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히트 52

서로박: 브레히트의 품위 없는 노파

친애하는 K, 브레히트의 단편 「품위 없는 노파」는 나와도 개인적으로 인연이 깊은 산문 작품입니다. 나는 80년대 초 뮌헨에서 공부할 때 이 산문을 읽고, 과제물을 집필했습니다. 당시에 뮌헨 대학교에서 독문학, 철학 심리학 등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이때 당시에 알베르트 레 Albert Reh, 일명 “노루” 교수의 강의를 들었고, 「품위 없는 노파」에 관한 과제물을 제출했지요. 갓 태어난 내 아기의 울음소리를 피해, 뮌헨 기숙사의 현관의 좁은 공간에서 쪼그린 채 타자기를 두드리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에 썼던 나의 과제물은 2001년에 차봉희 교수님 회갑 논문집에 실렸습니다. 제목은 “Schoro PAK: Didaktische Überlegungen zur Kurzgeschichte B. Brechts ..

46 Brecht 2021.05.15

(명시 소개) 이동순의 시,「눈물의 세월」(1)

「눈물의 세월」 이동순 그해 동짓달 텃밭의 무 배추 막 수확 앞두고 있었는데 벼락 같이 이주 명령 떨어졌네 이틀 안에 이삿짐 싸서 우라지오 역으로 집결하라고 하네 사나흘분 음식 집집마다 준비하라고 하네 아직 농작물 거두기도 전인데 달리 먹을 게 어디 있나 이리저리 둘러보니 그저 만만한 닭 돼지 모조리 잡아 굵은 소금 뿌려 고기 장만하고 감자 옥수수 밀가루 자루에 담아서 꽁꽁 묶고 덮던 누더기 이불 몇 채 둘둘 말아 역으로 가는데 어찌 그리도 눈물이 흐르던지 가다가 돌아보고 또 가다가 돌아보고 앞마당 삽사리는 수상한 눈치 채었는지 마냥 짖으며 뒤따라오는데 주인 잃은 다른 집 개들도 허둥지둥 역 구내 인파 사이로 두리번거리며 헤매는데 무정한 이주열차는 검은 연기 뿜으며 기적 울리는구나 흰둥아 나 지금 떠나지..

19 한국 문학 2021.04.23

서로박: 라스카사스의 혀를 빌려 고백하다, 서문

라스카사스는 왜 중요한가? - “사유 思惟는 사유 私有가 아니다.” (윤노빈) - 친애하는 J, 당신을 위하여 라스카사스의 연구서를 간행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에스파냐 출신의 신부이자 수도사인 라스카사스 (Las Casas)는 게오르크 지멜 (Georg Simmel)도 말한 바 있듯이, “인류의 가장 커다란 고통을 환기시켜주는 인물”입니다. 그는 16세기 서인도 제도에서 오랫동안 자행된 가장 끔찍한 대학살의 생생한 증인이었습니다. 라스카사스는 약 1500만의 원주민들이 정복자의 총과 칼에 의해 학살당하는 것을 당국에 보고하였으며, 평생 고통당하는 인디언들의 생존을 위해 살았습니다. 만약 본서를 읽으면, 당신은 상기한 내용, 라스카사스의 신념과 신학적 입장 그리고 라스카사스의 혀를 빌려서 ..

24 신학이론 2021.01.06

서로박: 문학을 공부하는 젊은이에게

“고등학교 수업이 담수어 양식이라면, 대학 수업은 바다 양식이다. 고등학교에서 물고기는 건네주는 먹이 먹고 강 따라 헤엄치면 그만이지만, 대학에서는 스스로 먹이를 찾아먹어야 하고, 망망대해에서 제 갈 길 찾아야 한다.“ (서로박) 1. 친애하는 J, 문학 이론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학을 통해서 경험의 폭을 넓히는 것이 교육상 더 효과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죄송한 말입니다만) 마치 길들여지지 않은 셰퍼드 개처럼 영특하지만, 그들에게는 아직 삶과 문학에 대한 어떤 안목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이면 다양한 주제를 담은 작품들을 수업 시간에 곁들여 다루곤 합니다. 작품들 가운데에는 사랑과 섹스에 관한 것들, 계급투쟁과 노동 해방에 관한 것들, 여성 문제, 환경 문제, 사회적 갈..

2 나의 잡글 2020.11.28

서로박: 브레히트의 코카사스의 백묵 원

친애하는 H, 브레히트의 극작품 「코카사스의 백묵 원」은 서막 그리고 5막 극으로 이루어진 극작품인데, 1944/45년에 미국에서 집필되었으며, 1948년 5월 4일 영어로 미국 미네소타의 칼스톤 대학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독일에서의 첫 공연은 1954년 10월 7일 베를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 작품은 시프바우어담 극장에서 공연되었는데, 폴 드소 (Paul Dessau)가 음악을 맡았습니다. 「코카사스의 백묵 원」은 오늘날 -공연의 성공 여부를 떠나서- 서사극 이론이 가장 분명하게 반영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작품에 나오는 아기의 소유권 논쟁은 성서의 솔로몬의 판결 대목에 등장한 바 있으며 (열왕기상 3장 16절 - 28절), 작품의 전체적 줄거리는 13세기 중국에서 공연된 리칭다오 Li..

46 Brecht 2020.09.01

서로박: 하이너 뮐러의 연애시 (3)

(앞에서 계속됩니다.) 나: 그런데 하이너 뮐러는 자신의 연애시를 생전에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너: 글쎄요. 어쩌면 순수 극작품을 집필하는 작가로서 사적인 사랑에 관한 작품을 발표하기 꺼렸을 것입니다. 특히 미발표 작품은 포르노 그리고 연애시 사이의 한계가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의 연애시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작품은 인간의 적나라한 성욕을 있는 그대로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나: 마지막으로 브레히트의 초기 시 「나무 오르기에 관하여 Vom Klettern in Bäumen」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너희가 저녁에 물속에서 올라오면틀림없이 너흰 벌거벗고, 피부는 부드러울 거야.또한 잔잔한 바람결에 너희의 커다란 나무로올라가겠지 하늘 역시 창백..

21 독일시 2020.08.01

서로박: 뒤렌마트의 '노부인의 방문'

인간의 심리란 참으로 얄궂습니다. 예컨대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라는 속담을 생각해 보세요. 이것은 하나의 심리적 투사로서, 모든 화풀이가 여기에 속합니다. 인간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스스로 다치지 않으려는 방어기제가 마음속에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만약 심리적 피해자는 -억울하게 당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심리적 투사라는 방어기제 등을 통해서 자신의 감정을 승화시키지 않게 되면, 그는 자신에게 심리적 상처를 입힌 자에게 반드시 나중에 복수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가령 「코끼리와 재단사 Der Elefant und der Schneider」의 동화를 생각해 보세요. 코끼리도 그럴진대 하물며 인간의 복수심은 오죽하겠습니까? 복수심은 앙심으로..

44 20후독문헌 2019.10.11

서로박: 브레히트의 연극을 위한 작은 오르가논

베르톨트 브레히트 (B. Brecht, 1898 - 1956)의 「연극을 위한 작은 오르가논 (Kleines Or- ganon für das Theater)」은 1949년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그는 1939년부터 집필한 "놋쇠 구입" 작업의 일환으로서 연극과 극예술에 관한 대화를 완성하지 못했는데, 평소에 이를 보완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본고에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새로운 오르가논”에 실린 77개의 경구적인 글에 착안하여) 연극에 관한 브레히트 자신의 구상이 담겨 있다. 감정 이입이라는 자연주의적 원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극 이론과 일맥 상통하고 있는데, 브레히트에 의하면 파시즘의 죄악을 지적하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한다. 그것은 [마치 부르주아들이 “마약 판매”로 재화를 벌면..

46 Brecht 2019.03.31

에테아 호프만, 혹은 분열된 인간

에테아 호프만 (1776 - 1822)은 독일 문학사에서 결코 망각될 수 없는 작가이다. 그는 작가이자, 음악가이며 화가로 활동했다. 그의 본명은 에른스트 테오도르 빌헬름 호프만이었는데, 평소에 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를 흠모하여, 자신의 이름을 에른스트 테오도르 아마데우스 호프만으로 명명하였다. 그는 1776년 쾨니히스 베르크에서 어느 변호사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에테아 호프만이 두 살 때 아버지는 어머니와 이혼하였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와 함께 친할머니 집에서 자랐다. 그가 약간의 왜곡된 성격을 소유하게 된 근본적 배경에는 눈치를 보아야 하는 주위 환경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에테아 호프만은 1792년에서 1795년 사이에 동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

9 문학 이야기 2019.01.25

서로박: 브레히트의 '부상당한 소크라테스' (2)

어느 제자가 집으로 들어서서 다음과 같은 소식을 전한다. 즉 온 아테네가 소크라테스의 영웅적인 행위로 열광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바깥의 왁자지껄한 소리를 자신에 대한 조소의 소리로 받아들인다. 시 당국이 주인공의 공적을 치하하려고 하자, 소크라테스는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그리고 공개적 모임이 적당하지 않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한다. 이후에 주인공의 친구 안티스테네스가 찾아와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고르기아스가 퍼뜨린 소문에 의하면 소크라테스는 적을 피해 도망쳤는데, 하필이면 적진으로 나아갔다는 것이다. 마지막에 알키비아데스가 등장하여, 아레오파고스 법원으로 동행하자고 주인공을 설득하려 한다. 이때 크산티페는 남편에게 눈짓을 보낸다. 이는 퉁퉁 부어오른 발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신호나 다..

46 Brecht 2018.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