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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2)

필자 (匹子) 2021. 3. 14. 11:15

5. 시대의 이율배반을 담다.: 주인공, 울리히는 자신의 시대가 어떤 말할 수 없는 이율배반 때문에 하자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율배반은 논리 그리고 감정, 인과율 그리고 개연성, 학문에 대한 믿음 그리고 문화적 염세주의 등의 대립적인 카테고리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전통적 교양 소설에서의 영웅과는 달리, 철학적 정신사적 영역을 통합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울리히는 주어진 현실에서 조우하는 사건을 하나씩 서술할 뿐 아니라, 동시대의 여러 가지 정신과학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기도 합니다.

 

가령 우리는 무신론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니체, 경험적 절충 이론을 내세운 물리학자이자 감각심리학자인 에른스트 마흐, 성격이론과 생물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루드비히 클라게스, 미국 문화의 고유성을 주창한 미국의 철학자인 랄프 왈도 에머슨, 독일의 심리학자이자 음악 연구가인 카를 슈툼프Carl Stumpf, 독일의 심리학자인 볼프강 쾰러Wolfgang Köhler, 나치에 동조한 독일의 심리학자이자 마르부르크 대학교 철학 교수로 일한 에리히 루돌프 옌쉬Erich Rudolf Jaensch 그리고 독일의 심리학자 구스타프 요한네스 폰 알레쉬Gustav Johannes von Allesch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들 학문 이론에 대한 작가의 논평은 작품 속에 부분적으로 삽입되어 있는데, 우리는 여기서 당시 학문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태도를 접할 수 있습니다.

 

6. 에세이 형식으로 기술한 갈망하는 영혼의 이야기: 주인공의 실험적 사고는 무엇보다도 에세이 형식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로써 울리히는 처음에는 세계 그리고 자신의 삶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어떤 행위 혹은 어떤 특성의 가치는 주인공에게는 자신을 둘러싸는 주위의 정황에 종속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자신의 판단에 대해 몹시 혼란스러워 합니다. 만약 주위의 다른 정황으로 인하여 전체적 특성이 바뀌게 된다면, 그 가치는 다시 다른 무엇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대도시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사회의 범위는 너무나 방만합니다. 모든 것은 유사적 내용과 비교 그리고 비유에 의해서 해명되고, 이로써 은유는 대치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비교와 비유는 갈망을 지배하는 사고와 결합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무질의 작품, 『특성 없는 남자』는 모든 사항을 우화적으로 서술함으로써 독자에게 결국 꿈속을 가득 채우는 상상의 내용을 속속들이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의 주제는 “영혼과 병행하여 나타나는 논리”로 해명될 수 있습니다.

 

7. 합리성과 신비주의에 대한 작가의 시대비판: 무질이 살던 공간은 자연과학 연구와 실증주의가 활개를 치던 20세기 초의 오스트리아였습니다. 당시의 시대의 기본적 토대는 한마디로 합리성과 신비주의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합리성은 19세기 말에 발전된 자연과학의 권능과 관련됩니다. 과학 기술이 자본주의 현실의 영역에서 가장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였고, 문학과 역사 그리고 철학의 영역은 그저 뒷전으로 물러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세상은 인간이 아니라, 기계에 의해서 좌지우지되고, 사람들은 지식과 자신의 고유한 삶의 가치를 상실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신지영: 104).

 

또 한 가지 시대적 경향으로서 우리는 신비주의의 성향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신비주의는 합리적 정신에 근거하여 모든 것을 파악하는 세계관과는 달리 신앙과 이데올로기의 특성을 드러내는 일련의 사고방식을 가리킵니다. 가령 당시 사람들은 때로는 기독교 독단론, 때로는 반유대주의 내지 우상숭배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세상의 문제점을 회피하거나, 어떤 심령학적 체험에 관심을 기울이곤 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각양각색의 입장은 당시의 정신적 무질서를 대변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로베르트 무질은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을 파편화의 시대라고 명명하였습니다,

 

8. 장편 소설의 배경: 장편 소설의 배경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군주국이 장악하던 대도시 빈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스트리아 빈의 여러 장면들은 작가, 요셉 로트Joseph Roth가 활용한 바 있는 역사 소설의 배경으로 활용되는 게 아니라, 현대 사회의 분명한 범례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곳에서는 공허함만 지속적으로 나타날 뿐입니다. 대도시에서는 무의미하기 이를 데 없는 동일한 사건들이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이는 제 1권에서 나타나는 복잡하게 엉킨 이야기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주인공 울리히는 “조국의 행동”이라는 단체에서 비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단체 속의 어느 위원회는 1918년 프란츠 요셉 1세 치하 70년 기념일을 위한 축제를 준비합니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빌헬름 2세의 30년 통치 기념일이 겹쳐 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두 사람의 기념일은 같은 해에 군주 국가가 붕괴했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로써 기념일의 축제는 어느 장례식 행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9. 울리히의 여인들: 첫째로 기념일에 주인공은 다정다감한 여인, 디오티마와 처음으로 만납니다. 그미의 남편, 투치는 “조국의 행동”이라는 단체의 특정 위원회를 대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울리히는 그미에게서 사랑을 갈구하지만, 디오티마의 마음은 처음부터 작가, 파울 아른하임에게 향해 있습니다. 파울 아른하임은 울리히와는 전혀 다른 타입의 사내로서 여행을 좋아하며, 무척 사교적입니다. 그는 디오티마와 만나 아름다운 대화를 나누려고 합니다. 두 사람은 어떻게 해서는 오로지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려고 합니다.

 

둘째로 울리히는 레오나라는 이름의 창녀를 찾아가서 사랑과 성의 욕구를 해소하려고 합니다. 그때마다 울리히는 레오니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성욕을 미화시킨 감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감지합니다. 그런데 레오니에게는 놀라운 버릇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칠 줄 모르는 식욕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레오니는 가장 시급한 욕망에 해당하는 식욕의 연구 대상의 인물로서, 낮은 계층의 사랑의 질서를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셋째로 울리히는 보나데아라는 이름의 상류층 여성과 우연히 만나 연인관계를 맺습니다. 어느 날 울리히가 강도의 침입으로 봉변을 당한 뒤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그를 도와준 여인이 바로 보나데아였습니다. 울리히는 그미에게서 오랫동안 사랑의 삶을 나눌 수 있는 반려, 혹은 어머니의 모습을 찾으려고 하지만, 정작 그미는 울리히의 정인으로 남고 싶어 합니다. 울리히가 여동생, 아가테를 만난 이후부터 보나데아와의 관계는 결렬되고 맙니다.

 

10. 등장인물들 (1): 울리히 주위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국의 행동” 단체의 정신적 지주인 라인스도르프 백작은 살롱에서의 우연한 언쟁으로 경찰에 체포된 주인공을 유치장에서 꺼내줍니다. 은행장으로 일하는 레오 피슬, 그의 딸 게르다, 민족 이데올로기를 추종하는 게르다의 남자친구 한스 제프, 주인공의 친구 린드너 등입니다. 이들은 주인공 울리히의 관점에서 서술됩니다. 레오 피슬은 자신의 딸 게르다를 주인공과 혼인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의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게르다는 한스 제프와 사귀게 됩니다. 한스 제프는 레오 피슬의 아내인 클레멘티네를 선동하여 히틀러를 옹오하는 발언을 행하다가 레오 피슬과 대판 싸우게 됩니다.

 

아가테는 주인공보다 다섯 살 나이가 어린 여동생입니다. 비록 남매간이지만, 두 사람은 외형적으로 너무나 닮았습니다. 주인공은 오랫동안 그미를 망각하고 살아왔는데,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아가테와 재회합니다. 두 사람은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랑의 삶을 실천하기 위해서 동거에 들어갑니다. 고트리프 하가우어는 아가테의 남편으로서 대학에서 교육학을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교육 개혁가로서 심혈을 기울이다가, 가정을 등한시합니다. 아가테는 남편과 헤어진 다음에 주인공 울리히를 만납니다. 그미는 아버지로부터 할양받은 유산을 전남편에게 전달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하가우어는 사회인으로서의 삶에 충실하다가, 정작 가정에서 불행을 겪은 사내의 전형과 같습니다.

 

11. 등장인물들 (2): 등장인물들은 작가에 의해서 설정된 어떤 일그러진 거울 속에서 제각기의 거짓 없는 속내를 꾸밈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작가 파울 아른하임은 독일 외무상으로 일하다가 민족주의자에 의해 암살당한 작가, 발터 라테나우 (Walther Rathenau, 1867 - 1922)를 연상시킵니다. 그는 성격상으로 정치적으로 울리히와는 정반대되는 인물입니다. 왜냐하면 아른하임은 합리성 그리고 영혼 사이를 종합하는 어떤 새로운 도덕을 발견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은 아른하임의 이러한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른하임의 이러한 판단이 행복을 다만 인위적으로 접합시킨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울리히는 이른바 “돈 가치 그리고 영혼을 하나로 접합시킨” 그의 입장에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발터는 아른하임과는 전혀 다른 친구입니다. 처음에 그는 음악 비평가 내지 미술 선생으로 생활하다가, 나중에는 편안한 관리의 직책을 맡아서 그곳에 안주하며 살아갑니다. 발터는 니체의 여제자인 클라리세와 결혼했는데, 예술가로서의 꿈을 저버리고 현실에 안주하면서 살아갑니다. 이로 인하여 그미는 발터로부터 등을 돌립니다. 클라리세는 울리히를 통해서 모스브루거라는 광인을 알게 됩니다. 그미는 광적인 사고에 집착한 모스브루거를 구제하려고 하다가, 심리적으로 몰락하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