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북구문헌

서로박: 입센의 유령 (1)

필자 (匹子) 2021. 8. 10. 10:10

(1) 입센, 병든 사회의 신랄한 비판가: 친애하는 K, 다시 헨릭 입센 (Henrik Ibsen, 1828 - 1906)의 작품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병든 유럽 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묘파한 극작가로서 우리는 입센을 들 수 있습니다. 또한 가부장적 남성 사회를 “인형의 집”으로 규정하고, 이에 저항하는 여성상, 노라를 창조한 자는 입센입니다. 이성 그리고 감성의 극렬한 균열로 인하여 세계 곳곳을 방황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페르 귄트를 묘사한 자 역시 입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음의 사항을 잘 모릅니다. 즉 강제적 성윤리에 바탕을 둔 시민주의 가정의 질서를 철저히 고수하다가 몰락을 맞이하는 여성상을 창조한 작가 역시 입센이라는 사항 말입니다. 이를테면 극작품 “유령 (Gengangere)”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헬레네 알빙 (Helene Alving)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작품 “유령”은 1881년에 집필되었으며, 1886년에 독일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2) 더러운 빨래는 집에서 몰래 빨아야 한다?, 혹은 가정의 위선: 친애하는 K, 일단 강제적 성윤리에 순응하는 사람들의 특징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합시다. 이러한 유형의 소시민들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결함, 수치심, 범법 행위 등에 대한 은폐로 요약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프로이센의 속담 가운데에는 “더러운 빨래는 집에서 몰래 빨아야 한다.”는 게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럽고 수치스러운 일을 감추는 대신, 가급적이면 겉보기에 자랑스럽고, 멋진 일만 이웃들에게 알립니다. 이는 허영심과 관계되지요.

 

이를테면 시민주의 속물을 생각해 보세요. 그는 겉 다르고 속 다르게 처신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자랑스러운 이야기만을 늘어놓고, 듣기 싫은 수치를 절대 발설하지 않습니다. 마치 탈세하는 사장이 이중장부를 두고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만약 시민주의 속물이 일기를 쓴다면, 어처구니없게도 “이중 일기”를 작성할 게 분명할 테니까요. 가령 그는 겉보기에는 아내를 사랑한다고 거짓 공언하며, 실제로는 비밀리에 여러 술집 여자들과 교우합니다. 자신의 딸이 순결을 잃었을 때, 그는 비밀리에 딸을 데리고 산부인과로 향합니다. 딸의 찢겨진 심리 상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임신하지 않으면 된다고만 생각합니다. 그래, 시민주의 속물들은 그렇게 더러운 빨래를 비밀리에 세척해버립니다.

 

(3) 강제적 성윤리 -> 가족 이기주의 -> 마피아 -> 전체주의: 친애하는 K, 강제적 성윤리는 가족이라는 틀을 철저히 고수하는 데 이바지합니다. 이로써 사람들은 어떠한 어려움이 존재하더라도 가족이라는 틀은 파괴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시민 사회의 강제적 성윤리에 순응하는 그들은 관습, 도덕 그리고 법의 장애물을 멋지게 피해나가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거짓과 위선이지요.

 

소시민들은 개인의 사랑보다도 앞서는 게 가족의 안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가족 구성원들은 서로 사랑하지 않는데도 가족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참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내적 감정을 속이는 태도입니다. 나아가 그것은 마피아 조직을 방불케 하는 전체주의적 의식 구조를 잉태하게 됩니다. 국가 사회주의 그리고 기존 사회주의의 뿌리도 이러한 가족 심리학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가족이라는 집단 이기주의에는 언제나 진리의 쓴 맛이 담겨 있다.”는 카를 크라우스 (K. Krauss)의 음험한 말을 생각해 보십시오.

 

입센 연극 공연의 포스터. 입센은 자신의 창작 행위를 "자기 자신에 대한 법정의 심판"이라고 규정하였다.

 

(4) 고지식한 헬레네 알빙: 다시 입센의 작품으로 되돌아갑시다. 친애하는 K, 「유령」은 독립적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독자적인 작품은 아닙니다. 입센 역시 「인형의 집」과의 관련성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나는 인형의 집에 머무를 수 없었습니다. 노라 다음에 필연적으로 알빙 부인이 등장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알빙 부인은 시민주의 가정을 박차고 나간 노라와는 달리 의무감에 입각하여 철저히 가정을 고수하다가 끝내 비극을 초래합니다. 그미는 오로지 가정의 평화와 안녕을 위하여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다가, 파멸을 맞이하지요. 특히 놀라운 것은 극작가가 과거에 발생했던 사실을 현재화하는 기법을 도입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의 분석극적 구조와 연관되는 기법입니다.

 

(5) 돈 때문에 남자를 선택하는 여성이여, 불행하도다: 주인공 헬레네 알빙 부인은 남편이 죽은 뒤에 유치원을 설립하려고 합니다. 남편은 겉보기에는 명망 높은 상공회의소 의원이었으며, 가족들에게 제법 많은 재산을 유산으로 남겨 놓았습니다. 그미는 남편의 유산으로 유치원 건물을 축조하게 조처하였고, 조만간 축성식을 거행하려고 계획합니다. 이때 그미는 목사, 만더스와 축성식에 관해 대화를 나눕니다.

 

친애하는 K,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서 목사가 그미의 남자 친구였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납니다. 어린 시절 헬레네는 만더스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주위 사람들은 가난한 목사, 만더스와 결혼하느니, 차라리 부자 집 아들이며, 장래가 촉망되는 장교인 알빙과 결혼하는 게 낫다고 충동질합니다. 그리하여 헬레네는 자신의 뜻과 감정을 접고, 알빙을 남편으로 선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