, 참새 한 마리를 목격했습니다.수십 년 전 부산에서 대학을 다닐 때 보았던 바로 그 작은 날짐승, 바로 그 새였습니다.마치 자신이 참다운 새라고 자랑하는 듯이 꽁지에 묻은 눈을 털고,헐벗은 나무 줄기에 부리를 비비다가, 어디론가 흔적 없이 날아갔습니다.아마도 전에 부산에서 살았던 새의 후손이이었을까요?  빠르게 흐르는 시간의 화살은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곤 합니다. 읽어야 할 책이 여전히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볼품없이 흰머리만 늘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하신 말씀, "아들아, 마음은 절대로 늙지 않는단다."그래, 시간이 흐르면 인간의 가죽부대만 쭈글쭈글해질 뿐,마음만은 동산에서 뛰놀던 천진난만한 아이의 변치 않은 심..

2a 나의 산문 2023.12.24

서로박: (3) 부르디외, 나를 키운 건 8할이 잡지다

(앞에서 계속됩니다.) 12. 그래, 80년대 초에 비장한 각오로 한반도를 떠났습니다. 한 마리 볼품없는 “미운 오리새끼”는 아름다운 백조가 되어 유럽에서 찬란하게 날아올랐습니다. 처음에는 말이 통하지 않고 음식이 달라서 힘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곳 사람들은 돈이 없다는 이유로 가난한 사람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거나, “빽”이 없다는 이유로 올바른 주장을 깔아뭉개지는 않았습니다. 모든 것은 개별적 능력에 의해 합리적으로 평가되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속이는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유럽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선량해서가 아니라, 대부분 제도가 민주적인 방식으로 정착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팔이 안으로 굽는 부당한 경우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미약하게 드러날 뿐이었..

2a 나의 산문 2023.09.10

서로박: (2) 부르디외, 나를 키운 건 8할이 잡지다

(앞에서 계속됩니다.) 7. 이 무렵 나에게는 잡지를 읽을 시간이 별로 없었습니다. 왜냐면 대학 입학시험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지식인들은 당락을 위한 상대 평가 그리고 경쟁 교육을 맹렬하게 비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SKY 대학생들을 수재들로 인정하면서, 시험을 통한 선발 그리고 능력주의 자체를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개개인의 능력 차이는 처음부터 시험을 통해서 가려질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자고로 시험은 처음부터 묻는 데 대한 대답만을 요구한다는 한계를 지닙니다. 명저 한 권 읽지 않고 시험만 잘 치르면 당락이 결정되고 수석과 꼴찌가 정해집니다. 이러한 사회는 기껏해야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듣는 수동적 관료만을 키워낼 뿐입니다. 창의력과 비판력은 무엇보다도 독서와 토론을 통..

2a 나의 산문 2023.09.10

서로박: (1) 부르디외, 나를 키운 건 8할이 잡지다

- "모든 자서전에는 거짓이 포함되어 있다.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이 당사자를 검열하기 때문이다." (필자) -  ................................ 1. 나는 1960년대에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판자촌에는 찢어질 정도로 가난한 아이들이 살았습니다, 중학교 교실은 콩나물시루와 같이 버글버글했는데, 그만큼 경쟁도 치열했습니다. 부모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식을 일류 학교에 보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일이야말로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첩경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신분에 대한 구분은 거의 사라졌지만, 빈부 차이는 매우 심했습니다. 사람들은 “나의 자식” 교육에만 신경을 곤두세웠을 뿐 “우리의 자식” 교육에는 아예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부..

2a 나의 산문 2023.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