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Brecht 74

서로박: (13) 여인들의 브레히트. 사랑의 슬픔

13. 나오는 말 여자: 브레히트는 쾌활한 바이에른 사람이었습니다. 기타 반주로 자신의 작품을 노래하기도 했지요. 남자: 그런가요? 그의 삶과 문학은 기독교를 도외시하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친 책이 마르크스의 『자본Das Kapital』인가? 하고 물었을 때, 브레히트는 다음과 같이 대꾸하였습니다. “만약 ‘성서’라고 대답하면 당신은 웃겠지요?” 그는 기독교 시민 사회가 개개인의 삶을 부자유의 질곡에 가둔다고 여겼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그의 입장은 미셀 푸코의 기독교 비판과 일맥상통합니다. (Foucault: 28). 여자: 브레히트는 젊은 시절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자주 인용하였습니다. “여자에게 갈 때는, 채찍을 들고 가는 것을 잊지 말라.” 원래 그 말은..

46 Brecht 2024.04.11

서로박: (12) 여인들의 브레히트. 사랑의 슬픔

(앞에서 계속됩니다.) 12. 이조트 킬리안 (1924 - 1986) 여자: 킬리안은 브레히트의 마지막 여인이지요? 남자: 그미는 브레히트의 마지막 연인으로 살다가 떠났습니다. 1954년 무렵 브레히트는 예술적으로 성공 가도를 달렸지만, 개인적으로는 불행했습니다. 당시 바이겔은 브레히트와 심하게 다툰 다음에 별거에 들어갔고, 베를라우는 술에 찌든 채 살고 있었지요. 킬리안은 1950년대 초에 베를린 앙상블에서 배우로서 그리고 조연출가로서 일했는데, 놀라운 열정이 브레히트를 감복시킨 게 분명합니다. 여자: 킬리안은 솔직하고 꾸밈없는 여성이라고 알려져 있네요. 자동차를 타고 갈 때 브레히트는 자신의 어떤 면이 마음에 들지 않는가? 하고 그미에게 물었고 합니다. 이때 그미는 예행 연습 시에 크게 소리치는 행동..

46 Brecht 2024.04.11

서로박: (11) 여인들의 브레히트. 사랑의 슬픔

(앞에서 계속됩니다.) 11. 마르가레테 슈테핀 (1908 – 1941) 여자: 슈테핀은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분이었습니다. 남자: 네, 마르가레테 슈테핀은 노동자들의 지역, 베를린의 쾨페니크에서 태어났습니다. 돈이 없어서 대학에 다닐 수 없었던 그미는 정치적 신념을 지녔을 뿐 아니라, 다섯 개의 외국어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덴마크어, 스웨덴어)를 자력으로 마스터하였고, 두 개의 외국어 (핀란드어, 노르웨이어)의 기본 실력을 갖추게 됩니다. 여자: 뛰어난 두뇌를 갖춘 분인 것 같습니다. 남자: 18세의 나이에 슈테핀은 노동자 스포츠 단체에서 노동자, 딤케를 사귄 후에 동거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가난 때문에 미래를 약속할 수 없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딤케가 바람을 피우게 되었을 때..

46 Brecht 2024.04.11

서로박: (10) 여인들의 브레히트. 사랑의 슬픔

(앞에서 계속됩니다.) 10. 루트 베를라우 (1906 – 1974) 여자: 루트 베를라우의 성격은 혼란스럽고 까다롭다고 들었습니다. 남자: 네, 이러한 성격은 비극적인 가정사에 기인합니다. 코펜하겐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추측하건대 친아버지에 의해 성폭력을 당한 것 같습니다. (Kebir 2006: 35). 이로 인하여 베를라우는 13세의 어린 나이에 낙태 수술을 받았는데, 어머니는 남편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 떨면서 자살까지 시도했습니다. 여자: 그런데 젊은 시절의 성폭력에 관해서 자신의 회고록에서 침묵을 지켰어요. (붕에: 45). 남자: 남우세스럽다고 생각했지요. 아빠에 대한 굴욕감, 수치심 그리고 가증스러움은 그미의 청춘을 망치게 하였고, 쓰라린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했습니다. 젊은 베를라우..

46 Brecht 2024.04.08

서로박: (9) 여인들의 브레히트. 사랑의 슬픔

(앞에서 계속됩니다.) 9. 헬레네 바이겔 (1900 = 1971) 여자: 헬레네 바이겔은 법적으로 브레히트의 두 번째 아내였지요? 남자: 그런데 브레히트와 바이겔 사이에는 혼인할 때 아무런 협약이 없었습니다. 브레히트의 일방적 성적 자유에 대해 바이겔이 그냥 동의하는, 불평등 관계가 암묵적으로 맺어졌지요. 여자: 흔히 사람들은 사르트르와 보바르 사이의 계약 결혼을 언급합니다. 프랑스의 두 작가는 결혼하면서, 세 가지 사항을 실천하려 하였습니다. “첫째로 시민 사회의 일부일처제는 용납될 수 없다. 둘째로 두 사람은 상대방의 성적 자유를 용인한다. 셋째로 어떤 경우에도 비밀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약속을 어긴 사람은 사르트르였으며, 보바르는 크고 작은 심리적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브레히트는 자기중심..

46 Brecht 2024.04.05

서로박: (8) 여인들의 브레히트. 사랑의 슬픔

(앞에서 계속됩니다.) 8. 카롤라 네어 (1900 – 1942) 여자: 네어는 유명한 배우였지요? 네어는 거칠고 천진난만하며, 공격적인 현대적 여성의 이미지, 즉 엘렉트라의 기질을 드러내었습니다. 흑인 머리 스타일, 남성 복장, 면허증 취득으로 세인을 놀라게 했지요. 1920년대 초만 하더라도 여성이 바지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일은 드문 일이었으니까요. (Wieland: 178). 남자: 네 네어는 음악 교사의 딸로 태어나, 1920년부터 바덴바덴, 뮌헨 그리고 브레슬라우에서 연기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1922년 뮌헨 캄머슈필레 극장에서 브레히트를 만났지요 그런데 네어는 1925년에 브레히트를 저버리고, 극작가, 클라분트와 결혼하였습니다. 여자: 브레히트가 충동적이고, 바이에른 특유의 낙천적인 기질..

46 Brecht 2024.04.02

서로박: (7) 여인들의 브레히트. 사랑의 슬픔

(앞에서 계속됩니다.) 7. 마리루이제 플라이서 (1901 – 1974) 여자: 마리루이제 플라이서의 극작품은 오늘날에도 상연되고 있지요? 남자: 네, 그미는 1920년 뮌헨 대학교에서 공부할 때 브레히트를 만났습니다. 여자: 바이에른의 소도시, 잉골슈타트는 자신의 고향 내지는 영원한 쉼터와 같았군요. 이에 비하면 뮌헨과 베를린은 그미에게는 격변하는 역사적 소용돌이 속의 낯선 대도시였을까요? 남자: 그렇습니다. 1926년 플라이서의 극작품, 「잉골슈타트의 연옥Fegefeuer in Ingolstadt」이 베를린에서 초연되었습니다. 그해 여름 플라이서는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브레히트와 만났는데, 브레히트는 그미의 문학적 재능을 높이 평가하며 작품의 집필을 종용하였습니다. 이때 완성된 작품 가운데에는 「잉골슈타..

46 Brecht 2024.04.01

서로박: (6) 여인들의 브레히트, 사랑의 슬픔

6. 엘리자베트 하우프트만 (1897 – 1973) 여자: 하우프트만은 브레히트의 창작을 돕던 도우미였지요? 남자: 네, 그미의 삶은 롤러코스터의 연속이었습니다. 평생 네 번 결혼한 것이 이를 반증하지요. 사랑의 실패로 인하여 그미는 두 번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첫 번째의 자살은 브레히트가 헬레네 바이겔과 결혼했을 때 행해졌으며, 두 번째의 자살은 1949년에 그미의 남편, 파울 데소Paul Dessau의 배신 때문이었습니다. 음악가, 파울 데소는 55세의 나이에 27세의 젊은 여배우, 안체 루게Antje Ruge를 사랑하며, 무작정 동거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여자: 그미는 언제 어디서 브레히트와 안면을 익히게 되었습니까? 남자: 1924년 초에 베를린이었습니다. 브레히트는 그미의 재능을 즉시 알아보고,..

46 Brecht 2024.03.31

서로박: (5) 여인들의 브레히트, 사랑의 슬픔

(앞에서 계속됩니다.) 5. 마리안네 초프 (1893 = 1984) 여자: 마리안네 초프는 브레히트의 첫 부인이었지요? 남자: 네, 1893년 오스트리아 빈 근처에서 군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미는 뛰어난 외모를 갖추고 노래를 잘 불러서, 뮌헨에서 오페라 가수로 성공하려 랬지요. 1919년 9월 초프는 오페라 「카르멘」에서 집시 소녀, 메르세데스 역을 맡아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궁핍하게 살던 그미는 뮌헨의 출판업자, 오스카 카밀루스 레히트Oskar Camillus Recht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했습니다. 여자: 브레히트는 1919년에 아우크스부르크 시립 극장에서 초프를 처음으로 만났지요? 남자: 아닙니다. 1920년 2월이었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에 브레히트는 황급히 분장실로 뛰어 들어가, 그미의 미모와..

46 Brecht 2024.03.31

서로박: (4) 여인들의 브레히트, 사랑의 슬픔

(앞에서 계속됩니다.) 4. 마리아 로자 아만 (1901 – 1988) 여자: 하이너 뮐러는 장시 「이를테면 아이아스」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습니다. “브레히트의 비석은 한그루 밋밋한 자두나무” (Müller: 297). 자두는 여성의 생식기에 대한 객관적 상징물인데, 브레히트가 연속적으로 갈구한 대상이겠지요? 남자: 그렇지만 사랑의 감정이란 순간적 스침이었습니다. “마치 철새가 날아가는 모습” (「Die Liebenden」), 혹은 마치 구름 사이로 달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적 쾌락이었지요. 여자: 시간의 흐름은 하나의 아련한 아쉬움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도 시간을 거스를 수 없지요. “시간은 모든 것을 갉아 먹는다.Tempus edax rerum.”고 하지 않습니까? 남자: 브레히트는 간밤..

46 Brecht 2024.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