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 57

(단상. 557) 국민 투표는 불가능한가?

1.거리의 항쟁은 눈물겹다. 그러나 엘리트들은 높은 빌딩에서 일반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이들을 짐승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굥을 멧돼지로 간주하듯이, 그들 역시 국민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재산이 있으면, 사람 대접을 받고, 재산이 없으면, 짐승으로 취급된다. 그렇기에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하지 않았는가? 2.법대로 하자! 라고 고래고래 고함지르는 인간은 화해와 타협, 용서와 배려를 모르는 악인들이다.  상식과 양심에 의해 합의를 도출해내는 분들은 법이 필요 없는, 무법자(無法者), 즉 선한 국민들이다. 그런데 법은 가진 자 그리고 힘 있는 자를 위해 만들어져 있다. 정치의 사법화가 문제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나오지, 헌법 재판소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3.지귀연 판사의 판결은 위법이다. 존..

3 내 단상 2025.03.31

박설호: (4) 브레히트 이후 독일 최대의 경악의 기록자, 하이너 뮐러

(앞에서 계속됩니다.) 8.그밖에 우리는 뮐러 문학에서 투영되고 있는 활력주의의 요소, 여러 가지 형태로 태동할 수 있는 여성 운동에 대한 기대감 등을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 가령 구동독에서 만연했던 프로테스탄티즘의 정적주의에 대항하기 위하여 뮐러는 수직적 구조의 세계관 (오성 중심주의, 남성 중심주의 그리고 재화 중심주의)을 비판한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물론 다른 작가들도 이에 관해 문학 작품을 통해 혹은 다른 방식으로써 분명하게 지적하였습니다만, 그것을 유달리 강한 어조로 폭로한 작가는 다름 아닌 하이너 뮐러였습니다. “18세기, 쾨니히스베르크의 토요일 오후 세시. 임마누엘 칸트. 그의 철학적 사고와 그의 수음 (手淫) 행위 - 후세 사람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그의 사고만을 생각하고, 너무나 오랫동안..

45 동독문학 2025.03.31

박설호: (3) 브레히트 이후 독일 최대의 경악의 기록자, 하이너 뮐러

(앞에서 계속됩니다.) 6.하이너 뮐러 그리고 동시대 지식인 사이의 의견 대립은 극작가 페터 학스 Peter Hacks와의 논쟁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학스는 -볼프 비어만의 표현을 빌면- “낡아빠진 고대 소재를 숙련된 솜씨로 잘 짜 맞추는 기술자”에 불과했습니다. 학스가 극예술 창작에서 필요한 모든 기준을 독일 고전주의에서 이미 발견했던 반면에, 뮐러는 고전적 작품을 하나의 모범으로 삼으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뮐러에게 중요한 것은 새로움의 미학이었지요. 뮐러는 60년대부터 항상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예술은 오로지 새로움에 의해서 합법화될 수 있다. 만약 그게 과거 문학 내지 예술적 조류를 반복한다면, 예술 작품은 기생물이나 다름이 없다.” 뮐러의 견해에 의하면 과거의 훌륭한 ..

45 동독문학 2025.03.31

(단상. 556) 문학은 우리를 어느 정도 치유할 수 있는가?

1. 나는 누구인가? 지금 어느 위치에 머물고 있는가? 나의 의지는 어디로 향하는가? 이러한 질문을 많이 할수록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더욱 명징하게 이해할지 모른다. 2. "그것은 너에 관한 이야기다. De te fabula." 만약 특정 문학 작품이 당신의 삶에 관해서 기술하고 있다면, 우리는 생동감을 느끼면서 그 속에 빠져들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들이닥칠 수 있는, 행여나 내가 겪게 될 문제점을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3. 사람들은 머리가 아플 때 두통약을 복용한다. 그러나 문학 작품은 당의정 알약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때로는 나 자신의 처지, 나의 심적 상태를 파악하게 하게 하는 하나의 범례로 작용하곤 한다. 4. 재미있는 이야기는 우리가 처한 사회 경제적 조건을 파악하게 하며, 내면의 ..

3 내 단상 2025.03.31

(명저 소개) 김진의 '희망의 인문학' (울산대 출판부 2021)

에른스트 블로흐 연구자, 울산대 김진 교수의 책 『희망의 인문학』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문헌은 김진 교수의 정년퇴직 기념 문집으로 울산대 출판부에서 2021년에 간행되었습니다.  저자는 희망의 여러 가지 특징 그리고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갈망의 기대 정서를 동양과 서양에서 폭넓게 발견하려고 합니다. 저자의 시각은 개방적이면서도 광활합니다. 오랫동안의 독서와 사색이 이러한 결과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책의 내용은 모두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든 논의는 강의 방식으로 서술되고 있으므로, 우리는 내용을 비교적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1. 그리스신화의 희망 이해: ‘프로메테우스’와 ‘판도라’저자는 시시포스 신화, 프로메테우스 신화 그리고 판도라 신화를 예로 들면서 고대 그리스 시대에 자리하던..

1 알림 (명저) 2025.03.30

(단상. 555) 정의로운 판사는 있는가?

1. 국민은 모두 들러리인가? 모두가 초조한 마음으로 헌법 재판관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왜 국민은 모든 결정권을 몇몇 법관에게 위임하고, 멀거니 이를 쳐다보아야 하는가? 필자는 국민투표가 답이라고 생각한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온갖 잡다한 욕구가 뒤섞인 간접 민주주의의 폐해를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2. 선과 악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민주제가 바람직하며, 군주제가 무조건 나쁘다고 말한다. (폴리비오스 그리고 키케로의 국가론을 참고하라.) 그런데 민주제에서는 그릇된 다수가 올바른 소수를 무찌를 수 있다. 군주제라 하더라도 성군은 나라를 훌륭히 다스린다. 그러니 정치 제도가 모든 해결책을 마련해주지는 않는다. 제도도 중요하지만, 선을 지키려는 인간의 의지도 중요하다. 3. 악법에 저항하는 작가..

3 내 단상 2025.03.29

박설호의 시, '잠깐 노닥거릴 수 있을까'

잠깐 노닥거릴 수 있을까박설호 썩은 풀에서 생겨난 *암컷 반딧불이가 말한다 모르니까 청춘이라고 아니 꽃봉오리에 옥시토신이 아직 없을 뿐이야 왜 꿈꾸면서 이빨을 갈겠어 그동안 너와 즐겁게 지낸 건 건 사실이야 손잡으면 껴안고 싶고 껴안으면 입 맞추고 싶으며 키스하면 한 몸이 되고 싶었지 하마터면 가슴 부풀어 뻥 터진 뒤에 꺄르륵 자물실 뻔했어 허나 그럴 수는 없지 않니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 아빠는 내가 흠결 없는 암술이기를 바라고 있어 너도 허청대지 말고 잘 먹고 잘 살아야지 날 찾지 마 안녕 비에 젖어 희미해진 *암컷 반딧불이가 말한다 잘 지냈니 잠시 짬을 내어 나왔어 세월 참 빨리 흐르네 외국으로 떠났다는 소식 들었지 뭐 금의환향한 게 아니라고 어쨌든 직장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난 어영부영 살고 있..

20 나의 시 2025.03.29

박설호: (2) 브레히트 이후 독일 최대의 경악의 기록자, 하이너 뮐러

(앞에서 계속됩니다.) 3.친애하는 K씨, 뮐러의 문학에 대한 이해는 무엇보다도 작가가 살았던 현실 및 그곳의 문화 풍토에 대한 충분한 이해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당신도 아시다시피 서방 세계에서의 뮐러 문학에 대한 해석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으로 전개되어 왔습니다. 혹자는 과격할 정도로 파괴적인 실험적 특성 때문에 마르크스주의 문예 이론에 대한 일종의 배반으로 설명하였습니다. 혹자는 뮐러의 문학을 계몽에 대한 거대한 비판적 담론으로 받아들여, 포스트모더니즘 계열 속으로 편입시켰습니다. 또한 혹자는 문학 작품에 겉으로 드러난 작중 인물들의 비극적 최후 내지는 죽음을 중시하며, 뮐러 문학에서 ‘역사적 패배주의’라는 문제점들을 발견하려고 하였습니다. 나는 이러한 해석의 다양성 자체를 힐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45 동독문학 2025.03.29

박설호: (1) 브레히트 이후 독일 최대의 경악의 기록자, 하이너 뮐러

이어지는 글은 김형기 외 하이너 뮐러 연구의 서문이다. ......................... “도래하게 될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의 세기에는 오이디푸스는 하나의 코메디일 것이다.” (하이너 뮐러)“대담자: 하이너 뮐러씨, 걸프 전쟁에 즈음하여 지식인으로서 어떠한 비판적 발언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뮐러: 그건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대담자: (황당한 듯 침묵을 지킨다) 뮐러: 지식인의 시대는 끝났어요. 지식인은 그저 나처럼 TV만 쳐다보면 족할 뿐입니다.”  1.친애하는 K씨, 맨 먼저 다음의 말을 전하고 싶군요. 당신을 위해서 뮐러 연구서가 간행되는 데 대해 나는 지금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는 나 뿐 아니라, 여기에 참여한 모든 필자들도 아마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하이너 뮐러는 1995년..

45 동독문학 2025.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