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동독 사람들 가운데에는 과거 구동독 사회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를 우리는 "오스탈기Ostalgie"라고 명명한다. (이 조어는 "동쪽 + 향수Ost + Nostalgie"를 합성한 단어다.) 괴거를 동경하는 사람들은 극우의 세계관을 드러내는데, 구동독 지역에서 외국인 혐오가 극성을 부린 까닭은 이러한 심성과 관련된다. 과거의 순수한 독일인들의 행복이 오늘날 급변하는 정세에 의해서 침탈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의 극우파들은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를 품고 있다. 태극기 부대의 맹목적 과거에 대한 동경은 사회적 진보주의자들을 악마로 매도하고, 역사적 진보를 역행하게 만든다.
(앞에서 계속됩니다.)
11. 『심플 스토리즈』는 결코 간단한 이야기들이 아니다.: 친애하는 S, 슐체의 작품의 겉과 속은 분명히 다릅니다. 작품의 제목 역시 그러합니다. 작품의 제목 “간단한 이야기들”은 결코 심플한 스토리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작가는 제목 역시 의도적으로 영어와 달리 표기하였습니다. 슐체는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의 등장인물들이 체스 게임보다도 더 복잡하게 서로 얽혀 있다고 토로한 바 있습니다. 모든 에피소드는 슐체의 “간단한 이야기들”이라는 윤무 속에서 배열되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를 깨닫게 되면 어떤 전율 내지 끔찍함을 감지하게 될 것입니다.
아름답지만, 우리의 심리 속에 서슬을 돋게 하는 강강술래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게 관목 덤불 속에서 즐기는 사랑의 밀회든, 버림받은 사내들의 독백이든, 그게 아니라면 암담한 사업을 묘사하든 간에, 독자는 일견 편안하고 간결한 이야기 속에서 간간이 자신의 모골이 송연하게 되는 것을 감지하게 될 것입니다. 독자가 느끼게 되는 경악 내지 끔찍함의 반응은 서술 전략에서 비롯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급작스럽게 출현하는 죽음의 사건 때문도 아닙니다. 오히려 독자들은 여러 등장인물의 소외된 삶 속에서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런 식으로 살아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하고 여러 번 반문하게 됩니다.
12. 잉고 슐체, 게임을 즐기는 관찰자: 슐체는 게임을 즐기며 간간이 트릭을 사용하는 작가입니다. 나아가 그는 주어진 현실에 대한 예리한 관찰자이기도 합니다. 가령 두 명의 여인이 유리 바닥에서 마치 번개처럼 푸르게 번득이는 아스피린 알약을 오랫동안 응시하는 장면, 한 남자가 깊은 밤에 벌거벗은 채 TV 수상기 앞에 앉아 있는데, 새로 구매한 가죽 소파가 자신의 피부에 닿을 때 느끼는 오한의 장면 등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모든 세부적 묘사는 어떤 위협을 전해주는 암시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삶을 즐기려고 많은 물건을 구입했으나, 정작 물품들은 인간에게 보이지 않는 칼을 겨누고 있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노동청의 높은 계단 아래에는 그물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것은 실업자의 자살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드리워진 안전망입니다. 그럼에도 노동청을 찾는 사람들은 이를 다르게 해석합니다. 새로운 공동체의 “사회적 그물”에 대한 상징이라고 말입니다.
13. 구동독 출신의 사람들은 직장 외에 무엇을 상실했는가?: 물론 슐체의 작품은 이러한 사소한 대목에 커다란 비중을 두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작품은 동독지역 사람들의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실감을 급진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통일로 인한 사회적 변화에 병행하여 나타나는 제반 갈등과 위화감 등으로 파생되는 사항들입니다. 그렇기에 독자는 고색창연한 소도시, 알텐부르크에 관한 아름다움을 거의 접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에피소드 하나를 들어보겠습니다. 마르틴이라는 이름을 지닌 어느 사내는 생선 요리 음식점의 전단지를 돌리기 위하여 잠수부 차림으로 슈투트가르트 시내 한복판을 어슬렁거리다가 행인에게 얻어터집니다. 물갈퀴가 어느 행인의 발을 밟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술사를 전공했지만, 자신의 학문을 계속할 수 없어서 일용직 노동자로서 오로지 광고지만 뿌리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 남자의 동거녀 레니는 “원래 우리에게는 언제나 행운이 따랐답니다.”하고 말합니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물구덩이를 첨벙거리면서 지나칩니다. 주위에는 팡파르와 함께 경쾌한 음악이 울려 퍼지지만, 이는 두 사람의 내면과는 전혀 반대되거나 대조되는 축제의 풍경으로 인지되고 있습니다.
14. 동독 출신 사람들의 의식 구조, 그들의 불안과 고립화 현상: 처음부터 잉고 슐체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구동독 지역의 고향 사람들의 의식 구조 그리고 그들의 일상이었습니다. 작가는 분명히 좌우를 살피지도 않고, 그렇다고 과거를 되돌아보지 않은 채 살아가는 동시대 고향 사람들을 때로는 측은한 눈빛으로, 때로는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슐체는 구동독 인들이 어느 정도 전체주의적 분위기에서 살았으므로 삶에 있어서의 적극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측면 또한 예리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앞장서서 행동하기를 껄끄러워하고, 자신의 의지를 타인의 의지 앞에 포기해버립니다. 이러한 특성은 서독 사람들에게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행동입니다. 그래, 모든 이야기들은 얼핏 보기에는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으로 이해될 수 있지만, 그 속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이끌러 살아가야 하는 서글픔 역시 도사리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우리는 『심플 스토리즈』에서 겉으로는 우스꽝스러우나, 속으로는 극도의 페이소스의 감정을 드러내는 에스파냐의 “악한 소설 Schelmenroman”의 희비극적인 요소를 재발견할 수 있습니다.
출전:
- 박설호, 구독독에 대한 희비극적 시각, 실린 곳: 박설호, 실패가 우리를 가르친다. 열린책들2013, 247 - 258쪽.
한국어 문헌
- 류신: 북해로 가는 길. 잉고 슐체의 소설 "심플 스토리즈"에 나타난 통일 이후 동독인의 삶의 변화, in: 독일 언어문학, 37권, 2007, 143 - 161쪽.
- 정영호: 통일 이후 삶의 변화와 희망, 통일 사회를 서술한 잉고 슐체의 '심플 스토리'와 이응준의 '국가의 사생활'을 중심으로, 인문과학, 128권, 연세대 인문과학 연구소, 128권 2023, 7 - 39쪽.
최문선: 미지수가 많은 방정식. 잉고 슐체의 '아담과 에블린'에 나타난 전환기, 독일언어문학, 94권 2021, 97 - 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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