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문학 이야기 47

크리스토프 하인

소설 쓰기는 그야말로 희열과 고통이라는 양극을 오가는 작업이지요. 자신의 예술적 창조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희열 그리고 매일 끈덕지게 글을 써야 한다는 손가락의 아픔 (도스토예프스키는 펜으로 글을 썼습니다.)을 생각해 보세요. 희열과 아픔 - 작가의 이러한 복잡한 감정은 제 자식을 잉태하는 여자의 기쁨과 괴로움과 비교될 수 있습니다. 창조의 작업은 -마치 출산이 그러하듯이- 그 과정에서 고통을 안겨주지요. 크리스토프 하인은 언젠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호세 오르데카 이 가세트José Ortega y Gasset는 아침에 일어나면 즉시 화장실로 향한다고 한다. 생리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곳으로 가는 게 아니다. 책상으로 가기가 너무너무 싫어서 그렇게 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책상에 앉으면 소설..

9 문학 이야기 2018.04.25

서로박: 짧은 만남과 오랜 이별, 첼란과 바흐만 (2)

첼란과 바흐만, 그들은 언제나 헤어져 있는, 그러나 항상 마음속으로 함께 지내는 친구이자, 연인이자, 동료이자 반려였다. 1958년에 두 사람은 우연히 독일의 부퍼탈에서 다시 만납니다. 이때 두 사람의 마음을 격렬하게 스치는 것은 아직 꺼지지 않은 사랑의 훈풍,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바흐만은 지난 6년 동안 마치 재능 있는 집시 여인처럼 살았습니다. 그동안 문학상도 여러 개 받았고, 여성 시인으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렸습니다. 첼란은 그동안 지젤과 결혼하여 가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내에게 많은 재산이 있었으므로, 물질적으로 그리고 예술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문턱에서 문턱으로』라는 시집으로 저명한 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부퍼탈에서 만난 뒤부터 첼란은 그미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합니다. 사..

9 문학 이야기 2018.04.16

서로박: 짧은 만남과 오랜 이별, 첼란과 바흐만 (1)

친애하는 J, 자고로 주위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불가능한 사랑은 당사자에게 극도의 고통을 가하곤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당사자의 인내심을 시험하게 하고, 주어진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게 하기도 합니다. 파울 첼란 (1920 – 1970)과 잉게보르크 바흐만 (1926 – 1973)역시 죽는 날까지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1947년 초에 상대방에 대해 애호의 감정을 품습니다. 한 사람은 27세의 젊은 사내였으며, 다른 한 사람은 21세의 처녀였습니다.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의 불꽃은 순간적으로 격렬하게 타올랐지만, 주위의 거친 바람 때문에 마냥 꺼지곤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두 사람 사이에는 깊은 역사적 아픔 내지 비극적 상처가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개인적 사랑은 어처구니없게도 깊은 역사적 상..

9 문학 이야기 2018.04.16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1777 - 1811)는 장 파울, 프리드리히 횔덜린과 함께 독일의 반고전주의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얼굴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천재의 눈은 영리함을 보여줍니다. 악동의 뺨 그리고 둥근 얼굴은 그가 얼마나 충동적인 착상에 사로잡혀 있는가? 하는 점을 보여줍니다. 열정과 격정을 그대로 표출하는 코 - 그의 얼굴은 자신의 악동의 극한적 특성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극단성과 충동성은 자신의 문학에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클라이스트의 집안은 폼메른 지방의 귀족으로서 수많은 장성, 학자, 외교관 등을 배출하였습니다. 이것은 클라이스트 집안의 문장 (Wappen, 紋章)입니다. 클라이스트는 가족의 풍습대로 군인의 길을 걸었습니다. 1799년 그는 군대의 교육에 싫증을 느끼고,..

9 문학 이야기 2018.03.31

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 (1877 - 1962)는 동양의 정서를 느끼게 해주는 작품을 많이 집필하였습니다. 그는 토마스만처럼 순수한 독일의 정신을 고취시킨 작가는 아니었지만, 후세에게 영혼의 안식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점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내적 고통을 문학을 통해서 스스로 치유하려고 했습니다. 헤세는 문학이 인간에게 얼마나 마음속 깊은 위안을 가져다주는가?를 증명해내었습니다. 사진은 헤세의 생가를 보여줍니다. 독일 뷔르템베르크의 도시 칼프에 위치하고 있는 헤세의 생가입니다. 헤르만 헤세는 학교 수업을 매우 힘들어 했습니다. 왜냐하면 학교는 학생들에게 지식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여성들은 약 100년 전부터 대학에 다닐 수 있었다. 이전에 여성들은 몇몇 예외적 사항을 제외하면 대학 문턱..

9 문학 이야기 2018.03.16

에리히 케스트너

한 인간이 자신의 이름, 직업 그리고 생활 환경을 완전히 벗어나서 다른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그 기분은 어떨까? 에리히 케스트너는 자신의 삶과 문학에서 이러한 역할 놀이를 즐겼습니다. 청년 문학을 논할 때 우리는 에리히 케스트너를 빠뜨릴 수 없습니다. 에리히 케스트너 (1899 - 1974)는 독일 작가로서 청소년 문학에 기여한 바 큽니다. 가령 "에밀과 탐정들"은 너무나 잘 알려진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장영은 교수에 의해서 번역되어 2000년에 한국어판으로 간행되었습니다. 케스트너는 소설 외에도 재미있는 풍자의 시를 많이 남겼습니다. 에리히 케스트너는 1899년 드레스덴에서 안장 제작자 내지 피혁 공장을 경영하는 아버지와 미용사로 일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일찍부터 어머니를 지극히 사..

9 문학 이야기 2018.03.09

후고 폰 호프만슈탈

인간의 내면과 실제로 드러나는 인간의 모습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갈망의 상과 실제의 상 사이에도 분명히 거대한 간극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지요. 헨릭 입센을 제외한다면 호프만슈탈만큼 유럽 문학에서 두 개의 분열된 세계로 인해 고뇌하거나 혼란을 겪는 인간형을 놀라울 정도로 적확하게 묘사한 작가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후고 폰 호프만슈탈 (1874 - 1929)을 신낭만주의의 작가로 편입시키곤 합니다. 오스트리아의 신낭만주의 극작가, 호프만슈탈은 몽환적인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극작품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빈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나, 나중에는 불문학으로 전공을 바꾸었습니다. 빈에 있는 호프만슈탈의 생가. 호프만슈탈은 유대인의 피가 섞인 가문의 외동아들..

9 문학 이야기 2017.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