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 82

박설호: (8) 블로흐 용어 해제

(앞에서 계속됩니다.)  이론 – 실천 Theorie – Praxis [블로흐는 이론과 실천을 역사에 나타난 어떤 단절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여기서 언급하는 역사의 단절이란 마르크스 이전의 역사, 마르크스의 시대 그리고 마르크스 이후의 역사라는 세 가지 구분을 가리킨다. 이론과 실천에 관한 사고는 철학사에서 많은 변화를 거듭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관찰 능력 그리고 실천 능력을 서로 구분했다. 이에 비하면 중세 철학은 “명상적 삶vita contemplativa” 그리고 “행동하는 삶vita activa”을 서로 달리 해명하면서, 인간 삶의 목표는 세계가 아니라, 전지전능한 신에 의해서 정해진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이와 관련하여 블로흐는 르네상스 철학을 중요하게 고찰한다. 그 이유는 신시대의 철..

27 Bloch 저술 2024.07.15

박설호: (7) 블로흐 용어 해제

(앞에서 계속됩니다.) 아직 의식되지 않은 무엇 das Noch-Nicht-Bewußte,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무엇 das Noch-Nicht-Gewordene [오래전에 헤라클레이토스는 말했다. “기대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을 갈구하지 않는 자는 아무것도 쟁취하지 못한다. 갈망이 없으면, 기대하는 무엇이 감지되지 않게 되고 근접 불가능하게 만들 테니까 말이다.” (Heraklit Frag. B. 18). 마찬가지로 세계에는 아직 출현하지 않은 무엇이 득실거린다. 이것은 잠재적 특징을 지닌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무엇”인데, 세계에 아직 발현되지 않고 외부로 드러나지 않고 있는 무엇을 가리킨다.  라이프니츠는 “모든 진리는 경험에 의존한다.”라는 존 로크의 견해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세상에는 인간의 경..

27 Bloch 저술 2024.07.13

서로박: (3) 배를 짊어지고 높은 산을 넘으면서

(앞에서 계속됩니다.) 참으로 기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름 아니라 암행 감사였습니다. 대통령의 밀명으로 비밀리에 전국을 순회하면서 비리를 척결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비역 대령이었는데, 항상 두 명의 경호원과 함께 은밀히 돌아다니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암행 감사를 우연히 만나서, 나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고 합니다. 이때 암행 감사는 다음과 같이 대꾸했습니다. 그래요? 물론 재학생이 검정고시에 응시하는 것은 위법이오. 그렇지만 이미 자퇴 처리가 되어 있고, 당신 아들은 이미 예비고사까지 합격하지 않았나요? 검정고시의 규정은 엄정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은 옳지만, 이 제도는 어려운 학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니, 당신의 아들은 이번 기회에 구제되어야 하오. 아버지는 이때 가만히 그의 말을 경..

2a 나의 산문 2024.07.13

서로박: (2) 배를 짊어지고 높은 산을 넘으면서

(앞에서 계속됩니다.) 그해 12월은 얼마나 추웠던지요? 지금에야 편안하게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당시의 시간은 나에게는 마치 지옥에서의 삶인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한복을 만드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내 아래에는 두 명의 동생이 중학교 그리고 초등학교에 재학 중이었는데, 생활비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출소하여 다시 무슨 일이든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영어와 일본어에 능통한 그는 다시 상경하였습니다. 일본에서 전자 기기를 수입하여 대학에 납품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아버지는 우연히 C 대학교 의과대학의 교무처장을 알게 되었는데, 담소를 나누다가 내가 겪었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러자 교무과장은 사실 확인을 위하여 그해의 예비고사 합격자를 기술한 두툼한 책자를 뒤졌습니다..

2a 나의 산문 2024.07.13

서로박: (1) 배를 짊어지고 높은 산을 넘으면서

“희망의 특징은 불가능성의 가능성으로 요약된다.” (에른스트 블로흐) 친애하는 M, “배를 짊어지고 높은 산을 넘으면서 고향을 찾는다. 繋舟山頂覓郷人”. 이 구절은 노촌 이구영 선생의 한시 한 구절입니다. (심지연: 역사는 남북을 묻지 않는다, 소나무 2001). 이구영 선생님은 남북의 평화 통일의 과업을 “무거운 선박을 끌고 산을 오르는 힘든 여정”으로 표현하면서, 이를 자신의 고향 찾는 일로 비유했습니다. 이구영 선생님에 비하면 나의 청년 시절은 그저 작은 고난의 엄살로 여겨집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감히 글로 남기는 까닭은 절망에 사로잡힌 당신이 “삶의 의미는 버티는 데 있다.”라는 사실에 공감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미리 말씀드리건대 다음 이야기의 배경에 해당하는 시간과 장소는 임의로 바뀌었음..

2a 나의 산문 2024.07.13

박설호: (6) 블로흐 용어 해제

(앞에서 계속됩니다.) 소외 Entfremdung [소외는 블로흐에게는 인간학 그리고 사회 철학적인 관점에서 파악되는 부정적 개념이다. 이는 인간의 처지가 자신으로부터, 타자로부터 그리고 자연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을 뜻한다. 소외와 반대되는 개념은 정체성Identität이다. 정체성은 존재 그리고 본질의 합일이며, 주체와 객체의 “얼굴 교환” (Bloch, TE: 45)이라는 성취된 순간에서 형성된다. 그렇게 되면 개별적 자아는 상호 아무런 손해 입지 않은 채 “우리Wir”로 변하게 된다. 소외는 자아가 폐쇄되고 분열된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소외의 상태는 자기, 권력 그리고 객관의 세계가 동등한 가치를 상실한 상태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무언가 결핍된 사회 내지는 계급적 갈등이 드러난 세상에서 서..

27 Bloch 저술 2024.07.12

박설호: (5) 블로흐 용어 해제

(앞에서 계속됩니다.)  비-동시성의 동시성 Gleichzeitigkeit der Ungleichzeitigkeit [우리는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데도 우리의 세계관 그리고 정치적 아비투스가 서로 다른 경우를 자주 체험한다. 말하자면 이질적인 의식 구조 내지는 서로 다른 세계관은 지금 여기에 동시적으로 자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다. 비-동시성은 역사의 불연속성으로 나타나는데, 이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것은 블로흐에 의하면 독일 낭만주의다. 낭만주의에서는 시대를 형성하는 리듬 (반동적 복고주의 + 진취적 사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Bloch, GdU1: 311).  가령 블로흐는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한 1933년 독일에서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는 특징이 자리한다고 구명하..

27 Bloch 저술 2024.07.12

귄터 아이히: 꿈 IV

거리에는 이정표들이 있다,쉽게 인식할 수 있는 여러 강줄기높은 점 가장자리에는 전망 기구들호수들을 푸르게 그려놓은 여러 지도숲들은 초록으로.- 세상에서 길 찾기는 쉬운 편이다. 그러나 내 곁을 지나가는 그대여, 그대의마음속 풍경은 어찌 그리 감추어져 있는가!빽빽한 숲, 감추어진 심연에 대한두려움이 이따금 엄습한다, 안개 속에서 더듬거리며.난 알아, 누가 네 마음속을 꿰뚫어보는 걸 원치 않는다는 걸.그대 말은 메아리 쳐서 우릴 혼란스럽게 한다는 걸.- 목표를 지니지 않은 도로,출구 없는 어느 영역, 몰락한 이정표. 해마다 새로운 사실들이 무언가를 감추고,어느 공터는, 사랑의 흥미로운 눈에는 너무 많이 자라나,점점 빽빽해지는 잎에 의해 고독으로 덮여 있다. Träume (IV) Es gibt Wegweise..

21 독일시 2024.07.11

박설호: (4) 블로흐 용어 해제

(앞에서 계속됩니다.) 물질 Materie (블로흐는 물질을 다음과 같이 정의 내리고 있다. “물질은 유형일 뿐 아니라, 유토피아의 실체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갈구하는 고유한 실체를 가리킵니다. 수많은 것들 속에서는 실체가 변화된 형체 내지는 조직 형태들이 풀어 헤쳐져 있습니다. 이러한 실체는 산출되는 자연, 산출하는 자연으로서 구원의 실험실 속에 완전한 내용으로 화덕 위에 놓여 있습니다. 최종적 물질 – 그것은 실제 현실로 나타나는 세계의 토대입니다.” (Bloch, TE: 234). 이 점을 고려한다면 물질은 유기질과 무기질에 해당하는 삼라만상을 가리킬 뿐 아니라, 인간의 의식 그리고 인간이 역사와 문화 등을 모조리 포함하는 카테고리로 이해된다. 여기서 사물과 의식을 이원론으로 구분하는 데카르트의 이..

27 Bloch 저술 2024.07.11

볼프 비어만: Wann ist denn endlich Frieden

https://www.youtube.com/watch?v=wRACRPI4zMA   언제 평화가 도래하는가?볼프 비어만 (박설호 역) 언제 평화가 도래하는가?이러한 오류의 시대에거대한 무기 제련 작업은엄청난 고통을 주지  대지는 피를 흘리고 인민은 눈물 흘리며 아이들은 굶주리고 거대한 죽음이 위협하지 그건 쇠사슬이 아니고 그건 폭탄이 아니라 그건 바로 인간이야 인간이 인간을 위협해 세상은 그렇게 찢기고근본적으로 그렇게 작아우리는 아마 죽어야 할 거야그럼 아마 평화가 있을 테니 대지는 피를 흘리고 인민은 눈물 흘리며 아이들은 굶주리고 거대한 죽음이 위협하지 그건 쇠사슬이 아니고 그건 폭탄이 아니라 그건 바로 인간이야 인간이 인간을 위협해  Wann ist denn endlich Frieden Wann 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