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히트 56

서로박: 헹크만 교수와 참고문헌

1. 뮌헨 대학교 철학과 교수 가운데 볼프하르트 헹크만이라는 분이 있었다. 80년대 초에 나는 부전공의 학점 취득을 위해서 헤겔과 루카치의 강좌를 수강했는데, 이를 계기로 그분을 알게 되었다. 깡마른 얼굴에 약 2미터 장신인 그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모습은 당시에 무척 기이하게 보였다. 안경을 낀 진지한 면모가 아니었더라면, 그는 추측컨대 틀림없이 돈키호테라는 별명을 얻었을 것이다. 사적으로 담소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그는 자전거를 애용하는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거주지가 뮌헨 동쪽 지역인 이스마닝이라서 자동차로 출퇴근하는 게 너무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하기야 뮌헨 시내는 자주 도로가 막히고, 주차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영국 공원을 가로질러 자전거를 타면, 기분이 상쾌해진다는 것을 나중에 나..

2 나의 잡글 2021.09.01

호르스터: 블로흐의 사상 (2)

1961년 블로흐는 자신의 튀빙겐 첫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물었다. “희망은 환멸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가?” - “분명히 그렇다. 굉장하지 않는가?” 그러니까 환멸은 희망이라는 남자 곁에 동행하는 여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과 대답은 블로흐의 실제 삶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블로흐는 제 1차, 제 2차 세계대전을 체험했다. 1933년 3월 6일 그는 1917년의 망명 국가였던 스위스로 재차 망명해야 했다. 1934년 그는 빈으로 가서 자신의 세 번째 부인 카롤라와 결혼했다. 1935년부터 두 사람은 파리에서 살았고, 1936년부터 1938년까지 프라하에서 생활했다. 1938년 그들은 배를 타고 미국으로 망명했다. 1948년 블로흐는 라이프치히 대학교의 교수 초빙에 응했다. 자신의 명확한 자의식은 라이프치..

29 Bloch 번역 2021.08.24

서로박: 캄파넬라의 철학시편 (1)

생존과 저항은 꿈을 위한 것이다. - 토마소 캄파넬라의 『옥중시편』을 중심으로 나: 반갑습니다. 오늘은 저항이라는 주제로 토마소 캄파넬라의 철학적 옥중시편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왜 하필이면 저항과 관련하여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캄파넬라의 시문학을 선택하였는지요? 너: 저항이라는 단어는 통상적으로 국가의 폭력에 대한 개인의 반항을 연상시킵니다. 외국의 예를 들 필요도 없이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예를 찾을 수 있습니다. 강정 마을 해군기지 반대 데모, 밀양의 송전탑 건설에 대항하는 데모를 생각해 보세요, 그렇지만 저항은 다양한 의미론적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습니다. 완강한 반항 대신에, 조심스러운 사보타주를 생각해 보세요. 자기 보존의 노력으로서의 생존 역시 저항의 한 가지 방식일 수 있지요..

34 이탈스파냐 2021.06.30

서로박: 브레히트의 품위 없는 노파

친애하는 K, 브레히트의 단편 「품위 없는 노파」는 나와도 개인적으로 인연이 깊은 산문 작품입니다. 나는 80년대 초 뮌헨에서 공부할 때 이 산문을 읽고, 과제물을 집필했습니다. 당시에 뮌헨 대학교에서 독문학, 철학 심리학 등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이때 당시에 알베르트 레 Albert Reh, 일명 “노루” 교수의 강의를 들었고, 「품위 없는 노파」에 관한 과제물을 제출했지요. 갓 태어난 내 아기의 울음소리를 피해, 뮌헨 기숙사의 현관의 좁은 공간에서 쪼그린 채 타자기를 두드리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에 썼던 나의 과제물은 2001년에 차봉희 교수님 회갑 논문집에 실렸습니다. 제목은 “Schoro PAK: Didaktische Überlegungen zur Kurzgeschichte B. Brechts ..

46 Brecht 2021.05.15

(명시 소개) 이동순의 시,「눈물의 세월」(1)

「눈물의 세월」 이동순 그해 동짓달 텃밭의 무 배추 막 수확 앞두고 있었는데 벼락 같이 이주 명령 떨어졌네 이틀 안에 이삿짐 싸서 우라지오 역으로 집결하라고 하네 사나흘분 음식 집집마다 준비하라고 하네 아직 농작물 거두기도 전인데 달리 먹을 게 어디 있나 이리저리 둘러보니 그저 만만한 닭 돼지 모조리 잡아 굵은 소금 뿌려 고기 장만하고 감자 옥수수 밀가루 자루에 담아서 꽁꽁 묶고 덮던 누더기 이불 몇 채 둘둘 말아 역으로 가는데 어찌 그리도 눈물이 흐르던지 가다가 돌아보고 또 가다가 돌아보고 앞마당 삽사리는 수상한 눈치 채었는지 마냥 짖으며 뒤따라오는데 주인 잃은 다른 집 개들도 허둥지둥 역 구내 인파 사이로 두리번거리며 헤매는데 무정한 이주열차는 검은 연기 뿜으며 기적 울리는구나 흰둥아 나 지금 떠나지..

19 한국 문학 2021.04.23

서로박: 라스카사스의 혀를 빌려 고백하다, 서문

라스카사스는 왜 중요한가? - “사유 思惟는 사유 私有가 아니다.” (윤노빈) - 친애하는 J, 당신을 위하여 라스카사스의 연구서를 간행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에스파냐 출신의 신부이자 수도사인 라스카사스 (Las Casas)는 게오르크 지멜 (Georg Simmel)도 말한 바 있듯이, “인류의 가장 커다란 고통을 환기시켜주는 인물”입니다. 그는 16세기 서인도 제도에서 오랫동안 자행된 가장 끔찍한 대학살의 생생한 증인이었습니다. 라스카사스는 약 1500만의 원주민들이 정복자의 총과 칼에 의해 학살당하는 것을 당국에 보고하였으며, 평생 고통당하는 인디언들의 생존을 위해 살았습니다. 만약 본서를 읽으면, 당신은 상기한 내용, 라스카사스의 신념과 신학적 입장 그리고 라스카사스의 혀를 빌려서 ..

24 신학이론 2021.01.06

서로박: 문학을 공부하는 젊은이에게

“고등학교 수업이 담수어 양식이라면, 대학 수업은 바다 양식이다. 고등학교에서 물고기는 건네주는 먹이 먹고 강 따라 헤엄치면 그만이지만, 대학에서는 스스로 먹이를 찾아먹어야 하고, 망망대해에서 제 갈 길 찾아야 한다.“ (서로박) 1. 친애하는 J, 문학 이론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학을 통해서 경험의 폭을 넓히는 것이 교육상 더 효과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죄송한 말입니다만) 마치 길들여지지 않은 셰퍼드 개처럼 영특하지만, 그들에게는 아직 삶과 문학에 대한 어떤 안목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이면 다양한 주제를 담은 작품들을 수업 시간에 곁들여 다루곤 합니다. 작품들 가운데에는 사랑과 섹스에 관한 것들, 계급투쟁과 노동 해방에 관한 것들, 여성 문제, 환경 문제, 사회적 갈..

2 나의 잡글 2020.11.28

서로박: 브레히트의 코카사스의 백묵 원

친애하는 H, 브레히트의 극작품 「코카사스의 백묵 원」은 서막 그리고 5막 극으로 이루어진 극작품인데, 1944/45년에 미국에서 집필되었으며, 1948년 5월 4일 영어로 미국 미네소타의 칼스톤 대학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독일에서의 첫 공연은 1954년 10월 7일 베를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 작품은 시프바우어담 극장에서 공연되었는데, 폴 드소 (Paul Dessau)가 음악을 맡았습니다. 「코카사스의 백묵 원」은 오늘날 -공연의 성공 여부를 떠나서- 서사극 이론이 가장 분명하게 반영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작품에 나오는 아기의 소유권 논쟁은 성서의 솔로몬의 판결 대목에 등장한 바 있으며 (열왕기상 3장 16절 - 28절), 작품의 전체적 줄거리는 13세기 중국에서 공연된 리칭다오 Li..

46 Brecht 2020.09.01

서로박: 하이너 뮐러의 연애시 (3)

(앞에서 계속됩니다.) 나: 그런데 하이너 뮐러는 자신의 연애시를 생전에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너: 글쎄요. 어쩌면 순수 극작품을 집필하는 작가로서 사적인 사랑에 관한 작품을 발표하기 꺼렸을 것입니다. 특히 미발표 작품은 포르노 그리고 연애시 사이의 한계가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의 연애시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작품은 인간의 적나라한 성욕을 있는 그대로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나: 마지막으로 브레히트의 초기 시 「나무 오르기에 관하여 Vom Klettern in Bäumen」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너희가 저녁에 물속에서 올라오면틀림없이 너흰 벌거벗고, 피부는 부드러울 거야.또한 잔잔한 바람결에 너희의 커다란 나무로올라가겠지 하늘 역시 창백..

21 독일시 2020.08.01

서로박: 뒤렌마트의 '노부인의 방문'

인간의 심리란 참으로 얄궂습니다. 예컨대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라는 속담을 생각해 보세요. 이것은 하나의 심리적 투사로서, 모든 화풀이가 여기에 속합니다. 인간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스스로 다치지 않으려는 방어기제가 마음속에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만약 심리적 피해자는 -억울하게 당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심리적 투사라는 방어기제 등을 통해서 자신의 감정을 승화시키지 않게 되면, 그는 자신에게 심리적 상처를 입힌 자에게 반드시 나중에 복수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가령 「코끼리와 재단사 Der Elefant und der Schneider」의 동화를 생각해 보세요. 코끼리도 그럴진대 하물며 인간의 복수심은 오죽하겠습니까? 복수심은 앙심으로..

44 20후독문헌 2019.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