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문학 이야기 47

테오도르 슈토름

테오도르 슈토름 (1817 - 1888)은 북부 독일의 소설가입니다. 1817년 그는 북독의 후줌에서 법률가 요한 C 슈토름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집은 부유한 편이라서 걱정 없이 살았습니다. 슈토름은 단편 장편 등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는 법학을 공부하여 1842년부터 1853년까지 후줌에서 변호사로 일했습니다. 후줌은 북독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입니다. 이곳에는 휴양 시설이 즐비합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서해처럼 갯벌이 유명합니다. 후줌에 있는 테오도르 슈토름의 생가. 1층에는 상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성년이 되어 슈토름은 평생 생활비를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일곱명의 자식을 키웠기 때문입니다.1864년부터 1880년까지 독일 덴마크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여, 그는 ..

9 문학 이야기 2021.11.08

귄터 쿠네르트

귄터 쿠네르트 (1929 - )는 구동독 출신의 작가 가운데에서 가장 다재다능한 작가입니다. 그는 시작으로 출발하였으나, 나중에는 산문을 많이 썼습니다. 그의 작품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시보다도 산문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러나 그의 수많은 작품은 오늘날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시인 고은이 만인보를 집필하지만, 그 역시 아마도 만 편의 시를 족히 썼을 것입니다. 귄터 쿠네르트는 1929년 베를린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유대인 혈통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1940년에는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었습니다. 그의 전쟁 체험은 소설 "모자들의 이름으로 Im Namen der Hüte" 에 자세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사진은 브..

9 문학 이야기 2021.10.29

하이너 뮐러의 문학

하이너 뮐러의 문학을 이해하려면 다음의 책을 참고하세요. 한국 브레히트 학회 편: 하이너 뮐러의 연극세계, 연극과 인간 2006. 필자: 하재철, 박설호, 이정린,서요성,손양근,장혜순,송희영,김명찬,이준서,임미오,이상복,김맹하,윤시향,왕치현,장은수,정민영, 위의 사진은 오동식 교수님의 박사학위 논문집 "하이너 뮐러에게 나타난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의 모티프에 관하여"입니다. 실제로 유년의 경험은 평생 기억됩니다. 하이너 뮐러의 아버지는 시청 공무원이었는데, 1933년 사민당을 지지하여 일시적으로 감옥에 수감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나치의 돌격대원 두 사람은 사민당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뮐러의 아버지를 구타한 다음에 어디론가 끌고 갑니다. 어린 뮐러는 이러한 장면을 열쇠 구멍으로 바라보면서 경악에 사로잡혔습..

9 문학 이야기 2021.09.24

라이너 마리아 릴케

Macho = 강인한 남자 Softi = 부드러운 남자 릴케는 부드러운 남자의 전형이었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1875 - 1926)의 사진. Softi 의 전형. (der Macho, der Softi)인 릴케는 우리나라에 잘 소개된 시인입니다. 어머니는 릴케의 누나가 일찍 죽은 뒤에 아들에게 집착하였습니다. 릴케는 처음에는 "René (다시 태어난 자)"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어머니는 르네에게 여자아이의 옷을 입혀 키웠습니다. 그러나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과도한 집착은 릴케에게 엄청난 부담감으로 작용했습니다. 이로 인해서 자립심도, 추진력도 없는 "아름다운 남자"의 습성이 그의 몸에 배이게 됩니다. "말테의 수기"는 우리나라 작가들에게 가장 커다란 감명을 준 소설로 손꼽히는 작품입니다. 이곳은..

9 문학 이야기 2021.09.08

토마소 캄파넬라

이탈리아는 한국과 유사한 점이 참 많습니다. 날씨가 비슷합니다. 맑은 날이 비오는 날보다 많지요. 빈부 차이가 있다는 것도 유사합니다. 북부 이탈리아 사람들은 대체로 부유하지만, 남부 사람들은 가난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는 영국과 대조적이지요. 영국에 가면, 남부의 경제적 수준은 높지만, 북부 영국의 경제적 수준은 열악합니다. 그런지만 북부 영국인들은 참으로 순박합니다. 남부 이탈리아 사람들도 비록 가난하게 살지만 인정이 많고 착합니다. 대신에 남부 이탈리아의 음식은 참으로 맛깔스럽습니다. 해산물 요리, 파스타 그리고 피자는 그야말로 일품입니다. 나폴리는 반드시 가보고 싶습니다. 일단 칼라브리아가 어디에 위치하는지 찾아보세요.^^ 사진은 토마소 캄파넬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1568년 칼라브..

9 문학 이야기 2021.08.07

게오르크 뷔히너

조물주는 특이한 한 사람에게 모든 재능을 부여하고, 대신에 그의 목숨을 일찍 앗아갑니다. 게오르크 뷔히너가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불과 24년의 짤막한 삶을 살다가 갔지만, 그가 남긴 몇 편의 작품은 결고 망각될 수 없는 명작들로서 그가 죽은 지 200년이 지났는데도 독자들에게 회자되곤 합니다. 위의 사진은 게오르크 뷔히너의 생가입니다. 게오르크 뷔히너는 1813년 10월 17일 헤센 다름슈타트 근처의 곳델라우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에 독일 땅에서는 나폴레옹 전쟁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의사였으며, 가정에서 아이들을 직접 교육시키곤 하였습니다.게오르크 뷔히너의 동생은 다섯 명이었습니다. 이들 가운데 빌헬름 루드비히 (1816 - 1892)는 정치가, 루이제 (1821 - 1877)는 ..

9 문학 이야기 2021.06.08

에리히 프리트

에리히 프리트 (1921 - 1988) - 그는 적의 언어로써 촌철살인의 시를 쓰는 시인이었다. 에리히 프리트는 1921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유대인 가정에서 외동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운송업자였으며, 어머니는 삽화가였습니다. 프리트는 다섯 살부터 빈에 있는 아동 극단에서 활동하였고, 1933년부터 김나지움에 다녔습니다.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된 다음에 1938년 5월에 프리트의 아버지는 게슈타포의 취조를 받았는데, 그 후유증으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영국의 BBC 방송국. 프리트는 1968년까지 이곳에서 일했다. 프리트는 그때 벨기에를 거쳐서 영국 런던으로 망명하였고,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런던에서 그는 정치적으로 망명을 선택한 젊은이들을 돕는데 앞장섰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9 문학 이야기 2021.05.04

트라클 그리고 엘제 라스커 쉴러

독일은 역사적으로 특별한 길을 걸었습니다. 이를 독일의 특별한 길der deutsche Sonderweg이라고 말합니다. 1914년까지 독일은 왕정체제를 이어갔으며, 이는 결국 세계대전을 탄생시켰으며, 나치를 탄생시켰습니다. 첫 번째 이유: 독일에는 프랑스 영국과는 달리 초기 자본주의가 융성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이유: 상인 계급과 지식인 계급이 성숙하지 못했고, 그 대신에 사제 계급이 권력자와 결탁해 왔습니다. 그림에서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습니다. 예컨대 프로이센 국가는 사람들의 입을 차단시키고, 어떠한 건설적인 대화도 용인하지 않았습니다. 비판적 의견은 묵살되고, 권력을 지닌 왕은 사제들과 결탁하였습니다. 아래로부터 위로 향하는 건설적 제안은 없었고, 오로지 명령만을 하달하는 구조가 이..

9 문학 이야기 2021.03.02

윌리엄 셰익스피어

인간의 열정을 그렇게 집요하게 파헤친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 (1564 - 1616). 불과 52년의 짧은 생애를 살다가 갔지만, 후세에 끼친 영향력은 참으로 지대합니다. 그는 38편의 극작품 그리고 156편의 소네트를 세상에 남겼습니다. 셰익스피어만큼 열정과 사랑, 기쁨과 절망, 환희와 저주를 그렇게 생생하게 묘사한 작가는 이전에 없었습니다. 특히 놀라운 것은 그가 더 나은 삶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열망이 신의 그것보다도 더 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극작품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잘못과 오해로 인하여 처절하게 반성하고, 지금까지의 삶의 견햬를 저버리고 새로운 인물로 생생하곤 합니다. 극작품 내에서의 이러한 성격 변화는 이전에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사항입니다. 셰익스피어의 생..

9 문학 이야기 2020.11.23

하인리히 뵐

자고로 유명 작가가 되면 자신의 모든 삶은 세인의 관심사가 됩니다.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유명해지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은 아닙니다. 하인리히 뵐 (1917 - 1985)은 귄터 그라스와 마찬가지로 전후 문학을 이끈 기수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관을 제작하여 판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인리히는 이른 시기에 성당에 다니면서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되었는데, 그의 신앙은 죽을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하인리히 뵐은 김나지움을 마친 뒤에 본에 있는 렘페르츠 서점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진은 2010년 증축된 렘페르츠 서점의 건물입니다. 하인리히는 약 11개월 다니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소실과 관심사는 경영 방면이 아니라, 창작 쪽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1938년 11월 그는 군에..

9 문학 이야기 2020.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