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문학 이야기

라이너 마리아 릴케

필자 (匹子) 2021. 9. 8. 09:35

Macho = 강인한 남자

Softi = 부드러운 남자

릴케는 부드러운 남자의 전형이었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1875 - 1926)의 사진. Softi 의 전형. (der Macho, der Softi)인 릴케는 우리나라에 잘 소개된 시인입니다. 어머니는 릴케의 누나가 일찍 죽은 뒤에 아들에게 집착하였습니다. 릴케는 처음에는 "René (다시 태어난 자)"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어머니는 르네에게 여자아이의 옷을 입혀 키웠습니다. 그러나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과도한 집착은 릴케에게 엄청난 부담감으로 작용했습니다. 이로 인해서 자립심도, 추진력도 없는 "아름다운 남자"의 습성이 그의 몸에 배이게 됩니다. "말테의 수기"는 우리나라 작가들에게 가장 커다란 감명을 준 소설로 손꼽히는 작품입니다.

 

 

 

 

 

이곳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결혼하여 처음으로 아내와 함께 살던 보릅스베데라는 지역입니다. 여기에는 예술인 마을이 있습니다. 아내는 화가였는데, 딸을 출산합니다. 그 전에 릴케는 자신보다도 14세 나이 많은 여성 루 살로메 그리고 그미의 남편 안드레아스와 함께 러시아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러시아는 릴케에게 놀라운 범신론적 감정을 전해주었습니다. 특히 경건한 농부의 삶 그리고 러시아의 전통적 분위기는 릴케의 첫 시집 "시도집 Stundenbuch"에 반영됩니다.

 

 

 

 

위의 그림은 릴케가 1900년에  화가 클라라 베스트호프와 결혼하여 살던 예술인 마을입니다. 지금은 휴양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보릅스베데 예술인 마을은 브레멘에서 남쪽 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클라라 베스트호프와 릴케. 릴케는 언제나 강인한 모습을 지닌 여성을 임으로 생각했습니다. 천국의 남성상 - 그것은 릴케가 추구했던 아름다운 임의 형상이었습니다. 사진은 누가 남자이며, 누가 여자인지 우리에게 정확히 알려주지 않습니다. 수염만 기르지 않았다면, 아마도 릴케가 여성으로 보일 것입니다. 외모로 남자 여자를 구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위의 사진은 북독의 보릅스베데의 어느 건축물입니다. 목골 가옥의 모습이 전통적 건축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지금도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2016년을 기점으로 9200명이 이곳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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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릅스베데에 있는 아름다운 별장. 이것은 보릅스베데의 명물로 알려진 "케제글로케Kaese- Glocke"라는 집입니다. "치즈 종(鐘)"이라고 번역됩니다. 주위에는 소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1914년 건축가 브루노 타우트는 이 건물을 축조했습니다. 이곳에는 지하실이 있는데, 지하를 통해서 아래로 빠져나올 수 있는 비밀통로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루 살로메 (Lou Salome, 1861 - 1937)의 사진입니다. 아마도 불꽃의 여자라는 말을 들었던 30대에 찍은 사진입니다.살로메가 20대 중반이었을 때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1844 - 1900)는 그에게 청혼하였습니다. 니체는 살로메보다 17살이나 나이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살로메는 니체의 청혼을 거절하고, 어느 평범한 남성인 안드레아스와 결혼하였습니다. 그후 니체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살다가, 1900년 매독으로 사망하였습니다. 30대 중엽의 나이에 그미는 14세 나이 어린 릴케와 사랑에 빠졌고, 말년에는 빈으로 가서, 지그문트 프로이트 (1856 - 1939)와의 염문으로 힘든 삶을 보냈습니다. 프로이트는 살로메를 깊이 사랑했으나, 그미와 결혼하지 못하고 애꿎은 담배만 피우다가, 결국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당시에 프로이트는 리비도 이론을 철회하고 타나토스 충동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살로메는 19세기의 명망 높은 세 명의 남자를 연인으로 "섭렵한" (맞이한 ^^)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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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언급했듯이 릴케는 어릴 때 여자아이로 키워졌습니다. 마조히스트 릴케는 겉으로는 남자였지만, 뼈속까지 속속들이 여성이었습니다. 이에 비하면 루 살로메는 겉으로는 여성이었지만, 마음속에는 강인한 남성성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릴케와 살로메의 관계에서 놀라운 사항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살로메는 릴케에게는 자신의 마돈나이자 동시에 자신과 영혼을 교감하는 타자로 각인되었습니다.

 


이것은 릴케의 시집 "시도집Das Stunden-Buch"의 표지입니다. (시집은 프락투르 (Fraktur) 서체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프락투르 서체는 16세기 중엽부터 1941년까지 독일 그리고 노르웨이에서 사용되던 서체입니다.) 릴케는 이 시집에서 범신론적 입장에서 주님을 문학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그의 초기시는 경건한 범신론적 세계관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시작품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주여때가 왔습니다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들판에 바람을 풀어주십시오.  마지막 과일이 익도록 명령하십시오,남쪽의 더욱 따뜻한 태양을 이틀 동안 선사하시며,완전히 영글도록 재촉하시며무거운포도 속에 마지막 달콤함을 지니게 하십시오.  이제 집 없는 자는 더 이상 집을 짓지 않습니다.고독하게 남은 자는 오래 머물 것입니다.그리고 깨어나독서하고 긴 편지를 쓰며,낙엽이 재촉하면 그는 가로수 길을이리저리 불안한 마음으로 방황할 테지요." (릴케의 가을날)

 


강도는 "돈 줄래, 목숨 바칠래?"하고 묻습니다. 나이든 남자는 어떻게 대답하는가요? "당신이 재미있는 질문을 제기한 데 대해 감사해요."하고 답하고 있습니다. 돈이냐, 삶이냐? 이건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릴케는 로댕의 비서로 잠시 일한 것 외에는 평생 한 번도 돈을 벌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먹고 살았을까요? 돈 많은 여인들이 그를 후원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시작품 "가을날"을 현실적 감각에 의해서 새롭게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진 속의 인물은 프랑스의 조각가, 아귀스트 로댕 (1847 - 1917)입니다. 로댕은 자신의 예술 작품을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음으로 양으로 활용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카미유 클로델 Camille Claudel (1864 - 1943)이라는 여성입니다. 1883년부터 1893년까지 그는 카미유 클로델을 제자로 맞이하여 10년동안 자신의 연인으로 데리고 놀았다고 합니다. 사랑과 노동은 동시에 행해질 수 없는 것들일까요? 결국 카미유는 배신감으로 치를 떨면서 로댕을 떠나게 됩니다. 로댕이 결혼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1917년 76세의 나이에 죽기 1개월 전에 로스 뵈레라는 여성과 혼인한 까닭은 오로지 그미에게 오로지 유산을 물려주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로스 뵈레 역시 오랫동안 로댕의 곁에서 봉사하던 여인이었습니다. 릴케는 1904년부터 1905년 사이에 로댕의 비서로 일했습니다. 

 

 

 로댕의 작품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제목은 키스로서 로댕의 작품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정평이 난 것입니다. 두 남녀의 사랑하는 모습은 무척 자연스럽고 아름답습니다. 두 사람의 팔을 눈여겨보세요. 여자는 남자의 목을 껴안고 있으며, 남자는 여자의 하반신을 살며시 안고 있습니다. 조각상 속의 여성은 남성에 대해 강한 적극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아름답습니다. 이것은 예술 누드의 전형적인 작품입니다.



 

이것은 릴케의 장편소설 "말테의 수기Die Aufzeichnung des Malte Raurige Brigge"의 표지입니다. 이 작품은 1904년 로마에서 착수하여 1909년에 완성되었습니다. 릴케의 유일한 장편 소설입니다. "사람들은 살아가기 위해서 이곳에 모여드는 모양이다. 그러나 내 눈에는 이게 죽기 위한 노력으로 비칠 뿐이다."라고 시작되는 소설은 20세기 초 대도시, 파리의 익명존재로 살아가는 노동자 계급의 일상적 분위기를 냉정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릴케는 이 작품을 왼성한 다음에 오랫동안 작품을 집필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많은 노력을 작품 하나에 담았기 때문입니다.

 

 

말테의 수기의 또 다른 표지입니다. 주인공은 말테 라우리게 브리게입니다. 그는 덴마크 출신의 귀족이지만, 파리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면서 창작에 임하는 사람입니다. 작품은 파리의 세기말의 분위기, 골목에서 살아가는 익명 존재들, 과거의 체험 등을 일기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줄거리가 없습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일상 체험과 자신의 의식에 떠오르는 상념들을 중첩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독일의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가 그린 코뿔소 Rhinocerus입니다. 당시에 뒤러는 코뿔소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어떤 그림에 착안하여 이러한 동판화를 제작하였습니다. 말테의 수기에는 아베로네라는 처녀가 등장하는데, 이 여인은 꽃 한 송이성난 코뿔소를 길들이는 고상한  여인으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코뿔소는 심리학자 라캉의 방식으로 설명하자면, 남근의 기표, 즉 팔루스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여성에 의해 움직이는 마조히즘적 남성을 가리킬 수 있으며, 부치 (남성적 여성)에 의해 이끌리는 (여성적 여성)일 수 있습니다. 이로써 코뿔소와 꽃을 든 여인은 생명체의 "신비적 합일 unio mystica"에 관한 상징적 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진은 두이노 성을 보여줍니다. 말년에 (1910년에서 1919년 사이에) 릴케는 북동부 이탈리아에 있는 두이노 성에 머물면서 연작시 "두이노 비가"를 집필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시인은 말년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을 집필하는데, 두이노의 비가 역시 난해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나는 차라리 릴케의 연작시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를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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