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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뒤렌마트의 '노부인의 방문'

필자 (匹子) 2019. 10. 11. 09:29

인간의 심리란 참으로 얄궂습니다. 예컨대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라는 속담을 생각해 보세요. 이것은 하나의 심리적 투사로서, 모든 화풀이가 여기에 속합니다. 인간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스스로 다치지 않으려는 방어기제가 마음속에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만약 심리적 피해자는 -억울하게 당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심리적 투사라는 방어기제 등을 통해서 자신의 감정을 승화시키지 않게 되면, 그는 자신에게 심리적 상처를 입힌 자에게 반드시 나중에 복수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가령 「코끼리와 재단사 Der Elefant und der Schneider」의 동화를 생각해 보세요. 코끼리도 그럴진대 하물며 인간의 복수심은 오죽하겠습니까? 복수심은 앙심으로 가슴속에 오래 머물다가 언젠가는 반드시 앙갚음의 행위가 발생하지요. 생각해 보세요. 특히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친애하는 H, 당신이 완성하려고 하는 졸업논문 소재가 되는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Friedrich Dürrenmatt, 1921 - 1990)의 극작품 「노부인의 방문 Der Besuch der alten Dame」역시도 바로 그러한 여인의 복수와 관련됩니다. 3막으로 이루어진 뒤렌마트의 희비극 Tragi-Komödie은 1955년에 발표되었고, 1956년 1월에 스위스 취리히 국립극장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원래 이 작품에는 “호경기의 희극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이는 두 가지 테마를 암시하는데, 이것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물음과 직결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오래 전에 한 남자로부터 버림 받은 한 여성이 어떠한 방식으로 당사자에게 복수해 나가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둘째는 돈의 영향으로 인하여 어느 소도시의 주민 전체가 과거의 도덕적인 인습을 저버리고, 어떻게 몰락해 나가는가? 하는 물음과 관련됩니다. 셋째는 한 인간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과거에 저지른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 속죄하는가? 하는 물음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일단 앞에서 언급한 두 번째와 세 번째 물음을 염두에 두면서 작품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클레르 차흐나시안 등장 2009년 마르부르크 공연

 

작품의 배경으로 작용하는 장소는 유럽 중부에 위치한 어느 소도시, 귈렌입니다. 그곳 사람들은 엄청나게 돈 많은 클레르 차흐나시안을 맞이하려고 채비하고 있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그미는 소녀 시절에 이곳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소도시 사람들은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여자를 맞이하면서, 도시의 경제적 부흥을 바라고 있습니다. 귈렌은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오래 전부터 경제적으로 위협을 받아 왔습니다. 거의 몰락 상태에 가까운 소도시의 경제는 나중에 클레르의 치밀한 사전 계획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조작된 것으로 밝혀집니다. 다시 말해서 클레르는 오래 전부터 자신의 재력을 최대한 이용하여, 은밀하게 소도시를 황폐 일보 직전으로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극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 알프레트 일은 소매상인입니다. 그는 소도시 사람들에 의해서 공동적 자선 단체의 대표로 선출된 바 있습니다. 일은 어떻게 해서든 도시의 부흥과 재건을 위해서 클레르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으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극이 시작되자마자 어떤 기막힌 비밀이 백일하에 드러납니다. 약 45전 전에 자신의 여자 친구가 임신하게 되었을 때, 알프레트 일은 그미를 무책임하게 저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버림받은 여자친구는 아이를 출산하고 온갖 고초를 겪으며 살아가다가, 끝내는 창녀촌으로 넘겨집니다. 홍등가를 전전하던 그미는 우연히 나이든 재벌 노인과 조우하게 됩니다. 재벌노인은 그미를 사랑하게 되고 두 사람은 동거합니다. 몇 년 후에 노인이 죽은 뒤 일의 여자친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양의 재산을 유산으로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일의 여자친구는 다름 아니라 클레르 차흐나시안이었던 것입니다. 그미가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었을 때, 일은 소스라치게 놀라고, 그의 얼굴은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집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토비와 보비

 

클레르는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 만약 알프레트 일이 자신이 겪은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소도시 사람들에 의해 응징당한다면, 그미는 공동적 자선 단체에 거액을 희사하겠노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응징이란 사형을 뜻합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인간적인 이유를 내세우며,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그를 살해할 수 없다고 항변합니다.

 

놀라운 것은 귈렌 사람들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서서히 돈의 유혹에 사로잡힌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그들은 일을 죽이기로 합의합니다. 친애하는 H, 극작품은 다음의 사실을 분명히 지적해줍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힘은 인간의 양심 또한 얼마든지 말살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귈렌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확신합니다. 즉 클레르에 대한 일의 범죄는 아무리 시간이 흘렀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클레르 차흐나시안은 소도시 사람들에게 거액이 적힌 수표 한 장을 건네줍니다. 마지막 대목의 합창은 소포클레스의 극작품 「안티고네」를 연상시킵니다. 합창하는 사람들은 번영을 위한 성스럽기 이를 데 없는 재물을 열렬히 칭송합니다. 이와 동시에 신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립니다. “즐거움에서 비롯한 죽음. 지나간 한평생의 삶은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를 기술하다.「노부인의 방문」은 전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며 절찬리에 공연되었습니다.

 

작품 속에서 나타나는 희비극적 요소는 앞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두 가지 사항 속에서 엿보이고 있습니다. 첫째로 극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도시 전체의 도덕이 어떻게 돈으로 팔려나가는지를 기괴하게 지적합니다. 둘째로 작가는 소도시 사람들의 도덕적 의식이 돈에 의해서 어떻게 변질되어 나가는지를 우스꽝스럽게 묘사합니다. 도시 전체는 이러한 두 가지 사항과 연관하여 돈 많은 여성 한 사람이 계획한 대로 거의 절대적으로 그리고 잔혹하게 조종당하고 있습니다.

 

뒤렌마트는 자신이 속한 발전된 서구 문명사회를 기괴한 방법으로 비판하였습니다. 이러한 비판은 죄와 벌, 비극적 사건과 이에 대한 심판, 복수하는 여자와 희생당하는 남자 등의 공식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식은 고대 비극작품의 유형, 특히 오이디푸스의 소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소포클레스의 작품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죄를 알지 못했을 때, 도시에는 괴질이 창궐합니다. 주인공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했다는 비밀을 알고 자신의 눈을 찌른 뒤 고행의 길을 나서게 되었을 때, 도시의 괴질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노부인의 방문」에서도 나타납니다. 알프레트 일이 모든 책임을 회피하고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려고 발버둥 치면, 그럴수록 클레르가 펼쳐놓은 덫은 그를 더욱더 단단하게 속에 옥죄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을 때, 그는 역설적으로 심리적 평온을 찾습니다. 왜냐하면 클레르와 소도시 사람들은 오로지 주인공의 목숨을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친애하는 H, 뒤렌마트는 사회의 시스템은 언제나 몇몇 사람들의 권력에 의해서 좌지우지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권력은 보이지 않는 손에 해당하는 실질적 권력, 즉 돈의 영향을 받습니다. 작가는 이러한 속성을 관객에게 지적할 뿐, 관객의 의식 변화를 통한 정치 참여에는 커다란 기대감을 표명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점이 브레히트의 연극적 주제와 다른 점이며, 나아가 뒤렌마트의 숙명적 세계관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뒤렌마트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