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북구문헌

서로박: 베르히만의 '마법의 등불'

필자 (匹子) 2022. 9. 3. 11:53

 

 

친애하는 K, 스웨덴 출신의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잉그마르 베르히만 (Ingmar Bergman, 1918 - 2007)은 2007, 7월에 사망했습니다. 그의 공적은 자신의 탁월한 재능에 비해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물론 1997년 칸 영화제에서 20세기의 최대의 감독으로 선택되었는데, 이는 하나의 예외 사항에 해당합니다. 나는 그의 죽음을 기리는 의미에서 두 권으로 이루어진 그의 회고록 가운데 한 권을 언급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1987년 그리고 1990년에 간행된 책으로서,『마법의 등불』 그리고 『형상들』이라는 제목을 지니고 있습니다. 잉그마르 베르히만은 1982년에 「파니 그리고 알렉산더 (Fanny och Alexander)」라는 영화를 발표했는데, 감독의 자전적 체험은 영화 속에 그리고 본서에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오늘 살펴보게 될 자서전의 제 1권은 “마력의 등불 (Laterna magica)”라는 부제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유년의 체험으로 시작됩니다. 베르히만은 스웨덴의 웁살라에서 엄격한 루터 교회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령 그는 여름과 겨울의 기간을 할머니 집에서 보냈는데, 그곳에서 유희와 축제가 함께 자리하는 마력적인 분위기를 접합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마치 만화경 속의 찬란한 모습으로 그의 기억 속에 박히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엄격한 루터 종교를 신봉하는 가정에서는 한번도 접하지 못한 새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축제와 유희에 관한 장면은 영화, 「파니 그리고 알렉산더 (Fanny och Alexander)」에 생생하게 반영되어 있지요. 베르히만은 언젠가 자신의 영화 제작의 근원적 공간을 유년의 장소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만화경 속의 황홀한 상에 찬탄을 터뜨리기 - 이것은 영화에 몰입되어 예술적 오르가슴을 맛보는 일과 다를 바 없습니다.

 

 

 

 

 

 

Bildergebnis für bergman ingmar 

 

 

 

 

 

 잉그마르 베르히만 (1918 - 2007)

 

 

 

그러나 베르히만의 유년 시절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에 겪었던, 커다란 심리적 압박감을 서술합니다. 가정은 그에게는 어둠의 공간이었습니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계율을 강요했습니다. 어린 영혼은 어둠의 공간에서 심리적 고통으로 아파합니다. 이러한 고통은 사춘기의 시절에 더욱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주위에는 권력지향적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교사는 독재자처럼 엄격하게 처신했습니다. 형들은 자신의 고통을 동생에게 앙갚음함으로써 사디스트의 본색을 드러내었지요. 아버지는 툭하면 매질하였고, 어머니는 따뜻한 사랑을 베풀기는커녕 시간 나면 주인공을 훈계하였습니다. 자식들의 강한 의지는 반드시 꺾여야 했습니다. 부모는 이를 위해서 학교 시스템을 활용했습니다. 베르히만은 아버지의 체벌과 감금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신 그리고 모든 종교적 체제들은 그에게는 공포의 대상으로 작용했습니다. 부모는 아들의 학교 성적에만 관심을 쏟았습니다. 베르히만은 학우들에게 따돌림 당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를 위해서 비굴하게 구는 자신의 힘없는 모습이 혐오스럽기까지 하였습니다.

 

 

 

 

 

학교 체제는 베르히만에게 “철로 만든 코르셋”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는 학교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대학을 마친 뒤에 그의 앞에는 무대와 스튜디오가 있었습니다. 그는 가족과 학교로부터 영화계로 도피합니다. 그렇지만 도피처가 낙원은 아니었습니다. 자고로 어느 조직이든 간에 사악한 인간이 존재하기 마련이니까요. 영화계에서도 냉혹하고 이기적인 인간들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미래를 불안해하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심한 굴종을 강요하고, 이들을 금전적으로 이용하려 하였습니다. 주인공은 여러 번 자신에게 고통을 가하는 매니저를 바꾸어야 했습니다. 베르히만은 약 20 년 동안 한 번도 자신의 부모와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사악한 부모에 대한 효도는 가식에 불과하다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그의 영화가 세인의 관심사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는 서서히 조금씩 영화감독으로서의 명성을 쌓아갑니다.

 

 

 

 

 

 

회고록의 제목으로 사용된 '마법의 등불 Laterna magina'은 영사기를 가리킨다. 베르히만은 평생 영사기와 함께 살았다.

 

 

 

1976년에 국세청은 자신에게 세금포탈 혐의를 가했습니다. 이때 베르히만은 조국을 떠납니다. 아니, 스스로 조국을 저버렸다고 표현하는 게 나을 것입니다. 사실 가족, 학교, 사회 그리고 국가 등이 주인공에게 도움을 준 것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베르히만은 약 9년간 독일에서 체류하면서, 영화 사업에 몰두하였습니다. 그러나 베르히만은 자신의 조국 스웨덴과 화해하게 됩니다. 1985년에 다시 스웨덴으로 귀국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아버지와 화해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에게 심한 매질을 가한 아버지를 저버리는 게 자식으로서 바른 태도인가? 과연 부모가 떠나간 탕아를 용서할까? 하는 게 오랜 고민으로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베르히만의 영화에서 죄인의 용서에 관한 문제는 삶의 어떤 깊은 의미를 담은 질문으로 자주 나타나고 있습니다.

 

 

 

 

 

베르히만은 부모에 대해서는 단호하고도 확고하게 등을 돌렸습니다. 그는 이러한 태도를 스스로 옳다고 여겼으니까요. 그러나 아내 문제에서만큼은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 베르히만은 결혼 생활에서 여러 번 실패를 맛보았습니다. 회고록의 주인공은 쓰라림 마음으로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세 번 결혼하여, 슬하에 여섯 명의 자식을 두었습니다. 그가 밤낮으로 힘들게 영화에 몰두한 것도 이들에게 생활비를 대기 위함이었습니다. 회고록에서 현재의 베르히만은 과거의 베르히만, 즉 어느 낯선 남자를 비판적으로 고찰합니다. 남자는 오래 전에 사랑의 감정 없이 아내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쇠사슬 묶인 한 마리 수캐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자고로 묶여 있는 생명체는 이르든 늦든 간에 감금 상태에서 탈출을 시도하기 마련입니다. 남자는 사랑 없는 결혼의 질곡을 박차고 나온 뒤에, 언제나 새로운 여자와의 아름다운 로맨스를 꿈꿀 수밖에 없었습니다.

 

 

 

 

 

 

 

 

로맨스, 즉 불륜을 꿈꾸는 게 오로지 사랑 없는 결혼 생활 때문이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거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자고로 예술가는 무엇보다도 의무를 행하는 가장의 역할을 싫어합니다. 처음에 그는 고독을 원합니다. 고독 속에서 예술이 탄생할 수 있으니까요. (릴케를 생각해 보세요. 시인이 루 살로메와 헤어지고, 화가인 클라라 베스트호프를 만나, 아름다운 딸을 낳았으나, 그미를 떠나 혼자 살아갔습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명작을 탄생시키려는 욕구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술가도 인간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랑의 포근함과 가족의 안온함을 필요로 합니다. 베르히만은 자신의 예술 행위를 “카메라와 간음하는 에로틱한 수작업 (手作業)”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어쩌면 “카메라와 간음하는 에로틱한 수작업” 자체에 하자가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왜냐하면 영화 제작자는 규칙적인 생활을 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며칠 잠을 자지 않고 일할 때도 있으며, 집에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그래서 예술가 내지 연예인들의 결혼 생활은 자주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그리하여 아내와 남편을 잃은 본인들은 항상 이상적 여성 내지 이상적인 남성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영화 파니와 알렉산더의 한 장면

 

 

 

 

 

영화, 「파니 그리고 알렉산더 (Fanny och Alexander)」는 해피엔드로 끝나듯이, 베르히만 역시 나중에 삶의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마치 등장인물, 알렉산더가 악의 제국을 마침내 극복하고, 삶의 감각적 기쁨을 누리듯이, 베르히만 역시 그렇게 삶을 향유합니다. 그는 자신에게 감각적 기쁨을 주는 매개체가 “술” 그리고 “성관계를 통한 오르가슴”이라고 솔직히 털어놓습니다. 이에 반해 자신이 만든 대부분의 영화들은 그저 밥벌이를 위한, 하자를 지닌 작품들일 뿐이라고 토로합니다. 물론 그 역시 탁월한 예술적 수준을 지닌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합니다. 가령 스트린드베리 (Strindberg)의 『꿈의 유희』를 영화화하려고 의도하지만, 나이가 많아짐에 따라, 생각에 비해 몸이 따라오지 않음을 절감합니다. 7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베르히만은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며 작업에 몰두해 나갔습니다.

 

 

 

 

 

친애하는 K, 지금까지 우리는 베르히만의 회고록 가운데 제 1권 「마력의 등불 (Laterna magica)」을 살펴보았습니다. 회고록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사항은 무대에서 모범으로 채택된 사람들이 세심하게 묘사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가령 의사 헤란드는 중병에 걸린 베르히만을 찾아와서 다음과 같이 충고합니다. 즉 스스로 급박한 악령들과 대결하지 말고, 그들을 싸안으라는 게 헤란드의 충고였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인간의 마음을 다스림으로써 얻어질 수 있는 무엇인데, 베르히만은 죽음을 자신의 일부로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데 성공을 거둡니다. 그리하여 그는 남은 힘을 작품 창조에 쏟아 부을 수 있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지금도 당신은 영화 제작의 꿈을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겠지요? 부디 성공과 실패에 관한 베르히만의 회고록이 당신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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