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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트문트 (1)

필자 (匹子) 2021. 8. 1. 10:24

1. 주인공 수도원 생활을 영위하다: 친애하는 L, 오늘은 헤르만 헤세 (1877 - 1962)의 소설, 『나르치스와 골트문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소설은 처음에는 「어느 우정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채 1930년 발표되었습니다. 작품은 중세의 수도원을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젊은 선생, 나르치스는 조숙한 학자로서, 계속하여 스스로 수도원에서 살아가기를 선택합니다. 그는 영리하고 냉정하지만, 인간미가 없는 사람입니다. 이에 비해 골트문트는 어리석고 실수를 저지르지만, 따뜻한 심성의 소유자입니다.

 

친애하는 L,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식을 보면, 그 부모가 어떠한 사람인지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골트문트는 타의에 의하여, 그러니까 아버지의 강요에 의해서 수도원 생활을 영위해야 합니다. 원래 골트문트의 어머니는 제어할 줄 모르는 정열적 여자였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 대한 복수심, 혹은 질투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들 골트문트로 하여금 어머니 대신에 참회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이는 소설 전체의 주제를 놓고 볼 때 의미심장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어쨌든 나르치스와 골트문트는 서로 정 반대되는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정반대되는 성격 때문에 오히려 친하게 지내며, 친구관계를 맺습니다.

 

 

수도원의 모습

 

2. 두 인물의 서로 다른 특징: 나르치스가 냉정한 이성을 지니고 있다면, 골트문트는 감각적이고 열정적인 인간형입니다. 나르치스가 멀리서 관조하면서 삶의 지혜를 처음부터 이성적으로 터득하려 한다면, 골트문트는 주위의 인간과의 만남을 통해서, 그것도 사랑의 실수를 저지름으로써 삶의 의미를 경험적으로 배워나갑니다. 전자가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인간형이라면, 후자는 감성적이고 열정적인 인간형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전자가 “명상적 삶 vita comtemplativa”을 추구하는 신앙인의 기질을 지니고 있다면, 후자는 “행동적인 삶 vita activa”을 추구하는 예술가의 기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형은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서의 내용으로 비유하자면, 나르치스가 조용히 앉아서 예수를 맞이하는 “마리아”와 같은 인물이라고 한다면, 골트문트는 모든 집안일을 행하며 예수를 기다리는 “마르타”와 같은 인물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루카의 복음서 제 10장 38절 이하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습니다.

 

3. 뭐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아니, 청춘이니끼 아프다. 왜냐하면 청춘은 거대하고 진득한 사랑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감각적이고 열정적인 골트문트는 고적한 수도원에서 갑갑함을 느낍니다. 나르치스는 친구의 이러한 인성을 간파하고, 수도원을 떠나 살라고 권고합니다. 그리하여 골트문트는 수도원을 떠나 방랑 생활을 영위하며, 에로틱한 모험을 즐깁니다. 골트문트는 여행의 도중에 마틸데와 그미의 계모를 만납니다. 두 사람 모두 미모를 지닌 매력적인 여성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처음에 마틸데와 장난삼아 연애 행각을 벌입니다. 그런데 마틸데의 계모 역시 골트문트에게 다가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계모 역시 몹시 외로움을 타는 여성이었고, 사랑에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골트문트는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주인공은 이들과의 사랑에 깊이 빠집니다. 특히 마틸데와의 사랑은 골트문트에게는 짜릿하고도 설레는 도박처럼 느껴집니다. 친애하는 L, 성적 쾌락은 일시적 만족을 가져다주긴 하지만, 마음속에 고독과 죽음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법입니다. 처음 발 디디는 관능의 세계는 젊은이의 마음에 쾌락의 불을 지피지만, 시간이 흐르면 후회 그리고 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법이지요. 주인공도 그러했습니다. 어느 날 골트문트는 빅토어라는 뜨내기를 정당방위로 살해합니다.

 

 

나르치스와 골트문트의 원본 표지

 

4. 골트문트의 예술적 갈망: 그 다음부터 골트문트의 마음속에는 자신의 체험을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싹틉니다. 이는 니클라우스라는 예술가를 만날을 때 떠오르는 갈망이었습니다. 니클라우스는 놀라운 인물들을 조각 작품으로 형상화시키는 조각가였습니다. 수업을 받은 후 골트문트는 지금까지의 삶에서 중요했던 사람들의 조각품을 제작합니다. 그 가운데에는 세례자 요한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세례자 요한의 조각상은 일순간 자신의 친구 나르치스와 착종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시간이 흐를수록 골트문트는 자신의 은사, 니클라우스에게서 실망감을 느낍니다. 한편으로는 선생의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인격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 작품을 팔아서 돈을 벌려는 의도하는 선생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주인공은 더 이상 조각에 자신의 모든 삶을 맡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니클라우스는 주인공에게 자신의 딸과의 교제를 허용할 테니, 계속 함께 일하자고 제안하나, 골트문트는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결코 어딘가에 안주할 수 없는 주인공의 방랑적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5. 르네와의 만남 그리고 이별: 골트문트는 도성으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매력적이지만, 가난한 여자, 르네를 알게 됩니다. 르네는 아무런 직업이 없이 이리저리 떠돌면서, 걸식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골트문트는 그미에 대한 동정심이 서서히 사랑의 감정으로 돌변하는 것을 느낍니다. 그들은 길에서 로베르트라는 젊은이와 만나, 창궐하는 페스트를 피하기 위해 숲 속의 오두막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일 년도 채 못 되어 주인공의 마음속에 다시 방랑에 대한 욕구가 솟아오릅니다.

 

어느 날 로베르트는 주인공이 없는 틈을 타서 애인 르네를 겁탈하려고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골트문트는 애인을 보호하려고 로베르트에게 주먹질을 가하는데, 로베르트는 바로 이때의 사고로 목숨을 잃고 맙니다. 로베르트가 죽은 뒤에 르네는 서서히 드러눕게 됩니다. 끔찍한 페스트가 그미의 몸속으로 침투했던 것입니다. 다시 홀몸이 된 골트문트는 이전의 은사인 니클라우스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니클라우스의 작업실은 어느새 폐쇄되고 스승은 이미 유명을 달리한 지 오래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