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3 4

박설호: (7) 블로흐 용어 해제

(앞에서 계속됩니다.) 아직 의식되지 않은 무엇 das Noch-Nicht-Bewußte,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무엇 das Noch-Nicht-Gewordene [오래전에 헤라클레이토스는 말했다. “기대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을 갈구하지 않는 자는 아무것도 쟁취하지 못한다. 갈망이 없으면, 기대하는 무엇이 감지되지 않게 되고 근접 불가능하게 만들 테니까 말이다.” (Heraklit Frag. B. 18). 마찬가지로 세계에는 아직 출현하지 않은 무엇이 득실거린다. 이것은 잠재적 특징을 지닌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무엇”인데, 세계에 아직 발현되지 않고 외부로 드러나지 않고 있는 무엇을 가리킨다.  라이프니츠는 “모든 진리는 경험에 의존한다.”라는 존 로크의 견해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세상에는 인간의 경..

27 Bloch 저술 2024.07.13

서로박: (3) 배를 짊어지고 높은 산을 넘으면서

(앞에서 계속됩니다.) 참으로 기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름 아니라 암행 감사였습니다. 대통령의 밀명으로 비밀리에 전국을 순회하면서 비리를 척결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비역 대령이었는데, 항상 두 명의 경호원과 함께 은밀히 돌아다니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암행 감사를 우연히 만나서, 나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고 합니다. 이때 암행 감사는 다음과 같이 대꾸했습니다. 그래요? 물론 재학생이 검정고시에 응시하는 것은 위법이오. 그렇지만 이미 자퇴 처리가 되어 있고, 당신 아들은 이미 예비고사까지 합격하지 않았나요? 검정고시의 규정은 엄정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은 옳지만, 이 제도는 어려운 학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니, 당신의 아들은 이번 기회에 구제되어야 하오. 아버지는 이때 가만히 그의 말을 경..

2a 나의 산문 2024.07.13

서로박: (2) 배를 짊어지고 높은 산을 넘으면서

(앞에서 계속됩니다.) 그해 12월은 얼마나 추웠던지요? 지금에야 편안하게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당시의 시간은 나에게는 마치 지옥에서의 삶인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한복을 만드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내 아래에는 두 명의 동생이 중학교 그리고 초등학교에 재학 중이었는데, 생활비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출소하여 다시 무슨 일이든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영어와 일본어에 능통한 그는 다시 상경하였습니다. 일본에서 전자 기기를 수입하여 대학에 납품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아버지는 우연히 C 대학교 의과대학의 교무처장을 알게 되었는데, 담소를 나누다가 내가 겪었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러자 교무과장은 사실 확인을 위하여 그해의 예비고사 합격자를 기술한 두툼한 책자를 뒤졌습니다..

2a 나의 산문 2024.07.13

서로박: (1) 배를 짊어지고 높은 산을 넘으면서

“희망의 특징은 불가능성의 가능성으로 요약된다.” (에른스트 블로흐) 친애하는 M, “배를 짊어지고 높은 산을 넘으면서 고향을 찾는다. 繋舟山頂覓郷人”. 이 구절은 노촌 이구영 선생의 한시 한 구절입니다. (심지연: 역사는 남북을 묻지 않는다, 소나무 2001). 이구영 선생님은 남북의 평화 통일의 과업을 “무거운 선박을 끌고 산을 오르는 힘든 여정”으로 표현하면서, 이를 자신의 고향 찾는 일로 비유했습니다. 이구영 선생님에 비하면 나의 청년 시절은 그저 작은 고난의 엄살로 여겨집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감히 글로 남기는 까닭은 절망에 사로잡힌 당신이 “삶의 의미는 버티는 데 있다.”라는 사실에 공감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미리 말씀드리건대 다음 이야기의 배경에 해당하는 시간과 장소는 임의로 바뀌었음..

2a 나의 산문 2024.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