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북구문헌

서로박: 입센의 유령 (2)

필자 (匹子) 2021. 8. 10. 10:17

(6) 주사위가 던져지면, 이대로 끝인가? 혹은 이혼은 불가능한가?: 결혼한 다음 헬레네 알빙은 남편을 알게 됩니다. 남편은 지독한 난봉꾼이었습니다. 가령 식모를 건드리는가 하면, 아내의 사촌 누이에게도 집적거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제야 비로소 주인공은 알빙과 결혼한 것을 후회합니다. 답답함을 떨칠 수 없어서 헬레네는 목사인 옛 애인을 찾아가 재결합을 호소합니다.

 

그러나 만더스는 사적인 감정 대신 목사로서의 의무감을 중시합니다. 그는 왕년에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을 남편에게 돌려보냅니다. 만더스는 이렇게 행동한 것을 평생 자랑스럽게 생각해 왔다고 나중에 털어놓습니다. 헬레네가 어리석게 행동했듯이, 만더스 역시 어리석게 사고하고 행동했습니다. 그는 “사랑하면, 뺏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실천에 옮기지 않은 숙맥에 불과했습니다.

 

(7) 겉으로는 남부끄럽지 않은 가정, 속으로 곪아터지는 가정: 몇 년 후 헬레네 알빙은 아들, 오스발드를 출산합니다. 이때부터 그미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집안일”에 헌신적으로 몰두합니다. 남편은 좋은 가문의 도움으로 상공회의소 의원직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항상 남편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하녀 요한네와 성 관계를 맺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몇 번의 혼외정사에 권태를 느끼겠지만, 남편은 유독 색을 밝히는 남자였습니다. 남편의 성 도락(性 道樂)은 때와 장소의 구분이 없었으니까요.

 

결국 요한네는 임신하게 되고, 몇 달 후 딸, 레기네를 출산합니다. 헬레네 알빙은 이 사실을 알고 처음에는 무척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미는 사태를 수습하는 게 최상이라고 생각하고 낙태의 조처를 생각해냅니다. 그러나 수술 받기에는 너무 때늦었습니다. 임신 7개월이었으니까요.

 

입센의 유령, 공연 가운데 한 장면

 

(8)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가정 지키기: 헬레네 알빙은 끝내 한 가지 묘안을 찾아냅니다. 그것은 하녀 요한네를 목수, 엥스트란트와 정략적으로 결혼시키는 일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알빙 가문의 도움으로 조촐한 결혼식을 올립니다. 나중에 헬레네는 레기네를 데리고 와서, 스스로 아기를 키웁니다. 미우나 고우나, 남편의 아기라는 게 주인공의 속마음이었습니다. 아들은 절대로 아버지의 불륜행각 그리고 레기네에 관한 비밀을 알지 말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헬레네는 아들을 멀리 떨어진 학교의 기숙사로 보냅니다. 주인공 헬레네 알빙은 평생 두 가지를 소망했습니다. 그 하나는 남편의 사회적 출세이며, 다른 하나는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존경심이었습니다. 설령 돈을 포기하는 일이 있더라도, 오스발드만큼은 아버지의 치부를 몰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9) 현재의 대화 속에 은근히 드러나는 과거의 비밀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극적 배경을 이룹니다. 그것은 등장인물의 대화를 통해서 독자 그리고 관객에게 전달됩니다. 이로써 극중인물들의 성격은 극명하게 부각되고, 집주인이었던 알빙을 둘러싼 과거사는 은근히 암시되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K, 작품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드디어 유치원 건물이 완공됩니다. 만더스 목사는 다시 알빙의 집에 옵니다. 오스발드는 파리에서 일시 귀국하여 목사를 만납니다. 대화를 통해서 그는 목사의 전근대적인 성도덕에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레기네 그리고 그미의 법적 아버지인 엥스트란트도 대화 도중에 등장합니다. 엥스트란트는 오래 전부터 알빙 집안에서 목수로 일하던 터였습니다. 가령 만더스는 제 1막에서 자신이 과거에 헬레네를 아내로 맞이하지 않은 것을 마침내 후회합니다.

 

(10) 여동생과의 근친상간: 갈등은 제 2막에서 발생합니다. 즉 오스발드는 레기네의 미모에 반했던 것입니다. 그는 레기네가 배다른 친동생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오스발드는 어느 날 저녁 레기네를 만나 육체적 사랑을 나눕니다. 말하자면 그는 배 다른 여동생을 애인으로 삼아 근친상간이라는 흉측한 짓을 저지른 셈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다른 지역에서 벌였던 온갖 연애 행각을 접고, 레기네와 함께 삶을 같이 보내겠다고 어머니에게 말합니다. 헬레네 알빙은 아들의 이러한 고백에 충격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그미는 감히 아버지의 비밀을 털어놓지 못합니다. 대신에 그미는 오스발드가 마치 성병과 같은 아버지의 끔찍한 병을 물려받았다고 토로합니다. 여기서 입센은 치명적인 도덕적 질병으로서 성병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10) 유령과 같은 뇌성마비 그리고 찬란한 햇빛: 제 3장에서 레기네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비밀을 알아차립니다. 즉 자신의 친아버지가 “알빙”이라는 사실, 자신이 오스발드의 배다른 동생이라는 사실 등이 바로 그 비밀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감히 오빠 되는 사람과 살을 섞고, 장래를 약속하다니...” 하고 생각하자, 놀라움과 수치심이 레기네의 마음을 천근만근 무겁게 했습니다. 극적 갈등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어느날 유치원 건물은 화염에 휩싸입니다. 누가 불을 질렀는지는 밝혀지지 않습니다. 불이 났지만 다행히 아무도 타죽지 않습니다. 대신에 오스발드는 뇌성마비의 발작을 일으킵니다. 그는 고통 속에서 안락사를 갈구합니다. 오로지 죽음만이 근친상간의 죄의식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어머니인 헬레네는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어야 할지 망설이며, 끔찍한 파국에 대해 몹시 괴로워합니다.

 

다른 한편 레기네는 만더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인 엥스트란트를 따라 도시로 떠납니다. 그곳에서 엥스트란트는 뱃사람의 여관을 설립한 바 있는데, 레기네는 그곳에서 일하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여관은 “알빙”으로 칭해집니다. 만더스는 엥스트란트를 여러 면에서 도와줍니다. 엥스트란트는 여관 건립의 이유로 “도덕적 의무”를 거론하지만, 실제로는 돈 벌기 위해서 목사 만더스를 이용합니다.

 

(11) 죄의 근원은? 무엇이 인간에게 끔찍한 유령으로 작용하는가?: 친애하는 K, 그렇다면 작품에서 “죄의 근원 (Hybrid)”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주인공 헬레네 알빙의 마음속에 있을까요? 글쎄요. 어쩌면 그미는 관습의 굴레에 의해서 불행하게 되는 피해자가 아닐까요? 내 생각으로는 헬레네에게 불행을 안겨준 사람으로서 목사, 만더스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겉으로는 관습, 도덕 등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비겁하고, 어리석으며, 자기변명만을 일삼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비극으로 몰아넣은 “유령”은 한마디로 “기만당한 인습”입니다. 주인공 헬레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주위의 온 나라에는 유령들이 살고 있는 게 분명해. 그들은 마치 바다의 모래처럼 수없이 많아.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빛을 두려워하고 있어.” 이를 고려할 때 마지막에 오스발드의 죽음과는 상반되는 햇빛이 등장인물들을 찬란하게 비치는 것은 과히 상징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