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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포이히트방거의 유대인 쥐스

필자 (匹子) 2021. 3. 5. 19:08

리온 포이히트방거 (1884 - 1958)의 역사 소설, "유대인 쥐스 (Jud Süss)"는 1925년에 간행되었다. 미래 및 현재와의 관련성을 고려하여, 포이히트방거는 대중 속에 만연해 있는 반유대주의의 근원과 그 두 가지 갈래를 분석하고 있다.

 

요젭 쥐스 오펜하이머는 유대인 쥐스라고 불리는데, 유대인의 피를 절반 물려받았다. 그는 1692년 하이델베르크에서 태어나, 1732년에 뷔르템베르크의 공작, 칼 알렉산더 왕자의 재정 보좌관이 되었다. 당시 신교 중심으로 형성된 백성들은 구교를 신봉하는 공작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당시 백성들은 공작과 재정 보좌관에 대해 저항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왜냐하면 재정 보좌관은 다만 조언하는 역할만 담당했지만, 서서히 실세를 장악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포이히트방거는 공작과 유대인을 아주 음탕하고 권력 지향적인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그렇지만 작가는 쥐스라는 인물이 유대인 전체의 특성을 대변한다고 간주하지는 않았다. 공작은 음탕하고, 포악하다. 그는 오이겐 왕자에 의해 얻어진 전쟁의 명예를 신봉하고, 마치 프랑스의 루이 14세처럼 위대한 절대 군주로 승격시키려고 굳게 마음먹고 있다.

 

유대인 쥐스는 영리하고 꾀 많은 자이다. 그는 내심 공작보다는 훨씬 영리하지만, 그에게 우선 충성을 바치고 있다. 쥐스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모조리 동원하여, 인민을 억압하는 교묘한 술책을 찾아낸다. [유대인 쥐스의 이러한 술책의 행위는 바이트 하란 (Veit Harlan)에 의해 영화화되었는데, 제 3제국 시기의 “유대인들의 유형적인 태도”로 규정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입장은 포이히트방거 문학 전체를 고려할 때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

 

쥐스에게는 무척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그런데 공작은 쥐스 딸의 아름다움에 참을 수 없는 욕정을 품는다. 그는 딸을 찾아가 강제로 겁탈하려고 했으나, 딸은 지붕 위로 도피한다. 결국 그미는 자신의 몸을 지키려다가 처마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는다. 딸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쥐스는 공작에게 복수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쥐스는 마음속에서 딸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이 서서히 솟아오르는 것을 주체하지 못한다. 언젠가는 그놈에게 복수하리라고 주인공은 다짐한다.

 

어느 날 공작과 뷔르츠부르크 대주교 사이에 “가톨릭 협정”이 체결된다. 협정 속에는 제후 국가가 백성들로부터 모든 권한을 빼앗고, 군사 통치권을 장악하려는 계획이 실려 있었던 것이다. 이때 유대인 쥐스는 딸의 죽음을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다. 어느 날밤에 쥐스는 공작의 교활한 계획을 입법 위회 사람들에게 누설한다. 공작은 쥐스의 배신으로 인하여 그리고 자신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데 대해 충격을 받고 실신하여 사망한다.

 

제후 국가는 프로테스탄트의 모반자들에 의해 장악된다. 쥐스는 복수했다는 데 대해 안도하며, 스스로 유대인 그리고 유대교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한다. 그는 평소에 심령학적 힘을 지닌 랍비, 오하임을 알고 있었는데, 오하임이야 말로 종교적 가치를 지닌 인물이라고 단정한다. 쥐스는 지금까지 동족인 유대인들에 대해 거리감을 취하고 있었다. 다시금 권력을 쥔 모반자를 찾아가서, 자신을 속죄양으로 내세운다.

 

사람들은 법을 왜곡하여 그에게 형벌을 가한다. (재정 보좌관이라는 직책만으로는 사람들은 유대인 쥐스를 처벌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포악한 공작을 증오했으나, 증오심은 공작과 함께 일한 유대인 쥐스에게로 향한다. 쥐스는 오랜 심문 끝에 결국 처형당한다. 쥐스는 개종하게 되면 목숨을 구할 수 있는데도 (그의 아버지는 유대인이 아니라, 기독교인이었다), 이를 거절함으로써 죽음의 길을 택한다.

 

"유대인 쥐스"는 7년 전에 이미 극작품으로 쓰인 바 있다. 그러나 포이히트방거는 1920년에 장편 소설을 착수한다. (“극작품은 내가 말하고 싶은 일부분만 담고 있습니다.”) 원고는 1923년에 탈고되었으나, 발표의 어려움에 봉착한다. 당시에 포이히트방거는 소설가로서 아직 세인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본 작품은 또 다른 작품 ?못생긴 공작부인?이 히트를 친 다음에 발표되었다.

 

이미 1827년에 빌헬름 하우프 (Wilhelm Hauff)는 노벨레 형식으로 쥐스 오펜하이머에 관해 작품을 쓴 바 있다. 그렇지만 포이히트방거는 만프레트 침머만 (M. Zimmermann)의 "18세기의 재정 장관, 요젭 쥐스 오펜하이머?"(1874)를 읽고 소설을 착수했다고 한다. 나중에 포이히트방거는 「역사 소설의 의미와 무의미에 관하여」 (1935)를 발표했는데, 여기서 작가는 유대인 쥐스의 모델을 당 시대의 유대인, 작가, 재벌이자 정치가인 발터 라테나우 (Walter Rathenau)를 모델로 삼았다고 술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