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잡글

서로박: 헹크만 교수와 참고문헌

필자 (匹子) 2021. 9. 1. 09:46

1.

뮌헨 대학교 철학과 교수 가운데 볼프하르트 헹크만이라는 분이 있었다. 80년대 초에 나는 부전공의 학점 취득을 위해서 헤겔과 루카치의 강좌를 수강했는데, 이를 계기로 그분을 알게 되었다. 깡마른 얼굴에 약 2미터 장신인 그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모습은 당시에 무척 기이하게 보였다. 안경을 낀 진지한 면모가 아니었더라면, 그는 추측컨대 틀림없이 돈키호테라는 별명을 얻었을 것이다. 사적으로 담소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그는 자전거를 애용하는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거주지가 뮌헨 동쪽 지역인 이스마닝이라서 자동차로 출퇴근하는 게 너무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하기야 뮌헨 시내는 자주 도로가 막히고, 주차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영국 공원을 가로질러 자전거를 타면, 기분이 상쾌해진다는 것을 나중에 나도 알게 되었다.

 

2.

당시에 필자는 헹크만 교수의 헤겔 강의 그리고 루카치의 미학 강의를 들었다. 강의의 내용은 몹시 어려워, 수업에 따라가기가 버거울 정도였다. 그래도 과제물의 테마로서 루카치와 브레히트 사이의 리얼리즘 논쟁이라는 주제를 선택하였다. 여기에는 반성완 교수의 영향이 컸다. 헹크만 교수는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나의 과제물을 바로 돌려주지 않았다. 그 이유를 나는 그의 조교를 통해서 듣게 되었다. 교수는 일차적으로 과제물에 인용된 참고 문헌을 도서관에서 빌려오게 하였다. 나의 과제물에서 인용이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 꼼꼼하게 따지기 위함이었다. 그는 조교를 통해서 인용문들이 원래의 문헌과 일치하는지, 페이지와 책의 제목을 제대로 명기했는지를 검토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다음에야 교수는 비로소 나의 과제물을 수정하고 논평해주었다.

 

 

3.

헹크만 교수의 과제물의 수정을 통해서 깨달은 진리가 하나 있었다. 자고로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고 내지 사상적 단초가 있다. 사람들은 뇌리에 스치는 수많은 착상을 망각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학문 작업은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착상에 대한 고증을 밝히는 일로 시작된다. 지금까지 나는 스스로 창의적 인간이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이는 대단한 오만에서 비롯한 착각이라는 게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이전의 수많은 학자 내지 학생들도 나의 착상과 동일한, 혹은 유사한 것을 떠올리지 않았던가? 우리가 참고 문헌을 필요로 하는 것은 어쩌면 바로 그 때문인지 모른다. 글을 쓸 때 참고한 문헌을 분명하게 밝히면, 이는 저자의 논리의 타당성을 증명해주고, 저자가 남의 책을 표절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요약하건대 인간의 학문 행위는 하나의 사고에 대한 문헌학의 고증에서 출발한다.

 

4

그리스의 격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칼은 몸을 상하게 하지만, 말은 정신을 상하게 한다Ξίφος τιτρώσκει σώμα, τὸν δὲ νούν λόγος.” 그만큼 말이란 사람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가하는 무기일 때가 있다. 살다 보면 때로는 직언을, 때로는 농담이 섞인 인용문을 사용하는 게 좋을 때가 있다. 그런데 돌직구 대신에 커브 볼이 의외로 날카로울 때가 있다. 게다가 남의 말을 인용하면, 나의 책임 소재가 사라지지 않는가? 이를테면 독일어에는 간접 문장이 있다. 간접 문장은 접속법 1식이라고 하는데, 한국어로는 “...라고 한다.”라고 번역된다. 만약 대화에서 “누군가 머라고 하더라.”하고 표현하면, 우리는 자신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머라 카더라”는 때로는 음험한 의도를 감출 수 있지만, 적어도 말하는 자의 책임을 은폐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 우리는 간접 문장을 통해서 자신의 주장을 완곡하게 표현할 수 있으며, 표절의 의혹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5.

오랜만에 서영채 교수의 『인문학 개념 정원』을 독파하였다. 언제나 느끼는 바이지만 서영채 교수의 글들은 독자의 이해와 감동을 돋우는 흡인력을 지닌다. 그뿐이 아니라 문장과 문장 속에서 어떠한 견강부회도 허장성세도 발견되지 않는다. 시적인 섬세함과 따뜻한 품성이 글의 곳곳에 배여 있다. 이번에 간행된 책은 인문학적 개념들을 명징하고 간결하게 정리하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참고 문헌이 없다는 사실이다. 가령 독자는 라캉의 견해와 서 교수의 견해를 구분하기 어렵다. 이를테면 프로이트에 관한 언급이 프로이트의 어느 책에 실린 것인지 독자는 알 길이 없다. 차제에 이 점을 고려하여 고증을 밝혀주면 더 없이 고맙겠다. 만약 누군가 “그래, 당신은 잘 하는가?”하고 묻는다면, 나로서는 할 말이 없다. 변변치 못한 것들을 책이라고 발표한 자는 바로 나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