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북구문헌 26

서로박: 입센의 유령 (1)

(1) 입센, 병든 사회의 신랄한 비판가: 친애하는 K, 다시 헨릭 입센 (Henrik Ibsen, 1828 - 1906)의 작품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병든 유럽 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묘파한 극작가로서 우리는 입센을 들 수 있습니다. 또한 가부장적 남성 사회를 “인형의 집”으로 규정하고, 이에 저항하는 여성상, 노라를 창조한 자는 입센입니다. 이성 그리고 감성의 극렬한 균열로 인하여 세계 곳곳을 방황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페르 귄트를 묘사한 자 역시 입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음의 사항을 잘 모릅니다. 즉 강제적 성윤리에 바탕을 둔 시민주의 가정의 질서를 철저히 고수하다가 몰락을 맞이하는 여성상을 창조한 작가 역시 입센이라는 사항 말입니다. 이를테면 극작품 “유령 (Gengange..

39 북구문헌 2021.08.10

헨릭 입센, 방랑의 작가

헨릭 입센 (1828 - 1906)은 노르웨이에서 가장 부유하다고 소문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텔레마크 지역의 상인이었으며, 그의 아래에는 세 명의 남동생과 한 명의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입센이 8세가 되었을 때 아버지의 사업이 파산 위기에 처해졌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크리스티아니아 근교의 그림스다드에 있는 농장으로 이사했습니다. 입센은 내향적이고 우울증에 사로잡혔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사업 실패로 인하여 술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1844년 입센은 16세의 나이에 약사 라이만의 집에서 약사 업무를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중에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잠시 일하기 시작한 셈이었습니다. 이때 그는 틈틈이 셰익스피어 등의 문학 작품을 탐독하였습니다. 어느 날 그는 클라라라는 이름의 처녀를 사..

39 북구문헌 2021.05.17

서로박: 입센의 들오리 (2)

(6) 들오리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동물들 가운데에는 이제 더 이상 날지 못하는 들오리 한 마리도 섞여 있었습니다. 들오리는 헤드비히의 소유였지요. 아버지를 마치 신처럼 모시는 터라, 아버지가 할아버지와 함께 사냥을 떠날 때, 들오리를 잠깐 빌려주곤 하였습니다. 헤드비히의 성스러운 세계에서는 들오리는 한 마리의 거친 날짐승에 불과했습니다. 이에 비하면 에크달은 들오리의 부자연스러운 생활방식을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그것과 비교하곤 했지요. “놈은 뚱뚱해졌어. 이제 과거에 새로서 느꼈던 거칠고 황량한 삶을 잊어버렸어. 그게 문제란 말이야.” 이 모든 것은 주인공, 그레거스의 눈에 투영됩니다. 처마에서 살아가는 환상적인 삶, 바닷가에서 피 흘리도록 자신을 물어뜯는 들오리의 이야기 등이 그것이지요. 들오리는 사..

39 북구문헌 2021.04.10

서로박: 입센의 들오리 (1)

(1) 병든 사회의 공허함: 친애하는 Y, 다시금 헨릭 입센 (Henrik Ibsen, 1828 - 1906)의 작품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입센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은 매우 안타깝습니다. 입센이 살았던 시대는 험난하기만 했습니다. 19세기 말에는 자본주의적 이윤추구가 극에 달해 있었으며, 이러한 현상은 유럽 전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가령 사람들은 더 이상 비더마이어의 문화적 풍토에 빠져 있지 않았습니다. 유럽 어디든 간에 태평양, 동양 등을 동경하는 이국적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고, 이는 실내 장식 영역에서도 그대로 반영된 바 있습니다. 입센은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후기 시민사회의 병리현상에 실망하고 이국적인 ..

39 북구문헌 2021.04.10

서로박: 에스페달의 자연을 거슬러

토마스 에스페달: 자연을 거슬러, 손화수 역, 열린책들 2014. 책을 뒤지다가 우리는 가끔 크게 목청 높여 소리 지르지 않지만, 조용히 우리의 마음속을 강하게 파고드는 소설 작품을 발견하곤 합니다. 이러한 유형의 작품은 천박하지도 그리고 격정적이지도 않습니다. 마치 사원의 합창소리를 연상시킬 정도로 우리에게 조용히 그리고 은밀하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양의 어휘로 독자를 사로잡거나, 거친 바다의 매몰 찬 파도의 거품 대신에 독자의 마음을 냉정하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꾸밈없이 모든 것을 직접적으로 거론하는 소설이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소설가, 토마스 에스페달의 얇은 소설, 『자연을 거슬러』는 이에 해당합니다. 48세의 사내는 12월 31일에 우연히 젊은 여성과 만나 상대방에 대해 호감을 가집니다...

39 북구문헌 2021.01.02

서로박: 입센의 존 가브리엘 보크만

헨릭 입센 (Henrik Ibsen, 1828 - 1906)의 「존 가브리엘 보크만」은 4막으로 이루어진 극작품인데 1897년 1월 10일 헬싱키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입센이 집필한 말년의 작품으로서, 거짓과 위기의식으로 가득 찬 세기 말의 전형적인 시민주의 인간형을 예리하게 해부하고 있습니다. 나는 입센의 전반적인 문학적 경향을 다른 글에서 언급한 바 있으므로, 오늘은 바로 작품에 관해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무대의 배경은 대도시 크리스티아니아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농장입니다. 그것은 렌트하임의 가문에 속하는 것인데, 왕년에 은행가로 일하던 존 가브리엘 보크만과 그의 아내, 군힐트가 살고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두 사람은 대화 없이 고독하게 살아갑니다. 그들은 제각기 자청해서 ..

39 북구문헌 2020.10.09

서로박: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

노르웨이의 작가, 크누트 함순 (Knut Hamsun, 1859 - 1952)은 20세기의 기이한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모든 인습을 거부하는 저항자이자, 낭만주의자이다. 함순은 충동적 삶 그리고 인간의 개인적 창조력을 말살시키는 모든 장애물에 대해서 처절하게 저항한 작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함순은 방랑자 혹은 여행자 등에 대해 동정심을 느꼈다. 왜냐하면 방랑자 그리고 떠돌아다니는 사람은 인습적 세계가 얼마나 인간의 행복을 차단하고 있는가를 꿰뚫어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크누트 함순은 여러 곳을 방랑하였다. 나이 20이 되던 해에 그는 북 아메리카로 여행하며, 그곳에서 모든 직업을 전전하면서 살아간다. 1882년 오슬로로 되돌아온 함순은 폐결핵에 걸려 고생하였다. 그럼에도 그는 1886년 ..

39 북구문헌 2020.04.07

서로박: 입센의 페르 귄트 (4)

16. 비합리극의 원조인가? 앞에서 우리는 「페르 귄트」가 병든 시민 사회의 징후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언급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해석은 없을까요? 먼 훗날에 이르러 사람들은 작품을 또 다르게 해석하였습니다. 즉 작품 속에 반영된 미래 지향적 요소를 발견해낸 것입니다. 말하자면 입센의 작품은 상징주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등의 특성 뿐 아니라, 서사극의 요소 그리고 비합리극의 특성을 선취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극작품을 죽음에 대한 알레고리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제 5막 첫 부분에 “낯선 행인”이 등장하는데, 이는 인간의 죽음에 대한 보편적 알레고리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낯선 행인”은 악마를 가리킬 수 있고, 입센 자신을 지칭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

39 북구문헌 2019.11.04

서로박: 입센의 페르 귄트 (3)

11. 과부 아닌 과부로 살아가는 어머니, 아들에게 집착하다: 페르 귄트의 어머니 성격상으로 매우 불안정하고 변덕스러운 여성입니다. 남편 욘 귄트는 언제나 멀리 떨어져 있어서 과부 아닌 과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미는 남편으로부터 등한시 당하자, 오로지 아들에게 집착합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아들인 페르 귄트는 더욱더 혼란스러워하고 부담감을 느낍니다. 아제의 행동에는 일관성이 없고, 모순적인 특성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제는 돼지 같은 아들을 두었다고 투덜거리는가 하면, 아들에게 마구잡이의 욕설을 퍼붓습니다. “네 놈은 살인자의 아들이야.” 그미의 이러한 태도는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즉 아제는 아들이 더욱더 자신의 처지를 더욱더 잘 이해해주기를 바라며, 어머니의 ..

39 북구문헌 2019.11.04

서로박: 입센의 페르귄트 (2)

7. 제 4막, 페르 귄트의 방랑, 사악한 장사꾼으로 살아가는 주인공: 오랜 세월이 지나갑니다. 제 4막의 장면은 모로코 해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온갖 나라의 노예들이 매매되고 있습니다. 코통 선장, 바용 씨, 그리고 에버코프 씨 등 유럽의 각국 출신의 사람들이 노예 시장에서 물건을 흥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제각기 유럽의 나라를 대표하는 자들로서 제3세계의 사람들을 착취하고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에서 가장 악랄한 사업을 벌인 자가 바로 페르 귄트였습니다. 말하자면 페르 귄트는 인신매매를 통해서 거대한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세계 시민으로 살아가는 주인공은 돈의 힘을 빌어서, 동방의 모든 국가를 다스리는 황제가 되려 합니다. 페르 귄트의 자아는 환상이 요구하는 모든 갈망과 욕정 그리고 탐욕의..

39 북구문헌 2019.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