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이동순의 시,「눈물의 세월」(1)

필자 (匹子) 2021. 4. 23. 10:30

「눈물의 세월」

이동순

 

그해 동짓달

텃밭의 무 배추

막 수확 앞두고 있었는데

벼락 같이 이주 명령 떨어졌네

이틀 안에 이삿짐 싸서

우라지오 역으로 집결하라고 하네

사나흘분 음식

집집마다 준비하라고 하네

아직 농작물 거두기도 전인데

달리 먹을 게 어디 있나

이리저리 둘러보니 그저 만만한

닭 돼지 모조리 잡아

굵은 소금 뿌려 고기 장만하고

감자 옥수수 밀가루

자루에 담아서 꽁꽁 묶고

덮던 누더기 이불 몇 채 둘둘 말아

역으로 가는데

어찌 그리도 눈물이 흐르던지

가다가 돌아보고 또 가다가 돌아보고

앞마당 삽사리는

수상한 눈치 채었는지

마냥 짖으며 뒤따라오는데

주인 잃은 다른 집 개들도 허둥지둥

역 구내 인파 사이로 두리번거리며 헤매는데

무정한 이주열차는

검은 연기 뿜으며 기적 울리는구나

흰둥아 나 지금 떠나지만

곧 돌아오리라

그렇게 중얼거리며 떠난 것이

몇 년 세월 흘러갔나

 

우라지오 역: 고려인들이 블라디보스토크를 일컫던 말. 해삼위라고 일컫기도 한다.

 

.......................

 

나: 이동순 시인의 시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어떤 이유로 만주지역에서 살던 한인들이 우즈베키스탄, 카자크스탄 등의 지역으로 이주해야 했는가를 파악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마도 해외로 떠나본 사람들실향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리라 여겨집니다.

너: 잠깐만요. 선생님은 “이주”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는 잘못입니다.

나: 무슨 뜻이지요?

 

너: 국경을 넘는 일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의에 의해서 출국하는 경우입니다. 물론 조국에서 살아갈 수 없는 여건도 자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체로 자의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출국을 선택할 경우 우리는 이를 “이주”라고 표현합니다. 둘째는 망명 (Emigration)입니다. 이 경우 사람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혹은 정치적인 이유로 자신의 조국 내지 고향에서 도저히 살아갈 수 없어서 타국으로 떠납니다. 횔덜린의 『히페리온』에는 다음의 구절이 있지요. “조국을 떠나려고 결심했을 때 나는 쓰라린 눈물을 흘려야 했다. 아마도 영원히. 내가 지상에서 이보다 더 애호하던 것이 있었던가? Es hat mich bittere Tränen gekostet, da ich mich entschloß, mein Vaterland noch jetzt zu verlassen, vielleicht auf immer. Denn was hab´ ich Lieberes auf der Welt?” 어쩔 수 없이 고향 내지 조국을 떠나야 하는 사람은 불행하지요.

 

나: 세 번째 유형은 무엇입니까?

너: 그것은 강제로 쫓겨나는 경우입니다. 강제로 추방당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세요. 이것이 가장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경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Bertolt Brecht는 나라를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지요. 자신은 망명객이 아니라, "추방당하는 난민"이라고요.

나: 아, 그러면 "고려인들이 이주했다."는 말을 취소하겠습니다. 그런데 극동 연해주 지역이 러시아 영토가 된 것은 1860년이라고 하지요?

 

너: 그렇습니다. 청나라와 러시아 사이에 베이징조약을 체결되었지요. 이 지역에 사람이 많이 살지 않았던 터라, 러시아는 조선인 이주를 적극 환영했다고 합니다. 이후에 포시에트 지역에 조선인 이주가 해마다 늘어 1920년대에는 한인들의 숫자가 20여만 명으로 늘었습니다.

너: 그런데 문제는 일본과 소련 사이의 정치적 갈등에서 시작됩니다. 1918년 4월 일본군이 미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 군대와 함께 블라디보스토크에 상륙하여 러시아 백군(공산혁명 반대세력)을 도와 적군의 분쇄에 나섰던 것입니다.

 

나: 이때 이곳에 살던 한인들의 피해가 극심했지요?

너: 그렇습니다. 시베리아에 출병한 일본군이 1922년 10월 철수할 때까지 연해주 지역의 한인들은 일본군에게 혹독한 탄압을 받았습니다. 1922년 10월 25일 백군이 패망하고 일본군이 철수하자, 연해주의 한인들은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민족이 차별당하지 않고, 토지가 공정하게 분배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소련 정권이 약소민족을 기꺼이 도와주리라고 그야말로 헛된 희망을 품었던 것이지요.

 

나: 문제의 발단은 연해주를 무력으로 점령하려는 일본의 군국주의의 야욕에서 시작됩니다. 소련은 이 시기부터 한국인들을 경원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너: 그렇습니다. 한인들은 생김새에 있어서 일본인과 비슷하고, 일본말을 잘하며, 부분적으로는 일본 국적을 소지하고 있기 때문에 소련 주재의 한인(고려인)들을 위험분자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1937년 소련 보안기관은 일본이 재소 한인들을 첩자로 훈련시켜 연해주를 교란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지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