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 52

서로박: (3) 괴테의 '친화력'

(앞에서 계속됩니다.) 11. 죄의식이 오틸리에를 죽음으로 몰아가다.: 모든 것은 에두아르트의 의지대로 진행될 것 같습니다. 친애하는 C, 사랑의 행복을 위해서는 이타주의 내지는 죄의식을 저버려야 한다고 누가 말했던가요? 오틸리에는 그와의 결혼을 끝내 포기합니다. 아이의 죽음에 대한 죄의식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가 죽은 것은 누구보다도 자신 탓이니, 스스로 끔찍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미는 에두아르트와 결혼을 포기하고,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러나 에두아르트는 그미의 이러한 결심을 도저히 용납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간에 오틸리에의 의사를 되돌려야 했습니다. 불같은 성격의 에두아르트는 그미를 어느 여관에 감금..

40 근대독문헌 2024.10.14

서로박: (2) 괴테의 '친화력'

(앞에서 계속됩니다.) 6. 에두아르트, 아내를 오틸리에로 착각하며 정을 통하다.: 부부는 순식간에 결혼 생활이 파탄에 이르게 될까봐 전전긍긍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심정적으로 각자의 애인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예컨대 에두아르트는 오틸리에가 집에서 허드렛일만 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그미가 약간 동떨어진 다른 집에서 거주하는 게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샤를로테 역시 자신의 애인인 오토를 그냥 무위도식하는 남자로 마냥 방치할 수 없어서, 그에게 반듯한 직장 하나를 알선해주려고 합니다.  어느 날 밤에 에두아르트는 성을 돌아다니다가 오틸리에의 방으로 잠입합니다. 그러나 그곳은 아내 샤를로테가 머물고 있었습니다. 에두아르트는 격정적인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임을 끌어안습니다. 이때 그는 어둠 ..

40 근대독문헌 2024.10.14

서로박: (1) 괴테의 '친화력'

1. 사랑이 금속처럼 결합되고 분할되는가?: 친애하는 C., 오늘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749 - 1832)의 소설 한편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 1809년에 발표된『친화력 (Die Wahlverwandtschaften)』이라는 중편입니다. 괴테는 처음부터 이 작품에 집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약 2년 전 『빌헬름 마이스터의 방랑시대』를 집필하던 과정에서 한 가지 착상이 떠올랐는데, 이 착상으로 인하여 결국 한 편의 중편 소설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괴테는 언젠가 스웨덴 출신의 화학자 토르베른 베르히만 Torbern Bergman이 1775년에 발표한 논문 「금속의 인력 引力에 관하여 (De attractionibus electivis)」를 읽은 적이 있는데, 이 논문에서는 ..

40 근대독문헌 2024.10.14

서로박: (4) 라블레의 텔렘 사원의 유토피아

(앞에서 계속됩니다.) 23. 라블레의 시대 비판: . 휘황찬란한 만화경의 상의 배후에는 작가가 처한 시대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이 은밀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라블레는 특권 계급을 비판하기 위해서 아이러니하게도 특권 계층의 유토피아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가령 텔렘 사원은 철저히 외부의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가령 위선적이고 경건한 척 하는 수사들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이곳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가난한 자의 피를 빨아먹는 법률가 그리고 법을 어기고 진리를 은폐하는 공무원들은 이곳에 발도 들여놓을 수 없습니다. 끝없이 이윤을 추구하는 고리대금업자 역시 절대로 이곳으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라블레의 사악한 특권계급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읽을 수 있습니다. 24. 찬란한 삶과 무제한적인..

32 근대불문헌 2024.10.13

서로박: (3) 라블레의 텔렘 사원의 유토피아

(앞에서 계속됩니다.) 16. 사원 이상의 의미를 지닌 사원: 텔렘 사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법과 변호사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이곳에서는 정치가도, 설교자도 전혀 쓸모없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화폐가 유통되지 않으므로, 고리대금업자가 주위의 사람들을 괴롭히지도 않고, 종교가 필요 없으니, 교회도 수사직도 무용지물에 불과합니다. 텔렘 사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떠한 법적 규정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 의미 있게 그리고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외부 사회로부터 전해지는 도덕적 강요를 수용하지 않습니다.그들은 원천적으로 정직하고 고결한 심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남녀 사이의 완전한 자유와 완전한 평등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수도원에 들어올 수 있는..

32 근대불문헌 2024.10.13

(명저 소개) 장희창의 '춘향이는 그래도 운이 좋았다'

과문함을 책망하며 살아가고 있다. 장희창 교수의 책 『춘향이는 그래도 운이 좋았다. 세상 속으로 걸아가는 책 이야기』 (문학에디션 뿔, 2008)를 이제야 뒤늦게 구해서 읽었다.  책은 다섯 장 (문학, 역사, 제국, 자연 그리고 21세기)으로 분류된다. 여기에는 많은 동서양의 책들이 빼곡히 소개되어 있다. 서양 문학은 물론이고, 동양의 고전 또한 빠져있지 않다. 저자의 시각은 폭넓고 원시안적이지만, 자그마한 세부적 사항을 놓치는 법이 없다. 저자의 입장은 몇 가지 사항으로 확정되지 않고 유연함을 견지하는 것은 그만큼 현재, 과거 그리고 미래를 관망하는 저자의 시각이 유연하고 광활하다는 뜻이다. 장희창 교수의 강점은 무엇보다도 문체에 있다. 장희창 교수의 글은 간결하고 힘차다. 단어 하나 허투루 사용한 ..

1 알림 (명저) 2024.10.13

서로박: (2) 라블레의 텔렘 사원의 유토피아

(앞에서 계속됩니다.) 8. 『팡타그뤼엘 그리고 가르강튀아』, 라블레의 대작: 작품 『팡타그뤼엘 그리고 가르강튀아』는 라블레의 대표작으로서 도합 다섯 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원래의 작품은 『디프소텐 왕, 위대한 거인 가르강튀아의 아들인 유명한 팡타그뤼엘의 끔찍한 전율을 일으키는 모험과 영웅적 행위』라는 긴 제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편의상 제 1권을 『팡타그뤼엘』, 제 2권을 『가르강튀아』라고 명명하곤 합니다. 제 3권부터 5권까지는 “팡타그뤼엘 제 3서”, “팡타그뤼엘 제 4서”, “팡타그뤼엘 제 5서”라고 칭해지고 있습니다. 다섯 권의 책은 1532년, 1534년, 1545년, 1552년 그리고 1564년에 차례로 간행되었습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마지막의 책은 라블레가 사망한 다음에..

32 근대불문헌 2024.10.12

서로박: (1) 라블레의 텔렘 사원의 유토피아

이 글은 필자의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 제 2권, 캄파넬라에서 디드로까지" (울력 2020)에 실려 있습니다. ................. 1. 자발성에 근거한 비국가주의의 유토피아: 프랑스와 라블레François Rabelais의 연작 장편 소설,『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은 르네상스의 이상을 고려할 때 결코 망각될 수 없는 명작입니다. 우리가 주의 깊게 고찰해야 하는 것은 『가르강튀아』의 제 2권에서 묘사되고 있는 이상적 공동체로서의 텔렘 사원입니다. 텔렘 사원은 르네상스 유토피아의 카테고리에 편입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구성적이고 체계적인 국가 내지는 이상적 공동체의 국가 모델과는 현격한 거리감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1534년 이후에 간행된 라블레의 『팡타그뤼엘』,『가르강튀아』는 ..

32 근대불문헌 2024.10.12

(단상. 521) 한강 작가와 노벨 문학상

소설가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탁월한 한국 작가의 작품들이 문을 두드렸지만, 채택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한국 여성이, 그리고 핍박 받은 땅, 광주 출신의 소설가가 노벨상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이 나를 기쁘게 한다. 수탈과 오욕의 광주, 그 피묻은 땅에서 자라난 영혼이 저항의 글쓰기로 승리를 구가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놀랍고도 멋지지 않는가?  가까이는 어머니의 희생, 여자라는 이유에서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아온 내 누이의 삶 그리고 멀리서는 역사 속 한국 여성들의 수모 그리고 남편과 나라를 위한 내조와 헌신 등이 뇌리를 스친다. 노벨상 수상작 "흰"을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작품 제목이 백의 민족 여성의 삶과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우연일까?   노벨 문학상의 선정 기준은 작품의 ..

3 내 단상 2024.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