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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한스 헤니 얀의 강변 없는 강

필자 (匹子) 2021. 9. 18. 10:02

함부르크 출신의 망각된 소설가, 한스 헤니 얀 (H. H. Jahnn, 1894 - 1959)은 독일 문학사에 기인으로 꼽힌다. 그는 주로 오르겔을 제작하는 기술로 생계를 유지했으며, 틈만 나면 말을 사육하고, 소설을 썼다. 어린 시절부터 지니게 되었던 동성애의 감정은 그로 하여금 비사교적인 인물로 만들었다. 그의 친구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혹자는 그를 “독일의 스트린드베리”라고 일컫기도 했다. 오늘은 그의 미완성 소설 "강변 없는 강"에 관해서 거론해 보기로 한다.

 

소설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제 1장, “나무배”는 1949년에 간행되었고, 제 2장, “49세가 된 구스타프 아니아스 호른의 글”은 두 권의 분량으로서 1949년 그리고 1950년에 간행되었으며, 제 3장, “에필로그”는 얀이 죽은 뒤에 단편 형태로 발터 무스크 (W. Muschg)에 의해 간행되었다. 1934년 얀은 덴마크의 섬 보른홀름으로 망명하여 1946년까지 머물렀다. 12년 동안의 망명 생활 속에서 집필된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1946년 함부르크로 되돌아온 얀은 생계의 어려움을 겪었다. 게다가 얀은 강대국의 핵무장에 대항하여 절망적으로 투쟁하였다 상기한 두 가지 이유로 인하여 소설은 끝내 완성되지 못했던 것이다.

 

소설은 도합 22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작품이다. 그럼에도 줄거리는 작품의 주요 성분이 아니다. 얀은 로베르트 무질 R. Musil, 헤르만 브로흐 H. Broch 등과 마찬가지로 19세기의 장편소설의 특성에 대해 그다지 커다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소설적 주제는 사건에 의해서 표현되지 않고, 등장인물의 모순된 특성 속에서 나타난다. 얀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들은 목표, 그들의 현실에 마침내 당도합니다. 왜냐면 사건의 현장은, 음악적으로 표현하자면 소설, 동기, 모티브, 화음 그리고 리듬이기 때문입니다.

 

한스 헤니 얀 (1894 - 1959) 오르겔 제작자, 동성연애자, 소설가

 

소설의 주인공은 조율사, 구스타프 아니아스 호른이다. 주인공이 음악가라는 점에서 소설은 토마스만의 "파우스투스 박사 (Doktor Faustus)" (1947)의 아드리안 레버퀸과 유사하다. 주인공은 잃어버린 옛 시간을 찾아 나선다. 제 1장에서 화자는 “라이스”라고 하는, 세 개의 돛을 단 목선을 타고 승선한다. 화자는 전지적 인물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의 묘사는 완전무결하지 못하며, 어떤 은밀한 분위기를 연출하게 해준다. 여기에 구스타프라고 불리는 젊은 남자가 함께 자리한다. 구스타프는 자신의 약혼녀이자 함장의 딸인 엘레나 스트룬크 가까이 머물려는 의도에서 배에 올랐다.

 

그러나 엘레나는 행방이 묘연해진다. 함장은 선원들에게 무슨 화물을 실었는지, 목표지가 어딘가를 분명히 알려주지 않은 터였다. 이 때문에 선원들은 불안한 마음을 참을 수 없어서 선상에서 모반을 일으킨다. 구스타프는 있는 노력을 다하여 엘레나를 찾는다. 이 와중에서 그는 실수로 배 아랫부분의 화물 창고에 구멍을 내고, 배는 이 때문에 나중에 침몰하게 된다. 젊은 여자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화자는 배 위에서 일어나는 비밀스러운 진행 과정들을 추측의 문장으로써 서술하고 있다.

 

항해 이야기는 조셉 콘래드 (Joseph Conrad)를 연상시킬지 모른다. 제 2장은 내적 독백, 개인들의 구어체 문장, 사고의 유추 과정 그리고 비약 내지 전환 등을 보여준다. 이러한 소설적 특성은 1930년 쓰이기 시작한 소설, "페루디야"에서 드러나는 특징들이다. 구스타프 아니아스 호른은 잠적한 처녀의 약혼남이다. 그는 의식 속에 흘러가는 과거, 현재 그리고 기대감 등을 차례로 기술한다. 이때 그는 나무배에서 선원으로 일하던 친구, 알프레트 투타인의 시체와 마주친다. 시체는 발라진 향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미라와 다를 바 없다. 이때 그는 더 이상 과거에 침잠해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하면서, 현실 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결심한다.

 

그는 목선에서 발생했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예의 추적하기 시작한다. 나중에 알게 된 사항이지만, 엘레나를 살해한 자는 바로 알프레트 투타인이었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알프레트를 용서한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약혼녀를 살해한 알프레트에게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살인한 남자, 알프레트는 희생당한 여자, 엘레나를 대신하여 주인공 앞에 등장한 것이다. 그는 엘레나의 몸에서 신비로운 피를 받은 뒤에 주인공과 피의 혼례식을 거행한다. 두 사람은 정신과 육체의 공생적 존재로서 신비로운 제식을 치르며, 서로의 피를 나눈다. 이로써 지속적인 동성애의 관계가 지속되고, 알프레트 투타인이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

 

한스 헤니 얀의 집필실

 

주인공은 과거로부터 도피하려고 한다. 그의 마음은 새로운 무엇에 대한 체험, 그리고 자유에 대한 갈구로 가득 차 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 현존하는 삶은 그들의 눈에는 야만적 문명으로 비칠 뿐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야만적 문명으로부터 도피할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은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노르웨이 그리고 스웨덴에 정주한다. 그곳에서 호른은 작곡가로, 투타인은 말 장수로 살아간다. (작가는 보른홀름에서의 자전적 체험을 여기에 반영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작곡가 호른이 오르겔 제작자인 작가와 동일한 자라고 간주될 수는 없다.)

 

투타인이 죽은 뒤에 구스타프 아니아스 호른은 오래 전에 침몰한 선원들의 소식을 찾아 나선다. 그는 젊은 선원, 아약스 우크리를 만난다. 우크리는 오래 전에 구스타프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고 말하면서, 알프헤트 투타인처럼 주인공을 사랑하고 싶다고 말한다. 주인공이 이를 거부하자, 우크리는 주인공 호른을 살해한다. 그후 아약스 우크리는 종적을 감춘다. 반복의 원칙은 이 대목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실제로 음악의 악보에는 동일한 멜로디가 반복되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사랑을 둘러싼 살해 사건은 다시 반복되어 나타난다. 호른이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는 이러한 반복에 관한 테마를 다시금 제시하고 있다.

 

세 번째 장은 노르웨이의 도시 할름베르크에서 시작된다. 아약스 우크리는 40대 초반의 여성, 겜마 본을 만난다. 그는 그미에게 구스타프 아니아스 호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미는 언젠가 단기간에 호른을 사랑했는데, 이로써 아들 니콜라이를 낳았고, 아들과 함께 노르웨이에서 살고 있던 터였다. 아약스 우크리는 어린 아이 니콜라이를 사랑한다. 말하자면 아약스 우크리는 니콜라이와 만남으로써, 과거에 호른과 투타인 사이의 동성연애의 관계를 재현하게 된다. 그러나 이후의 이야기는 하나의 일직선적인 줄거리로 요약될 수 없다. 서사적 강물은 더 이상 줄거리라는 댐으로 막아내지 못한다.

 

문학이 삶을 모방하는 게 아니라, 삶이 문학을 모방한다. 등장 인물, 호른도, 작가인 얀도 그들의 실험을 끝내지 못한다. 얀은 허망함과 일회성의 신비주의에 대항하여 새로운 무엇을 내세우려고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인간의 숭배, 자연 예찬, 지상의 모든 것을 성스럽게 인정하는 일이다. 이러한 맥락 하에서 얀은 기독교를 저주하였다. 얀은 하나의 개인적 신을 거부하고, 신적 의지의 자유를 용인하지 않았다. 대신에 한스 헤니 얀은 가난하고 억압당하며, 힘없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담긴 사랑의 휴머니즘을 새로운 종교라고 생각했다. 나아가 악의 없는 동물들 그리고 온 자연의 영혼 속에 신의 정신이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소설 기술적 차원에서 핵심적 사항이 엿보인다. 얀의 경우 서술 자체가 테마이며, 문체였다. 거의 강요처럼 진행되는 사건, 반복의 원칙 등은 하나의 신화적 세계를 창조한다. 길가메쉬 (Gilgamesch) 그리고 엥기두 (Engidu)에 관한 고대 신화적 서사시는 쌍둥이 존재, 동성의 결합에 관한 기본적 틀로서 작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