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근대불문헌 86

서로박: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질곡"

19세기 후반부의 유럽 사회는 –나라마다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수직 구도의 가부장적 사회였다. 일부일처의 결혼제도는 기독교 윤리와 접목되어, 유일무이하게 정당한 삶으로 인정받았다. “가족 family”은 주지하다시피 어원상 “농부에 속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가부장은 국가가 명하는 강령을 하달하는 존재로서 마치 군대의 상사의 역할을 담당한다. 시민 사회의 관습과 성 윤리는 오로지 “금기Tabu”만을 만들어내었다. 강제적 성 윤리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은 특히 이혼한 여성들이었다. 남성들은 홍등가에서 욕구를 해소할 수 있었지만, 여성들은 그렇지 못했다. 당시의 기혼녀들은 마치 가축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젊은 여성들이 결혼 외의 다른 방법으로 행복을 찾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게다..

32 근대불문헌 2023.02.24

서로박: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방랑 여인"

19세기 유럽에는 남성 중심적 이데올로기가 횡행하고 있었다. 당시 사회는 글 쓰는 여성들에게 적대적이었다. 여성들에게는 작품을 발표하는 기회조차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아니, 여성이 집에서 살림만 살 것이지, 무슨 대단한 영화를 누리려고 작가로 활동하려고 하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게 당시 사회의 지배적인 통념이었다. 그렇기에 여성 작가 지망생들은 남자들에 의해서 철저히 짓밟히고, 기만당하며, 버림받기 일쑤였다.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Sidoni-Gabrielle Colette, 1873 – 1954)의 삶 역시 이러한 비극을 피해갈 수 없었다. 콜레트는 1873년 프랑스의 부르고뉴에서 퇴직 장교의 넷째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경제적으로 몰락하게 되어, 그미는 세 언니와는 달리 정규 교육을 받..

32 근대불문헌 2023.02.21

서로박: 라옹탕의 고결한 야생 (5)

(앞에서 계속됩니다.) 23. 새로운 인간으로서 새롭게 견지해야 할 덕목, 선한 마음, 우정 사랑 그리고 고유한 자기 결정권: 라옹탕은 국가의 우생학적인 요청 내지 부모의 외부적 강요에 의한 혼인을 거부하고, 오로지 상호 애정 내지 신뢰감에 근거한 혼인을 용납하고 있습니다. 선한 마음, 우정, 사랑 그리고 인간의 고유한 자기 결정권이야 말로 새롭게 태어난 인간이 견지해야 할 훌륭한 덕목들이라고 합니다. 이에 비하면 질투심, 만용, 오만함 그리고 시기심 등의 감정은 인간을 슬프게 살아가게 하고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가령 프랑스 사람들은 자신의 열정의 노예 내지는 왕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왕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하고 왕을 위해서 부역과 전쟁을 치르는 노예가 바로 프랑스 사람이라는 것입..

32 근대불문헌 2022.12.17

서로박: 라옹탕의 고결한 야생 (4)

(앞에서 계속됩니다.) 16. 자연에 의거한 아나키즘의 야생 공동체: 상기한 사항에 비하면 라옹탕은 이러한 제반 정책이 자연 상태에 위배된다고 단호하게 규정합니다. 그는 국가가 생겨나기 이전의 상태, 사회 내지 문명이 형성되기 이전의 상태를 투시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야생의 공동체가 하나의 유토피아의 상으로 투영되고 있습니다. “야생의 공동체는 국가주의의 유토피아와는 반대로 자연에 대한 지배를 전혀 알지 못한다. 그것은 도시 문화라든가, 국가 내지 인위적 대칭의 모든 경향 또한 숙지하지 못하고 있다. 고결한 야생의 유토피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선한 인간성을 지니며, 자신이 자연의 일부라고 굳게 믿고 있다.” (Funke: 25). 이와 관련하여 라옹탕이 휴런 부족의 사람들을 “벌거벗은 철학자philoso..

32 근대불문헌 2022.12.17

서로박: 라옹탕의 고결한 야생 (3)

(앞에서 계속됩니다.) 10. 자유로운 인디언으로 살려는가, 아니면 프랑스 노예로 살려는가?:상기한 토론을 통해서 라옹탕은 유럽 사회가 어떻게 잘못 발전해 왔는가를 은근히 지적합니다. 아다리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의 충고를 받아들여, 휴런 사람이 되게. 우리가 처한 현실적 정황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이제 모조리 알 것 같네. 내 육체의 주인은 바로 나야. 그래서 나는 마음에 드는 것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네. 나라는 존재는 내 민족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사람이야.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아. 내가 고개를 숙이고 굴복하는 것은 오로지 거대한 정신일 뿐이야. 이에 비해 자네는 육체와 정신을 그대의 왕에게 송두리째 바치고 있네. 그대의 부왕은 그대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지 않..

32 근대불문헌 2022.12.17

서로박: 라옹탕의 고결한 야생 (2)

(앞에서 계속됩니다.) 6. 라옹탕의 삶 (4):1690년 그리고 1692년에 라옹탕은 루이 드 부아드Louis de Buade의 특별 사절단으로 프랑스로 여행합니다. 이때 그는 가문의 유산을 돌려받기 위하여 당국에 청원서를 제출합니다. 그밖에 라옹탕은 왕궁을 직접 방문하여, 식민지의 경제적 발전을 위해 군사를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의 두 가지 시도는 모조리 실패로 돌아가고 맙니다. 물론 라옹탕은 1692년 중위로 승진하여, 영국군으로부터 뉴펀들랜드에 거주하는 프랑스인들의 안전을 돌보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배속된 상관과 여러 번 마찰을 겪습니다. 도저히 자신의 임무를 원활하게 수행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 그는 1693년 12월에 당국으로부터 허가도 받지 않은 채 프랑스로 되..

32 근대불문헌 2022.12.17

서로박: 라옹탕의 고결한 야생 (1)

1. 비-국가주의의 인디언 유토피아: 라옹탕의 유토피아는 “고결한 야생bon Sauvage”이라는 표현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유럽 사회와는 전혀 다른, 신대륙의 문화와 관련되는 것으로서, 어쩌면 인디언 문화를 지칭할 수도 있습니다. “고결한 야생”은 이른바 “수치스러운 서구문명”과 정반대의 사항으로 이해됩니다. 실제로 유토피아의 상은 시대 비판을 간접적으로, 우회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수단을 사용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라옹탕의 유토피아에서 17세기 유럽의 절대 왕정의 사회에 대한, 우회적이지만 노골적 비판을 분명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시대 비판과 관련하여 17세기 프랑스에서 출현한 라옹탕의 문학 유토피아는 국가주의의 모델 그리고 비국가주의의 모델에 관한 분명한 선을 긋게 해줍니다. 왜..

32 근대불문헌 2022.12.17

박설호: "자발적 복종". 번역의 문제점

흔히 번역 행위는 하나의 텍스트를 다른 언어의 텍스트로 옮겨놓는 일을 가리킨다. 그렇지만 원전과 번역 텍스트는 언어의 측면에서 고스란히 겹쳐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 단어, 문장, 문단 그리고 문맥 등은 동일한 의미로 옮겨질 수 없다. 왜냐하면 두 개의 특정한 언어 체계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탄생 시점의 시대와 역사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번역 작업에서 고려되어야 하는 첫 번째 사항은 원전의 역사성을 중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번역자는 일차적으로 원전에 충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진정한 번역은 관통해서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서 번역자는 순수한 언어를 자기 자신의 매체를 통해서 가장 강력한 ..

32 근대불문헌 2022.11.19

서로박: 레티프의 '남쪽 지역의 발견' (4)

22. 메가페타곤의 가정제도, 이년마다 갱신되는 일부일처제의 결혼: 레티프는 최상의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두 가지 가정제도, 모두를 용인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가부장적 가정제도이며, 다른 하나는 약간 변형된 형태이기는 하지만 플라톤과 캄파넬라의 여성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이러한 가정 제도는 메가페타곤, 도피네 섬 그리고 크리스틴의 섬에서 제각기 다른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첫째로 메가페타곤의 사람들은 원래 여성 공동체를 추종합니다. 여성들은 모두 공동 소유이며, 아이들은 원칙적으로 국가를 자신의 아버지처럼 받들어 모셔야 합니다. 그래도 남자들이 최소한의 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 레티프는 여성 공동체를 다음과 같이 변화시켰습니다. 즉 일부일처제의 결혼은 2년마다 갱신될 ..

32 근대불문헌 2022.09.26

서로박: 레티프의 '남쪽 지역의 발견' (3)

15. 자연을 이상으로 삼는 두 개의 공동체, 크리스틴 섬과 메가페타곤: 이상 사회는 레티프에 의하면 모든 개인이 평등하게 살아가는 시스템을 가리키는데, 그곳에서는 모두가 서로 잘 알면서 서로 필요한 존재로서 행복하게 그리고 미덕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이상적 공동체는 (라옹탕이 언급한 바 있는) “고결한 야생 Bon Sauvage”이라는 자연의 특성을 지닌 틀 뿐 아니라, 유토피아의 공간으로서의 어떤 엄격한 기하학적 모델을 필요로 합니다. 레티프의 경우 이상적 삶의 세계는 한편으로는 18세기의 가장 현대적인 기술과 발전된 수공업적인 능력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예컨대 문명의 동질적인 이상은 크리스틴의 섬에서는 주민들이 동일한 의복을 착용함으로써 분명하게 표현되지만, 또 다른 이상 사회인 “메가페..

32 근대불문헌 2022.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