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문학 이야기

토마소 캄파넬라

필자 (匹子) 2021. 8. 7. 10:21

 

 

 

 

이탈리아는 한국과 유사한 점이 참 많습니다. 날씨가 비슷합니다. 맑은 날이 비오는 날보다 많지요. 빈부 차이가 있다는 것도 유사합니다. 북부 이탈리아 사람들은 대체로 부유하지만, 남부 사람들은 가난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는 영국과 대조적이지요. 영국에 가면, 남부의 경제적 수준은 높지만, 북부 영국의 경제적 수준은 열악합니다. 그런지만 북부 영국인들은 참으로 순박합니다. 남부 이탈리아 사람들도 비록 가난하게 살지만 인정이 많고 착합니다. 대신에 남부 이탈리아의 음식은 참으로 맛깔스럽습니다. 해산물 요리, 파스타 그리고 피자는 그야말로 일품입니다. 나폴리는 반드시 가보고 싶습니다. 일단 칼라브리아가 어디에 위치하는지 찾아보세요.^^

 

 

 

 

 

 

 

사진은 토마소 캄파넬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1568년 칼라브리엔의 스틸로라는 소규모의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집은 찢어지게 가난하였습니다. 아버지는 구두수선공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토마소는 어릴 때부터 무척 영특했습니다. 한 번 경청한 것은 모조리 기억하는 등 그의 영특함은 아버지를 소름끼치게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영리한 아들이 법학을 전공하여 집안을 일으키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토마소는 철학과 신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의 서적을 라틴어로 탐독하고 열광하였습니다. 토마소는 도미니크 수도원에 들어가면, 먹고 사는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다고 여기고 수도원에 들어갑니다. 사진은 "Domini Canes (주의 충성스러운 개)" 수도복을 입고 찍은 사진입니다. 

 

 

 

 

 

 

 

이탈리아의 스틸로라는 지역. 토마소 캄파넬라는 바로 이 지역에서 태어났습니다. 남쪽은 광활한 지중해가 보이고, 북쪽은 산악지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토마소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자신의 미래의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사진은 플라카니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칼라브리아 주의 남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가장 높은 곳의 건물이 도미니크 수도원입니다. 이곳에서 토마소는 학문을 익혔는데, 교단이 오로지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만 연구하는 데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고대 철학자 가운데 엠페도클레스 Empedokles는 이탈리아 사람인데, 왜 아리스토텔레스 외의 다른 철학자의 연구를 소홀히 하는가? 하는 게 그의 항변이었습니다.

 

불철주야 노력하여 그의 학문은 자신을 가르치는 선생만큼 탁월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토마소는 자신의 가르치는 선생의 무지를 지적하여 선생들이 그를 몹시 껄끄럽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그는 새로운 학문, 텔레시오 Telesio의 광학을 접하고 이에 열광하였습니다.

 

 

 

 

 

 

 

사진은 나폴리의 전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토마소 캄파넬라는 자신의 학문적 욕구가 도미니크 수도원이 추구하는 종교적 사명과 일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원을 떠나게 됩니다. 그는 자연과학을 연구하여 대성하려고 결심합니다. 심지어 그는 파도바, 피렌체 등지로 여행하면서 자연과학자가 되려고 합니다. 그가 만난 사람 가운데에는 가령 갈릴레오 갈릴레이 Galileo Galilei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탈리아 전역은 당시에 정치적으로 에스파냐의 지배 하에 있었습니다. 그는 이탈리아의 청년들을 규합하여 이탈리아가 외세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설득하였습니다. 말하자면 토마소 캄파넬라는 종교재판소 그리고 이탈리아 당국으로부터 눈위의 가시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스파게티 봉골레 Spaguetti Vongole. 싱싱한 조개가 첨가되는 게 특징적입니다. 소금, 비너스 조개, 스파게티, 올리브기름, 토마토, 볶은 마늘, 파슬리, 파르메잔 (가루 치즈) 등으로 요리 끝. 스파게티의 종류는 무수히 많습니다. 토르텔리니, 라비올리가 어떠한 요리일까요?

 

 

 

 

 

 

 

 

 

흔히 한국 사람들은 자 마르가레타를 즐겨 먹는데, 이것은 나폴리의 맛을 최상으로 칩니다. 사진은 오븐에서 금방 꺼낸 피자 마르가레타 오리지널입니다. 여기에 첨가되는 것은 토마토, 모차렐라 치즈, 페페로니 (매운 고추), 샴피뇽 Champignon, 햄 Schinken, 향신료로서 오레가노 Oregano, 바질리쿰 Basilikum, 소금, 후추 등이 첨가됩니다. 어제 피자 헛에서 3만원 주고 피자를 먹었는데, 맛이 없었습니다. 원래 피망과 소고기 그리고 크림 치즈 등이 피자에 섞이면 피자의 고유한 맛이 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탈리아 특유의 맛이나는 라잔네 Lasagne라는 요리입니다. 넓은 스파게티 판 위에 음식을 차곡차곡 올려놓은 것인데, 재료에 따라 다양한 맛을 드러냅니다. 피자 맛과 스파게티 맛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요리로서 레시피 역시 간단한데, 중요한 것은 향신료를 구하는 일입니다. 오레가노, 파슬리, 딜, 귐멜 등의 향신료가 있어야 깊은 라잔네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진 속의 캄파넬라는 이 세상에서 가장 비극적인 삶을 누리는 자의 혹독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주여, 당신의 눈에는 피범벅이 된 나의 처참한 모습이 정말 보이지 않는가요? 지금까지 내가 행한 일이라고는 학문을 연구하고 나의 지식을 민초들에게 전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지식인으로서 내가 한 일은 민초들로 하여금 정의롭게 생활하고 자유와 평등을 실천하도록 도와준 일 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주여, 당신은 나로 하여금 죽임보다도 더 가혹한 시련을  감당하게 하는군요. 그래도 정의 그리고 자유 평등이 실천될 수 있다면, 내가 겪어야 하는 온갖 고초와 불행을 얼마든지 달게 받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내 한 몸 사라지고 나의 이름이 후세인들에게 기억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주여, 제발 부탁드리건대 오로지 당신만큼은 나를 기억해주시고 인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 토마소 캄파넬라는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고결하고 가장 인간 답게 살아갔다는 것을 .... .

 

 

 

 

 

 

 

상트 엘모의 감옥의 모습입니다. 일곱 번 고문당한 토마소 캄파넬라는 1600년부터 1605년 사이에 이곳의 지하 감옥에서 갇혀 지내야 했습니다. 캄파넬라는 이단 그리고 반역의 혐의로 일곱 차례 모진 고문을 당해야 했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자살하려고 감방에 불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방화사건으로써 그는 이단자로서의 처형을 모면하였고, 27년 동안 옥살이 해야 했습니다. 원래 미친 자는 로마의 "만민법 Ius gentium"에 의하면 이단자로 처형당하지 않습니다. 캄파넬라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처형을 면하려고 그가 감방에 불을 지른 것일까요? 글쎄요.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사진은 캄파넬라가 수십 년간 갇혀 있던 나폴리의 감옥입니다.캄파넬라는 1605년부터 이곳에 갇혀 있었습니다. 건물은 로마네스크 건물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이곳에서 캄파넬라는 다행히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1612년 독일의 인문학자이며 법률가인 토비아스 아다미 (Tobias Adami, 1581 – 1643)는 자신의 제자와 함께 여행 중이었습니다. 그는 작센의 귀족이며 나중에 군주가 되는 제자, 루돌프 폰 뷔르나우와 함께 그리스, 예루살렘 그리고 몰타를 여행한 뒤 나폴리에 잠시 체류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때 그는 이곳의 감옥에 철학자, 토마소 캄파넬라가 수감되어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나폴리 감옥을 찾아가서 그와의 면회를 요청합니다. 아다미는 자신의 인문주의자 서클에서 캄파넬라의 명성을 이미 접한 바 있었습니다. 어떻게 면회가 가능했는지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알 길이 없습니다. 간수에게 약간의 뇌물을 건넸는지, 그게 아니라면 어수선한 사회적 분위기기 묘하게 작용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확실한 것은 아다미가 1612년에 나폴리 감옥으로 가서 토마소 캄파넬라와 접견했다는 사실입니다.

 

 

 

사진은 캄파넬라의 책 "태양의 나라"입니다. 캄파넬라는 토비아스 아다미가 면회하러 왔을 때, 자신이 쓴 철학 시편들과 다른 글들을 그에게 몰래 건네줍니다. 원고 가운데에는 놀랍게도 캄파넬라의 명작 『태양의 나라』도 섞여 있었습니다. 아다미는 친구인 안드레애에게 캄파넬라의 시작품 그리고 다른 문헌을 보여주면서 출판에 관한 조언을 구했습니다. 이탈리아어로 기술된 캄파넬라의 철학적 옥중 시집은 1622년에 아다미에 의해서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간행하였습니다. 당시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30년 동안  (1618 - 1648) 전쟁을 치르던 혼란스러운 시기였는데, 책이 간행되었다는 사실은 무척 놀랍습니다.

 

 

 

 

사진은 캄파넬라가 태양의 나라에 나오는 평등 국가의 모습입니다. 캄파넬라는 만인의 하루 네 시간 노동을 설파하였으며, 사유재산 제도를 부정하였습니다. 또 한 그는 토마스 모어와는 달리 1부1처제의 가정 제도를 용인하지 않았습니다. 가정이 존재하면, 사람들은 사적인 이기주의적 탐욕에 빠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태양의 나라에서는 가정 대신에 여성 공동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모든 삶은 점성술에 의해서 영위됩니다. 이로써 캄파넬라는 사회적 평등 속의 찬란한 질서 유토피아를 구상한 셈입니다. 

 

다음을 클릭하면 토마스 모어, 토마소 캄파넬라 그리고 프랜시스 베이컨의 유토피아를 비교 분학하는 표가 나옵니다. 1 모어의 자유의 유토피아, 2. 캄파넬라의 질서의 유토피아, 3. 베이컨의 기술 유토피아가 그것입니다. 이는 매우 중요하니 반드시 숙지하도록 하세요.

 

 

 

(표) 모어, 캄파넬라, 베이컨.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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