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Brecht

서로박: 브레히트의 코카사스의 백묵 원

필자 (匹子) 2020. 9. 1. 09:52

친애하는 H, 브레히트의 극작품 「코카사스의 백묵 원」은 서막 그리고 5막 극으로 이루어진 극작품인데, 1944/45년에 미국에서 집필되었으며, 1948년 5월 4일 영어로 미국 미네소타의 칼스톤 대학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독일에서의 첫 공연은 1954년 10월 7일 베를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 작품은 시프바우어담 극장에서 공연되었는데, 폴 드소 (Paul Dessau)가 음악을 맡았습니다. 「코카사스의 백묵 원」은 오늘날 -공연의 성공 여부를 떠나서- 서사극 이론이 가장 분명하게 반영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작품에 나오는 아기의 소유권 논쟁은 성서의 솔로몬의 판결 대목에 등장한 바 있으며 (열왕기상 3장 16절 - 28절), 작품의 전체적 줄거리는 13세기 중국에서 공연된 리칭다오 Li Xingdao의 가극 「灰闌記」 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브레히트는 작가, 클라분트 Klabund를 통해서 이 작품의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클라분트의 본명은 알프레트 헨쉬케 Alfred Henschke입니다. 실제로 클라분트는 분필 원을 소재로 극작품을 집필하여 발표했습니다. 나중에 1924년 이 작품은 번역서를 통해서 독일에 소개된 바 있었습니다. 브레히트는 이 작품에 자극을 받아서, 1939년에 「오덴의 백묵 원」을 집필하였습니다. 뒤이어 단편 소설 「아우구스부르크 백묵 원」 (1940)을 완성하였습니다. 

 

 

「코카사스의 백묵 원」은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이 반영된 작품입니다. 극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은 극중 진행과정으로부터 거리감을 지니고 모든 것을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극작가는 이른바 생소화 효과를 활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생소화 효과 Verfremdungseffekt”란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 이론 이래로 극적 요소로 간주되던 주인공에 대한 관객의 몰입 내지 감정 이입을 차단시키려는 효과입니다. 관객은 등장인물과 동화되어 극중 현실에 빨려 들어서는 안 되며,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관객은 등장인물의 하자 내지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고찰할 수 있다고 합니다.

 

브레히트는 이러한 효과를 위해서 극작품에 두 가지 사항을 담았습니다. 첫째의 사항은 각 장의 맨 처음에 이어지는 줄거리를 미리 공개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작가는 사건의 전개에 대한 궁금증과 병행하여 나타나는 등장인물에 대한 감정이입의 현상을 사전에 차단시키려고 했습니다. 둘째의 사항은 하나의 일직선적인 스토리를 지양하는 것입니다. 극작가는 여러 이야기를 복합적으로 전개하고, 스토리를 차단시킴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작중 현실로부터 일탈시키려고 하였습니다.

 

 

 

 

「코카사스의 백묵 원」은 코카서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브레히트는 문학적 배경을 소련으로 이전시켰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시민적 소재를 사회주의 사회 속에서 적용시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코카사스의 민중적이며 동화적인 분위기와 함께 그곳의 영토의 소유권 문제 역시 작품 속에 반영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작품의 첫 부분에서는 계곡을 둘러싼 분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갈린스크와 룩셈부르크라고 불리는 두 부족은 영토 문제를 놓고 토론을 벌입니다. 갈린스크는 유목 생활을 영위하는 부족이며, 난세를 피해 어디론가 떠났다가 코카사스로 되돌아옵니다. 그러나 농업으로 살아가는 룩셈부르크라는 부족이 몇 년 전부터 바로 이 지역에서 관개 농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때 민중 가수, 아르카디 차이체 Arkadi Tscheidse는 그들 앞에서 분필원에 관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이로써 분필 원이라는 소재는 말하자면 극중의 극으로 작품에 삽입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가수의 역할에서 작품 내에서의 여러 매개 체계가 뒤바뀌는 것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이은희: 95).

 

오래 전의 피비린내 나는 시대에 선제후가 몰락한 뒤 그루지니아의 모든 총독들은 처형당합니다. 그 가운데 게오르기 아바슈빌 리가 있습니다. 그의 부인, 나텔라는 옷과 귀중품을 챙겨 도망칩니다. 이때 그미는 갓난아이를 위험 속에 내버려두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벌인 것입니다. 새롭게 권력을 차지한 자는 이 아이를 찾아 나섭니다. 행여나 아이가 자라서 반대 세력의 거두가 될까 두려웠으므로, 그 싹을 제거해야 했던 것입니다. 하녀 그루세는 위험에 처한 아이를 발견하고 학살의 현장을 떠납니다. 그미는 아이를 데리고 어디론가 피신합니다. 그미는 수많은 난관을 무릅쓰고 아이를 안전하게 피신시키면서 키웁니다. 어느새 그루세의 눈에는 아기가 마치 자신의 아이인 것처럼 비칩니다. 

 

처음에 그루세는 비록 군인 시몬과 약혼한 사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미는 아이의 안전을 고려하여 이른바 죽어 간다고 하는 농부와 결혼식을 올립니다. 그루세는 단순하게 서류상의 결혼만을 생각하였습니다. 그것은 “아기가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소문이 퍼질 것을 사전에 봉쇄하려고 행한 불가피한 조처였습니다. 그러나 틀림없이 조만간 죽는다고 하던 농부는 평화가 도래하자,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는 게 아니겠습니까? 말하자면 농부는 군에 징집되지 않기 위해서 꾀병을 앓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몬은 그루세가 자신이 아이의 어머니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그미를 영영 떠나고 맙니다.

 

이로써 그루세의 개인적인 삶은 그 자체 커다란 비극으로 이어집니다. 아이 때문에 임을 떠나보내고 원하지 않은 사람과 결혼하게 된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친애하는 H, 이 대목에서 우리는 성서의 구절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썩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의 복음서 12장 24절) 그루세는 여기서 한 알의 밀알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그미가 아이를 위해서 살아가면, 그만큼 아이는 잘 자랍니다. 그러나 그루세 자신은 수많은 불행을 감수해야 합니다. 왜 그미는 자신을 위하는 동시에 아이를 위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게 브레히트가 추적한 (자본주의적 삶의) 모순,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가 봅시다. 그곳 마을에서는 놀라운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아츠다크라는 이름을 지닌 서기 출신의 부랑자가 정치적인 혼란 속에서 재판관으로 임명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츠다크를 고찰하면 우리는 당국과 법조계에 대한 작가의 비판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술을 즐기면서 법전에 의해서 재판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감정에 의해서 판결 내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츠다크는 올바른 판결을 내리기 때문에 좋은 법관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아츠다크는 법전을 깔고 앉아서 재판합니다. 또한 그는 원고와 피고를 자리에 서 있게 합니다. 그는 부유한 원고에게 돈을 받은 뒤 가난한 피고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립니다. 인민들은 그를 가난한 자를 위한 재판관이라고 칭송합니다. 그러나 부자들은 마치 사기 협잡꾼과 같은 판사에게 실망감을 금치 못합니다.

 

바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잃어버린 아기의 소유권 분쟁이 제기됩니다. 그것은 아이에 대한 영주 부인과 하녀 그루세 사이의 쟁탈전과 같은 양상을 띕니다. 영주 부인은 많은 유산 때문에 아이의 소재를 수소문합니다. 그루세는 아이를 결코 포기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는 내 아이예요. 내가 길렀습니다.” 아츠다크는 분필 원을 그어놓고 아이를 그 안에 세우라고 명령합니다. “진정한 어머니는 아이를 원 밖으로 끌어낼 힘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루세는 행여나 아이가 다칠까봐 아이의 팔을 그만 놓아버립니다. 그미에 반해서 영주 부인은 아이의 팔을 힘껏 잡아당깁니다. 아츠다크는 이 모든 과정을 냉정하게 지켜본 다음에, 진정한 모성적인 것을 인식하고, 그루세에게 어머니의 권한을 부여합니다. 재판관은 그곳을 벗어나기 전에 그루세로 하여금 남편과 이혼시킵니다. 이는 시몬과의 해후를 위한 비상 조처였습니다. 재판이 끝난 뒤에 혼란의 시기가 도래하게 되었을 때 아츠다크는 어디론가 행방을 감춥니다.

 

친애하는 H, 우리는 주제와 관련하여 맨 마지막 구절을 인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작품 전체를 포괄하는 주제상의 함의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있는 게 누구에게 속해야 하는가? 존재하는 것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에게/ 그러므로 아이들은 모성적인 분들에게, 그래야 그들이 잘 자랄 수 있으므로/ 자동차는 좋은 운전사에게, 그래야 차는 잘 달릴 수 있으므로/ 계곡은 관개 농업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그래야 결실을 맺게 되므로.”

 

작품은 정치적 내용 때문에 연구가에 의해서 가장 논란의 대상이 되는 극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작품 속에는 여러 가지 서사극의 요소가 도사리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1) 가수가 등장하여 모든 것을 논평한다는 점, (2) 그루셰의 이야기와 아츠다크의 이야기 사이에는 빈 공간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 등이 그것입니다. 이로써 이야기는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고, 차단되고 중지됩니다. 과연 서사극이 얼마나 관객의 흥미를 잃지 않은 채 소정의 목표 (비판 의식을 고취하는 일)를 달성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해 많은 연극 평론가들은 회의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브레히트의 「코카사스의 백묵 원」은 1958년에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프란츠 페터 비르트 Franz Peter Wirth가 영화의 연출을 맡았으며, 대본을 쓴 사람은 한스 고트샬크 Hans Gottschalk였습니다. 그루세의 역을 맡은 배우는 케테 라이헬 Käthe Reichel이었으며, 한스 에른스트 예거 Hans Ernst Jäger가 아츠다크 판사의 역을 맡았습니다.

 

 

참고 문헌

 

- Bertolt Brecht: Der kaukasische Kreidekreis, Suhrkamp 1968.

- 이은희: 브레히트 연극의 커뮤니케이션 과정과 드라마적 매개 체계. 코카서스의 백묵원 연극 텍스트를 중심으로, in: 독일문학, 2006, 83 – 10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