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20전독문헌 56

서로박: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3)

12. 광기 속의 갈망의 상: 가령 모스브루거라는 기이한 사내는 홍등가에서 일하던 창녀를 깊이 사랑하다가 그미를 살해합니다. 그후에 그는 광기에 사로잡힌 채 수감 생활을 영위합니다. 주인공 울리히는 재판에 참관하여 모스브루거가 행한 모든 사항을 경청합니다. 이때 그는 사람들의 고유한 인간성 그리고 이를 둘러싼 현실적 관련성이 상호 왜곡되어 일그러져 있음을 감지하게 됩니다. 모스그루버의 광적인 망상은 니체의 디오니시오스의 사고와 연결될 수 있는데, 울리히는 찬란한 자유 그리고 지고의 천국의 삶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이와 조우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울리히는 현재의 현실이라는 비밀스러운 메커니즘을 통찰함으로써, 더욱더 주어진 현실과는 다른 어떤 자유 내지 천상에 관한 근원적인 삶을 동경하게 됩니다. 소설의 ..

43 20전독문헌 2021.03.14

서로박: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2)

5. 시대의 이율배반을 담다.: 주인공, 울리히는 자신의 시대가 어떤 말할 수 없는 이율배반 때문에 하자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율배반은 논리 그리고 감정, 인과율 그리고 개연성, 학문에 대한 믿음 그리고 문화적 염세주의 등의 대립적인 카테고리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전통적 교양 소설에서의 영웅과는 달리, 철학적 정신사적 영역을 통합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울리히는 주어진 현실에서 조우하는 사건을 하나씩 서술할 뿐 아니라, 동시대의 여러 가지 정신과학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기도 합니다. 가령 우리는 무신론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니체, 경험적 절충 이론을 내세운 물리학자이자 감각심리학자인 에른스트 마흐, 성격이론과 생물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루드비히 클라게스, 미국 ..

43 20전독문헌 2021.03.14

서로박: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1)

1. 가능성의 인간: 로베르트 무질 (1880 - 1942)의 미완성 대작 『특성 없는 남자』는 20세기 초 문학 유토피아의 유형적 특징을 명시적으로 표방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세기말의 병든 유럽 사회의 시대정신을 예리하게 지적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 의미심장한 유토피아의 성분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주인공은 인간 소외, 계층적 차이 그리고 전통적 가정 제도 등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자의에 의해서 사회로부터의 모든 관계망을 차단시키려고 합니다. 이로써 강조되는 것은 정확성과 개방성입니다. 이것은 어떤 가능한 현실 내지 가능성의 사고와 관련됩니다. 가령 주인공은 실제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게 아니라, 어떠한 외적 강령에 의해 조종당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설정한 고유하고도 가치 있는 삶을 찾으..

43 20전독문헌 2021.03.14

서로박: 포이히트방거의 유대인 쥐스

리온 포이히트방거 (1884 - 1958)의 역사 소설, "유대인 쥐스 (Jud Süss)"는 1925년에 간행되었다. 미래 및 현재와의 관련성을 고려하여, 포이히트방거는 대중 속에 만연해 있는 반유대주의의 근원과 그 두 가지 갈래를 분석하고 있다. 요젭 쥐스 오펜하이머는 유대인 쥐스라고 불리는데, 유대인의 피를 절반 물려받았다. 그는 1692년 하이델베르크에서 태어나, 1732년에 뷔르템베르크의 공작, 칼 알렉산더 왕자의 재정 보좌관이 되었다. 당시 신교 중심으로 형성된 백성들은 구교를 신봉하는 공작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당시 백성들은 공작과 재정 보좌관에 대해 저항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왜냐하면 재정 보좌관은 다만 조언하는 역할만 담당했지만, 서서히 실세를 장악하기 시작했기 때문..

43 20전독문헌 2021.03.05

서로박: 카를 비틀링거의 은하수를 아시나요?

친애하는 W, 독일의 극작가, 카를 비틀링거 (Karl Wittlinger, 1922 - 1996)의 극작품 「은하수를 아시나요? Kennsen Sie Milchstasse?」는 정신병원에 수감된 환자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맨 처음 이 작품을 감상했을 때 나는 20대의 젊은이였습니다. 나에게 오랜 감동을 전해준 것은 무엇보다도 줄거리의 구성과 배우들의 무대 위에서의 연기 등이었습니다. 아마추어 배우들 역시 얼마든지 훌륭하게 연기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려준 작품이 바로 「은하수를 아시나요?」였으니까요. 그로부터 8년후에 나는 독일 뮌헨의 극장에서 레싱의 극작품, 「에밀리아 갈로티」의 공연을 접하였습니다. 연극 관람 후에 나의 뇌리에 떠오른 것은 레싱의 작품이 아니라, 십여 년 전에 감상..

43 20전독문헌 2021.02.03

서로박: 카이저의 아침부터 자정까지

친애하는 J, 게오르크 카이저 (G. Kaiser, 1878 - 1945)의 극작품 「아침부터 자정까지 (Von Morgens bis Mitternachts)」는 1912년에 집필되어, 1917년 4월 28일 뮌헨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카이저의 명성을 드높였을 뿐 아니라, 당시에 횡행하던 표현주의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문학사에서 자주 소개되었지만, 정작 줄거리 및 작품의 주제에 관해서 정확히 알려진 바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위하여 줄거리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귀부인이 소도시 W에 나타납니다. 나이는 30대 후반 정도 되었지만, 그미의 얼굴과 몸매는 여전히 뭇 사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정도로 훌륭했습니다. 귀부인은 넓은 ..

43 20전독문헌 2020.11.15

서로박: 프리드리히 볼프의 '맘록 교수'

오늘은 구동독에서 브레히트와 함께 쌍벽을 이루던 극작가 프리드리히 볼프 (Friedrich Wolf, 1888 - 1953) 그리고 그의 극작품, 「맘록 교수 (Professor Mamrock)」에 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브레히트에 관해서는 많은 연구가 있지만, 프리드리히 볼프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는 우리나라에서 전무한 실정입니다. 특히 전통적 형식의 연극 이론을 추종한다는 점에서 그는 브레히트와 반대되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은 새로운 시대에 걸 맞는 극적 형식이 아닌가요? 따라서 이 자리에서 프리드리히 볼프의 문학을 언급한다는 것은 의미가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프리드리히 볼프는 극작가로서 활동한 것 외에도 의사로 활동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구동독의 안기부장, 마르쿠스 볼프 (Ma..

43 20전독문헌 2020.09.18

서로박: 게오르크 카이저의 구조된 알키비아데스

표현주의에 속하지만, 표현주의적 예술 사조를 뛰어넘은 극작가, 게오르크 카이저 (G. Kaiser, 1878 - 1945)의 「구조된 알키비아데스 (Der gerettete Alkibiades)」는 1917년에서 1919년 사이에 집필되었으며, 1920년 1월 29일에 뮌헨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다. 극작품은 기원전 약 400년경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소재로 삼고 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아테네의 젊은 장수이자 폴리스 수상인 알키비아데스는 죽음의 위협에 처했다가 포티데아 출신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에 의해 구조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향연 (Symposion)"의 육체적 아름다움과 정신적 아름다움의 대립에 관한 대화극을 통해서 정반대로 기술되고 있다. 극작가 카이저는 플라톤의 대화를 인..

43 20전독문헌 2020.08.21

서로박: 릴케의 말테의 수기 (2)

6. 아베로네와의 만남, 제 2부: 말테의 수기의 공간은 다시 역사적 공간으로 확장됩니다. 말테는 과거에 간접적으로 접했던, 잊힌 역사적 인물들 (그리샤 오트레포프, 칼 대제, 칼 6세, 아비뇽의 교황 등)을 기억해냅니다. 이러한 인물들은 역사에 실존했던 인물이지만, 말테의 뇌리 속에서 놀랍게도 “궁핍과 가난의 언어”로써 기이하게 상징화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이어지는 것은 그의 친척인 마만 Maman과 함께 지냈던 생활에 관한 기억입니다. 마만은 말테보다 약 열 살 정도 더 나이든 처녀였는데, 말테는 그미를 몹시 따랐습니다. 말 테는 마만의 나이어린 동생, 아베로네를 마음속으로 사랑했습니다. 아베로네를 만나던 기억에 관한 묘사는 작가의 사랑에 대한 은밀한 입장 표명과 교차되어 나타납니다. 아베로네를 ..

43 20전독문헌 2019.06.07

서로박: 릴케의 말테의 수기 (1)

1. 시인 릴케의 유일한 산문 작품: 친애하는 J, 『말테의 수기』는 장미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1875 – 1926)가 남긴 유일한 산문작품입니다. 1904년 로마에서 릴케는 일기 형식으로 모든 것을 기록하였고, 1908년에서 1910년 사이에 다시금 파리에서 완성하였습니다. 작품은 모두 71편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일정한 줄거리로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일기 형식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그리고 서술에 있어서 몽타주 기법이 동원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이야기는 산만하고 난삽합니다. 그렇기에 작품은 어떤 의도적 단편적 미완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말테의 수기』는 19세기의 리얼리즘 소설과는 급진적인 차이를 지닙니다. 일관된 스토리도 없고, ‘소설적 화자’ 역시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

43 20전독문헌 2019.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