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히트 54

서로박: (2)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

(앞에서 계속됩니다.) 극작가는 서사극적 구조 그리고 논평 등을 통하여 사건의 진행 과정을 차단시키고, 회상하도록 조처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작품에서 특징적인 것은 “노래들 (Songs)”입니다. 가령 「연기에 관한 노래」는 브레히트가 20년대에 쓴 「아편 동굴에서 나온 노래」에 착안한 것인데, 세계는 마치 니체의 허무주의 내지 희망 없는 태도 등으로는 변화될 수 없음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비 오는 날 물장수의 노래」는 주어진 기회를 잃은 상인의 하소연을 예리하게 풍자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노래는 비가 오는데도 물을 사는 셴테의 비이성적인 태도를 은근히 비아냥거리기 위해서 삽입된 것입니다. 「신들과 선함의 무저항에 관한 노래」에서 극작가는 신앙이라든가 선 등의 추상적 개념이 실제 인간 삶과는..

46 Brecht 2021.12.05

서로박: (1)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

친애하는 J,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은 “우화극 (das Parabelstück)”입니다. 이 작품은 주로 1930년에서 1942년 사이에 집필되었습니다. 집필에 도움을 준 사람은 브레히트의 연인들, 루트 베를라우 (Ruth Berlau) 그리고 마르가레테 슈테핀 (Margarete Steffin)이었습니다. 특히 마르가레테 슈테핀은 40년대 초에 폐결핵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브레히트의 작업을 헌신적으로 도와주었습니다.「사천의 선인」은 1943년 2월 4일에 스위스 취리히에서 초연되었으며, 1952년 구동독에서 하나의 작품으로 발표되었습니다. 따라서 브레히트 작품들 가운데 이 작품이 가장 복잡한 경로를 거쳐 탄생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브레히트는 스스로 1938년에서 1940년 사이에 ..

46 Brecht 2021.12.04

Lindenberg: (2) 천사의 유혹에 관하여

브레히트는 천사를 의도적으로 비아냥거리기 위해서 시를 집필하였습니다. 천사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상의 존재입니다. 그는 남성이지만, 여성처럼 치장하고 있습니다. 아니, 천사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불분명합니다. 브레히트는 천사를 비아냥거림으로써 기독교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유럽 사회에서 얼마나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는가를 고발하려고 했습니다. 사실 기독교에서 죄는 언제나 성 Sex과 관련됩니다. 가령 모든 죄를 포괄하는 존재는 바빌로니아의 창녀로서 상징화되고 있습니다.  바빌로니아의 창녀는 성스러운 결혼식의 신부입니다. 고매한 쌍으로서의 해와 달의 삭망에 관한 비유를 생각해 보세요. 해와 달이 서로 만나 합치면 (개기일식, 혹은 개기월식), 고대 사람들은 이를 해와 달의 결혼식으로 수용했습니다. 해와 달의..

8 Lindenberg 2021.12.02

Lindenberg: (1) 천사의 유혹에 관하여

"천사의 유혹에 관하여." 가사는 너무나 지저분하지만, 음악은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브레히트는 토마스 만의 방대한 소설 『요셉과 그의 형제들 Joseph und seiner Brueder』을 읽고,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토마스 만은 「창세기」 제 27장에서 50장에 기록되어 있는 요셉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네 권의 방대한 소설을 집필하였습니다. 첫째는 「야곱의 이야기」(1933)이며, 둘째는 「젊은 요셉」(1934)을 가리킵니다. 세 번째는 「이집트의 요셉」(1936)이며, 네 번째는 「양육자 요셉」(1943)에 관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토마스 만은 도합 10년에 걸쳐 이 작품을 완성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 소설은 장지연씨의 번역으로 여덟 권으로 살림 출판사에서 간행되었습니다. 요셉은 야곱..

8 Lindenberg 2021.12.02

서로박: (3) 렌츠의 가정교사

(앞에서 이어집니다.) 나중에 구스첸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미는 어느 숲속에 숨어 있다가 눈먼 거지, 마르테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그리하여 마르테의 집에서 기식하면서, 로이퍼의 아기를 출산합니다. 몇 달 후 구스첸은 자신의 소식을 가족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마르테의 집을 몰래 빠져나와 이웃마을로 향합니다. 다른 한편 폰 베르크 소령은 공립학교에 숨어지내는 로이퍼를 수소문하여 끝내 찾아냅니다. 그는 로이퍼에게 다가가 사정없이 총격을 가합니다. 심한 총격에도 불구하고 로이퍼는 다행히 부상당하지 않습니다. 폰 베르크 소령은 로이퍼가 구스첸의 소식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을 감지한 다음에, 그곳을 벗어나 황급히 사라집니다. 구스첸은 나름대로 베르크 소령을 찾아 나섰지만, 아무런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그미는..

40 근대독문헌 2021.10.04

서로박: (1) 렌츠의 가정교사

친애하는 L, 오늘은 독일의 문화적 황금 시기에 좌절과 가난으로 고통스럽게 살아간 한 작가의 작품 하나를 고찰하려고 합니다. 야콥 미하엘 라인홀트 렌츠 (Jakob Michael Reinhold Lenz, 1751 - 1792)의 「가정교사」라는 희극작품이 그것입니다. 작품의 제목은 어쩌면 “접장”이라고 번역되는 게 타당할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가정교사는 주로 고위 귀족층의 자녀들을 가르치는 지식인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처음부터 신분상의 차이를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되었지요. 보수가 너무나 박한 것은 물론이요,  시도 때도 없이 귀족들로부터 푸대접을 받았습니다. 헤겔, 실러를 비롯하여 평민 출신의 수많은 젊은 지식인들이 가정교사 직을 통해서 생계를 이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40 근대독문헌 2021.10.04

서로박: 소네트 패러디 (1)

다음의 글은 나의 논문 "고상한 소네트에서 조야한 소네트로"의 일부이다. 나: 소네트는 현대인의 사랑과 성을 담기에는 진부한 형식, 다시 말해 헌 부대에 불과하지요. 현대인들이 목숨 건 사랑을 체험하는 경우는 이제 드뭅니다. 사랑을 가로막던 장애물들이 오늘날 거의 철거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비극을 처절하게 노래할 필요성이 사라졌어요. 이에 반해 과거에는 구태의연한 관습, 도덕 그리고 법이 온존하였으므로, 죽음을 각오하는 사랑의 열정은 실제로 출현했고, 이는 소네트를 통해 묘사될 수 있었습니다. 예컨대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사랑을 생각해 보세요. 피에르 아벨라르 (1079 - 1142)는 엘로이즈라는 아리따운 처녀의 가정교사로 일했는데, 그들은 활활 타오르는 연정을 주체하지 못하다가, 끝내 살을 섞었습..

22 외국시 2021.09.05

서로박: 뒤렌마트의 물리학자들

1. 뒤렌마트의 희비극: 스위스 출신의 극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Fr. Dürrenmatt, 1921 - 1990)의 2막으로 이루어진 희극 작품, 「물리학자들 Die Physiker」은 1961년에 발표, 1962년에 취리히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이 작품의 제 2고는 1980년에 개작되어, 전집에 실렸습니다. 작품은 세계를 필연적으로 위협하는 현대 핵물리학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극작품은 여배우, 테레제 기제 (Th. Giese)에게 헌정되었는데, 전통적 극작품의 형식에 해당하는 장소, 시간 그리고 행위의 일치성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뒤렌마트의 희비극의 특성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희비극Tragikomödie”이란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습니다. 희비극의 작품..

44 20후독문헌 2021.09.04

서로박: 헹크만 교수와 참고문헌

1. 뮌헨 대학교 철학과 교수 가운데 볼프하르트 헹크만이라는 분이 있었다. 80년대 초에 나는 부전공의 학점 취득을 위해서 헤겔과 루카치의 강좌를 수강했는데, 이를 계기로 그분을 알게 되었다. 깡마른 얼굴에 약 2미터 장신인 그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모습은 당시에 무척 기이하게 보였다. 안경을 낀 진지한 면모가 아니었더라면, 그는 추측컨대 틀림없이 돈키호테라는 별명을 얻었을 것이다. 사적으로 담소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그는 자전거를 애용하는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거주지가 뮌헨 동쪽 지역인 이스마닝이라서 자동차로 출퇴근하는 게 너무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하기야 뮌헨 시내는 자주 도로가 막히고, 주차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영국 공원을 가로질러 자전거를 타면, 기분이 상쾌해진다는 것을 나중에 나..

2 나의 잡글 2021.09.01

호르스터: 블로흐의 사상 (2)

1961년 블로흐는 자신의 튀빙겐 첫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물었다. “희망은 환멸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가?” - “분명히 그렇다. 굉장하지 않는가?” 그러니까 환멸은 희망이라는 남자 곁에 동행하는 여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과 대답은 블로흐의 실제 삶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블로흐는 제 1차, 제 2차 세계대전을 체험했다. 1933년 3월 6일 그는 1917년의 망명 국가였던 스위스로 재차 망명해야 했다. 1934년 그는 빈으로 가서 자신의 세 번째 부인 카롤라와 결혼했다. 1935년부터 두 사람은 파리에서 살았고, 1936년부터 1938년까지 프라하에서 생활했다. 1938년 그들은 배를 타고 미국으로 망명했다. 1948년 블로흐는 라이프치히 대학교의 교수 초빙에 응했다. 자신의 명확한 자의식은 라이프치..

29 Bloch 번역 2021.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