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근대불문헌

서로박: 라옹탕의 고결한 야생 (3)

필자 (匹子) 2022. 12. 17. 09:57

(앞에서 계속됩니다.)

 

10. 자유로운 인디언으로 살려는가, 아니면 프랑스 노예로 살려는가?:상기한 토론을 통해서 라옹탕은 유럽 사회가 어떻게 잘못 발전해 왔는가를 은근히 지적합니다. 아다리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의 충고를 받아들여, 휴런 사람이 되게. 우리가 처한 현실적 정황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이제 모조리 알 것 같네. 내 육체의 주인은 바로 나야. 그래서 나는 마음에 드는 것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네. 나라는 존재는 내 민족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사람이야.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아. 내가 고개를 숙이고 굴복하는 것은 오로지 거대한 정신일 뿐이야. 이에 비해 자네는 육체와 정신을 그대의 왕에게 송두리째 바치고 있네. 그대의 부왕은 그대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지 않는가? 자네에게는 스스로 원하는 바대로 행동할 자유가 주어져 있지 않아. 이를테면 행여나 강도, 사악한 인간 그리고 살인자들이 나타나 자네를 해코지할까봐 전전긍긍하며 살아가지? 수천 명의 사람들이 단순히 자네 보다 높은 자리에 앉아 있다는 이유로 자네에게 얼마든지 끔찍한 만행을 저지를 수 있어.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가? 해답은 분명한데도, 자넨 자유로운 휴런이 되지 않고, 계속 프랑스 노예로 살기를 원하고 있어.” (Lahontan 1703: 37).

 

그러나 라옹탕과 동시대에 살았던 학자들은 그의 이러한 입장에 대해 모른 척하고 침묵을 지키지는 않았습니다. 말년에 라옹탕을 하노버 궁전에서 만난 적이 있었던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어느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질문했습니다. 혹시 라옹탕 남작이 여행기를 집필할 무렵에 -마치 푸아니의 『남쪽 지역』처럼- 실제와는 다른 가상적인 판타지를 기술하지는 않았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만큼 라옹탕의 여행기는 그만큼 유럽 사람들에게 낯선 것이었고, 심지어는 유럽의 학자들에게도 생경함을 불러일으켰습니다.

 

11. 라옹탕의 유토파아의 사고로서의 고결한 야생: 라옹탕의 세 번째 책 『대화』는 “미국 여행기에 실린 라옹탕 남작 그리고 어떤 야생에 관한 대화Suite du Voyage l’Amerique ou dialogues de Monsieur le Baron de Lahotan et d’une Sauvage”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이 문헌은 이탈리아어, 네덜란드어, 영어 그리고 독일어로 번역되어 책으로 계속 간행되었습니다. 1703년에는 영어판이 런던에서 간행되었습니다. 상기한 문헌의 부분적 발췌 본은 1981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처음으로 간행되었습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지난 20년 동안에 라옹탕의 민속학에 관한 학문 연구의 역사는 비로소 세인의 관심사를 끌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라옹탕의 유토피아의 사고는 토마스 모어 이래로 전해지는 국가주의 시스템으로서의 유토피아의 구도와 어떠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을까요?

 

12. 라옹탕의 시대 비판, 권력자와 수사들의 횡포: 중요한 것은 라옹탕이 『대화』에서 위대한 유토피아 사상가들의 사회비판적인 전통을 새롭게 계승했다는 사항입니다. 사실 앙시앵레짐의 지배 체제에 대해서 이처럼 격렬하고 강하게 탄핵한 책은 이전에는 없었습니다. 프랑스 계층사회의 삶 그리고 부자유스럽게 살아가는 프랑스 인민들에 관한 아다리오의 비판을 생각해 보세요. 앙시앵레짐의 지배 체제에 대한 반대급부로 제기된 것이 바로 자연과 이성의 법칙으로 생동하는 야생의 삶입니다. 이러한 야생의 삶의 강점은 등장인물, 아다리오를 통해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라옹탕이 화두로 삼은 것은 17세기의 유럽 사회였습니다. 실제로 군주는 질서의 미명하에 독재를 행하고, 개개인들은 국가에 종속된 존재로서, 어떠한 힘도 드러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층과 계층 사이에는 심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현격한 차이가 도사리고 있으며, 수사계급은 권력에 빌붙어 기득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로써 기독교 종교는 사악한 수사들에 의해서 이성에 위배되는 정책을 수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정책은 오로지 상류층, 즉 부자에게 유리한 것이므로, 낮은 계층 사람들은 가난과 고문 그리고 착취에 시달리며 힘든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굴종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마치 가축처럼 살아가는데 비해, 지배계급은 사치와 방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13. 라옹탕의 사유재산제도 비판: 라옹탕은 사회의 비참한 상황이 출현하게 된 몇 가지 원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너의 것과 나의 것을 철저히 구분하려는 유럽인들의 사고에 있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서 휴런 부족은 이러한 소유의 구분을 미리 차단시킴으로써, 그들의 사회 내에서 형제자매의 아우르는 삶 내지 평등한 삶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인디언 부족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유 없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합니다. “재물을 사적으로 소유하는 행위 propriété des biens”는 라옹탕에 의하면 모든 무질서를 낳게 하는 유일한 근원입니다. 유럽 사회가 그토록 참담할 정도로 몰락하게 된 근본적 배경은 무엇보다도 사유재산제도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라옹탕은 재차 다음의 사실을 강조합니다. 적어도 사유재산의 제도가 존속되는 한, 고결한 신의 법칙대로 행동하는 것은 결코 가능하지 않다고 말입니다. 사유재산제도가 철폐되지 않으면, 인간이 절대로 이성에 합당하게 신의 고결한 법칙을 충실히 따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악함이 자연에 위배된다는 점 그리고 인간은 누구든 간에 선하게 살기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났다는 점을 모르는 사람이 과연 어디 있겠는가?” 하고 아다리오는 반문합니다. (Lahontan 1703: 69). 캐나다에서 살아가는 인디언들은 비록 가난하게 살지만, 유럽인들보다도 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아간다고 라옹탕은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의 것 그리고 너의 것을 나누고 분할하는 자세가 모든 유형의 범죄를 출현하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소유의 구분을 철폐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범죄의 원인은 사람들 사이의 물질적 불균형에서 비롯합니다.

 

14. 갈등 없는, 조화로운 사회의 이상은 어떻게 성립될 수 있는가? 라옹탕은 혼란스러운 유럽 문명의 대안으로서 어떤 갈등 없는 조화로운 사회의 이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실 플라톤과 토마스 모어 역시 갈등 없는 조화로운 사회 유토피아를 설계한 바 있습니다. 다만 고대와 르네상스를 염두에 둘 때 우리는 이상 공동체의 규범적 토대를 더 이상 17세기 말의 유럽 현실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라옹탕은 아자리오의 입을 빌려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즉 인간의 행동 가운데 무엇보다도 자연에 위배되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나쁘다는 것입니다.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인간은 항상 자신의 의지와 견해 그리고 감정을 모두 일치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면, 사람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언쟁을 벌리지도 않고, 법적 문제를 제기하지도 않으며, 어떠한 음험한 술수를 사용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라옹탕에 의하면 북아메리카의 인디언 부족의 삶을 이에 대한 좋은 범례라고 합니다. 인디언들은 자연이 인간의 요람 속에 전해준 가장 소박한 법칙대로 자연의 순리에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15.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 전통적인 유토피아에 의하면 사회의 공동적 삶을 조화로운 이상으로 실현시키려면, 막강한 국가가 급선무라고 합니다. 강력한 힘을 지닌 국가가 개별 사람들의 삶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지켜주고 그들의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라옹탕은 이러한 패러다임 자체를 처음부터 파기하였습니다. 몇 년 전에 푸아니가 남쪽 대륙의 유토피아에서 국가주의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허물어뜨렸듯이 말입니다. 푸아니는 국가를 부정하지만, 국가주의의 유토피아가 고수하던 합목적적 원칙에 의해 마련된 구조 자체는 파괴되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비록 국가가 제반 정책의 최전선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푸아니의 거대한 공동체는 인위적으로 관개시설을 마련하고, 사회적 간접자본을 확충하는 사업에 있어서 중앙집권적인 원칙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1억 4천4백만으로 구성된 푸아니의 거대 공동체의 경우 도시의 건축물은 중앙집권적 계획에 의해서 일사불란하게 축조되고 있습니다. 발전된 무기 기술, 과학, 문자 언어 등의 개발 등은 국가 중심적 정책에 의해서 수행됩니다. 푸아니는 국가의 시스템을 파기했지만, 전통적 국가에서 출현하던 제반 국가 중심적 체제 내지 실질적 정책 등을 자신의 유토피아에 부분적으로 도입하였습니다. 따라서 푸아니의 유토피아에서는 사유재산제도가 철폐되고, 국가가 사라졌지만, 유럽 문명의 제반 시스템의 특성이 담겨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 자체 타당합니다.

 

(계속 이어집니다.)