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Brecht

서로박: 브레히트의 품위 없는 노파

필자 (匹子) 2021. 5. 15. 09:34

친애하는 K, 브레히트의 단편 「품위 없는 노파」는 나와도 개인적으로 인연이 깊은 산문 작품입니다. 나는 80년대 초 뮌헨에서 공부할 때 이 산문을 읽고, 과제물을 집필했습니다. 당시에 뮌헨 대학교에서 독문학, 철학 심리학 등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이때 당시에 알베르트 레 Albert Reh, 일명 “노루” 교수의 강의를 들었고, 「품위 없는 노파」에 관한 과제물을 제출했지요. 갓 태어난 내 아기의 울음소리를 피해, 뮌헨 기숙사의 현관의 좁은 공간에서 쪼그린 채 타자기를 두드리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에 썼던 나의 과제물은 2001년에 차봉희 교수님 회갑 논문집에 실렸습니다. 제목은 “Didaktische Überlegungen zur Kurzgeschichte B. Brechts 「Die unwürdige Greisin」im Deutschunterricht in Korea (한국에서의 독일어 교육에서 다루게 될 브레히트의 단편「품위 없는 노파」에 대한 교수법적 숙고)”입니다.

 

친애하는 K, 「품위 없는 노파」는 어느 나이든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일견 브레히트의 작품답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소한 일상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소설 기법의 측면에서 그리고 주제상의 측면에서 브레히트의 산문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들 가운데 하나로 손꼽힙니다. 할머니는 몇 십년동안 남편과 다섯 명의 자식들을 위하여 가정을 꾸려나가며 힘들게 살아왔습니다.

 

남편이 죽자, 그미는 자식들로부터 독립하기 위하여 남편의 집에서 혼자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죽기 2년 전부터 기이한 행동을 일삼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령 자주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경마장에 나다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미는 밤 3시에 시가지를 산책하는가 하면, 정신 이상의 어느 처녀와 사귀고, 구두 수선공들과 어울리곤 하였습니다. 심지어 방문한 목사에게 함께 영화 보러 가자고 제안하기도 합니다.

 

일견 할머니의 “품위 없는” 모든 행동들은 막내아들, 알베르트의 편지에 기술되어 있습니다. 막내아들은 과거와는 약간 다른 행동들을 과장하여, 자신의 형님, 다시 말해서 주인공 나의 아버지에게 보고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막내아들이 그미의 행동을 과장, 아니 사실과는 달리 보고한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요? 한마디로 막내아들인 출판업자는 할머니의 집을 소유하고 싶었습니다. 그게 뜻대로 되지 않자, 이번에는 어머니를 모신다는 핑계로 그 집에 들어가서 살고 싶어 했습니다. 사실 막내아들의 수입은 변변치 못했으며, 그에게 많은 식솔이 달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막내아들의 입주를 거부하고 혼자 살았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미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절약하며 살다가 갔습니다. 양파 빵, 차 한 잔 등으로 식사했으니까요. 말하자면 할머니는 가족으로부터 가급적이면 독립하고, 자유롭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미는 마지막 재산을 털어서 정신 이상의 처녀를 도와주었고, 그리고 구두 수선공이 다른 도시에서 제화점을 차릴 수 있도록 그에게 헌납했습니다.

 

친애하는 K, 당신은 할머니의 이러한 행동을 기이하게 여길지 모릅니다. 왜 아들 가운데 힘들게 살아가는 출판업자에게 도움을 주지 않고,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재산을 남기는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시겠지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자식에게 모든 재산을 남길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브레히트의 할머니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미는 아무도 상대하려 하지 않으려는 정신 이상의 처녀와 대화 상대자가 되어주었으며, 이른바 천하다고 하는 구두수선공과 자주 만났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행동이 품위 없는 것일까요? 브레히트는 은근히 묻습니다. 그렇다면 품위란 무엇인가? 하고 말입니다. 압구정동에 살고, 일류 호텔에서 식사하며, 사회의 상류층 사람들과 골프를 치고, 자식들 사이에 정략결혼을 맺으며, 정계와 재계의 우두머리들과 함께 어울리는 게 과연 품위 있는 행동일까요? 그렇다면 “품위 (Würde)”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어째서 인간의 품위가 오로지 돈으로만 결정된단 말입니까? 만약 돈으로 결정되는 게 품위라면, 차라리 품위를 저버리고 사는 게 더 품위 있을지 모릅니다.

 

친애하는 K, 브레히트의 산문은 우리에게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가령 부모는 자식에게 어느 정도의 범위에 이르기까지 도움을 주어야 하는가? 재산의 상속 내지 재산의 사회적 환원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우리는 과연 노인의 삶에 대해서 얼마나 커다란 관심을 지니고 살아가는가? 등등의 물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밖에 나는 작품 속의 할머니가 정신 이상의 처녀를 도와주었다는 점, 구두수선공을 경제적으로 도와주었다는 점 등에서 커다란 의미를 찾고 싶습니다. 두 사람은 사회적으로 약자입니다. 한 사람은 심리적으로 소외되어 살아가고, 다른 한 사람은 능력이 있지만, 돈이 없어서 자신의 능력을 꽃 피우지 못하는 구두수선공에 불과합니다. 할머니는 이들을 도와주었던 것입니다. 이들에 비하면, 막내아들은 어렵지만, 자신의 도움 없이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쩌면 막내아들에게 필요한 것은 독립심인지 모릅니다.

 

브레히트의 「품위 없는 노파」는 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1964년 프랑스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제목은 “La vieille dame indigne”이며, 감독은 르네 알료입니다. 이 영화는 1968년 1월 28일 독일 제1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방송되었습니다. 알료는 소설의 내용을 그럴 듯하게 영화로 각색하였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60년대 마르세이유로 정해져 있습니다.

 

막내아들 알베르트는 영화 속에서는 운송업자, 베르테 베르티니로 등장합니다. 그는 형인 가스통과 사이가 몹시 나쁩니다. 영화 속의 노파는 영화를 보러 다니고, 마차로 소풍을 떠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유행의 자동차를 구입합니다. 식당의 하녀는 소설과는 전혀 달리 구성되어 있습니다. 로잘리는 소설과는 달리 정신 이상이 아니라, 계속 다른 남자와 염문을 뿌리고, 돈에 관심을 두며 살아갑니다. 로잘리의 개방적 스타일은 할머니와는 전혀 다릅니다. 그러다가 로잘리는 가난한 손자인 피에르와 사랑에 빠집니다. 피에르는 아버지의 운송회사에 다니지만, 음악가로서 대성하고 싶은 꿈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할머니는 결국 모든 재산을 로잘리에게도, 피에르에게도 남기지 않고, 구두수선공에게 남기고 세상을 떠납니다. 브레히트 연구가들은 르네 알료의 영화를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영화는 원작과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었지요. 알료 역시 이 점을 인정했습니다. 프랑스 관객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작품을 변형시키다보니, 원작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삭제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동독의 TV 방송은 브레히트의 작품을 영화로 만들어서 1985년 2월 11일 처음으로 방송했습니다. 감독은 카린 헤르허 Karin Hercher가 맡았고, 주인공 할머니는 브레히트의 친딸인 한네 히옵 Hanne Hiob이 맡았습니다. [한네 히옵은 1922년 브레히트와 그의 첫 번째 부인이자 배우인 마리안네 초프 Marianne Zoff 사이에서 태어났지요.] 구두수선공의 역을 맡은 사람은 에케하르트 샬 Ekkehard Schall이었습니다.

 

두 번째 영화 작품은 원작에 충실했다고 하지만, 원작이 지닌 고유한 가치를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령 브레히트의 산문에서 나타나는 간접적 보고의 기능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내레이터로 등장하는 “나”는 아이의 목소리를 청중에게 들려줍니다. 등장인물 사이의 대화는 거의 출현하지 않는 관계로, 할머니가 마치 노망이 들었다는 인상을 짙게 풍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주변인물인 식당 여종업원, 구두수선공 그리고 막내아들인 출판업자의 성격적 특성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