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20전독문헌 61

서로박: 한스 헤니 얀의 강변 없는 강

함부르크 출신의 망각된 소설가, 한스 헤니 얀 (H. H. Jahnn, 1894 - 1959)은 독일 문학사에 기인으로 꼽힌다. 그는 주로 오르겔을 제작하는 기술로 생계를 유지했으며, 틈만 나면 말을 사육하고, 소설을 썼다. 어린 시절부터 지니게 되었던 동성애의 감정은 그로 하여금 비사교적인 인물로 만들었다. 그의 친구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혹자는 그를 “독일의 스트린드베리”라고 일컫기도 했다. 오늘은 그의 미완성 소설 "강변 없는 강"에 관해서 거론해 보기로 한다. 소설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제 1장, “나무배”는 1949년에 간행되었고, 제 2장, “49세가 된 구스타프 아니아스 호른의 글”은 두 권의 분량으로서 1949년 그리고 1950년에 간행되었으며, 제 3장, “에필로그”는 얀이 죽..

43 20전독문헌 2021.09.18

서로박: (2)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트문트

6. 서울 가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골트문트는 사랑에 잘 끌리고, 외로움을 잘 타는 섬세한 청년이었습니다. 외로움은 그로 하여금 끝없이 사랑을 갈구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단조로운 삶은 그로 하여금 어디론가 멀리 방랑하게 했습니다. 한마디로 주인공의 사랑에 대한 갈망과 방랑벽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유래한 것이었습니다. 골트문트의 이러한 특성은 주인공의 친구 나르치스에게는 전혀 발견되지 않습니다. 나르치스는 진리와 사랑을 누구보다도 신에게서 발견하려고 처음부터 작심하고 있었지요. 그렇기에 그는 세속적 삶과 사랑의 유혹을 받지 않고, 수도원 속에서 안온한 마음으로 명상에 침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 사람 모두 다른 길을 걸어가면서 인간 삶의 깊은 뜻을 체득해 나간다는 사실입니다. 나..

43 20전독문헌 2021.08.01

서로박: (1)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트문트

1. 주인공 수도원 생활을 영위하다: 친애하는 L, 오늘은 헤르만 헤세 (1877 - 1962)의 소설, 『나르치스와 골트문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소설은 처음에는 「어느 우정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채 1930년 발표되었습니다. 작품은 중세의 수도원을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젊은 선생, 나르치스는 조숙한 학자로서, 계속하여 스스로 수도원에서 살아가기를 선택합니다. 그는 영리하고 냉정하지만, 인간미가 없는 사람입니다. 이에 비해 골트문트는 어리석고 실수를 저지르지만, 따뜻한 심성의 소유자입니다. 친애하는 L,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식을 보면, 그 부모가 어떠한 사람인지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골트문트는 타의에 의하여, 그러니까 아버지의 강요에 의해서 수도원 생활을 영위해야 합니..

43 20전독문헌 2021.08.01

서로박: 카이저의 구조된 알키비아데스

표현주의에 속하지만, 표현주의적 예술 사조를 뛰어넘은 극작가, 게오르크 카이저 (G. Kaiser, 1878 - 1945)의 「구조된 알키비아데스 (Der gerettete Alkibiades)」는 1917년에서 1919년 사이에 집필되었으며, 1920년 1월 29일에 뮌헨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다. 극작품은 기원전 약 400년경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소재로 삼고 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아테네의 젊은 장수이자 폴리스 수상인 알키비아데스는 죽음의 위협에 처했다가 포티데아 출신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에 의해 구조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향연 (Symposion)"의 육체적 아름다움과 정신적 아름다움의 대립에 관한 대화극을 통해서 정반대로 기술되고 있다. 극작가 카이저는 플라톤의 대화를 인..

43 20전독문헌 2021.05.31

서로박: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4)

16. 정확성과 개방성, 무질의 소설적 구상의 두 가지 원칙: 요약하건대 무질의 세계관은 누구보다도 루드비히 클라게스의 『영혼의 대척자로서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무질의 소설적 구상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실제 현실적 사건과 구분되는 주인공 고유의 원칙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20세기 중엽 유럽의 관습, 도덕 그리고 법의 관점으로서의 객관적 원칙과 반대되는 주인공의 고유한 삶의 원칙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원칙은 정확성을 가리키는데, 이는 클라게스가 말한 외면당하는 정신의 확고한 의미를 되찾으려는 노력에서 발견됩니다. 무질의 작품은 20세기 유럽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의 근본적인 자유가 주어진 현실 속에서 파편화된 질서와 결코 화해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

43 20전독문헌 2021.03.17

서로박: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3)

12. 광기 속의 갈망의 상: 가령 모스브루거라는 기이한 사내는 홍등가에서 일하던 창녀를 깊이 사랑하다가 그미를 살해합니다. 그후에 그는 광기에 사로잡힌 채 수감 생활을 영위합니다. 주인공 울리히는 재판에 참관하여 모스브루거가 행한 모든 사항을 경청합니다. 이때 그는 사람들의 고유한 인간성 그리고 이를 둘러싼 현실적 관련성이 상호 왜곡되어 일그러져 있음을 감지하게 됩니다. 모스그루버의 광적인 망상은 니체의 디오니시오스의 사고와 연결될 수 있는데, 울리히는 찬란한 자유 그리고 지고의 천국의 삶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이와 조우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울리히는 현재의 현실이라는 비밀스러운 메커니즘을 통찰함으로써, 더욱더 주어진 현실과는 다른 어떤 자유 내지 천상에 관한 근원적인 삶을 동경하게 됩니다. 소설의 ..

43 20전독문헌 2021.03.14

서로박: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2)

5. 시대의 이율배반을 담다.: 주인공, 울리히는 자신의 시대가 어떤 말할 수 없는 이율배반 때문에 하자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율배반은 논리 그리고 감정, 인과율 그리고 개연성, 학문에 대한 믿음 그리고 문화적 염세주의 등의 대립적인 카테고리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전통적 교양 소설에서의 영웅과는 달리, 철학적 정신사적 영역을 통합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울리히는 주어진 현실에서 조우하는 사건을 하나씩 서술할 뿐 아니라, 동시대의 여러 가지 정신과학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기도 합니다. 가령 우리는 무신론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니체, 경험적 절충 이론을 내세운 물리학자이자 감각심리학자인 에른스트 마흐, 성격이론과 생물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루드비히 클라게스, 미국 ..

43 20전독문헌 2021.03.14

서로박: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1)

1. 가능성의 인간: 로베르트 무질 (1880 - 1942)의 미완성 대작 『특성 없는 남자』는 20세기 초 문학 유토피아의 유형적 특징을 명시적으로 표방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세기말의 병든 유럽 사회의 시대정신을 예리하게 지적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 의미심장한 유토피아의 성분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주인공은 인간 소외, 계층적 차이 그리고 전통적 가정 제도 등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자의에 의해서 사회로부터의 모든 관계망을 차단시키려고 합니다. 이로써 강조되는 것은 정확성과 개방성입니다. 이것은 어떤 가능한 현실 내지 가능성의 사고와 관련됩니다. 가령 주인공은 실제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게 아니라, 어떠한 외적 강령에 의해 조종당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설정한 고유하고도 가치 있는 삶을 찾으..

43 20전독문헌 2021.03.14

서로박: 포이히트방거의 유대인 쥐스

리온 포이히트방거 (1884 - 1958)의 역사 소설, "유대인 쥐스 (Jud Süss)"는 1925년에 간행되었다. 미래 및 현재와의 관련성을 고려하여, 포이히트방거는 대중 속에 만연해 있는 반유대주의의 근원과 그 두 가지 갈래를 분석하고 있다. 요젭 쥐스 오펜하이머는 유대인 쥐스라고 불리는데, 유대인의 피를 절반 물려받았다. 그는 1692년 하이델베르크에서 태어나, 1732년에 뷔르템베르크의 공작, 칼 알렉산더 왕자의 재정 보좌관이 되었다. 당시 신교 중심으로 형성된 백성들은 구교를 신봉하는 공작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당시 백성들은 공작과 재정 보좌관에 대해 저항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왜냐하면 재정 보좌관은 다만 조언하는 역할만 담당했지만, 서서히 실세를 장악하기 시작했기 때문..

43 20전독문헌 2021.03.05

서로박: 카를 비틀링거의 은하수를 아시나요?

친애하는 W, 독일의 극작가, 카를 비틀링거 (Karl Wittlinger, 1922 - 1996)의 극작품 「은하수를 아시나요? Kennsen Sie Milchstasse?」는 정신병원에 수감된 환자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맨 처음 이 작품을 감상했을 때 나는 20대의 젊은이였습니다. 나에게 오랜 감동을 전해준 것은 무엇보다도 줄거리의 구성과 배우들의 무대 위에서의 연기 등이었습니다. 아마추어 배우들 역시 얼마든지 훌륭하게 연기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려준 작품이 바로 「은하수를 아시나요?」였으니까요. 그로부터 8년후에 나는 독일 뮌헨의 극장에서 레싱의 극작품, 「에밀리아 갈로티」의 공연을 접하였습니다. 연극 관람 후에 나의 뇌리에 떠오른 것은 레싱의 작품이 아니라, 십여 년 전에 감상..

43 20전독문헌 2021.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