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S, 오늘은 1962년에 태어난 작가, 잉고 슐체의 장편 소설 『새로운 삶들 Neue Leben』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잉고 슐체는 사회주의의 동독 사회에서 그냥 자라났습니다. 여기서 “그냥”이라는 표현을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시인 우베 콜베 Uwe Kolbe가 “안에서 태어난 hineingeboren” 젊은이라고 자신을 지칭한 것도 이와 관계됩니다. 이들 문학 속에는 비더마이어 풍의 체념이 짙게 배여 있습니다. 동독의 젊은 세대는 대체로 사회주의 이념에 열광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조건 서방세계를 동조하지도 않았습니다. 한 가지 작은 목표를 설정하여, 이를 막연히 추구한다고 할까요?
어쨌든 이들 세대는 대체로 정치적 저항에 익숙하지 못하며, 주어진 현실에 갑갑함을 느끼면서 살았습니다. 슐체는 튀링겐의 소도시 알텐부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예나 대학에서 고전 문학을 전공한 뒤에 알텐부르크 국립 극장에서 연출가로 활약할 무렵, 통일이 이루어졌습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후부터 독일 사회는 엄청난 속도로 변화를 거듭합니다. 슐체는 통일 직후에 작가 지망의 꿈을 접고, 저널리스트로 활약합니다. 1990년에 알텐부르크 주간 신문 Altenburger Wochenblatt이 창간되었는데, 여기에 직접 관여한 사람이 바로 잉고 슐체였습니다.
작품 『새로운 삶들』은 7년 후의 집필 작업 끝에 2005년에 간행된 고심작입니다. 작품은 말미에 첨가된 주인공 튀르머의 저평가된 작품 100페이지를 포함하여, 총 800 페이지의 두터운 분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작품이 발표되자, 사람들은 『새로운 삶들』을 전환기 소설의 백미라고 칭찬했습니다. 혹자는 “주인공은 독자의 마음을 극도로 감동시키지는 못했지만, 전환기 이후의 삶을 적절하게 표현했다.”고 말했습니다. 혹자는 슐체의 작품이 재미있게 기술된 “패망의 이야기”라고 논평하였습니다.
작가는 “동독의 비참하고 우스꽝스러운 현실을 패러디할 뿐 아니라, 통일된 독일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광고 고객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장사꾼의 우습고도 슬픈 이야기를 전해준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전환기의 소설이라기보다는 예술가 소설에 편입시켰으며, 혹자는 작품의 다층적 시각, 분석력 그리고 직관을 높이 평가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신문의 문예란에 기술된 논평들입니다. 『새로운 삶들』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 논문이 발표되려면, 약간의 시간이 흘러야 할 것 같습니다.
『새로운 삶들』은 서간체 소설입니다. 맨 처음 서문에는 가상적인 편집자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주인공 엔리코 튀르머의 습작품들을 신랄하게 비판하지만, 그가 남긴 일련의 편지에 관해서는 비교적 호의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말하자면 인간의 내적 고뇌를 진솔하게 담은 수작 (秀作)이라는 것입니다. 소설의 가상적인 편집자는 바로 작가 자신을 가리킵니다. 나중에는 주인공 튀르머와 가상적인 편집자의 이력이 워낙 비슷하기 때문에, 나중에 독자는 이들을 서로 구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소설의 마지막에는 주인공 엔리코 튀르머의 습작품이 자료의 형식으로 작품의 말미에 첨부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의 작품 배열은 독일 낭만주의 작가, E.T.A. 호프만 E.T.A. Hoffmann이 1819년과 1821년에 발표한 소설, 『수고양이 무어의 삶에 관한 견해 Lebensansichten des Katers Murr』를 연상하게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소설 속에 설정되어 있는 튀링겐 지역의 소도시, 알텐부르크는 중세 유럽 내지는 독일 낭만주의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적합합니다.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슐체의 작품에는 클레멘스 폰 바리스타 백작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의 작업은 마치 메피스토펠레스의 사악한 짓거리들을 방불케 합니다. 이 점을 고려할 때 작품 『새로운 삶들』은 괴테 Goethe의 『파우스트』 그리고 토마스만 Thomas Mann의 소설 『파우스트 박사』를 연상시킵니다.
작품은 주인공 엔리코 튀르머가 세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통일된 독일 사회 및 변화 과정의 여러 단계들은 주인공의 편지 속에 체계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엔리코 튀르머는 작가와 비슷한 이력을 지닌 문학 지망생입니다. 그는 스타지에 가담하지 않았으며, SED 당원도 아니었고, 시민운동가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감정에 그다지 솔직하지 못한, 국외자로서의 문학도일 뿐입니다. 주인공은 세 명의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자신의 유년기와 청춘시대, 1989년 전후의 시기 그리고 1990년 이후의 현재 삶을 반추하고 있습니다. 모든 편지는 1990년 전반기에 집필된 것인데, 작품은 통독 직후의 독일인들의 생활상을 간접적이나마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자본에 익숙하지 않은 동독인들은 통일과 사회 변화에 대해서 다소 순진무구한 자세로 임했습니다. 이에 비하면 서방세계 사람들은 동독 지역의 사람들을 심리적으로 업신여기고, 구동독 지역을 오로지 어떤 새로운 투자 지역으로 고찰했을 뿐입니다. 동독 사람들은 서방세계의 자본의 논리의 희생양이 되었고, 이로 인하여 그들의 자존심은 심각할 정도로 타격을 입었습니다. 작가는 이러한 상황을 작품 속에 자세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특히 1990년 3월의 선거에서 “새로운 포럼 Neues Forum”에 속했던 동독의 인권옹호자들은 겨우 2.8 퍼센트의 득표율을 얻게 되었으며, 서독 마르크가 어떻게 도입되었는가? 하는 과정 역시 작품 속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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