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문학 이야기

게오르크 뷔히너

필자 (匹子) 2021. 6. 8. 06:30

조물주는 특이한 한 사람에게 모든 재능을 부여하고, 대신에 그의 목숨을 일찍 앗아갑니다. 게오르크 뷔히너가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불과 24년의 짤막한 삶을 살다가 갔지만, 그가 남긴 몇 편의 작품은 결고 망각될 수 없는 명작들로서 그가 죽은 지 200년이 지났는데도 독자들에게 회자되곤 합니다.

 

 

 

 

위의 사진은 게오르크 뷔히너의 생가입니다. 게오르크 뷔히너는 1813년 10월 17일 헤센 다름슈타트 근처의 곳델라우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에 독일 땅에서는 나폴레옹 전쟁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의사였으며, 가정에서 아이들을 직접 교육시키곤 하였습니다.게오르크 뷔히너의 동생은 다섯 명이었습니다. 이들 가운데 빌헬름 루드비히 (1816 - 1892)는 정치가, 루이제 (1821 - 1877)는 작가 내지 여성 운동가, 루드비히 (1824 - 1899)는 철학자, 알렉산더 (1817 - 1904)는 문학교수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뷔히너는 김나지움 시절에는 학교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대신에 그는 고대 문학 작품, 괴테, 셰익스피어 등을 탐독했으며 민중시와 민요를 즐겨 읽었습니다. 특히 자유분방한 프랑스 문학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게오르크 뷔히너는 헤센의 폭압 정치에 깊은 반감을 지니고 있었으며, 힘들게 살아가는 가난한 농민의 처지에  깊은 동정심을 느꼈습니다. 김나지움 시절에 그는 자주 글을 써서 선생님을 놀라게 했는데, 그 가운데에는 "카토 폰 우티카", "자살에 관하여" 등이 있습니다. 

 

 

 

독일 지역은 수많은 공국들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독일의 백성들은 이중적으로 고통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그 하나는 군 복무의 의무였습니다. 농사를 지어도 끼니를 마련하기 어려운 판국에 남자들은 징용을 당해야 했습니다. 나폴레옹 군대와 전쟁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군에 끌려간 사람들 가운데 집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수는 무척 적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과도한 세금이었습니다. 권력자가 백성의 재산을 세금으로 착취하는 것은 가렴주구라고 명명됩니다. 가난한 농부 소작인들은 군주들의 가렴주구의 횡포에 극한의 고통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뷔히너는 이들의 가난과 삶의 고통을 대하면서 깊은 동정심을 느꼈으며, 동시에 군주에 대한 분노를 힘들게 마음속으로 삭혀야 했습니다.

 

 

 

 

 

바이디히의 초상화입니다. 바이디히는 게오르크 뷔히너의 "헤센 급전"을 교정하여, 세상에 공개한 사람입니다. 이 일 때문에 그는 직장을 잃고, 힘든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는 1834년 9월 7일 오버글렌에서 다음과 같이 설교하였습니다. 기독교는 가난한 자를 위해 싸워야 하며, 권력자의 불법과 위선에 저항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831년은 그 자체 놀라운 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가 프랑스 망명을 선택한 해였으며, 뷔히너가 슈트라스부르 대학교에 유학한 해였으니까요. 게오르크 뷔히너는 이곳에서 의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슈트라스부르는 오늘날 프랑스 령이지만, 당시에는 독일의 영역이었습니다. 괴테 역시 이곳에서 법학을 공부하며, 자유롭고, 진취적인 분위기를 만끽한 바 있습니다.

 

 

 

슈트라스부르에는 라인강과 지류가 만나 도시 전역을 감싸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강을 끼고 멋진 건물들이 즐비합니다. 게오르크 뷔히너는 이곳에서 약혼녀 빌헬르미네 폰 예글레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뷔히너는 이곳에서 2년 이상을 머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헤센 공국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2년 이상 외국에서 공부할 수 없도록 법을 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뷔히너는 1833년에 기센 대학교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진은 빌헬르미네 폰 예글레의 초상화입니다. 게오르크 뷔히너는 1833년 헤센으로 돌아와서 재야 세력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습니다. 이들 가운데에는 목사 루드비히 바이디히 (1791 - 1837)가 있었습니다. 게오르크 뷔히너는 "헤센 급사"이라는 글을 써서 바이디히에게 건내줍니다.  바이디히는 이 글을 팸플릿으로 세상에 공개합니다. 뷔히너는 이 글에서 헤센의 국회의원 및 권력자들이 얼마나 악랄하게 인민을 착취하는가? 하는 내용이 적나라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왕궁에게 전쟁을, 초가에게 평화를 Krieg den Palästen, Friede den Hütten!"이라는 뷔히너의 유명한 문장에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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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센 공국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헤센급사를 집필한 자를 체포하려고 했습니다. 바이디히와 그의 동료는 체포되었으나, 뷔히너는 이 시기에 어딘가에 칩거하며 독서로 소일합니다. 그러나 헤센 당국은 체제파괴자 게오르크 뷔히너를 체포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때 뷔히너는 5주 동안에 "당통의 죽음"이라는 극작품을 집필합니다. 이는  오로지 도주를 위한 여비를 마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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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스위스의 취리히에 있는 취리히 대학의 건물입니다. 뷔히너는 잠시 슈트라스부르에 머물다가, 이곳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1835년 여름 뷔히너는 슈트라스부르에서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독일어로 번역하고, 중편 "렌츠"를 탈고하게 됩니다. "레옹세와 레나"는 1836년 6월에 완성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뷔히너는 창작 못지 않게 철학과 자연과학 연구에 매진하였습니다. 1836년 "돌잉어의 신경조직에 관하여"로 스위스 취리히 대학 박사학위 논문으로 채택되었으며, 동 대학에서 강의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안타깝게도 티푸스에 걸려 1837년 3월에 유명을 달리하였습니다.

 

 

 

뷔히너는 24세의 삶을 사는 동안 평생 불과 네 편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오늘날 한결같이 명작으로 손꼽힙니다. 그가 더 살았더라면, 훌륭한 명작을 더 많이 남겼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미인박명이라 신은 아름다운 사람을 일찍 자신의 품으로 데리고 갑니다.

 

 

 

작품 장르 연도 내용
헤센급사 팸플릿 1834 헤센주의 사회 비판.
Krieg den Palästen, Friede den Hüttem
당통의 죽음 극작품 1835 프랑스 혁명을 배경. 당통을 다룸.
숙명론의 세계관
레옹세와 레나 극작품 1836 피피 공주와 포포 왕자. 시대 비판.
보이체크 극작품 1837 하층민. 극도의 가난 속에서 살던 보이체크 피해망상으로 바람난 애인을 살해함.
렌츠 단편 1835 무명 작가, 렌츠의 심리적 이상 증세를 다룬 소설


 

 

 

 

 

 

당통의 죽음의 한 장면입니다. 뷔히너는 프랑스 혁명과 이와 관련되는 자유, 열광, 숙명적 비극 등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작가는 주인공 당통의 영웅적 모습 대신에, 인간적 약점과 고뇌 그리고 역사의 거센 힘 앞에 무기력하게 비극을 맞이하는 반-영웅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위의 장면은 주인공 보이체크가 애인 마리를 칼로 찌르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가는 가난하고 힘이 없어서 애인, 마리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주인공 보이체크의 삶의 정황 그리고 그의 불안한 심리로 인한 환청 Halluzination에서 비롯한 고통을 자연과학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환청은 어째서 발생하는 것일까요? 이는 당사자의 정신이 분열되어 있기 때문에 출현하는 것으로서 "착각에 의한 소리" 듣기로 이해되는 것입니다. 분열증 환자는 환청 뿐 아니라, 환시, 환미각, 환 촉각, 환 후각 등의 증세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환청이 정신분열의 일종으로 드러나는 증상이라는 사실은 20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학문적으로 정당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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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체크는 (먹고 살아야 하는 데 있어서의) 극도의 스트레스 그리고 (사랑하는 마리의 배신으로 인한) 극도의 심리적 고통 그리고 완두콩만 먹고 살아야 하는 영양 부족 등으로 인하여 분열증 증세를 드러냅니다. 외부에서 들리는 소리가 그를 괴롭히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마리를 칼로 찔러 죽이고 맙니다. 

 

 

 

 

 

 

 

위의 사진은 게오르크 뷔히너의 문학상의 메달을 보여줍니다. 게오르크 뷔히너 문학상은 독일에서 가장 명예로운 문학상으로서 매년 한 사람의 작가에게 수여됩니다. 상은 물론 제 3제국의 시기 (1933 - 1945)는 배제되었으나, 1923년부터 현재까지 수여되고 있습니다. 상금은 5만 유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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