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주인공은 편지의 수취인들과 제각기 기이한 애정 관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수취인은 누나인 베로츠카, 즉 베라입니다. 엔리코 튀르머는 어린 시절부터 베라를 누나로 생각한 게 아니라, 연인으로 간주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베라에 대한 주인공의 사랑은 실현될 수 없는 것이었으므로, 튀르머는 고통스럽게 청년 시절을 보낸 게 분명합니다. 편지의 행간에는 두 사람 사이의 근친상간을 암시하는 대목이 나타납니다. 튀르머는 베라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이 어떻게 알텐부르크 신문의 창간을 위해 노력해 왔는가? 하는 점을 서술합니다. 편지의 두 번째 수취인은 어린 시절의 친구, 요한 칠케라는 남자입니다. 요한은 매우 영리한 젊은이로서 주인공과 함께 드레스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동독에서 작가가 되기를 꿈꾸었지만, 통독 후에 정치적 경력을 쌓아서 동독 지식인의 그룹 “새로운 포럼 neues Forum”의 대표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편지에서 드러나는 주인공의 감정은 동성연애의 의혹을 불러일으킵니다. 편지의 세 번째 수취인은 서독 출신의 사진작가, 니콜레타 한젠이라는 처녀입니다. 주인공은 니콜레타를 통일 직후에 베를린에서 사귀게 되었습니다. 니콜레타는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거침이 없고, 자발적이고 자유분방한 여성입니다. 주인공 튀르머는 그미에게 동독 지역에서 자신이 어떻게 유년시절과 청년 시절을 보내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려줍니다. 작품의 수취인들은 주인공의 과거 기억, 현재의 상황 그리고 주인공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 등을 직접 접하는 인물들입니다. 주인공은 베라에게는 현재의 이야기를, 니콜레타에게는 과거의 삶을, 요한에게는 자신의 미래의 기대감을 털어놓습니다.
작품은 일견 엔리코 튀르머가 일기로 서술한 자서전처럼 보입니다. 이를 고려하면 『새로운 삶들』은 마치 교양소설 내지 발전 소설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가령 작품 속에는 다음의 사항들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주인공이 어떤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는가? 주인공의 주위환경은 얼마나 신비롭고 이국적인 정서로 가득 차 있는가? 주인공은 어떤 테마를 즐겨 접하려고 애를 썼는가? “동독 군대 NVA”에서 보내던 군복무 생활은 어떠했는가? 등의 질문 말입니다. 이러한 질문을 던진 사람은 니콜레타였는데, 주인공은 이에 대해서 상세하게 답변합니다.
친애하는 S, 편지 속에서 나타난 특징 가운데 두 가지 사항을 미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주인공은 다음과 같이 술회합니다. “나의 잘못된 삶은 작가 지망생이었던 나를 망쳐놓았다.” 고통이 클수록 문학은 위대한 법인데, 세상은 자신으로 하여금 작가가 되지 못하게 하였고, 돈에 맹종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새로운 삶들』은 지나간 삶에 대한 주인공의 참회록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특징으로 우리는 주인공의 흐릿하고 소극적인 정치관을 들 수 있습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튀르머는 작가 지망생으로 습작에 몰두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에 발생한 일련의 데모에 너무나 신중하게 소극적으로 대응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작가의 정치관 내지 아웃사이더로서의 냉담하고도 무관심한 자세를 엿볼 수 있습니다.
독일 현실의 변화 과정과 주인공 튀르머의 삶의 변화 과정은 평행을 이룹니다. 주인공은 정치적 전환기를 자신의 삶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로 삼습니다. 지금까지 엔리코 튀르머는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죽음의 기나긴 잠에 빠져 있었으나, 89/90년을 맞이하여 자신의 앞에 도사린 삶의 가능성을 인지합니다. “이제 나의 과거 삶은 지나갔다. 아니,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게 낫다. 이제 나는 비로소 살아가기를 시작했다고.” (655쪽) 주인공은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으려고 결심합니다. “마침내 나는 문학, 시대를 담는 문학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 갑자기 살기 위해서 삶을 즐기기 위해서 여기 존재하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아무 것도 창조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656쪽) 엔리코 튀르머는 지금까지 세상을 수동적으로 서술하는 집필 행위에 더 이상 몰두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그는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사업가의 삶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는 한마디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독서 국가 der künstlich gemachte Lesestaat”인 동독으로부터 통일된 독일이라는 “매체 시장 市場”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튀르머는 지식인으로서 작가가 되어서 인민을 계도하고 바른 말을 들려주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통일이 된 다음에는 출판 시장의 풍토가 완전히 변화된 것을 인식합니다. 작가의 신세는 주인공의 눈에는 마치 “독자들의 구미를 고려한 작가 Möchtegerndichter”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참담한 인식이 그로 하여금 극작가 내지 작가의 직업을 포기하고, 저널리스트 내지 신문사 사장으로 살도록 자극합니다. 최소한 문학을 수단으로 하여 돈 벌거나, 독자를 우롱하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주인공 튀르머는 자신의 직업 전환을 무조건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광고 잡지의 사장이 되어서 사업의 확장을 기획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추진하는 사업은 탄탄대로에 놓여 있고, 그의 은행 계좌에는 날이 갈수록 거금이 쌓여갑니다. 비행기를 타고 몬테카를로로 향할 때, 튀르머는 자신이 마치 장 폴 벨몬드의 영화 속에 있는 것처럼 착각에 사로잡힙니다.
이러한 사업을 성공리에 달성하게 된 배경에는 클레멘스 폰 바리스타의 술수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주인공은 다리를 절뚝거리는 기이한 신사를 자신의 회사에 고용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클레멘스 폰 바리스타 백작이었습니다. 백작은 황금을 마음대로 주물럭거리는, 음험한 마이더스 Midas의 분신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모든 사업적 수완을 발휘하여 이득을 챙기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처럼 행동합니다. 주인공이 백작과 만나게 된 계기는 베를린 출신의 낭만주의 작가, 아델베르트 샤미소 Adelbert Chamisso의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Peter Schlemihl's wundersame Geschichte』를 연상시키게 합니다.
샤미소의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페터는 어느 날 어느 상인을 만납니다. 상인은 자신에게 그림자를 파는 대가로 돈을 주겠노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자신의 그림자를 동전이 가득 담긴 자루와 교환합니다. 페터는 자신이 부자가 되었다고 좋아했지만, 주위 사람들은 그림자 없는 인간에 조소를 퍼붓습니다. 결국 그는 시종, 벤델과 함께 인정이 드문 요양지역으로 떠나서, 그곳에서 칩거하면서 살아갑니다. 어느 날 페터는 아름다운 아가씨 민나에게 연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페터의 두 번째 시종인 라스칼은 주인공에게 그림자가 없다는 비밀을 퍼뜨리고 맙니다. 민나의 아버지는 자신의 딸을 그림자 없는 인간에게 줄 수 없노라고 공언합니다. 민나와 결혼하려면 일단 그림자부터 찾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페터는 자신이 그림자를 팔았던 상인을 찾아갑니다. 알고 보니 상인은 악마로 밝혀집니다. 악마는 페터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영혼을 주면, 그림자를 돌려주겠노라고 말입니다. 페터는 동전이 가득한 자루를 돌려주면서 악마를 물리칩니다. 나중에 페터는 돈의 일부로 “칠 마일을 달릴 수 있는 장화”를 구입합니다. 나중에 그는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마치 샤미소의 소설에서 주인공이 잠시 악마에게 그림자를 팔아넘기듯이, 『새로운 삶들』의 주인공은 사악한 백작, 클레멘스 폰 바리스타에게 모든 사업적 권한을 맡깁니다. 백작은 돈을 벌고 이득을 취하는 데 있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극작품에 나오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장사꾼, 샤일록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인물입니다. 끔찍한 것은 어느 누구도 클레멘스에게 자신을 돌아보라고 충고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문학 평론가 우베 비트슈톡 Uwe Wittstock의 주장에 의하면 클레멘스 폰 바리스타는 성서에 나오는 악마와 다름이 없는 인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작품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 사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소설은 주인공 엔리코 튀르머의 경제적 성공의 정점에서 중단되기 때문입니다. 소설의 첫 부분에서 가상적 편집자는 소설의 끔찍한 결말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마치 E.T.A. 호프만의 작품의 주인공 수컷고양이 무어와 크라이슬러가 극단의 혼돈 속에서 이중적인 자아를 인지하듯이, 『새로운 삶들』의 주인공, 엔리코 튀르머는 -비록 금전적 풍요로움을 얻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맙니다.
(3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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