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히트 56

서로박: 브레히트의 코리올란

브레히트는 1948년 비교적 늦게 동독에 정착했습니다. 구동독은 그에게 극장과 일자리를 제공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집필과 극작품 공연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브레히트는 사회주의 재건과 관계되는 소재에 매달리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 작가라면, 과거의 문화적 유산을 시민주의라는 이유로 모조리 배척할 게 아니라, 유산 가운데에서 옥석을 가려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나아가 사회주의 재건보다도 당면한 작업은 파시즘이라는 독소의 청산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브레히트는 현대에 살아가는 노동자의 문제를 문학적으로 형상화시키는 대신에, 역사적 소재를 다루기로 작심하였습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이전의 역사 속의 문제점을 냉철하게 투시할 수 있다는 게 극작가의 지론이었습니다. 브레히트는 ..

46 Brecht 2019.08.10

서로박: 브레히트의 연극을 위한 작은 오르가논

베르톨트 브레히트 (B. Brecht, 1898 - 1956)의 「연극을 위한 작은 오르가논 (Kleines Or- ganon für das Theater)」은 1949년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그는 1939년부터 집필한 "놋쇠 구입" 작업의 일환으로서 연극과 극예술에 관한 대화를 완성하지 못했는데, 평소에 이를 보완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본고에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새로운 오르가논”에 실린 77개의 경구적인 글에 착안하여) 연극에 관한 브레히트 자신의 구상이 담겨 있다. 감정 이입이라는 자연주의적 원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극 이론과 일맥 상통하고 있는데, 브레히트에 의하면 파시즘의 죄악을 지적하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한다. 그것은 [마치 부르주아들이 “마약 판매”로 재화를 벌면..

46 Brecht 2019.03.31

에테아 호프만, 혹은 분열된 인간

에테아 호프만 (1776 - 1822)은 독일 문학사에서 결코 망각될 수 없는 작가이다. 그는 작가이자, 음악가이며 화가로 활동했다. 그의 본명은 에른스트 테오도르 빌헬름 호프만이었는데, 평소에 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를 흠모하여, 자신의 이름을 에른스트 테오도르 아마데우스 호프만으로 명명하였다. 그는 1776년 쾨니히스 베르크에서 어느 변호사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에테아 호프만이 두 살 때 아버지는 어머니와 이혼하였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와 함께 친할머니 집에서 자랐다. 그가 약간의 왜곡된 성격을 소유하게 된 근본적 배경에는 눈치를 보아야 하는 주위 환경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에테아 호프만은 1792년에서 1795년 사이에 동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

9 문학 이야기 2019.01.25

서로박: 브레히트의 '부상당한 소크라테스' (2)

어느 제자가 집으로 들어서서 다음과 같은 소식을 전한다. 즉 온 아테네가 소크라테스의 영웅적인 행위로 열광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바깥의 왁자지껄한 소리를 자신에 대한 조소의 소리로 받아들인다. 시 당국이 주인공의 공적을 치하하려고 하자, 소크라테스는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그리고 공개적 모임이 적당하지 않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한다. 이후에 주인공의 친구 안티스테네스가 찾아와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고르기아스가 퍼뜨린 소문에 의하면 소크라테스는 적을 피해 도망쳤는데, 하필이면 적진으로 나아갔다는 것이다. 마지막에 알키비아데스가 등장하여, 아레오파고스 법원으로 동행하자고 주인공을 설득하려 한다. 이때 크산티페는 남편에게 눈짓을 보낸다. 이는 퉁퉁 부어오른 발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신호나 다..

46 Brecht 2018.12.06

서로박: 브레히트의 '부상당한 소크라테스' (1)

1. 브레히트는 독일의 극작가 게오르크 카이저 (G. Kaiser, 1878 - 1945)의 극작품 「구조된 알키비아데스 (Der gerettete Alkibiades)」을 읽고 단편 작품을 집필하게 되었다. 원래 카이저는 플라톤의 "향연 (Symposion)" 제 36장의 내용을 참조하여 극작품을 집필하였다. 실제 역사에 있어서 소크라테스는 발을 다쳐서 도망을 칠 수 없었는데, 이러한 계기로 인하여 그리스 군대는 델리온 (Delion) 전투에서 페르시아 군대를 무찔렀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델리온 전투는 페르시아 전쟁이 끝난 뒤, 펠로폰네소스 전쟁 동안에 (정확히 말하면 기원전 424년경에) 일어나, 수십 년 지속되었다고 한다. 브레히트는 카이저의 극작품 제 1장의 내용을 단편의 소재로서 채택하였다...

46 Brecht 2018.12.06

브레히트의 시: 젊은이에게 보내는 죽는 시인의 권고문

새로운 시대의 젊은이들이여, 아직 건설되지 않은 도시에서 새로운 여명을 받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들이여, 내가 죽으면, 나의 말소리를 그리 영광스럽게 듣지 말라. 오히려 나를 대하라, 밭을 갈지 않은 어느 농부처럼 다락방의 뼈대를 벌려놓고 사라진 어느 게으른 목수처럼. 그렇게 나는 시대를 허비했고, 나날을 탕진했다, 이제 너희에게 간곡히 부탁하노니 말하지 못한 것을 모조리 말하고 행하지 못한 것을 모조리 행하라, 또한 빨리 나를 잊어라, 부탁한다. 그래야 나의 나쁜 선례가 너희를 유혹하지 않을 테니까. 아, 왜 내가 불임 (不姙)의 인간들과 함께 식사하려고 그들이 마련하지 못한 식탁에 앉아 있었던가? 아, 왜 나는 그들의 한가로운 잡담 속에다 가장 좋은 말을 섞어 넣었던가? 그러나 밖에는 깨우치지 못한..

46 Brecht 2017.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