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막으로 이루어진 입센의 극작품, 『인형의 집』은 1879년 12월 21일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독일에서는 “노라”라는 제목으로 널리 일려졌지요. 이미 잘 알려졌듯이 여주인공, 노라의 삶은 당시에 잘 알려진 소설가, 라우라 킬러 (Laura Kieler, 1849 - 1932)의 불행한 결혼 생활과 거의 일치합니다. 그밖에 입센은 노르웨이 여류 작가, 카밀라 콜레트 (Camilla Collett, 1813 - 1895)이 주창한 여성 해방에 관한 논쟁서를 적극적으로 참조했다고 합니다. 성의 평등에 관한 요구사항은 1879년 무렵에 이탈리아에서 제기된 바 있는데, 스칸디나비아의 남성 중심의 문화 단체들은 이를 거절한 바 있었습니다.
3막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토르발트 헬머라고 불리는 변호사의 집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헬머는 대단한 야심가이며, 매우 철저한 남자였습니다. 그는 변호사 일을 그만 둔 뒤에도 열심히 일하여 재정적 기반을 잡았고, 주식을 취급하는 은행의 은행장이 되었습니다. 그의 부인, 노라는 변덕이 심하고, 약간 씀씀이가 헤픈 여성이었습니다. 결혼한 지 8년이 지났는데도 노라는 마치 종달새처럼 생활했습니다. 그미는 천진난만하고, 남편으로부터 사랑과 보살핌을 필요로 했지요. 그저 집안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인형에 불과했습니다. 노라는 몰래 과자를 훔치다 들키곤 했는데, 그때마다 거짓된 변명을 늘어놓곤 했습니다. 그래도 노라에게는 말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미는 크리스티네 린데라는 과부였는데, 가족을 위해서 마음에도 없는 남자와 결혼한 바 있었습니다. 노라는 친구와의 대화에서 겉으로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생활에 관해서 말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자신의 근심 없는 행복 그리고 깊은 절망감, 희망 그리고 두려움 등을 서서히 드러냅니다. 사실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결혼 직후에 헬머는 심하게 병이 들었습니다. 그는 남쪽 지역으로 내려가서 함께 요양해야 했는데, 병원비가 상당히 많이 책정되었습니다. 노라는 병원비를 갚기 위하여 크록슈타트라는 사람에게서 남편 몰래 돈을 빌렸습니다. 그미는 며칠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인을 도용하여, 차용 증서에 서명했습니다. 기한이 이미 지났는데도, 노라는 이 돈을 갚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채업자, 크록슈타트는 공교롭게도 헬머의 은행에서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헬머는 노라가 아버지의 사인을 도용했다는 혐의를 포착합니다. 헬머는 직원, 크록슈타트가 이에 연루되어 있다고 믿으며, 죄를 추궁합니다. 그는 직원의 혐의가 드러나면, 그를 해고하겠다고 위협을 가합니다. 크록슈타트의 마음은 몹시 다급해졌습니다. 그는 노라를 찾아가서 다음과 같이 당부합니다. 해고당하지 않도록 조처해주든가, 아니면 모든 사실을 백일하에 밝히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노라는 도저히 그의 해고를 막을 수 없습니다. 그의 해고를 막으려면, 자초지종을 남편에게 알려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남편의 자존심에 상처 입히는 셈이라는 것을 그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크록슈타트는 편지 한 통을 써서 헬머의 우편함에 넣어둡니다. 거기에는 노라의 공문서 위조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다른 한편 노라는 헬머의 철저한 태도에 대해 노심초사합니다. 돈 문제, 문서 위조의 혐의가 세상에 알려지면, 남편의 명예는 산산 조각날 게 분명했습니다. 고통과 번민으로 인하여 그미의 마음속에서 자살하고 싶은 충동이 솟아오릅니다. 노라는 행여나 어떤 “기적”이 일어나,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을까 하고 헛된 희망을 품기도 합니다. 차라리 어디론가 사라지면, 남편이 자신의 잘못을 용서하고, 모든 것을 감싸 안지 않을까 하고 상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적은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채업자의 편지를 읽은 헬머는 아내를 심하게 비난하며, 일언지하에 죄인으로 매도합니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수년간 죄인과 함께 살고, 죄인에게 자식 교육을 맡겼는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립니다. 말하자면 헬머의 입에서는 아내에 대한 어떠한 이해도, 아내에 대한 배려와 감사의 말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헬머의 뇌리에는 오로지 어떻게 하면 외부로부터의 비난을 피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헬머의 행동에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아내, 노라의 존재는 가사를 위한 도구 내지 자식을 키우는 보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 말입니다.
갈등이 고조된 순간에 사채업자의 두 번째 편지가 당도합니다. 거기에는 노라의 차용증서가 들어 있었습니다. (크록슈타트는 처음에는 샤일록과 같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사악한 사채업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돈을 갚지 못하는 은행장, 헬머를 사회에서 매장시키려고 마음먹고 있었지요. 그러나 크록슈타트는 모든 것을 없었던 일로 처리함으로써, 노라에게 관용을 베풉니다. 그를 사랑으로 설득한 사람은 다름 아니라 노라의 친구, 크리스티네 린데였습니다. 그미는 크록슈타트의 오래 전의 연인이었습니다. 크리스티네는 친구의 남편을 구제하기 위하여, 크록슈타트를 설득했던 것입니다.) 헬머가 차용증서를 확인하는 순간, 그의 입에서는 “살았어, 이제 안심이야.”하는 말이 터져나옵니다. 바로 이 순간 그는 비로소 노라에 대한 증오심을 철회하고, 절망에 사로잡힌 그미를 위로해주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노라는 갈등의 와중에서 남편의 이기심 내지 속물근성을 예리하게 직시합니다. 자고로 인간의 본성은 어려운 처지에서 백일하에 드러나는 법이지요. 노라는 불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남편의 모습에서 한편으로는 굶주린 사자의 냉혹함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배부른 사자의 관대함을 투시했던 것입니다. 남편이 지금까지 노라를 위해서 자신의 명예와 자존심을 꺾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 순간 노라는 자신의 행복이 그저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미는 헬머와 동등한 파트너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남은 것은 오로지 자신이 “인형의 집”에서 뛰쳐나와서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일밖에 없습니다. 헬머가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의무를 다하라고 말했을 때, 노라는 스스로 고유하게 살겠다고 대꾸합니다. 그미는 결국 남편에 대한 사랑을 접고, 가족의 품을 떠납니다.
이 극작품은 1880년 2월 6일에 플렌스부르크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이때 주연을 맡은 여배우, 헤드비히 니만-라베는 극작가에서 작품 수정을 강하게 요구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대목이 단 한 번 수정된 바 있습니다. 즉 노라는 자식들 때문에 인형의 집에 그냥 머뭅니다. 입센은 그 이후 단 한번도 작품 수정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오스트리아의 작가 옐리네크는 이 작품을 바탕으로 "노라가 집을 나간 뒤 무슨 일이 생겼는가?"라는 작품을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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