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근대불문헌

서로박: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방랑 여인"

필자 (匹子) 2023. 2. 21. 11:40

19세기 유럽에는 남성 중심적 이데올로기가 횡행하고 있었다. 당시 사회는 글 쓰는 여성들에게 적대적이었다. 여성들에게는 작품을 발표하는 기회조차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아니, 여성이 집에서 살림만 살 것이지, 무슨 대단한 영화를 누리려고 작가로 활동하려고 하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게 당시 사회의 지배적인 통념이었다. 그렇기에 여성 작가 지망생들은 남자들에 의해서 철저히 짓밟히고, 기만당하며, 버림받기 일쑤였다.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Sidoni-Gabrielle Colette, 1873 – 1954)의 삶 역시 이러한 비극을 피해갈 수 없었다. 콜레트는 1873년 프랑스의 부르고뉴에서 퇴직 장교의 넷째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경제적으로 몰락하게 되어, 그미는 세 언니와는 달리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문학 애호가였으며, 어머니는 영리하고 이해심이 풍부한 여인이었다. 특히 어머니는 오랫동안 콜레트와 편지를 교환했는데, 콜레트에게 작가로서의 시각 그리고 인간적 품위 등과 같은 영향을 끼쳤다. 콜레트가 어머니에게 보낸 2000통의 편지는 1912년 어머니가 사망했을 때 이부동생이 불태워 없앴다고 한다.

 

콜레트는 결혼생활에서 철저히 이용 당하고 배신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16세 되던 해에 콜레트는 프랑스의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로 활동하던 앙리 고티에-빌라르 (Henry Gauthier-Villars, 1859 - 1931)를 알게 되어 이른 나이에 결혼하게 된다. 그는 사기꾼 기질이 농후한 바람둥이였다. 앙리는 콜레트의 문학적 재능을 알아보고, 소설을 집필하라고 강권했다. 그리하여 콜레트는 네 편의 소설을 완성했는데, 작품들은 1900년에서 1903년 사이에 발표된다. 『클로딘 깨어나다Claudine a l’École』, 『파리의 클로딘Claudine à Paris(이 작품은 2019년 윤진씨의 번역으로 민음사에서 간행되었다.), 『클로딘의 결혼 생활Claudine en Ménage』, 『클로딘 떠나다Claudine s’enva』.

 

이 작품들은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고, 많은 독자층을 형성하게 된다. 문제는 작품들이 모두 앙리 고티에-빌라르의 가명인 "윌리"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었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앙리는 아내의 작품을 도둑질했던 것이다. 당시에 남편의 바람기에 심리적으로 고통을 당하던 콜레트는 별거 생활에 들어가게 된다. 콜레트가 클로틴 연작의 저작권을 되찾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후에도 콜레트는 클로딘 장편소설을 두 편 더 집필하여, 이번에는 자신의 이름으로 떳떳이 작품을 발표하게 된다.

 

콜레트의 이후 삶에 관해서는 다음 기회에 언급하기로 하고, 장편소설 『방랑 여인 La Vagabonde』을 고찰해보기로 한다. 이 작품은 1910년에 간행되었다. 콜레트는 이전에 시리즈로 간행한 바 있는 “클로딘” 연작 소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체험을 문학 작품을 통해서 톺아보려고 했다. 작품에는 이전과는 달리 어떤 해방의 길을 모색하는 젊은 여성의 놀라운 역정이 다루어지고 있다. 주인공은 르네 네레라는 이름을 지닌 여성이다. 그미의 남편은 테얀디라는 이름을 지닌 화가였는데, 여성이라면 거의 사족을 못 쓰는 천하의 바람둥이였다. 르네는 남편과 수년 동안 살면서 크고 작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남편은 모든 공개 석상에 자신을 데리고 다니면서, 자신을 수없이 속이고 기만해 왔다. 이는 오로지 다른 여성과 몰래 랑데부를 즐기기 위함이었다. 더 이상 심리적 고통을 참을 수 없던 르네는 어느 날 남편과 이혼한다. 뒤이어 그미는 무대 공연의 예술가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꿈을 펼치려고 한다.

 

그미가 선택한 길은 이전과는 달리 방랑하는 생활이었다. 말하자면 공연 예술가가 된 것이었다. 공연을 위해서 르네는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녀야 했다. 말하자면 르네는 방랑의 삶, 고향 잃은 삶을 자청해서 선택한 셈이었다. 수많은 도시에는 제각기 다른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가는 곳마다 이방인으로서 적응해 나가야 했다. 낯선 곳에서의 삶은 불편함을 가중시켰다. 그렇지만 르네는 새로운 곳에서의 공연을 언제나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공연 도중에 그미의 뇌리를 치면서 지나가는 게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방랑” 내지는 “방황”이 어쩌면 자신의 천성일지 모른다는 느낌이었다. 주인공의 내면에는 항상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안이 자리하고 있었다. 르네는 비극적 결혼하여 천편일률적인 일상을 보내야 했다. 과거에 대한 기억이 자신을 괴롭혔다. 어디서도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없는 바에는 차라리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생활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결혼생활의 실패는 그미의 마음속에 멋진 남자 그리고 안락한 결혼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게 작용했다.

 

콜레트 문학의 강점은 불행에 처한 인간의 심리를 가장 정교하게 서술하는 데에서 발견된다. 아니나 다를까, 콜레트는 주인공의 뒤섞인 심리 상태를 정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갈등의 순간마다 엄습해오는 내적 갈등, 순간적으로 가슴을 파고드는 고독, 과거의 고통에 대한 기억, 남성 존재에 대한 거부와 불, 그렇지만 사랑의 포근함에 안기고 깊은 내적 갈망 등이 작품 속에 뒤섞인 채 서술되고 있다. 르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유란 사랑이 시작될 때 찬란하게 드러나는 빛이야. 첫사랑을 생각해 봐! 사랑하는 임에게 자신을 맡기는 그날을 생각해 봐. 내가 가진 모든 것 그 이상을 너에게 줄게 하고 말하는 사람들 말이야.”

 

설령 그 사랑이 실패로 돌아가더라도 처음에 품었던 사랑의 갈망마저 저버릴 수 없다고 다짐한다. 어쩌면 인간은 누구든 간에 사랑과 우정 그리고 믿음과 자유를 얻으려는 갈망을 통해서 자신의 상처 입은 심리를 치유해나가는 끈덕진 동물인지 모른다. 르네는 무대 예술에 집중한다. 무대 위에서 연기에 몰하는 그 순간 그미는 모든 잡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예술가로서의 자기실현이 바로 이 경우에 만끽할 수 있는 것이로구나 하고 느낀. 르네는 예술적 퍼포먼스를 통해서 내적으로 만족한다.

 

 

 

어느 날 르네에게 한 남자가 나타난다. 막심 뒤퍼랭-상텔이라는 이름을 지닌 젊은 사내였는데, 그에게는 엄청난 재산이 있었다. 부모에게서 물려 받은 돈과 부동산이 어마어마했다. 막심은 무대 위에서 열연하는 아름다운 여성을 처음 보는 순간 그미에게 넋이 나가게 된다. 뒤이어 그는 반드시 르네와의 사랑을 차지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리리라고 작심한다. 다른 한편 르네는 오랜 시간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공연하는 동안 심리적 피곤함 내지는 자신의 공연 예술가로서의 한계에 직면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 나타나게 된 사람이 부드럽고 따뜻한 막심이었다. 두 남녀는 상대방을 애호하게 되고, 비록 일시적이지만 그야말로 달콤하고 축복받은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함께 살아가는 동안 르네는 행여나 다시금 한 남자에게 예속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이 무르익을 무렵 르네는 일순간 미몽에서 깨어나, 자신의 본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다름 아니라 자신의 주위에 맴도는 고독 그리고 슬픔이 본질적으로 자신의 본성이라는 쓰라린 확인, 바로 그것이었다. 이를 깨닫는 순간 르네는 자신의 속내평을 깊이 이해하게 된다. 자신의 진정한 행복은 외부로부터 다가오는 게 아니며, 자신의 존재를 행복의 척도로 삼아야 한다. 이를 깨닫는 순간 르네는 더 이상 외부로부터의 영향이라든가 주위 사람들로 인한 불안의 감정을 품지 않게 된다. 말하자면 지금까지의 역정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 내지는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여정이라고 여겨졌다.

 

르네는 막심이 결혼하자고 요청했을 때 오래 숙고한 다음에 이를 거부한다. 남성적 시민 사회의 풍습에 의존하며 남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결혼생활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르네는 막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기술한다. “당신의 작고 아름다운 눈동자에서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를 찾고 싶지 않아요. 이를 거절하려 합니다.Je refuse de voir les plus beaux pays de la terre tout petits dans le miroir amoureux de tes yeux.

 

작품에는 콜레트의 삶의 행적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발전 과정이 문학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한 인간의 발전 과정, 예술적인 방랑 그리고 마침내 찾아낸 자신의 존재에 대한 깨달음 등은 놀라운 기승전결이라는 문학적 결실로 승화되고 있다. 어쩌면 콜레트가 이전에 발표한 “클로딘” 연작은 『방랑 여인』을 완성하기 위한 습작품들일지 모른다. 필자의 이러한 주장은 과장된 것일까? 어쨌든 이 작품은 주제의 측면에서 그리고 서술의 구성에 있어서 정교한 우수작으로서 프랑스 문학사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다. 이 글을 마무리할 무렵 필자는 다음의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즉  방랑 여인2013년 이지순씨의 번역으로 지만지 출판사에서 간행되었다는 점 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