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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1)

필자 (匹子) 2021. 3. 14. 11:14

1. 가능성의 인간: 로베르트 무질 (1880 - 1942)의 미완성 대작 『특성 없는 남자』는 20세기 초 문학 유토피아의 유형적 특징을 명시적으로 표방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세기말의 병든 유럽 사회의 시대정신을 예리하게 지적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 의미심장한 유토피아의 성분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주인공은 인간 소외, 계층적 차이 그리고 전통적 가정 제도 등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자의에 의해서 사회로부터의 모든 관계망을 차단시키려고 합니다. 이로써 강조되는 것은 정확성과 개방성입니다. 이것은 어떤 가능한 현실 내지 가능성의 사고와 관련됩니다.

 

가령 주인공은 실제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게 아니라, 어떠한 외적 강령에 의해 조종당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설정한 고유하고도 가치 있는 삶을 찾으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서 그는 이른바 돈 그리고 성공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며, 시민 사회의 혼인과는 다른 사랑의 삶의 방식을 발견하려고 합니다. 요약하건대 작품은 전쟁 지향적 자본주의의 횡포, 근엄한 사회적 이데올로기 그리고 이로 인한 인간 소외를 극복하고, 자신의 내적 이상을 자생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추적해나가고 있습니다.

 

2. 정교하게 기술된 필생의 대작: 무질의 작품은 1930년에서 1950년 사이에 발표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무질의 대표작이며, 작품 집필의 계기는 “카카니엔”, 다시 말해서 헝가리-오스트리아 이중제국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무질은 오래 전부터 작품을 구상하였지만, 1920년 이후로 집필에 몰두하여, 개별적 장을 초고로 집필하였습니다. 집필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내용상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의도한 주제상의 문제는 지속적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령 주인공의 이름과 작품의 제목은 여러 번 수정되었습니다. 1930년에 소설의 제 1권이 간행되었습니다.

 

작품은 도합 1075 페이지가 되는 대작이지만, 한 문장도 불필요한 게 없을 정도로 치밀한 문체로 직조되어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광대한 해변에 늘려져 있는 수많은 모래알로 비유될 수 있는데, 이러한 모래알들은 작가가 의도하는 주제상의 모티프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방대한 소설 속의 한 문장 한 문장이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고나 할까요? 특히 무질은 집필 당시에 지엽적인 부분까지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무질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문체는 나에게 있어서 어떤 특정한 사고를 정교하게 작업하게 하는 수단이다.”

 

3. 주인공 울리히, 가능성을 찾아 나서다.: 작품의 주인공은 “울리히”라는 이름을 지닌 사내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명성에 흠집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성 (姓)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1913년 8월의 어느 날 그는 32세의 생일을 맞이합니다. 울리히는 지금까지 사회의 유명인사가 되기 위해서 장교, 엔지니어 그리고 수학자로서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지금까지 무의미하게 아까운 시간을 허비했다고 판단합니다.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평범한 생활, 틀에 박힌 일상 그리고 역할을 중시하는 사회적 삶이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려는 가능한 삶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세상은 극도의 기술에 의해서 영위되므로, 더 이상 전체적 질서를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아 숨이 턱턱 막힐 정도입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일을 팽개치고 약 일 년 간 휴식을 취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모든 사소한 사회적 관계망의 비밀스러운 메커니즘 그리고 그 원인을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울리히는 외부와의 모든 연결고리를 차단시키면서 살아갑니다. 그 때문에 어린 시절의 친구인 발터는 주인공을 “특성 없는 남자”라고 명명하고 있습니다. 특성이 없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을 고립시키겠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4. 특성 없는 인간, 현실적 의미 그리고 가능의 의미: 울리히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삶을 그냥 명상하는 방식으로 생활하려고 합니다. 사회적 관계망과 전혀 연결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은 그야말로 “특성 없는 남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사회 속에서 생동하는 인간군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핵심으로서의 물질을 예리하게 투시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인간에게서가 아니라, 사물의 관련성 속에서 인과관계의 모든 책임을 찾아야 한다고 합니다. 세계의 특성은 한 인간의 존재를 도외시한 채 그냥 무심결에 생겨나 우리 앞에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개인의 체험과는 무관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20세기 초의 대도시는 그야말로 수많은 인간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익명 존재에 파묻힌 채 세계의 특성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현실적 감각 뿐 아니라, 가능성의 감각을 추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주어진 현실의 범위는 무한할 정도로 광대합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관심사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면서 현실적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은 그 자체 완전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특히 세계의 전진적 변화를 고려할 때 주인공은 일차적으로 가능성의 의미를 추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