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만 13

(명저 소개) 완강함 속의 부드러움. 홍세화의『결: 거칢에 대하여』

2020년에 간행된 홍세화의 『결: 거칢에 대하여』 (한겨레 출판 2021)는 단순히 시대 비평을 넘어서, 인간 홍세화의 내적 성찰을 진솔하게 담고 있는 책입니다. 작가는 지금까지 프랑스와 한국에서 때로는 노동자로, 때로는 지식인으로 살아왔습니다. 국가보안법 그리고 반공법은 1970년대에 많은 사람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남민전”이라는 정치적 사건은 그를 20년 동안 프랑스에서 망명 아닌 망명 생활을 보내게 했습니다. 귀국 후에 홍세화는 자신의 글과 칼럼을 공개했는데, 이는 많은 사람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언젠가 독일의 시인, 볼프 비어만은 서독으로 연주 여행을 떠났는데, 동독은 그의 입국을 거부했습니다. 망명 아닌 망명 작가가 된 그는 다음과 같이 일갈했습니다. “추방당한 자에 대한 차단..

1 알림 (명저) 2024.04.19

(명시 소개) 서로박: (2) 최영철의 시 "길" (해설)

(앞에서 계속됩니다.) 행여 묵직한 주머니를 넉넉한 여비로 생각지 말게나 그 바람에 바삐 가야 할 길 얼마나 멀고 무거워졌겠는가 凹: 5행과 6행에서 갑자기 시적 화자가 등장합니다. 凸: 네, 시인이 직접 독자에게 무언가 알려주고 있습니다. 기실 인간은 모두 태어난 다음부터 죽을 때까지 어디론가 떠나는 여행객일 수 있어요. 사람들은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휴게소에 내려서 휴식을 취하거나 먹고 마십니다. 우리의 휴식은 어쩌면 고속도로를 지나치다 잠시 들르는 휴게소에서의 시간으로 비유될 수 있습니다. 凹: 아니면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 사이의 대비라고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요? “주머니”가 묵직한 사람과 가벼운 사람들은 제각기 씀씀이가 다르니까요. 凸: 좋은 지적이네요. 우리는 삶의 과정에서 원하든 원치..

19 한국 문학 2023.04.18

서로박: 루디 두치케

(루디 두치케는 아내 그레텐과 1968년 1월 10일 태어난 아들 "호세아-체" (예언자 호세아와 체 게바라의 합성 이름)와 함께 체고로 가서, 1968년 4월 9일 프라하 대학 강당에서 연설하였다. 사진의 왼쪽에는 두치케의 머리 부분이 보인다.) 루디 두치케는 1968년에 학생 운동을 이끌었던, 놀라운 지식인 운동가였습니다. 그는 불과 28세의 나이에 83세의 에른스트 블로흐와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는 당시에 어느 몰지각한 우익 청년에 의해서 세 발의 총상을 입었지요. 불행 중 다행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두치케의 뇌가 손상되었습니다. 시인, 볼프 비어만은 「루디 두치케에게 향한 세 발의 총성」에 관한 발라드를 불러서 독일 내의 우파, 어용 지식인 그리고 재벌들을 통렬하게 비판하였습니다. 언어 장애에 시..

2 나의 글 2022.10.01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

사회의 이슈 그리고 문제점을 예리하게 통찰하여 이를 언급하는 작가 - 그는 바로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 (1929 - )입니다. 그의 삶은 전형적인 지식인이자 비판적인 예술가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말년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독일 철학자 하버마스는 그의 시대적 감각을 높이 평가한 것은 사실입니다. "Er hat die Nase im Wind." (Habermas) 그렇지만 엔첸스베르거의 발언이 모조리 타당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서양의 작가 가운데에서 1929년 생은 참 많습니다. 철학자 하버마스, 엔첸스베르거, 하이너 뮐러, 크리스타 볼프, 밀란 쿤데라, 귄터 쿠네르트 등이 1929년생입니다. 시인,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는 1929년 남쪽 독일의 소..

9 문학 이야기 2022.09.01

서로박: 헤름린의 스카르다넬리

1970년 「의미와 형식」에 발표된 슈테판 헤름린 (1915 - )의 방송극 "스카르다넬리"는 횔덜린의 다른 이름이다. “스카르다넬리 Scardanelli”, 그는 누구인가? 실제로 살았던 자기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 횔덜린인가? 부오나로티 Buonarotti, 살바토레 로자 Salvatore Rosa는 이름과는 달리 세상을 붉게 구원하지 못하고 사라진, 당시 19세기의 무명 시인, 횔덜린의 가명이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슈테판 헤름린은 프랑스 팔레스티나 등지를 돌아다니며, 반 나치 저항 운동가로 활약하였다. 전후 구동독 지역에 정착한 그는 "대도시에 관한 12개의 담시들" 및 반파시즘 활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탁월한 중단편 소설들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헤름린은 구동독 지역에서 여러 명의 문화 ..

45 동독문학 2022.01.05

서로박: 횔덜린의 "히페리온" (4)

(앞에서 계속됩니다.) (12) 자연과 예술가를 무시하는 속물 비판: 횔덜린은 작품의 말미에 독일인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이는 독일인에 대한 비판 뿐 아니라, “신적 감정을 느끼기에는 너무나 우둔하며, 우미의 여신의 행복을 맛보기에는 골수까지 썩어 있는” 현대인들을 야유하기 위함입니다. 작가는 “예부터 야만인이었던 그 독일인들은 근면과 학문, 심지어는 종교에 의해서 더욱 야만스러워졌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성스러운 자연의 의미를 망각하고 눈앞의 이득에만 집착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독일의 일반 사람들이 예술가를 무시하고 경멸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대들 나라의 시인과 예술가를 볼 때, 아직도 정령을 존중하고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 선..

40 근대독문헌 2022.01.02

서로박: 횔덜린의 "히페리온" (3)

(앞에서 계속됩니다.) (8) 제 1부, 히페리온의 아테네 서한: 제 1권의 마지막 편지는 흔히 “아테네 서한” 내지 “아테네 연설”이라고 명명되는데 소설의 주제를 파악하는 데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히페리온은 여기에서 아테네 사람들을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구분할 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스스로 자라났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세계와의 행복한 일치감 속에서 생활했다는 것입니다. 고대인들은 신과 일치되는 본원적인 존재로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히페리온은 고대인들이 의식한 “칼로카가티아 καλοκἀγαθία”의 이상을 디오티마에게서 발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선과 아름다움은 구체적으로 드러난 절대성으로서 현실화된 유토피아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히페리온은 그것을 인간과 세계를 결합시키는..

40 근대독문헌 2022.01.02

"당신처럼 생각한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 비어만과 쿠네르트

사회: 비어만 씨, 당신의 새 앨범은 한 권의 책과 다를 바 없는데, “내 심장 조각 하나를 씹어 먹어라. Eins in die Fresse, mein Herzblatt”라는 상당히 공격적인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귄터 쿠네르트의 새로운 시집 제목은 전혀 다른 기상도에 의한 것으로서 “살인 조처 Abtötungsverfahren”입니다. 이는 두 개의 어떤 서로 다른 체험을 접하거나 마주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 아닐까요? 두 사람은 두 분단국가 독일에서 서로 유사한 경험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까? 한 사람은 쫓겨나고, 다른 한 사람은 자의에 의해서 나라를 떠났으니까요. 그렇지만 비어만의 경우 주어진 현재의 현실에 깊숙이 개입하여 무언가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아주 투쟁적이며, 때로는 거대한 노여움..

45 동독문학 2021.11.11

볼프 비어만: 바로 금지된 것이 우리를 자극하게 하니까

볼프 비어만: 바로 금지된 것이 우리를 자극하게 하니까 누구도 허용된 것을 즐겨 행하지 않아 바로 금지된 것이 우리를 자극하게 하니까 남자들, 질투심에 찬 너희가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의 바람피움으로 남자의 얼굴에 먹칠하는, 너희의 아름다운 여자를 사랑하면, 나는 충고하네, 질투심을 저버리라고 결혼반지의 단단한 수갑을 풀라고 아름다운 그미를 그냥 놔주라고 계약이 그미를 더 이상 옥죄지 않으면 그미는 오직 남자로서의 널 더욱 사랑하리라고 왜냐하면 이렇지, 누구도 허용된 것을 즐겨 행하지 않아 바로 금지된 것이 우리를 자극하게 하니까 인민들은 언제나 익살 떨었지 겸손도 존경심도 버린 채 익살들은 마치 스스로 곰삭은 독하고 달콤한 사과 소주야 그러나 인민들은 강요로 시어빠진 사과를 한입 덥석 씹지 않아 오 법..

7 D-Pop 2020.07.15

서로박: 비어만의 '이카로스에 관한 발라드'

아래의 글은 다음의 책에 실려 있다. 박설호: 작은 것이 위대하다, 독일 현대시 읽기, 울력 2007년. 294 - 299쪽. 볼프 비어만은 1936년 함부르크에서 공산주의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다. 그의 아버지는 조선소의 노동자였는데, 공산주의 활동으로 체포되어, 1943년 아우슈비츠의 강제 수용소에서 살해당하다. 비어만은 1953년 구동독으로 이주하여 훔볼트 대학에서 정치 경제학, 철학 그리고 수학 등을 공부하다. 첫 번째 가요를 발표했을 때, 동독의 관청은 이를 문제 삼았고, 1963년 그를 사회주의 통일당에서 제명시켰으며, 1965년 공연 금지 조처를 내리다. 1976년 서독 쾰른의 금속 노조의 초청으로 서독에서 연주 공연을 개최했을 때, 동독의 정부는 그를 추방시키다. 이후로 구동독에서는 끊임없..

45 동독문학 2019.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